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과메기의 꿈 님 >
** 기... 길어요^^
1화-발단
"조용해.."
나는 친구 한 놈을 옆에 데리고 발소리를 죽이며 양말바람으로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었다.
친구놈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의 경련을 억누르며 내 뒤를 바짝 쫓아왔다.
"소리 내면 죽어. 진짜로. 알지?"
"알았으니까 너야말로 말 그만해.. 나 진짜 무섭.."
"쉿!"
나는 녀석의 입을 살짝, 하지만 빠르게 손으로 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녀석은 얼떨결에 나와 같이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바로 앞에 네 발로 기는 인간이 나타났다.
내가 말을 멈추고 불과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놈은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우리에게서 등을 보이며 코를 킁킁거렸다.
한여름인데도 녀석의 입에선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이 뿜어져나왔다.
정장을 입은 채 네 발로 땅에 엎드려 코를 킁킁거리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뭐라 형용키 힘든 분위기를
뿜어냈다.
나는 정말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친구에게 속삭였다.
"스니퍼(Sniffer).. 소리 안 내면 괜찮을거야.. 우리 지금 땀도 안 났으니까 냄새 안 나서.."
"우우우.. 끄윽.."
친구녀석은 스니퍼를 처음 봤는지 겁에 질려 입 속에서 침을 굴리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나는 녀석이 등을 돌린 틈을 타 아주 조용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친구놈은 눈을 꽉 감고 아까처럼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혹시나 녀석이 실수할까 아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좀비는.. 코만 좋으니까.. 조용히 이동하면.. 괜찮을거야.. 근데.. 무지 빠르니까.. 들키면..
우리 중 하나는 아마.. 죽을거야.. 아니.. 먹힐거야.."
"끄으으.. 우욱.."
"지금 우리.. 무기도 없으니까.. 조심해.."
홱
"힉!"
갑자기 스니퍼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지? 저 거리에서 들릴 리는 없는데.. 제길! 입냄새를 맡은건가?
나는 곁눈으로 친구를 살펴보았다.
녀석은 들켰다는 공포감에 완전히 질려버려 다리를 미친듯이 떨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죽기 딱 맞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지금 우리 위치는 아스팔트 차도의 한복판.
쓸만한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돌멩이 하나도.
여기서 죽는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지금까지 버텨온 건 다 뭐였..
내가 차마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녀석이 이 쪽으로 뛰어들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도약력이었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런 행동은 불가능할 것이 당연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친구를 발로 차 도로변으로 밀어내며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녀석에게 돌진했다.
물리더라도 바로 좀비가 되진 않으니 이러고 달려들어 엉키면 그나마 몸싸움이라도 할 수 있겠지!
순간, 녀석은 내 앞에 착지하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높이 뛰어 나를 넘어갔다.
설마 친구에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안도하는 동시에 찢어지는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소리는 아니고, 아마 고양이나 혹은 다른 짐승의 단말마였다.
수 초뒤 상황을 이해한 나는 이미 소음을 낸 뒤라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친구를 바라보니 녀석은 엎어졌다 굴렀다 하면서 진작에 우리가 목표로 했던 건물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녀석의 뒤를 쫓다 전력으로 달렸다.
이제 이 거리에 빛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회색 안광이 나를 뒤덮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히, 스니퍼가 덮친 고양이인지 뭔지가 낸 소리에 많은 좀비들의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나는 더이상 생각하는 걸 멈추고 뛰는데만 집중했다.
집중해서 앞을 보자 친구놈이 앞쪽 건물의 입구에 도달해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녀석은 뭣빠지게 달려오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렸던 친구놈은 사색이 되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쫓아보았다.
좀비가 하나, 무시무시한 박력으로 친구놈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빌어 처먹을! 런너(Runner)잖아! 야 지열아! 침착하고 그놈이 바로 앞까지 오면 몸을 숙여서
너한테 걸려 엎어지게 해!"
이미 조용한 이동은 포기하고 마구 소리친 나는 다시금 좀비와 녀석의 거리를 가늠했다.
내가 이대로 저 문까지 뛰면 5초, 좀비도 거의 같은 거리. 그렇다면..
"지.. 진환아 이거..!"
"지열아 문닫을 준비 해!! 우아아아아아!!"
퍼어어억
한 10미터를 달리며 내가 날린 이단옆차기를 먹은 런너 좀비는 엄청난 기세로 자빠졌다.
녀석이 무시무시하게 몸부림치며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동작으로 일어나려 하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문 안으로 돌진했다.
내가 문 안으로 다이빙해 들어오는 순간 지열이는 문을 꽉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1차경비를 위한 철문이라 일단은 숨을 돌릴만해 보였다.
나는 바닥에 배를 대고 헉헉거리다 몸을 뒤집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갑작스레 가한 타격이라 내 다리도 뻐근했다.
