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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이단인가 정통인가?

물의정령 |2012.02.16 06:27
조회 107 |추천 0

이단의괴수로 불린 예수님

 

 

신천지를 이단으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은것으로 알고있다.

이단인지 아닌지를 어떤 잣대로 판단 해야하는 것일까?

신천지를 이단으로 폄회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올바른 신천지의 계시복음을 접해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무슨근거로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 짓는 것일까?

신천지가 이단인지 기성교회가 이단인지를 아래의 글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이단소송의 유래

 

 

유대교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에게 제기한 고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기소된 죄목은 "이단(異端)" 이었다.
이단이란 말은 본래 "선택"이란 뜻의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 - 영어의 Heresy)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것을 택하여 믿고 가르치는 종파나 학파를 일컬었다.
이와 반대되는 "정통(正統-영어의 Orthodoxy)"은 옳고 바른 것을 뜻하는 헬라어 "오르도스(orthos)"에서 연원하여 본래의 학설이나 교의(敎義)를 올바르게 계승한 주류를 가르켰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고수해 온 인간적인 전통을 거부하고 그들과 다르게 믿고 가르치는 나사렛 예수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도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 이단"으로 정죄하고 당당히 고소하였고 무고하고 무죄히 피를 흘리는데 참여했으니..
정통과 이단에 대한 시비(是非)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어 세월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바리세인들과 신천지를 이단으로규정하는 기성교회 원로들과는 닮아있다. 

 

 

본론: 이단 박해의 역사와 정통파동


다음에 서술할 종교 역사속의 살벌했던 이단박해의 역사를 대략 살펴보면 지나간 과거는 접어 두고서라도 빗나간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오늘날 기독교 세계의 모습을 쉽사리 보게 된다. 우리는 다음의 일례를 통하여 오늘을 위한 교훈을 찾고자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고수해온 전통은 성경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다는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 의 결정에 어긋나게 가르친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을 즉시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그들은 생명까지 위협을 당하였다.
개혁 초기부터 이단으로 몰린 칼빈은 모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피하여 제네바에 정착했다. 거기서 칼빈은 같은 프랑스인이며 로마 카톨릭 수도승으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개혁 신앙으로 전향한 볼섹(Jerome Bolsec)이 자신의 예정론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를 시정부의 재판에 회부하여 1551년 제네바로부터 영구히 추방당하였으며 볼섹은 결국 그의 옛교회로 돌아가고 말았다. 또다시 칼빈은 영아세례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조에 대해 이설(異說)을 주장한 또 다른 의사 세르베드(Michael Servetus)를 재판에 회부한 후 1553년 불살라 죽였다. 또한 같은 때에 종교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영아세례를 반대하며 사람이 죽은 후 부활때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머문다고 가르치는 재세례파(Anabaptists)를 "겉도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가차없이 취급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칼빈의 제네바 신정(神政)기간의 일부인 1542년부터 4년간 58명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처형되었으며 76명이 제네바로부터 추방되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교회사가인 필립샤프(Philip Schaff 1819~1893)는 이러한 과오가 칼빈 자신보다는 중세 카톨릭교회의 그릇된 신정(神政)의 전통을 미쳐 벗어나지 못한 칼빈의 신정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는 개신교의 개척지인 미국 땅에서도 반복되었다.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이단자로 정죄되어 살 곳을 찾지 못한 청교도들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아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미국의 동부에 정착했지만 그들은 과거를 잊은채 오히려 정교(政敎)일치, 신앙의 일치를 내세우면서 이에 반대하는 침례교도들을 추방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한 후 목에 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1662년 도리어 영국의 국왕 찰스2세가 이를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계속했다.
이러한 모순들에 대해 필립샤프는 이렇게 개탄했다. "개신교가 로마 카톨릭과 다른 것은 단지 이단의 정의이며 그 형벌이 훨씬 온건했다는 것 뿐이다." 이러한 혼탁한 역사는 20세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후반부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 신학이 20세기와 함께 미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1세기 동안 휩쓸리고 만다. 이에 보수신학을 대표하는 메이쳔(J.G. Machen)은 자유주의 신학을 이교적(異敎的)이요, 로마 카톨릭 교회보다 더 심각한 배도(背道)라고 선언하고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새로운 전통보수 신학의 요람으로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를 분립시키기에 이른다. 이보다 앞선 1919년 스위스의 한 작은 교회 목사였던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의해 주창된 "신정통 주의"신학에 영향을 받아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가 1647년 이래 전통적인 장로교 신앙고백이었던 웨스 민스터 신앙고백과 크게 상반되는 "수정(修正) 신앙고백"을 채택함으로써 일대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몰아친 정통 파동은 그대로 국내 교계에 유입되어 같은 교파이면서도 격렬한 정통 논쟁으로 신학적 공존이 어렵게 되어 결국 장로교안에서도 한국 기독교 장로회와 대한 예수교 장로회로 양분되고 미국의 경우처럼 각 별도의 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 후로도 정통 파동은 계속되어 통합, 합동주류, 비합동 주류, 합동진리, 고신, 고신 법통, 호헌, 성경장로회, 한국기독교 장로회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이제는 정통의 계보마저 가리기 어려운 실정이며 장로교의 교파수만도 100여개, 감리교, 침례, 성결, 순복음 등등 셀 수 없는 많은 교단과 교단안의 교파가 수십, 수백개가 넘는 실정이다.
현실을 알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박해자 칼빈이 살아있다면 신천지를 사이비교회로 낙인 찍었을 것이다. 

