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는 지금 겨울 입니다. 한국도 겨울이죠? 저는 겨울을 싫어해요. 그냥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이고, 추위는 많이
타는 주제에 옷을 껴입는건 또 싫어합니다. 엄마가 항상 말씀하시죠, 겨울 멋쟁이 얼어죽는다고, 그래도 두껍게 입는 걸
안 좋아합니다. 무슨 똥고집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 떠도는 소문으론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겨울을 싫어하고,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여름을 싫어한대요. 그래서 제가 겨울을 싫어하는지도 모르죠. 학기가 시작한지 2주밖에 안되었
는데, 네덜란드에선 유명한 카니발 기간이라고, 학교에선 방학을 줍니다. 일주일간의 방학, 무엇을 할까 하다가, 도망가기
로 결심합니다.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탈리아로!
혹시라도 추울까봐 입고왔던 내복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폭설이 내렸느니, 이상 한파로 여럿이 죽어나갔느니 하
는 괴상망측한 뉴스를 많이 보신 어머니가 걱정하셔서, 괜찮다고 말 하면서도 은근히 쫄아서 내복까지 입고 왔는데, 이게
왠걸, 너무 따뜻합니다. 현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상 한파가 끝나고 평년 기온을 되찾아서, 따뜻해졌다고 하네요.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그동안 지나왔던 다른 유럽들에 비해서, 바깥에 박스 집을 짓고 사는 집시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러니 이상기온이 찾아왔을 때 죽어나갈 수 밖에 없지 싶습니다. 따뜻한 기온 때문에, 폭설에 대비할 시설도 장비도, 갑
작스런 추위에 대비할 난방 시설도 준비가 안되었던거죠.



체력이 허락한다면 로마 정도는 충분히 걸어다닐만 하다는 친구들의 증언에 따라, 걷기로 합니다. 원래 여행할 땐 걷는
걸 좋아해요. 걷다보면, 찾을 수 있거든요,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장소를.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어쩌면 좋은 방법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길을 잃어버리고, 토끼를 만나죠. 그리고 그 토끼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다줍니다. 토끼
는 만나지 못 했지만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길 처럼 보여서, 무작정 들어섰습니다. 이상한 나라로 나를 데려다줄 것 같
은길을 따라, 터널을 지나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진짜 이러다 이상한 나라로 가버리는건 아닐까. 그리고 정말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웃음)
지나가는, 착하게 생긴, 길 잘 알 것 같고, 길 잘 알려줄 것 같이 생긴 예쁜 이탈리아 미녀(웃음)에게 콜로세움 가는 길을
물어봤어요. 남부 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 하나봐요, 그런데 무척이나 친절합니다.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이탈리
아어(...)로 설명을 하다가 못 알아듣는 제가 답답했는지, 웃음을 터뜨리더라구요. 상상해보세요. 상대가 못 알아듣는 이
탈리아어로 설명하는 미녀와, 상대가 못 알아듣는 영어로 대답을 하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는지 확인하는 동양인
소년. 웃다가 말고 따라오라는 손 짓을 합니다. 그 미녀가 저의 이상한 나라의 토끼였나봐요.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어느
덧 저는 이상한 나라를 빠져나와 콜로세움이 보이는 다리를 향해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거대한, 실로 거대하는 말 이외에는 딱히 표현할 방도가 없는, 콜로세움의 스케일에 입이 안다물어 집니다. 그
리고 생각했어요, 이게, 바로 이게, 로마구나. 한 때 전유럽에 걸쳐, 페르시아를 제치고 유럽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을 건
설했던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수도. 그리고 그 힘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자, 만들었던 거대한 경기장. 생각해 봤어요. 무
려 이천년 전에 이런 것을 만들어내다니. 실로 엄청난 로마의 영향력을, 국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괜히 세계 7대 불가
사의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이건 작은 벽돌 같은걸 쌓아서 만든게 아니에요. 엄청
난 크기의 돌덩이들을 옮겨다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크레인도, 거중기도 없던 그 시대에, 인간의 힘으로 이걸 지어내다니.
순간, 권력이란 건 정말 말도 안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걸 만들어 낼 생각을 한 건, 로마의 황제 혹은 그
시대의 권력을 가진 어떤이였겠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생각하는 과정은 간단해요. 이 일이 가져올 비용과 미래의 결과를
생각하죠. 물론 적당히 고려는 하겠지만, 이를 위해 진정으로 고생할 이들의 생각은 잘 안해요. 엄청 고생했겠죠? 아마
콜로세움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사후세계가 진정 존재한다면, 이걸 만들기로 결정한 그 권력가
들은, 자랑스러울거에요. 역시, 만들자고 하길 잘했지. 그치만 이를 만들기위해 스러져간 안타까운 젊은 목숨들도 그걸
자랑스러워할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반면에, 그 권력 덕분에 이런 문화유산이 생기는 걸 보면, 아이러니 해
요. 건축만이 그런 건 아닐거에요. 문화, 예술 모두 그런 권력에서 나오죠.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어른
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콜로세움을 나와서 포로 로마노 쪽을 바라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만든 개선문이 보입니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의
모티브가 된 개선문이라고 하죠. 무척이나 화려해요. 로마 제국을 호령했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중
요 일대기가 부조로 새겨져있습니다. 파리에서 에투알 개선문을 보고 온 뒤라서 그런지, 크기에선 별로 감흥이 안 와닿
더라구요. 다만 그 전체적인 느낌이 많이 달라서, 새삼 놀랐어요.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해서 많이 기대 안 했거든요. 하지
만 프랑스엔 프랑스의 개선문이 있고, 로마엔 로마의 개선문이 있었습니다. 개선문이라고 같은 명칭으로 부르기 부끄러울
만큼, 느낌이 많이 달라요. 시대와 역사가 다르고, 국민성이 다른 것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이상한 나라는 벌써 끝나있고, 저는 어느새 고대 로마에 와있었습니다. 한 국가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도 작고, 관광 산업을 제외한 그 어떤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도시.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파면 자꾸 유적
이 나와서 개발하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지하철도 아주 깊게 파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그래서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상
상하기도 힘든, 2개 호선의 지하철을 보유한 도시. 개발 하자니 건물 하나 허무는데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역사적
인 유적이고, 고도제한 때문에 현대식 고층 빌딩은 상상도 못 하는 곳. 어쩌면 로마 자체가 이상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
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당신을 이상한 나라로 안내하는 토끼가 되어드릴게요,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도, 함께 여행하는건
어떨까요? (웃음)

출처: 영삼성
[원문] [사진찍는 이은상의 감성 유럽] Rome (1) , 이상한 로마의 잉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