내가 낑낑거리고 있는데 여기저기가 까지고 찢어진 채 후들거리고 있던 지열이가 내게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 우리가 해냈어! 진짜 여기까지 왔다고!"
"진정해 마.."
나는 피식 웃으면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길 하나 건넜다고."
-----------------------------------------------------------------------------------------
"아, 오늘도 득템 못했는데."
덥고도 더운 8월 중순.
미국 유학을 앞두고 고등학교를 막 마친 나는 군대고 뭐고 당장 입시지옥에서 빠져나온 쾌감에
물들어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2시간이나 노가다를 뛰던 나는 체육관 가는 시간을 앞두고 무수한 잡템만을 가방에 넣어둔 채
가상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저번에도 게임 하다가 체육관에 20분이나 늦은 나는 정신상태가 헤이해졌다고 신나게 기합을 받았다.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꿍얼꿍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을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집에선 보통 잠옷바지에 런닝만 입고 있는데, 언젠가 겨울에 너무 춥고 귀찮아서 안에 내복 대신 잠옷을
입은 채 교복을 덧입고 학교에 갔다가 내 희한한 센스를 본 한 선생님께 잠옷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뭐 불만은 없었다.. 나는 겨울에도 항상 위에는 런닝, 아래는 잠옷바지였으니까.
[I wanna be the very best~ No one ever was~ Catch 'em is my real task..]
갑자기 재킷에 넣어놓은 핸드폰에서 벨소리로 해 놓은 미국판 포켓몬스터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집에서 체육관까지는 자전거로 약 5분거리.
집은 골목의 안쪽에 있는데, 골목 주택가쪽 사람들은 별로 밖으로 도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골목 밖에
바로 큰길이 붙어있어 유동성 인구수를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덕분에 나는 도복을 입고 돌아다니기 뭐해서 보통 덥지만 위에 재킷을 입고 체육관에 갔다.
나는 재킷을 위에 걸치며 전화를 받았다.
"헬로우. 미스터 킴이라우. 왓썹?"
-왓썹 좋아하네. 미국에 가니까 컬러링도 미국판 포켓몬스터냐? 신났어.
"나 컬러링도 그거냐? 어 이상하네.."
-찐따 오타쿠새끼! 뭐해?
나는 천천히 걸어가 문 밖으로 나간뒤 뒤돌아 열쇠를 잠궜다.
"체육관 가."
-너는 게임하고 만화보는게 더 어울려..
"아 시끄러! 영양가없는 소리 자꾸 야부릴꺼면 끊어 시꺄."
-킬킬킬.. 알써 마. 오늘저녁에 놀기로 한거 알쟈? 형님들은 니랑 다르게 대학에 가야 해서,
뒤풀이를 해야 하그든. 영광스럽게 그 자리에 비전없는 백수인 너를 끼워주기로 했으니 빠지면 주우거어.
"새끼. 난 이제 선진국 국민이 될거다. 빌어먹을 후진국민아."
-매국노새끼! 끊어 마.
삑
나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힘차게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여름저녁의 공기가 부드럽게 내 온 몸을 감쌌다.
통풍이 잘 되는 헐렁한 도복을 입었는지라 온몸에 느껴지는 바람의 느낌이 참 야릇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는 신호등 하나 없다.
나는 체육관 앞에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자물쇠도 걸지 않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옆에 비스듬히 걸쳐진 'MMA 공천회관' 이라 쓰여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리 체육관이 참 마음에 드는데 저 이름만이 맘에 들지 않는다.
MMA(Mixed Martial Arts)면 MMA지 뒤에 한자로 회관 이름을 붙일건 뭐야.
이름도 영어로 하던가 아님 종합격투 어쩌구 공천회관이라 하던가..
"초단 김진환 인사드립니다!"
나는 체육관 앞에 슬리퍼를 벗어던지면서 뛰어들어가며 외쳤다.
우리 체육관은 참 심플하다.
아주 큰 홀에 벽을 쭉 둘러싸고 트레이닝 유닛들이 있고, 옆에 삐죽하게 관장실과 탈의실,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관장님은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채 내게 외쳤다.
"임마.. 초단이 시작직전에 와? 너 오늘 기합좀 받아야 쓰겠어."
"아 관장님! 그래도 시간 맞췄잖아요! 그리고 초단이래봤자 우리 체육관 관원 열명밖에 없는데 무슨.."
"시껌마! 그러니까 더욱이 솔선수범해야지! 네 위로 선배가 하나밖에 없는데 녀석이 없으면 니가
최고참이라고! 알아들어?! 알았으면 당장 거기서 푸샵 50회! 실시!"
"에~"
"실시 아님 즉사다."
관장님이 신문지를 둘둘 말며 내게 다가오자 나는 입수하듯이 콘크리트 바닥에 달려들어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저번에 관장이 저 둘둘말린 신문지로 송판을 깨부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를 먹고 살았던 인간인지 정말..
"집합하고 경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관원 서넛이 관장님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하고 관장님과 함께 몸풀기를 시작했다.
