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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왜곡, 임나일본부설!

haedongyeon |2012.05.30 01:59
조회 1,143 |추천 2

※ 본 글은 상산고 역사동아리 해동연에서 연구하고 연구 결과를 쓴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인 임나일본부설을 알리고자 썼습니다.

 

임나일본부설 을 파헤치자

 

상산고 역사동아리 해동연

 

I. 임나일본부설이란?

<임나일본부설의 의미>

일본 야마토정권이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약 200여년간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직접 지배했고,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으며 그 지배기구로서 설치한 것이 임나일본부였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임나는 [광개토대왕비문], [일본서기] 487년 기록에 의하면 ‘00가야’ 중의 하나인 특정한 가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의 임나는 왜가 중국에 왕래할 때의 기착지인 김해가야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서기] 562년 기록에서는 모든 ‘00가야’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임나가 임나경영의 본거지로 되어 있으므로 자연히 임나가 모든 ‘00가야’를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임진왜란이나 한일강제병합의 명분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과거 한반도 남부가 일본 땅이었으므로 한반도를 다시 병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1945년 패전 후 잠시 수그러드는 듯 하다가 일본 역사교과서에 다시 등장함으로써 한일 간에 역사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임나일본부설과 남선경영론>

일본에서는 ‘남선경영론’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임나일본부설’이라고 부른다.

 

II.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일본 최고의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배경이 상세히 서술되어있다.

① [삼국사기]에 기원전 50~기원후 500때 왜의 신라 침입내용이 29건이나 나타난다. 그중에서 왜군이 경주를 포위했다는 내용은 4건이나 된다.

② [송서 왜국전]에 의하면 왜왕들은 스스로를 왜, 백제, 신라, 임나, 가야, 진한, 마한의 군사를 관장하는 대장군 겸 왕으로 자칭했다.

③ [광개토대왕비문]에는 404년 왜가 대방계(현재의 황해도)까지 올라가 고구려와 싸운 것이 씌어 있다. 황해도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나 백제, 신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III. 한국이 반박하는 임나일본부설

① 재일사학자 이진희씨를 비롯한 한국 학계는 광개토대왕비문의 일부를 1882년 만주를 여행하던 일본군 참모본부의 정탐 사까와 카게노부 중위가 변조시켰다고 주장한다.

② 대방계에서 고구려와 싸운 세력은 백제, 가야, 왜 3국의 연합이었다. 그리고 왜나 가야는 고구려와 싸울 능력이 한참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뚜렷한 명분도 없었다는 점에서, 3국 연합의 주체는 백제였을 것이다. 즉 [광개토대왕릉비문]의 기록은 단순히 백제가 왜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싸웠던 것 뿐이다.

③ [삼국사기]에는 임나문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왜에 관한 기록 자체가 기원후 500년의 기록을 끝으로 전혀 보이지 않다가 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나타난다. 6세기에는 왜의 활동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야마또정권이 6세기에 임나를 경영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⑤ [송서 왜국전]에서 ‘진한’과 ‘마한’은 왜 5왕의 시대인 5세기에는 이미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았고, ‘임나’나 ‘가야’는 이미 백제의 영향 하에 있었다. 즉, 왜왕이 군사권을 주장하는 나라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등 기록에 모순을 보인다.

⑥ 임나일본부설에 의하면 안라국(아라가야, 함안)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을 텐데. 대대적으로 발굴조사가 벌어졌지만 철제마갑을 비롯한 가야유물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임나일본부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적으로 철을 생산하고 철기문화를 형성할 수 없었던 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 가야지역으로부터 철을 수입해가기 위해 외교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일본의 철제갑옷이 가야의 철제갑옷보다 100여 년이나 늦은 5세기경에 제작되었다는 사실 등이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⑦ 전남 순천 운평리 고분군에서 가야계 유물이 출토되었다. 순천 운평리 고분군은 기원후 500년 전후의 순천지역 지배층의 무덤일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사현 중 하나이다. 그 곳에서 일본계 유물이 아니라 가야계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순천 지역을 비롯한 임나사현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가야 연맹의 맹주국이었던 대가야의 영향이 닿는 고을이었음을 입증한다.

 

IV. 임나일본부설 해결의 의의

한국,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세계도 이제 하나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 동아시아 공동체의 목표에서 역사분쟁은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분쟁에 임나일본부설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세계가 진정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진실을 바탕으로 역사분쟁부터 빨리 해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본 측 근거와 한국 측 근거를 논리적으로 분석, 비교해서 합리적으로 비판할 줄 아는 능력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할 이유이고, 앞으로 우리들이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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