 

모든 판정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운동경기에는 경기 규칙이 있고, 법정의 재판은 법률에 의하듯, 선악간의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다고 성경은 언급한다.

 

 

 

 

 

 
결론: 정통과 이단의 판단 기준은

 오직 성경이다.

 

 

 

 

 오직 성경말씀 으로만 가르치는 신천지

 

 

 


[단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속죄-에밀 프리앙 


그렇다면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는 데도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탁명환씨 말대로 "이단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통적 진리의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정통의 기준에서 위배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탁명환씨는 이 정통의 기준으로 성경관, 신론, 메시아론, 성령론, 속죄론, 재림론 등 10가지 항목을 나열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론(論)"이라는 것이 누가 말하는 "론"이며, 이 "관(觀)"이라는 것이 누가 보는 "관"이냐는 것이다. 결국 성경을 바로 아는 일이 이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자가 당착(自家 撞着)으로 인한 논리적인 자괴(自壞)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해서는 안된다(마15:6)"는 주님의 경고를 우리 모두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정녕히 아침의 빛을 보지 못한다(사8:20)"는 명백한 말씀을 함께 상기해야 하고 정통이든 이단이든 성경만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임을 못 박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거이다. 여러 교파, 교단, 교리의 난립으로 혼돈되고 혼탁하여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기 곤란한 어려운 시대에 저마다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다수를 점령하고 있으며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교역사 한세기를 넘어선 한국교회도 이제는 사도행전의 베뢰아교회 신자들처럼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자가 많아" 지는 성숙한 교회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행17:11)
교회사의 상식을 가진 우리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중심적인 기준에 따라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평하는 정통시비의 주범인 교계, 교권주의자들의 횡포에 지쳐있고 식상해 있음을 알리는 바이며, 비평을 함에 있어서는 먼저 철저한 자기 주장의 성경적 고찰과 검증을 통한 신중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 시대에 바리새인 교법사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두고 한 말을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8~39)

 

교법사 가말리엘

 


결론적으로 이제야말로 교단이나 교파의 편견을 떠나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를 생각할 때이며, 정통과 이단 논쟁이 정죄하고 분열시키는 차원이 아닌 옳은 것을 찾고 옳은 것으로 일치시키는 화합과 사랑의 실천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주의 말씀은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내 발의 등이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빛이다 라는 말씀에 조명하여 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핍박이 있다 하여도 정통이 이단이되고 사이비가 되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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