푸쉬업을 마친 나는 헐떡거리면서 뒷에 홀로 서서 같이 몸풀기를 했다. 목을 돌리고 있는데 앞에서
허리를 돌리던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꼬꼬마 초단씨, 오늘도 관장님한테 물먹네~"
"야, 오영지.. 170이면 꼬꼬마는 아니거든?"
"맞거든? 내 친구들 다 175 안 넘는 사람은 남친삼기 싫다고 했다."
"걱정 마세요? 니 남친 안할테니까? 좀있다 스파링할때 보자잉?"
"어머머, 또 내 가랑이 사이에 다리 집어넣고 막 비빌라고?"
"..그래플링은 우리 체육관에서 기본이야.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말아라 제발.."
"거기 잡담하지 마라. 정강이 밀대로 밀기전에."
"아 예."
"네~"
영지는 깔깔거리며 다시 몸풀기에 들어갔다. 이 년은 다 좋은데 너무 소탈해서 탈이야.
이렇게 저렇게 꾸미면 이쁠것도 같구만은..
"진환아. 오늘 나 상대좀 해주라."
"아 형은! 또 나 모르모트 시킬라구!"
"봐주라 좀. 니가 작은 편이니까 기술 걸기가 편해."
"아 안 작다구 정말! 170이 뭐 작다고 자꾸 그래!"
지금 다리를 180도로 찢고 팔을 이상하게 돌리며 내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은 이궁도.
우리 체육관 4단이며 부관장격이기도 하다.
엄청난 격투기 매니아로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정말이지 강하다.
가끔 나를 상대로 기술 연습을 해서 그렇지..
나는 혹시 다른 친한 얼굴들이 있나 나머지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녀석들은 이제 막 시작한 흰띠로, 한 녀석은 이름도 모르는 놈이었다. 새로 들어왔나?
때르르릉
체육관의 전화가 울렸다. 관장님은 우리에게 계속 몸 풀으라고 지시를 내린 뒤 관장실로 뛰어갔다.
나는 다리를 찢으면서 관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관장님은 평소 하던 습관대로 수화기를 들지 않고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MMA 천공회관입니다. 무엇을 도와.."
"카하악! 끄아.. 아아아아.. 끄-윽! 끄-윽! 끄-윽! 끄-윽!"
"..엥?"
전화에서 퍼져나오는 괴상한 신음소리에 우리 관원 다섯의 시선이 죄다 관장실로 쏠렸다.
관장님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여보세요?"
"쓰으.. 아.. 아파요.. 살려줘.. 도와.. 도.. 도도, 도와줘요.. 여기.. 부천시청.. 회계과.."
"뭐? 뭔소리야 당신? 장난전화 할거면 끊으세요. 나 장난전화 건 사람은 진짜 찾아가서 복수하거든요?"
우리는 관장님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킥킥거렸다.
그런데 관장님의 살벌한 경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부천시.. 부천시청.. 회계과예요.. 도와.. 주세요.. 진짜 아픈데.. 흐으으윽.."
"이봐요! 여기 마포구예요! 어따 전화하는거야 정말.. 끊습니다!"
"아.. 아아.. 제발.. 도와.."
뚝
관장님은 퉁명스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리를 찢고 가슴을 내리며 관장님에게 말했다.
"관장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던데요. 히히.."
"너 도움이 필요한 몸으로 만들어주리?"
"아 쫌! 왜 사람이 장난을 못 받아들여요!"
"얼씨구 말대꾸해? 오늘 내가 그 다리 180도로 찢어지게 해 주마."
"아 잠깐잠깐 타임! 아 조토 탐마 쪼옴! 으아아아아아악!!"
관장님은 광속과 같은 속도로 내 사타구니에 안착, 내 양 팔을 잡아당기며 두 다리로 내 가랑이를 밀어젖혔다.
나는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며 3개국어로 자비를 구했으나 관장님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삐이이익
관장님이 열심히 내 다리를 찢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우리 체육관이 있는 빌라는 반지하1층, 그리고 위에 두 층으로 되어있어 층간 연락에 쓰이는 인터폰이
각 층마다 하나씩 있었다. 관장님은 나를 놓아주고 인터폰을 받았다. 역시 스피커폰으로.
"아이구 복덕방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지금 수업중인데."
-아 철수군? 잠깐 테레비좀 켜봐! 큰일났어!
"아저씨 이름좀 부르지 말아달라니까요. TV는 왜요?"
-하여간에 보라니깐! 그리고, 애들 빨리 귀가시켜! 큰일나겠어!
"예? 아 예에.. 알았습니다."
-나도 지금 나가는 길이야. 자네 차 있지? 거기서 짐 챙겨서 나가는게 좋을거네.
"예? 아니 무슨.."
삑
복덕방 아저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인터폰을 끊었다.
관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황급히 관장실로 달려가 TV를 켜 보았다.
