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사전송 2012-01-13 15:31
(화성=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지난해 7월 강화 해병대 2사단 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상관 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20) 상병에게 13일 사형이 선고됐다.또 김 상병과 함께 범행을 공모하고 상관살해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21) 이병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심판부는 김 상병과 정 이병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여러 정황 등에 비춰 극형이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이들은 항소할 경우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재판을 받게 된다.
김 상병은 지난해 7월4일 해병대 2사단의 강화군 해안 소초에서 부대원들에게 K-2 소총을 발사해 4명을 숨지게 하고 범행에 앞서 K-2소총과 실탄, 수류탄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정 이병은 사건 당일 김 상병과 범행을 모의하고 상관살해를 방조한 혐의 등으로 김 상병과 함께 기소됐다.
gaonnuri@yna.co.kr
전 이 기사를 읽고 김상병같은 정신병자가 군대에 가기전에 걸러져야하고 일벌백계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기에 위키백과를 통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해병대 총기 사건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찾기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은 2011년 7월 4일, 오전 11시 50분경,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해병대 해안 소초에서 해병대 2사단 김모 상병이 K-2 소총을 탈취해 동료 해병들을 향해 사격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다.
목차 [숨기기] 1 사건 개요 2 이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들 3 사후대책 4 주석 5 같이보기 [편집] 사건 개요이 사건으로 해병대원 4명이 사망하고 김 상병을 포함한 2명이 부상했다. 또한 7월 6일 새벽에 군당국은 사건에 대한 범행 공모 혐의로 같은 부대 소속 정모 이병(20)을 긴급체포했다. 사건의 주범 김모 상병은 해병대 사병들 사이에서 후임병에게도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따돌림 문화의 일종인 '기수열외'를 당한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김상병은 사고 조사단과의 문답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고 발언했다.[1] 사망자 4명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편집] 이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들이 사건으로 인해, 기수열외와 성추행, 후임갈취, 폭력 등을 비롯한 해병대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내무 부조리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사회 이슈화 되었다.[2] [3] 국방부 자체 감사에서 해병대에서 2년간 943명이 구타로 치료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4] 또한 해병대의 허술한 총기,탄약 관리도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되었다.[5]
총소리를 들은 해병대원들이 비상 상황발생시의 매뉴얼에 따른 대응은 커녕, 속옷 차림으로 부대를 이탈하여 민가쪽으로 전력질주하여 도망치는 모습이 부대주변 주민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하였다. [6]
그리고 김상병에게 총상을 당하여 피를 흘리고 있던 권모 이병이 주변에 있던 해병 선임들에게 지혈을 부탁했으나 선임들이 지혈법을 모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옷을 찢어 자신이 직접 지혈을 했고,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7]
사망자 중 박모 상병은 사고 발생 직후 생존해 있었으나, 인근 병원에서의 응급조치후 국군수도병원으로의 이송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빠른 시간안에 응급수술이 이루어졌더라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 함께 군의 응급환자이송체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8]
해병대 당국은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을 수립, 이행한다고 밝혔다.[9] 그리고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에 대해서는 빨간 명찰을 떼어내고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10]
[편집] 주석 ↑ 김 상병 "구타, 왕따, 기수 열외 없어져야 연합뉴스 2011년 7월 ↑ 11년전 목맨 일병 기억 생생…당했단 얘기 돌았다 한겨레 2011년 7월 12일 ↑ 해병대, 억지로 벌레 먹이고 자위행위까지 강요 프레시안 2011년 7월 14일 ↑ 해병대 2년간 943명 구타로 치료 한국일보 2011년 7월 ↑ 총기·실탄관리 등 근무수칙만 지켰어도… 세계일보 2011년 7월 ↑ 강화 해병대초소 총기난사' 긴박했던 상황 안팎 경인일보 2011년 7월 5일 ↑ '해병대 총기난사' 총상 입은 권혁 이병 병원 후송 1시간 걸려 민중의 소리 2011년 7월 7일 ↑ 총맞은 朴상병 2시간 35분간 숨 붙어있었는데… "즉시 헬기로 이송했다면 살렸을 가능성" 조선일보 2011년 7월 ↑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 돌입 연합뉴스 2011년 7월 ↑ 해병대, 가혹행위 병사 ‘빨간명찰’ 떼고 퇴출 헤럴드 경제 2011년 7월 18일 [편집] 같이보기 보호 관심 병사 기수열외 집단따돌림 해병대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D%95%B4%EB%B3%91%EB%8C%80_%EC%B4%9D%EA%B8%B0_%EC%82%AC%EA%B1%B4
본문에서 [사건의 주범 김모 상병은 해병대 사병들 사이에서 후임병에게도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따돌림 문화의 일종인 '기수열외'를 당한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김상병은 사고 조사단과의 문답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 김상병은 정말 악한 상화에 처해 있다고 보였습니다.
풍문으로 군대다녀오신 분들이 군대에 이상한 놈들 정말 많다고 하면서 "과자 조카 많이 사와서 다 처먹게하기, 조카 갈구기 같이 일부러 재미삼아하는 애들도 있어, 그거보면서 조카 처웃는 애들도 조카 많고..."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왕따 및 구타는 물론이거니와 성적인 학대까지 당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렇게 된 상황이면 '김상병은 인격모독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죽고 싶은 상황이 주어졌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김상병이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여 여러 행복을 앗아 간 것이 용인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상황, 악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들이 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이 세상에서 어른이 모두다 똑같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 모두가 똑같은 사람입니까?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같지도 않은 사람이 사람을 사람같지 않게 대하게 된다면 그 대상자 또한 사람같이 않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이성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것이 변했으면 합니다. 공자 말씀 중에 정명이라는 것이 있는데, 자신의 위치 그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만이라도 똑바로 행해주면 이러한 최악의 상황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조심하고 남을 대할때에도 조심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군부대님들이 자신들의 오점을 가리기위해 김상병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는 것 처럼 행동하지 말고, 좀 더 생각을 하고 좀 더 나은 최선의 방법을 떠올려 적용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