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어렸을때부터 꿈이 군인이 되고싶어 했습니다.
뭐 창씨개명한이유도 있겠죠. 육사에서 거부한다던가.. 뭐 왜그랬는지 기록은 없는걸로 알구요
박정희가 일제를 찬양하는 혈서를 썻다고 신문은 박정희가 1939년 3월 29일에 썻다고 주장하는데
그런데 박정희가 육사에 합격한 시기는 1939년 2월 24일에 합격자를 발표했어요.
그리고 박정희는 일본군인이 아니라 만주국 군인입니다.
뭐 옛날에 자기스승이 그렇게 군인이 하고싶으면 만주로 오라해서 갔다네요.
박정희가 독립투사들 때려잡은것도 한심합니다.
관련기사를보면 다카키 마사오가 아니라 오카미 쇼히코입니다;
그리고 독립투사 토벌작전에서 박정희가 속한 부대가 참여는 했지만 전투는 안했습니다.
그리고(해방후 6.25발발하기전까지 고초를 제외하고 넘어감) 6.25는 박정희에겐 기회였습니다.
형이 공산당활동하다 죽었고 본인도 공산당집회등에 참가한 경력이 있거든요.
북한이 이기고있는데 북한으로 안넘어가자 박정희는 급속도로 신뢰를 받아서 고속승진했습니다.
후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반대파를 숙청했는데 오십보 백보지만
독재정권치고 그나마 별로 안죽었어요. (스탈린의 숙청할땐 7초마다 한사람씩 죽었습니다)
음.. 일단 힘드니 나머지는 대충 섞어서 요약하겠습니다.
한심한 사람들이 박정희정권때 대다수가 자유를 원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교육이 열악해서 문맹이 절반이었습니다.
자유를 아는 사람들은 대학,고등학생정도로 소수였습니다.
시민의식도 아직 왕이 통치하는줄 알았습니다 대통령=왕
이러는데 대다수가 원해요? 한심해서 말이 안나와요
그리고 박정희가 유신통치를 한 이유는 중화학공업을 일으키기 위해섭니다.
과정은 복잡하니 패쓰 대충 한일국교정상화로 넘어갈께요
한일국교정상화는 과연 미국의 압력이 있었습니다. (원조로 협박)
그리고 우리는 아직 돈이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조국의 발전을 원했기 때문에 한일국교정상화에서 일제시대 보상금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 돈으로 경부고속국도를 만들고 구 포항제철등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새마을운동.
소득증대와 삶의 질 개선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시행했습니다. 한마을에 시멘트 100~300포대가량.
그리고 새마을운동 노래에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라는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양날의 선택"도서中의 정보를 인용하면 대다수가 소득이 그대로거나 더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삶의 질은 개선됐습니다. 초가지붕->슬레이트 지붕
당시에는 석면에 대한 위험성을 몰랐기때문에 썻습니다.
그리고 향토예비군을 창설했습니다. 이건 전국동원령입니다.
당시에 현직군인들도 M-16소총으로 모두 교체하지도 않았는데 향토예비군들은 이 총으로 무장했습니다.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자기마을을 자기손으로 지키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후에 엄청 고생을해서 중화학공업자금 100억달러를 모아서 창원에 단지를 조성했습니다.
창원은 계획도시입니다. 그리고 당시 16차선을 왜뚫냐고 비웃었는데
이는 전쟁대비입니다. 비행기가 착륙하거나 출격할용도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있던 전국에서 열손가락안에 들정도로 좀살던 마산은 창원으로 사람이 몰리는바람에
거의 파탄에 이르렀고 지금현재 창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화학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좀 많이 넘어왔지만 극비 핵 프로젝트.
미국이 한국주둔 미군을 통보없이 5만명상당을 철수시키자 박정희는 미국에 의지하지않기로 합니다.
유도탄과 핵을 국방과학연구소에 주문하고 생전에 한국이 자립적으로 유도탄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가 사람에게 둘러싸여 그의 심복인 김재규도 그를 별로 만나지못하자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정희를 암살합니다.