우리들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장실에 모여들었다.
"아 투니버스다. 관장님 만화봐요?"
"안봐 마. 돌리다 꺼서 그런거야."
"옷, 꼬마마법사 레미? 매니악한데요 관장님."
"너 좀있다 보자."
"힉.."
관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채널을 돌렸다.
채널이 KBS로 돌아가는 순간 긴박하게 돌아가는 뉴스가 우리 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전체가 완전히 패닉에 빠졌습니다.
어저께 갑자기 발생된 이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며 정부에서는
이 사태를 K-바이러스 사태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현장에 나간 박용성 기자와 연결해보겠습니다. 박 기자!"
"네 박기자입니다."
"박용성 기자. 지금 어디에 있죠?"
"네, 지금 저는 서울시 어느 지점 위에 헬기에 탄 채 카메라맨과 이동중입니다.
지금 K-바이러스 사태가 여기까지 퍼졌다면 큰일인데요.. 앗! 저기를 보십시오!"
박용성 기자가 가리킨 곳으로 카메라가 급히 돌아갔다.
급하게 초점이 맞춰진 그 곳에는 어떤 사람이 버스 위에 올라가 마구 막대기를 휘두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말했다.
"막대기를 휘두리며 괴성을 지르는 바이러스? K자가 왜 들어가는거지?"
"조용히 해 봐 좀!"
영지가 나를 막기가 무섭게 그 카메가가 확대되었다.
순간 차마 모자이크처리가 되지 못한 끔찍한 화상이 텔레비젼에 비춰졌다.
버스 위에 올라간 남자의 주변엔 온몸이 난자되고 박살난 인간의 파편이 흩어져있었고,
몇몇 사람이 그 시체에 올라타 마구 들썩거리며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또 몇몇 사람들은 버스 위에 올라간 예의 그 남자를 향해 팔을 마구 휘젖고 있었다.
"꺄악!"
영지가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린 반면 나와 관장님은 TV에 얼굴을 더 들이밀었다.
"관장님 이거.."
"쉿!"
"죄송합니다. 못 볼 장면을 보여드렸네요. 지금 저들은 좀비라고 하는데, 어저께부터 나타나 거리를
배회했다고 하더군요. 느릿느릿 다가와 사람을 먹으려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믿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니 도저히 안 믿을수가 없군요.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여러분,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지금 이 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조언입니다. 박용성 기자였습.."
그 기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장님이 TV를 꺼 버렸다.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는 가운데, 관장님이 우리들을 툭 치며 말했다.
"짐 싸라 얘들아. 장난은 아닌 것 같아. 차로 집까지 데려다 줄게."
2화-대책
"정말 괜찮겠냐?"
"네. 여서 집까지는 5분거리고, 아직 사람들도 이렇게 지나다니잖아요.
여긴 아직 안전할거 같으니까 전 친구들이랑 연락도 해보고 할게요."
"알았어. 조심해라 진환아. 힘들면 꼭 연락해. 내 집도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나는 관원들을 차에 태운 관장님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몰아 집까지 달려갔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걸 느끼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 일은 정말 뭔가 조금 소름끼치는 면모가 있었다.
정말 단순히 치부해 무시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그런 분위기.
어느새 집에 도착한 나는 대문을 걸어잠그고 마당에 들어와 숨을 돌렸다.
우리집은 큰 돌담이 다른 집들과 연결된 채 둘러싸고 있고, 그 돌담에 골목과 통하는 큰 철문이 하나,
안쪽엔 2층집이 있고 1, 2층엔 각각 현관문이 하나찍 딸려있는 개인주택이다.
작은 마당도 있다. 2층은 아버지의 회사로 쓰고 있고, 1층은 우리집이다.
나는 황급히 2층으로 올라가려다 피식 웃으며 발을 멈췄다.
부모님 내 유학 앞서 미국여행 가셨잖아.. 동생이랑.
어찌보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까 티비에서 본 예의 그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떠오르며 몸서리를 쳤다.
아직도 믿겨지지는 않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게 우리 가족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온 집의 불을 다 켠 뒤 TV와 컴퓨터를 동시에 키고, 부엌찬장에 먹을 것들을 확인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왜 좀비영화 보면 다들 이러니까.
TV앞에 앉아 리모콘을 돌리려던 나는 문득 오늘 친구들의 모임 생각이 났다.
나는 아까 전화한 단짝친구 윤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몇번 울려도 받지 않자 울상이 되어가던 난 녀석이 전화를 받는순간 화색이 돌아 외쳤다.
"야 김윤호! 너 괜찮아?"
-얘가 왜이래? 왓썹은 어디두고?
"김윤호, 내말 잘들어. 거기 누구누구 있어?"
-어? 지금 태완이랑 만나려고 하는데. 아 저기 온다.
"너희 둘뿐이야?"
-어. 나머지 애들은 따로 만나서 합류하기로 했어.
