부여아방(扶餘阿芳)은 평소에 자신이 죽은 침류왕(枕流王)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받지 못하고 숙부인 진사왕(辰斯王)에게 백제의 어라하(於羅瑕) 자리를 박탈당한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은솔(恩率) 두지(豆知)가 자신을 몰래 찾아와 아버지인 침류왕이 재위 1년만에 일찍 죽게 된 것은 진사왕의 모략에 의해 독살당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자 아방은 마음 속으로 칼을 갈며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지지세력이었던 대귀족들마저 등을 돌리자, 진사왕은 실의에 빠졌다. 그는 정사(政事)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매일같이 사냥으로 소일(消日)하며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진사왕은 주로 구원(狗原)에서 사냥을 했는데, 늘 소수의 무사들만을 대동했다.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아방은 국왕이 자주 구원으로 사냥하러 나간다는 말을 듣고 덕솔(德率) 경병무(慶炳武)를 불렀다.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
경병무는 칼을 뽑더니 재빨리 자신의 왼쪽 팔뚝을 그으며 맹세했다.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만일 제가 이 맹세를 어긴다면 벼락을 맞아 죽을 것입니다.”
아방은 믿음직한 눈빛을 경병무에게 보내며 진사왕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진사왕이 구원으로 사냥을 나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병무는 자신의 부하 30여명을 거느리고 구원의 숲 속에 몸을 숨겼다. 이 무렵 진사왕은 여느 때처럼 몇몇 시종무사들만 대동한 채 구원으로 달리고 있었다.
진사왕은 왕궁 안에 앉아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형 침류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를 때만 해도 백제를 할아버지인 근초고왕(近肖古王) 때보다 더 강력한 나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정은 어떠한가? 고구려의 나이 어린 임금인 광개토호태왕의 계책과 전술에 농락당하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애써 지켜 온 패하 이서의 땅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도성의 관문이라는 관미성까지 고구려의 손에 넘겨줘 도성이 늘 위협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믿었던 대귀족들이 등을 돌려 왕권마저 위태롭게 되었으니 가슴 속에 응어리가 생길만도 했다.
구원에 도착한 진사왕은 곧장 사냥에 나섰다. 그는 말을 달리며 들판의 짐승들을 쫓아 화살을 날렸다. 그런데 기이하게 생긴 사슴 한마리가 진사왕 앞으로 지나갔다. 사슴은 마치 눈보라 속에서 금방 빠져나온 듯 새하얀 털을 가졌고, 몸의 곡선이 우아하고 아름다운데다가 동작에 여유가 있었다.
사슴은 진사왕을 쳐다보고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국왕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슴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진사왕은 흰 사슴에게 마음을 빼앗겨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그 뒤를 쫓았다. 진사왕의 말이 속력을 내자 흰 사슴은 더욱 빨리 뛰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진사왕이 사슴을 따라 한참 산길을 달리다보니 커다란 고목(古木)이 쓰러져서 길을 막고 있었다. 흰 사슴은 쓰러진 나무를 훌쩍 뛰어 넘어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진사왕은 사슴을 놓칠세라 엉덩이에 채찍질을 했지만 말은 고목을 뛰어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진사왕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사슴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슴을 놓친 진사왕은 허탈한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시종무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사왕은 문득 마음이 불안해져 큰소리로 무사들을 불렀다.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땨 숲을 가르며 한 떼의 괴한들이 진사왕을 향해 달려왔다.
진사왕은 침착하게 패검(佩劍)을 빼어들었다. 그때 짚동처럼 큰 사내가 철퇴(鐵槌)를 휘두르며 앞서서 진사왕에게 달려들었다. 아방의 분신과도 같은 경병무였다.
진사왕은 칼을 들어 경병무의 철퇴를 정면으로 막아냈다. 그 충격으로 칼날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진사왕은 상대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당황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전장을 누벼 왔지만 이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진사왕은 겁을 먹고 몸을 빼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복면을 한 무사들이 진사왕을 에워싸고 있었다.
경병무는 진사왕이 허둥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철퇴를 휘둘러 머리를 내리쳤다. 진사왕은 경병무의 일격에 머리가 터져 고꾸라졌다. 경병무는 진사왕의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고 나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유유히 숲으로 사라졌다.
진사왕의 죽음이 전해지자, 그동안 진사왕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던 진무를 비롯한 조정대신들과 목힐강부를 위시한 지방 세력은 즉시 아방을 지지하고 나섰다.
서력 392년 겨울에 아방이 신하들의 옹립으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백제의 제17대 어라하인 아신왕(阿莘王)이었다.
아신왕이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고구려에게 당했던 치욕을 되갚아 주는 것이었다. 이는 자존심 강한 백제인들의 군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아신왕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진무(眞武)를 좌장(左將)으로 삼아 전군을 통솔하도록 했다. 또, 목힐강부(木詰綱扶)로 하여금 각지의 군사를 모아 조련하게 하고, 군마와 무기를 사들여 전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후연(後燕)·왜국(倭國)과의 교류를 통해 주변국들 사이에서 백제의 입지를 넓혔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만반의 준비를 끝낸 아신왕이 가장 먼저 목표로 삼은 것은 관미성(關彌城) 탈환이었다. 관미성은 옥리하(玉里河)의 관문으로 도성에서 지척이었다.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이 강화협상에서 이곳을 요구한 이유도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군사를 주둔시킴으로써 백제 조정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뒤집어 생각하면 백제로서는 이 감시의 눈을 제거해야만 고구려에 대한 반격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아신왕은 신하들과 머리를 맞대고 관미성을 칠 일을 의논했다.
“관미성은 견고한 요새이므로 쉽게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소. 영락대왕(永樂大王)이 알아채기 전에 관미성을 함락시키고, 달을참과 석모도에 주둔하고 있는 고구려 군사들을 일거에 몰아내야 할 텐데 묘안이 없겠소?”
