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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가을 그녀가 회사로 찾아와서 이름을 알게되었습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붙여질 수 없는 이름으로 제게 찾아왔습니다.
상긋한 오후같은 그대여!
“상우씨, 인사하세요. 이쪽은 으라차차 매거진의 김하우씨입니다.
두 달간 같이 일하게 될테니깐 친하게 지내세요.”
황대리님은 조그마한 회의실에 그녀와 나, 딸랑 둘만 남겨둔채 급히 팀장님 책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뽀얀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모습은 제 가슴을 쿵쾅 쿵쾅 흔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설렌다는 것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신호라는데 제게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만 같았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박상우라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겉만 책임자의 위치이지 거의 궃은 잡일만 맡아서 하고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아..예-”
넉살 좋은 척 길게 소개를 한 저와는 달리, 그녀의 대답은 짧은 외마디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여자 쉽지 않아.’ 그녀의 짧은 반응에 당황한 저는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어색해질까 두려워 금세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둘다 이름 끝에 ‘우’자가 붙네요. 제 이름은 ‘윗 상(上)’ 자에 ‘정오 우(牛)’자예요.
뜻을 굳이 풀이하자면 오전라는 의미예요. 그쪽은요?”
초면에 상대방의 이름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지난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될 경우는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전 ‘아래 하(下)’에 ‘정오 우’. 오후이라는 의미예요. 어머니가 오후에 저를 나셨다네요.”
이건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 이름의 의미는 오전이고 그녀 이름의 의미는 오후입니다. 사람은 가슴 설레이게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실로든 묶여 보이려합니다. 전 서로의 이름에 대한 의미를 공유한 후, ‘묶였다!’란 김치국부터 마시게 되었습니다. 오전과 오후를 더하면 하루가 됩니다. 그녀와 저와의 앞으로의 날들이 멋진 하루가 되기를 꿈꾸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둘의 관계에도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유리로 되었다지만 비좁아 답답하기 그지없는 회의실에서 둘만의 열띤 이야기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오고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제시하고 진행 계획 및 역할 분담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인사 할 때나 개인적인 질문을 할 때면 의기소침한 건지, 새침한 건지, 시크한 건지 도통 분간이 않되는 짧은 대화채를 구사하던 것과는 달리 회의할 때의 그녀의 모습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회의할 때, 그녀의 눈빛은 몽골의 드넓은 초원 밤하늘에 달린 별빛처럼 반짝였습니다. 회의 중간 중간 마다 그녀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하루 망아지처럼 맥없이 회의자료를 내려다보는 척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녀의 눈과 제 눈은 2초이상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지면 넓어져 있던 동공이 갑자기 작아지면서 잠시 앞을 볼 수 없듯이, 그녀의 눈망울을 보게 되면 앞이 멀어졌습니다. 그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이어진 장장 세시간의 회의. 하루하루가 지루해서 ‘이렇게 시간이 않갈 수 없다’며 투덜되던 지난 몇일간의 투정이 이내 사라졌습니다.
세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그녀에게 차가우면서도 가벼운 척 말을 건냈습니다.
“회사 앞에 맛있는 닭갈비 집있는데, 오늘 시간되시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둘이요?”
“네”
“둘은 조금 부담스럽네요. 조만간 황대리님이랑 함께 먹어요. 그럼 전 이만가겠습니다.”
호감이 있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지만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한 것도 아닌데 ‘너무 오바떠는 거절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뭐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저 이름도 비슷하고 같이 일도 하게 되었으니 팀웍을 다질겸 서로를 알아갈겸 겸사겸사해서 밥 한끼 하자는 것인데 그리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설레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 사실을 알고는 바로 방어자세를 취한 것은 아니였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주 사소한 거절이지만 기분이 몹시 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