"야 잘들어. 나 지금 뉴스에서 지랄같은 기사를 봤거든? 근데 이거 장난 아니고 엄청 위험해보여.
너 어디야 거기?"
-홍대역이지. 너도 5분거리니까 빨리..
"아 그게 아니고! 잘됐구만 차라리. 너 태완이랑 거기서 우리집으로 뛰어와. 안그러면 죽어."
-뭠마? 뭔소리야! 너 약속 어기는거 싫어하면서 뭐냐 이번엔?
"아 진짜 말좀 들어! 지금 뛰어오면 저번주에 만원 빌린거 탕감해줄게."
-진짜?
"진짜야."
-엠창?
"아 병신 초딩새끼! 태완이 바꿔봐! 그리고 빨리 뛰어와 지금 당장!"
-알았습니다요. 태완아 김진환이 바꿔달래.
핸드폰 저편에서 잠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바꾸는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TV에서 잠깐 떨어져 부팅이 끝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다음순간 태완이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이 태완이라는 녀석은 내로라 하는 우등생으로, 막 서울대에 입학해 출세가도를 달리려 하는 놈이다.
흠이라면 키가 좀 작다는 거? 무지 작다.
-어 진환. 뭔일?
"아니 그게.."
윤호놈과는 달리 아주 이성적이고 머리가 좋은 태완이에게라면 말이 통할 것 같아 나는 결국
꺼내기 싫은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지금 서울시에 좀비가 끓어넘친댄다. 그래서 위험하니까 빨리 오라고."
-뭐?
"좀비! 서울시에 좀비가 나타났대. 지금 막 뉴스에 나오고 난리도 아냐."
-이보세요 진환씨. 만우절은 4월 1일이거든요.
"태완아. 나 지금 농담하는거 아냐. 지금 우리집에 와도 약속엔 안 늦을테니까 시간걱정은 말고 빨리 튀어와.
여기서 뉴스보고 인터넷 보고 나서도 약속장소에 가겠다는 소릴 하면 내가 놔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빨리 와라 제발.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알았어. 농담이면 알지?
"정말이야. 빨리 와."
태완이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쉰뒤 인터넷에 좀비관련 기사가 흘러넘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진짜였어!
나는 뒤로 돌아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아까의 KBS 채널로 돌리자 역시 좀비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재미있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시민 여러분. 지금 이 기사는 실제상황이며 절대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해드립니다. 어제 9시경부터
시작된 K-바이러스 사태는 이미 한국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눈에
초점이 없고, 비정상적으로 이동을 하며 간혹은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점은 하나같이
사람에게 접근하면 물어뜯고..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한번 치켜올리고는 다시금 말했다.
"정부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접하고 이들을 좀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K-바이러스.. 즉 Korea Virus 라는
이름은 현재 미국에서 붙혀진 것인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좀비들은 현재 한국에서만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현재 이들을 제압할 군부대를 국가에서 파견.."
"게임도 아니고 진짜.."
나는 기자의 말을 차분히 들으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시체가 서울시를 떼지어 활보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다행인 점은 언젠가 보았던 좀비영화와는 다르게 막 뛰어다니고 물어뜯는 좀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잇는 기자의 옆에는 생중계로 아비규환이 펼져지고 있었다.
내 눈에 익는 거리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는걸로 봐서는 이제 내 눈으로 직접 그 걸어다니는
시체들을 목격할 순간도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속보입니다. 이 좀비들에게 물리면 당신도 좀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에
좀비에게 물려 크게 다쳐 죽기직전의 사태까지 갔을 때고, 그저 물리기만 한 거라면 그 자리에서 좀비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거 다행이네."
나는 어떤 좀비영화에서, 힘든 사투를 끝낸 두 주인공이 싸움을 끝내고 쉬는동안 둘 중 한명이 자신의
팔뚝에 물린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고 그가 친구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절망적인 장면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또한 이들의 혈액이 사진의 몸에 침투했을 시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므로 되도록이면 접근을 피해주십시요.
시민 여러분, 침착하시고 앞으로 있을 경찰들과 군부대의 인도에 따라.."
띵동
도어벨이 울렸다. 나는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친구들을 맞이했다.
녀석들은 투덜거리며 현관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김진환, 농담 너무 좋아하면 못쓴다."
"거 사람 말 못 믿는 놈일세? 저거나 보고 말하시지."
"응?"
시큰둥한 표정으로 TV 앞으로 간 둘은, 10초도 채 되지 않아 사색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TV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것봐 시키들아! 지금 그 화면에 나오고 있는거 너네집 바로 앞 아냐 김윤호?"
"어.. 으응."
"이거.. 진짜 진짜야?"
태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TV를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낸들 아냐. 눈으로 보지는 못했는걸. 근데 그거 확인할라고 저것들한테 물어뜯기느니 그냥 집에서 죽치고
겁먹은채 덜덜 떨고 있는게 십만배는 안전할 것 같아서 말이지. 너네 부모님들한테 연락해봤어?"