이때 대신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나서며 아뢰었다.
“관미성을 힘으로 제압하기는 어려우나 꾀를 쓴다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옵니다.”
아신왕이 귀가 번뜩 뜨여 쳐다보니, 어린 아이와 같은 체구에 등이 굽고 얼굴은 서생원처럼 생긴 자가 눈에 들어왔다. 국왕은 사내의 볼품 없는 외모를 보고 실망스러웠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 그 계책이 무엇인지 들어 보세나.”
그의 한없이 깊어 보이는 눈만은 달빛을 머금은 눈송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신왕 앞에 당당히 나선 사내는 사두순(沙豆巡)이란 자로 사문감(司文監)의 서사(書士)라는 직책에 있었다.
“지금 관미성의 경계는 삼엄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그리고 치양성에 머물고 있는 고구려의 장수 우나굴의 부대 또한 언제든지 다시 쳐내려올 수 있게 항상 준비를 갖추고 있사옵니다. 이를 볼 때 고구려는 우리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저들의 역습(逆襲)을 받기 십상이옵니다. 관미성을 치기 위해서는 먼저 저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혈구도(穴口島)에 상륙해야만 하옵니다.”
“대규모의 병력이 움직인다면 저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소?”
“저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저들이 우리의 상륙을 막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영접하게 하겠사옵니다.”
아신왕은 사두순의 장담이 믿기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지략을 갖춘 사람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이 아신왕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국왕이 망설이고 있자, 좌장군 진무가 나서서 권했다.
“사두순은 뛰어난 인재(人材)이옵니다. 그를 믿고 맡기시면 절대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사두순이 어릴 때부터 가까이서 보아 온 진무는 그의 비범함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신왕은 진무의 의견을 따라 혈구도 상륙작전의 전권을 사두순에게 위임(委任)했다. 사두순은 당연하다는 듯이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을 띤 채, 편전을 물러 나왔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국왕이 출전을 서두르고 있는 판에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두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국왕에게 그를 추천했던 진무는 애가 달았다. 그래서 그는 수레를 타고 사두순의 집으로 달려갔다.
진무가 사두순의 집에 당도해 보니, 그는 천제(天祭) 때 입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한가롭게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진무가 보기에 이 모습이 너무도 가관인지라 순간 자기도 모르게 노(怒)하여 언성을 높였다.
“아니! 어라하 앞에서 큰소리를 치더니 겨우 집안에서 축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이 없으면 장담을 말 것이지, 어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 자네도 어라하를 능멸(凌蔑)한 죄가 얼마나 큰 줄은 알고 있겠지?”
진무의 꾸지람을 듣고도 사두순은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늘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제(祭)를 지낼 준비를 모두 끝냈으니 혈구도로 서찰 한통만 띄워 주십시오.”
“아니 갑자기 무슨 서찰을 띄워 달라는 말인가?”
“우리 백제의 천제는 혈구도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에서 하늘에 제를 지내는 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난해는 전쟁으로 인해 이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이제 전쟁도 끝났고 두 나라가 형제지국의 우의를 맺었으니, 참성단에서 천제를 지내 양국의 우호(友好)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 도성에서 사람을 파견하겠다는 내용으로 쓰시면 됩니다.”
사두순의 말을 듣고서야 진무는 그의 의중을 알아챘다.
“당연히 그리 해야지. 내 당장 관미성에 서찰을 보내겠네.”
조정으로 돌아온 진무는 내법좌평(內法佐平)의 이름으로 관미성에 서찰을 띄웠다. 서찰에는 이달 보름에 제관(祭官)과 수행원들이 천제 준비를 위해 혈구도의 서편인 동자홀로 상륙하여 마니산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서찰을 받아든 해진압은 큰 의심 없이 이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한홀에 주둔하고 있는 남경군(南境軍) 대모달(大模達) 우나굴(于那屈)에게 백제의 제관들이 혈구도에 상륙한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동자홀 초소의 경계를 강화했다.
보고를 받은 우나굴은 웬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요사이 백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겉으로는 고구려의 더할 나위 없는 우방(友邦)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그들의 은밀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첩자들의 보고를 종합해 보면 백제는 아신왕이 등극한 이후 흉흉했던 민심이 안정되었고, 후연과 왜국과의 교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성에서는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수의 장정들을 군사로 조련하였고, 마한 지역에는 풍년이 들어 많은 곡식을 수확했다.
우나굴이 보기에 이 첩보들이 정확하다면 백제는 짧은 시간에 충분한 병력과 물자를 확보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백제가 언제 다시 도발해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백제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그 첫 목표는 관미성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천제의 준비를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백제의 병력이 혈구도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했다. 게다가 혈구도는 관미성을 빼고는 여전히 백제계 관속들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백제군이 딴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 이들과 합세할 수 있었다. 물론 관미성에서는 각처에 초소를 두어 섬 안의 백제계 관속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고구려는 백제와 표면적으로는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국가행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나굴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고구려 군사들이 천제의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나굴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우나굴은 다급히 부장인 모달(模達) 을지선휴(乙支先烋)을 불렀다.
“그대는 즉시 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내미홀로 가서 선단을 정비하고 대기하라. 만일 관미성에서 급보가 날아오면 지체하지 말고 달려가 도우라.”
을지선휴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백제가 다시 군사를 일으켰습니까?”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창밖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던 우나굴이 을지선휴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은 저 쏟아지는 비처럼 예측할 수가 없구나.”
을지선휴가 명령을 받고 물러가자, 우나굴은 벽에 걸려 있던 장검(長劍)을 뽑아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피를 부르는 듯한 날선 바람소리가 귓속을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