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52주 평신도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가지고 같이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 함께 살펴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이야기만 같이 보면서 개인적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계기 마련을 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넘겨보시면은 영어로 이렇게 표시돼 있습니다. What a faith is all about? 이렇게 돼 있는데, 뭐 번역하면 믿음이 뭐꼬?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믿는다라는 것이 어떤 내용이냐, 무엇에 관한 것이냐, 이런 원제를 갖고 있는데, 번역된 서적을 읽어볼 때 그 원제목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책을 샀는데, 똑같은 책을 각각 다르게 번역한 것을 이중으로 사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번역된 제목은 항상 다른 제목을 주로 달고 있기 때문에 책을 번역된 서적은 원제를 한 번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What a faith is all about?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부제가 쬐그만 글씨로 있는데, A study of the basic doctrines of Christianity, 이렇게 돼 있습니다. basic이라는 말은 뭐 기초적이고 기본적이다라는 의미보다는 아주 중요한, 근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합니다. 기초적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다, basic doctrine, 아주 중요한 근본적인 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엘머 L. 타운스, 이렇게 돼 있는데 그 분의 약력은 표지 왼쪽 부분에 있습니다. 내지에 보면 엘머 L. 타운스 박사는 캐나다에 있는 유니피그 성경 대학의 학장을 지냈으며 린츠버그 침례교 신학교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에 관한 소개가 있습니다. 자, 이 책 제목을 52주 평신도 조직신학이라 번역한 이유는 그 내용이 52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1년 동안 한 주에 하나씩 공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짜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발행인의 글 3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이 책 전체적인 취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행인의 글 내용을 가지고 이 책이 어떤 취지로 발행이 되었는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뜻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교회의 병폐를 한두 가지쯤 집어내고 말하는 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세태가 이즈음이다. 한국교회가 당면한 작금의 현실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개교회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무엇보다 교회에 속한 지체들의 전임적 성숙을 위한 교육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전임적 성숙을 위한 교육의 부재가 우리 시대 병폐 중의 하나라고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말은 많은 부분 해당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자기가 믿고 있는 내용을 성경을 가지고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믿는다, 믿습니다.”라는 말은 강조하고 있지만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교육의 부재, 그 원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밑에서 네 번째 줄 보면, 그러나 내용이 없는 외형만으로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고, 내용이 없는 외형만으로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교육체계가 필요하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페이지입니다. 두 번째 줄, 그러나 열심은 있었으나 지혜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많은 성도들을 많은 시간 동안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잡아두기만 하면 성숙이란 저절로 되는 것처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우리에게도 한번쯤 스스로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잡아두기만 하면, 다른 데 시간을 전혀 쓸 수 없도록 교회의 프로그램, 각종 프로그램 안으로 교회 안에 잡아두기만 하면 저절로 성숙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단지 성도들을 사회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잡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 뭔가 얻는 것이 있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적은 한번쯤 우리 자신도 되돌아볼 필요를 일깨워준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자신이 설교해온 내용을 주제별로 목록을 한 번 만들어 보십쇼. 만일 비슷한 주제가 반복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만 주로 다루고, 그리고 꼭 가르쳐야 될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뭔가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계획성이 없는 겁니다. 자신이 설교하는 목록의 어떤 1년 치를 예를 들면 분석해 봤을 때, 특정한 주제에 치중돼 있다라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 쉽게 다룰 수 있는 내용만 이야기했다든지, 또는 꼭 가르쳐야 하지만 말하기 좀 껄끄러운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든지 그런 면이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임적 성숙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라고 그랬는데, 골고루 여러 부분을, 또 설교자로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골고루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거는 무계획성에 의해서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고 계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설교할 계획을 세운다면 골고루 그 주제를 자기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늘 확인하면서 혹 내가 어느 부분은 전혀 거론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4페이지 세 번째 패러그래프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신앙의 성숙은 결코 구체적인 가르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랬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 어떤 부분적이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루었던 모든 부분을 우리는 가르쳐 지켜야 되는데, 이 “가르치다”라는 표현 속에서 어떤 체계화돼 있는 전달할 수 있는 자료들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체계화돼 있는, 그리고 “전달할 수 있는”이라는 말은 “가르친다”라는 말이 지식의 전달이죠. 그러니까 가르칠 수 있는 자료들이 준비돼 있어야 된다. 