내 말을 들은 윤호와 태완이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황급히 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딨어? 어 나도 뉴스 봤어. 진환이가 불러서 지금 진환이네 집에 있어. 우리 약속 가는
중이었는데 진환이가 위험하다고 불러서.. 어, 응. 응. 못 봤는데. 근데 바로 근처에도 많이 있는 것 같아.
응. 알았어요."
태완이는 거듭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도에 찬 목소리로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녀석은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 거래처에 갔다가 그 빌딩에서 대피중이래. 좀비들이 위에서 막 보인대. 경비용 철문을 내리고
경비들이 실탄이 든 총으로 대기중이라는데."
"아 좋겠다. 우리집은 저 돌담밖에 없는데. 김윤호 너는?"
"..안 받아.."
"어?"
윤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두분 다 안 받아."
"...."
"...."
나와 태완이는 일제히 말문이 막혀 윤호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적거리더니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사람 불안하게 뭐 그렇게 봐 자식아. 설마 울 엄마아빠가 죽기라도 했겠냐?"
"하기야 그렇지. 우리도 이렇게 멀쩡하잖아. 하하.."
나와 윤호는 낙천적인거 하나로 뭉친 사이다. 녀석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내게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말이지.. 내 머리 한켠에 제일 처음 보았던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이대로 죽치고 있어?"
"그래야지. 아까 뉴스에서 들었는데 그놈들은 느리고 머리가 비었댔어. 우리집은 사방이 막혀있고 담 높이도
꽤 높은 편이니까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할거야. 정찰할 곳도 있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떠올리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우리 집의 계단은, 1층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철대문 바로 옆에서부터 벽을 타고
올라가 기역자로 꺾여올라가 2층과 연결된 형태인데, 그 꺾이는 부분에서 담을 넘어 골목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도둑을 막기 위해 벽 위에는 뾰족한 쇠철망이 담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우리집 철문 양쪽엔 철문을 고정하기 위한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데,
그 위로 장독대 등을 놓을 수 있도록 작은 옥상과 같은 공간도 있다.
비상시엔 훌륭한 대피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위험요소라면 철문.
사람 한 명 힘으로야 꿈쩍도 안 하겠지만 수십명..
아니 마리들이 그 문을 밀어대면 힘없이 떨어져나갈 것은 당연지사.
만약 골목에 녀석들이 들이닥쳤다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나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집 근처까지 오기전에 군대가 제압할 수도 있.."
"꺄아아아아아아악!!"
"..지 않네."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기겁한 우리들은 서둘러 현관을 나서서 내가 말했던 정찰하는 스팟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니나다를까, 정말로 보기 싫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골목 저쪽에서부터 한 누님이 이쪽으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뭉개진 흉칙한 형상을 한 인간들이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그 걸음이 생각보다 빨랐다.
웃기는 건 꼭 막 만든 로봇과 같은 녀석들의 움직임이었는데,
걷는 것이 익숙치 않은지 어떤 녀석은 돌에 걸려 자빠지더니 그대로 온 몸을 사용해 기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으면서 보기에는 영 꺼림칙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어느정도 녀석들을 관찰하다 그새 여기까지 뛰어온 그 누나에게 소리쳤다.
"누나! 일로 들어오세요! 여긴 안전해요! 지금 문을.."
"꺄아아악!"
"..."
"가버렸다."
그 언니는 내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우리 집 앞에서 꺾어 골목을 빠져나가버렸다.
아마 한 순간도 멈추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공포를 맛보았겠지.
아니면 남자놈들이 웅성거리는 집 안으로 피해들어가기는 싫었던 건가? 킁..
"앗 온다."
"야야 숨어.. 숨어."
좀비들은 누님의 뒤를 쫓다가 놓쳐버렸는지 이동을 멈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놈들이 멈춘 곳은 딱 우리집의 철문 앞이었다.
우리들은 잔뜩 쫄아서 고개를 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단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야 김진환.. 너네 철문 튼튼하냐?"
"남자 열명 정도가 일시에 몸통박치기 하면 열릴걸."
"그래.. 그럼 일단은 안전할까나?"
"낸들 아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빼고 밖을 쳐다보았다.
몇몇 녀석들은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고, 좀비 둘만이 우리 집 앞에 남아 신음소리를 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시야를 넓혀 자세히 보니 아까 우스꽝스럽게 기어오던 좀비는 아직도 그쯤에 누워 어딘가를
향해 마구 기어가고 있었다. 아니, 기어간다기보단 뭐랄까.. 필사적으로 이동한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야야. 이새끼들 병신이야. 함 봐봐."
"아 졸라 담큰새끼.."
"담이 크건 말건 저새끼들 폴짝거려도 여기에 손끝이 닿을까 말까 해. 절대 안전하니까 봐봐."
"그럼 조금만.."
