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년전 여름, 제 나이 스물 다섯때의 일입니다.
저는 때때로 꽤 진지한 구석이 있습니다만,
그에 못지 않게 장난끼도 다분합니다.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함께 지하철(7호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왠지 장난을 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날이 있잖아요? 괜히 마음이 둥둥 떠서 막 장난치고 싶은 날.
그날은 저에게 그런 날이었던 것이죠.
어떻게던 건수를 잡아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고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던 저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 오늘 남자한테 헌팅건다."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지하철은 서서히 정지했고
제 앞에 문이 열리던 순간!
두둥.
조금은 말랐지만 탄탄한 몸매의 까무잡잡한 키큰 훈남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직감했죠.
이 사람이 바로 나에게 최초로 헌팅당할 행운아라는 것을 말이에요.ㅋㅋ
필받은 저는 지하철에 오르며 작은 소리로 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쟤다"
친구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웃음을 참으며 '진짜?' 라고 물었고
저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응!'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살며시 그 까무잡잡한 훈남 뒤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훈남을 등지고 가만히 섰죠.
그 훈남의 등과 저의 등은 불과 10cm정도의 사이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시도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하더군요.
저 : "어떻게 하지?"
친구 : "몰라 ㅋㅋㅋ"
저 : "연락처 물어볼까?"
친구 : "진짜 하게?"
저: "그럼!"
친구 :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 "핸드폰을 이용해야 겠다"
친구 : "어떻케 ㅋㅋ 진짜 할건가봐 ㅋㅋㅋㅋㅋㅋ"
저는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과
조금은 쪽팔리는 마음을 차분히 억누르며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그 까무잡잡한 훈남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
"네? 저요???"
훗. 그 훈남, 이름 모를 낯선 여인이 갑자기 말을 거니
좀 많이 당황하는 듯 보이더군요.
그런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저는 눈을 내리깔고 최대한 수줍은 미소를 띄운 상태로
핸드폰을 건내며 말했습니다.
" 네, 그쪽이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연락처 좀 주실래요?"
그 다음 상황은 그 훈남이 역시나 조금은 당황한,
하지만 기쁜 마음을 억누른
미소를 띄며 제 핸드폰을 받아들고
버튼을 꾹꾹 눌러 연락처를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제 상상속에서는 그랬지요.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 훈남, 정말정말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고등학생인데요 !"
순간 지하철 내부는 모든 것이 멈춘듯 고요했고
저는 그자리에서 증발되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고등학생인건 알겠는데 사람들 꽉 차 있는 지하철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는 그저 조용히 뻘쭘하게 핸드폰을 내밀고 있는 손을
거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는 웃겨 죽을라 하고...
저는 쪽팔려 죽겠고...
여전히 그 고딩훈남과 내 등을 닿을 듯 가까이 있는데...
자리를 옮기자니 그게 더 쪽팔리고..
어짜피 이건 장난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저는 안쪽팔린 척 미소를 띄고 친구와 아무이야기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목적지는 한참 남아 있었기에
저는 한시라도 빨리 조금전의 사건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역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목소리 큰 고딩 훈남은 내리려 하더군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근데... 그 고딩훈남이 내릴 때 슬쩍 뒤돌아서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그 고딩훈남과 함께 내리며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더군요.
분명히 저쪽 의자에 앉아 계셨던 아주머니였는데,..
그분은 고딩훈남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ㅠ
그 아주머니의 표정은 한마디로.. '쟤는 뭥미'스러우셨고.ㅠㅠㅠ
간신히 쪽팔림을 잊어가던 저는
ㅁ롬;ㅗ하미ㅓㅗ하ㅓ미누하ㅓ무해ㅣ무
한 상태로 목적지까지 가야 했습니다.
당시엔 정말 쪽팔려 죽을 것 같았지만 ㅋㅋ
그것도 추억이 되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네요 ^^
근데 만약 그 고딩이 엄마가 지켜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과연 저의 헌팅을 그렇게 대놓고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전 아마도..
그렇진 않았을거란 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ㅅ --
이상,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헌팅수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