이렇게 체계적인 교육과 전달할 내용의 준비에 대해서 이 책의 취지를 발행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결론적으로 4페이지 마지막째 줄에 보면 신학적 이해를 단순화시키고 어떻게 그것이 실천적 신앙으로 연결될 것인가, 이런 부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복음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전달할 수 있는 실제적인 내용을 가지며 그리고 실천적인 신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된다. 이런 부분이 이 책의 발행의 취집니다. 그래서 5페이지 제일 밑에서 두 번째 줄 보면, 이 책의 내용을 의도하고 있는 목적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신학이 있는 교회, 실천적 신앙의 신학, 이것이 이런 책을 발행하는 취지로 제시돼 있습니다. 한 페이지 넘겨보겠습니다. 목차가 있습니다. 52주 평신도 조직신학의 목차, 그랬는데, 조직신학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를 제일 큰 제목으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가장 그 basic, 근본적인 교리를 체계화해서 학문이라고 불려질 만큼 체계화돼 있는 내용을 만든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의 핵심적 내용이 제시돼 있는데, 전체적으로 12부까지 되어있고, 그리고 52장의 내용으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그것은 공부의 편의를 위해서 52주, 1년 동안 공부할 수 있는 그런 분량을 정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서론이 있고, 성경에 나타난 교리에 대한 이해, 신론, 기독론, 성경론, 인간론, 구원론, 천사론, 사탄론, 귀신론, 교회론, 종말론, 이와 같이 해서 12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조직신학에 공통되는 핵심적 주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1장, 2장 하면서 소제목을 살펴보았을 때, 소제목에 대한 지식과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체계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학습을 통해서 만일 이 목차만 주고 설교를 하라고 이야기했을 때 충분히 설교할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이거는 베이직한 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오후에 성령론 하면 성령에 대해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되는가, 성령의 인격과 사역은 성령론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그 핵심적인 두 가지 부분을 다루고 있죠? 성령이라는 인격체, 그리고 성령의 사역, 그래서 두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각각 큰 제목에서 어떤 내용이 핵심적인 것인가를 이 소제목을 살펴봄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기독교는 우리들만의 기독교가 아니라 2,000년이라는 앞서 간 선진들에 의해서 이미 전파되고 체계화됐던 신앙의의 내용입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거라는 건 틀림없이 잘못된 겁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불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의 진리가 우리 시대에도 동일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너는 옛길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앞서 간 선진들이 이미 다루었고 그들의 삶에 변화가 됐고 중심이 됐던 내용들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독특하고 새로운 것은 대부분은 이단적인 견해일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책을 공부하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에 교회를 통해서 배운 내용들이 얼마나 잘 배웠는가를 이렇게 더욱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처음 보는 책인데도 읽어보시면은, 생소한 내용이 별로 없다라고 느껴질 겁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교회 내에서 정상적인 가르침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상식처럼 또는 식상하게 듣는 수많은 내용들이 아주 핵심적인 내용을 다 다루고 있었다는 걸 이런 책들을 공부할 때마다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은 별로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이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잘 정리를 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라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실질적인 교육을 계속 받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체계화되고 정리된 것을 확인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 9페이지 보겠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입니다. 이 저자 엘머 L. 타운스는 신학, 조직신학과 관련된 분야를 20년 이상 연구하고 가르쳤댑니다. 그래서 자신이 거의 평생을 연구한 부분을 쉬운 말로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 신학을 20년 이상 가르쳐 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9페이지 밑에 난화주 쪽에 보면 설명이 돼 있습니다. 요즘 미국 학계에서는 신학의 4대 분야 가운데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두 분야를 하나로 묶어 가르칠 때 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신학이라는 말이 데올로지, 이렇게 돼 있죠? 헬라어에서 나온 영어죠. 헬라어로 하나님이 데오습니다. 그리고 로고스가 진리라는 뜻이죠. 그래서 데오스라는 하나님이라는 말과 로고스라는 진리라는 말의 합성어가 데올로집니다. 그래서 신학이다, 이런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 신학의 4대 분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신학의 4대 분야가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은 성서신학, 역사신학, 그리고 조직신학, 실천신학, 이런 것을 신학의 4대 분야라고 이야기합니다. 신학대 커리큘럼을 보면 이 4대 신학을 가지고 커리큘럼을 짠 겁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죠.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입니다. 그리고 이런 4대 분야의 구체적인 과목이 있습니다. 성서신학 그러면 구약신학, 신약신학, 또 주경신학. 주경신학이라는 게 뭐죠? 구약과 신약에 대한 각 구절에 대한 본문을 해석하는 연구, 그게 주경신학입니다. 그리고 성서고고학, 성서언어학, 이런 것이 성서신학이구요. 역사신학이라는 건 교회회의, 또는 신학자의 개인적인 진술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신학의 분야에선 교회사, 교리사, 기독교사상사, 선교역사 이런 내용들이 이제 역사신학 부분입니다. 그리고 조직신학이다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진술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 조직신학이고 그 외에 변증학, 윤리학 이런 것도 조직신학의 한 분야로 대개 편성을 합니다.
그리고 실천신학이라는 것은 성경의 진리가 생활 속에서 전달되기 위해서 필요한 학문들입니다. 설교학, 전도학, 목회학, 교회행정학, 기독교교육학, 요런 것들이 이제 실천신학의 분야들입니다. 그래서 이 커리큘럼을 가만히 보면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 책은 어떻게 쓰여졌냐면 저자의 말을 빌려보면 9페이지 밑에서 네 번째 줄, 먼저, 이렇게 첫 번째 거론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 책을 신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날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학도들을 위하여 기록하기로 하였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