녀석들도 나를 따라 조심스레 밖을 쳐다보았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녀석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허얼.."
"우와 진짜다. 진짜 있었어. 야 태완아 우리 지금까지 홍대역에 있었으면.."
"이 형님한테 감사해라."
열심히 주변을 살피던 우리는 잠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다.
왠지 계속 그러고 살피고 있으면 녀석들에게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우리는 마루에 둘러앉아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하여간 이걸로 지금 실제상황이라는 게 판명됐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
"어쩌기는 미친.. 여기서 죽치고 있는거지. 군대 출동했대매. 저것들 하는짓보니까 군인들 오면 밥이겠구만.
얼마 걸리지도 않을걸?"
"야야 김윤호.. 수를 봐 저 수를. 괜히 저만큼 늘어났겠어? 아마 뭔가가 더 있을거야. 단순히 느리고 머리나쁜
저정도 수준으로 이렇게까지 불어날 리가 없어."
"글쎄, 다들 너무 갑작스러웠을테니까.. 불시에 당했겠지. 그래도 이젠 다들 정신차리고 있으니까
정리되겠지 아마?"
"아마도."
"으음.."
가만히 생각을 하던 태완이가 내게 말했다.
"진환아 너네집에 먹을거 얼마나 있어?"
"꽤 있어. 한달은 너끈해. 부모님 여행간게 그저께니까 냉장고도 만빵이고 사골국 끓여놓은것도 있고,
라면도 두 박슨가 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윤호가 말했다.
"무기는 있냐? 호신용."
"어 무기. 그러고보니 그게 필요하겠군. 아 이거 점점 무슨 게임같아진다. 가만있어 보자.."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초단을 따며 장만한 내 전용 쌍절곤과 두 개의 짧은 곤봉, 죽도가 있었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장식용으로 구비해놓은 두 자루의 목검을 떠올렸다.
다만 그것을 가지러 가려면 위층으로 가야 하는데 계단참에서 좀비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놈들이 우릴 발견해봤자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발견되서 좋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쌍절곤, 죽도라.. 그런 게 저놈들에게 통할까? 무엇보다 싸우기조차 싫다.
"있긴 있는데. 쓸만한건 위에 가야할거야."
"으으.. 그럼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구."
"그래야겠지. 일단은 짱박혀있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갔다. 나는 부엌으로 걸어들어가 사골국에 불을 올렸다.
나는 불을 조절하며 말했다.
"사골국 싫어하는놈 손들어."
"없어."
"난 좋아."
"착한 어린이들이군."
나는 우리가 이렇게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무엇보다 티비에서 본 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가슴 한켠이 말 할 수 없이 답답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부억의 통풍용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그렇게, 내 인생 19년 제일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닥칠 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여유롭게, 안심하며..
3화-첫날
"..음."
거짓말같이 맑은 햇살이 내 눈꺼풀 속으로 파고들어 동공을 간지르는 바람에.. 뭔 소리냐.
어쨌건 아침일찍인데도 나는 눈이 부셔서 깨어났다. 정말 지옥으로 변하기 일보직전인,
아니 내가 자고있는 사이에 이미 지옥으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를 이 나라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창한 날씨였다.
나는 등을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별로 손님이라고 우대해주는 성격이 아니라(여자손님이면 모르지)
친구놈들에게 알아서 퍼자라고 한 뒤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내 침대에 들어가 따뜻하게 잘 잤다.
이 놈들은 마루에서 잤든 소파에서 잤든 알아서 잤겠지..
설마 안방에 들어가 우리 부모님 침대에서 잔건 아니겠지?
"아함.. 굿모닝 여얼."
내가 하품을 하면서 방에서 나오자 곧바로 두 놈의 얼굴이 보였다.
다만 태완이는 소파에서 자고 있었고 윤호 혼자 깨어서 소파의 손걸이에 걸터앉아 멍때리고 있었다.
얼굴색이 안 좋은것이 밤새 잘 자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킬킬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야, 좀비들이 집밖에서 우어어 거리고 있는데 야한 생각이 나냐?"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마. 분명 밤새도록 이따만하게 꼴려가지고 태완이 자는동안 내 컴퓨터로.."
"그런 거 아니라고 자식아!"
윤호가 갑자기 버럭 성을 내며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자 나는 움찔하다가 내 방 난간에
걸려 뒤로 자빠졌다. 나는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아니면 아닌거지! 아 궁뎅이 아파.."
"부모님이 안 받는단 말야, 여친도.."
"뭐 전화?"
"어.."
윤호는 엄청나게 걱정인 듯한 분위기였다.
아침부터 꿀꿀하게 시작하면 온 하루가 꿀꿀하대서 나는 아침부터 우울한 놈을 보면
가만히 못 두는 주의인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지..
태완이는 아버지는 해외출장, 어머니는 대형 빌딩에서 대피중이고 우리 가족은 죄다 미국에 가 있는데
이 녀석만 부모님에다가 심지어 여친까지 연락이 안 된다. 나 같아도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여친같은 건 나중에 만들으라고 했잖.. 아 조크야 조크. 알았으니까 쌍절곤 내려놔.