그리고 후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극비 핵 프로젝트 개발자들을
모두 해고시켜 핵프로젝트는 완전히 물날라갔습니다.
이만 줄이구요 대충 빼먹은거 적겠습니다.
북한이 군인파견해서 청와대까지 진격 박정희는 미국에게 보복하자고 했지만 미국이 거절.
북한이 일본동포를 포섭해 박정희 암살시도-> 박정희의 아내인 육영수 사망.
이런데도 박정희가 공산당이에요? 참나 웃기네ㅋ
뭐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탄압한건 사실입니다. 나쁜것도 인정해야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정희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가합니다.
민주주의 할려다가 경제발전때문에 망하고 경제발전하려다 민주주의 때문에 망한나라가 한둘이 아님.
그리고 박정희가 여자를 끼고살았다는데 웃깁니다. 끼고살았으면 기록이 있어야죠 참 웃기는 말입니다.
박정희가 친미파? 원조때문에 그런겁니다. 원조가 없었으면 경제발전도 좀 힘들었죠
친일파? 한일국교정상화 보상금으로 국가기반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박정희가 한말이 "사사로이 반일감정으로 해선 안된다 우린 가난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게 당당하
게 받을돈이 있지않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세상에서 전례없는 청렴한독재를 했습니다.
독재하면 거의 부정부패가 따라다니는데 박정희는 안그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월남전 무렵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돈을 들고 온 쪽은 당시 M16 자동소총 수출업체였던 맥도날드 더글라스 회사 중역, 돈을 받은 쪽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데이빗 심프슨, 그가 회고한 100만 달러가 얽힌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대통령 비서관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지만 그의 행색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그의 허름한 모습이 순식간에 뇌리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각하! 맥도날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하자 대통령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고 말을 꺼냈다.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집무실과 거실에 부채와 파리채를 두고 에어컨은 끄고 지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 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리고 국방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가 드리는 작은 성의…’라는 인사말과 함께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代(대)를 일해도 못 만져볼 큰돈이구려.’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순간 나는 그 역시 내가 (무기 구매 사례비 전달로) 만나본 다른 여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관례적인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그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한 가지만 물읍시다.’
‘네.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거요?’ ‘네. 물론입니다. 각하!’ ‘그러면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대통령은 봉투를 다시 내 쪽으로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이요.
내 돈이니까 내 돈으로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당장 이 돈만큼 총을 더 가져오시오.
당신이 준 100만 달러는 사실은 내 돈도 당신 돈도 아니요.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독일광부)에서 그리고 멀리 월남 땅에서 피 흘리고 땀 흘려 바꾼 돈이요.
내 배 채우는 데는 안 쓸 거요.’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어치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國父=국부)의 모습을 보았다….’</! DIV>
4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 청와대 정문을 통해 같은 액수인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직전 대통령 家의 가면이 속속 벗겨지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똑같은 100만 달러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직책의 인물 측이 받았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감동’과 ‘치사스러움’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일까?
똑같이 돈을 주고도 한 외국인은 애국심과 청렴,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지도자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고 박연차는 애국심도, 백성 사랑도 없어 보이는 지도자라 여겼을 것이기에 주저 없이 폭로했다. ‘감동이 준 존경’과 ‘경멸이 낳은 폭로’, 그 차이다.
노무현家와 박 전 대통령의 차이는 또 있다. 집안의 빚은 설사 그 빚이 아내가 따로 진 빚이라 해도 남편이 자신의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갚아 주는 것이 진정한 남자의 부부 義(의)다.
빚졌으면 봉하 저택이라도 팔면 될 것이지 되레 돈 준 사람이 딴말 한다고 시비나 걸고 외간 남자에게 빚 얻게 둔 뒤 ‘아내가 돈 받았으니 난 모른다’고 말하는 남자는 ‘참 매력 없는 남편’이다.
초급장교 시절 상관이 쌀을 보태주던 가난 속에도 일기장엔 늘 육영수 여사를 위한 詩(시)를 썼던 박정희와의 인간적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