그거 좀비 때리려고 가져온거지 나 때리라고 가져온 거 아니잖아."
"걱정마 김윤호. 연락이 안 된다고 무조건 어떻게 된 건 아니잖아."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는지 태완이가 부시시 일어나며 윤호에게 말했다.
윤호는 또 성을 내려고 머리카락을 세우다가 이를 꽉 물고 가라앉히며 말했다.
"너는 그렇겠지. 부모님이 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나도 누나랑 연락이 안 돼."
나랑 윤호는 깜짝 놀라 태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태완이에게는 누나가 있었지.
부모님들 생각 때문에 그건 깜빡했다.
태완이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안 그래도 윤호 니가 가족들이랑 연락 안돼서 어두운 판에 나까지 그러면 더 어두워질 것 같아 얘기는 안 했어.
하지만 이럴때야말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내 경험으론 불행한 상상이 긍정적인 상상보다 맞을 확률이
몇 배 이상 높거든.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고, 우리도 이렇게 잘 있으니까 믿고 기다려보자."
"..알았어."
태완이의 설득 덕에 패닉에 빠지려던 윤호는 마음을 가라앉힌 듯 했다.
역시 이런 이성적인 사람이 있어야 이런 상황에서 그룹이 살아남는다.
아마 지금 나와 윤호 둘뿐이었으면 서로 신나게 싸우고 잘하면 윤호놈이 반쯤 돌아서 무기들고
가족들 구하러 간다고 뛰쳐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럼 다 죽는거지..
나는 아까 윤호가 들어서 나를 치려 했던 쌍절곤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 방으로 돌아가 곤봉을 하나 집어들고 긴팔과 재킷, 두꺼운 스키바지를 입었다.
갑자기 정신없이 부시럭거리는 내 뒤로 태완이가 와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2층 가서 뭐 좀 챙겨오게. 만에 하나라도 뜰에 좀비가 있을 지 모르고, 혹시 밖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하는거야."
"허허.. 이론무장은 대단한데 어디 실전에서도 그렇게 될까?"
"뭐 열나게 팔 휘두르고 눈물콧물 오줌까지 질질 짜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겠지 뭐. 보나마나."
"하하하핫! 나 니가 그러면 안 도와줄거야. 드러."
"하여간 지금 나가서 살짝 보고, 위층가서 아버지 목검 두자루 가져올게. 아 혹시 촬영기구에 쓰이는 쇠파이프
라던가도 있을지 몰라.. 공구통도 있을 거고. 하여튼 밖에 안전해 보이면 부를테니까 얼렁 와서 도와. 알았지?"
아버지는 촬영쪽 일을 하셨다. 웨딩 촬영이나 작은 회사의 광고 등을 만드는 것이 주 일거리다.
사원 둘이 딸린 작은 회사지만 벌이는 꽤 되었다.
태완이는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내게 말했다.
"같이 나가는게 좋지 않아?"
"별로.. 솔직히 없을거야. 마당엔."
그러면서 나는 내 방에 딸린 창문으로 마당을 보았다. 마당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진작에 이렇게 보면 되잖아? 난 바보인가.
아니 그것보다, 혹시 마당에 좀비들이 들어오면 큰일나니 이 창문부터 막는게 급선무겠군.
"아 그리고 윤호좀 잘 부탁해.. 새끼 완전 풀죽었어. 안 그러는데 보통."
태완이는 고개를 돌려 윤호를 슬쩍 한번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나는 피식 웃고 곤봉을 꽉 잡고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역시 아직 우리 집 담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폭 쉬며 마당으로 걸어나가 기지개를 폈다.
다행히 오늘은 해가 가려져있어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여름에 재킷에 솜바지라니.. 후끈후끈하다.
"좀비가 다가오면, 일단 앞차기 한방. 엎어지면 곤봉으로 친다."
나는 허공에 앞차기를 힘껏 질러본 뒤, 곤봉을 땅으로 확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걸어다니는 시체에 힘이 있을리 만무하니, 제일 안전하면서도 사정거리가 긴 앞차기로 제압하면
반드시 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넘어져 버둥거리는 놈을 안전하게 곤봉으로 처리. 수가 많으면 달려서 도망가고..
대충 그렇게 하면 되겠어.
나는 다시 한번 곤봉을 휘둘러본 뒤, 조심스레 정찰하는 곳으로 다가가 몇 계단을 남겨놓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골목을 쳐다보았다.
"익!"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다시 집어넣었다.
내가 있던 곳 바로 밑에, 좀비 한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옷차림이 눈에 익은 것이 아마 어제부터 계속 여기서 맴돌았던 것 같다.
가만,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다면 혹시..
"우리가.. 있다는 걸 아는건가?"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담 아래를 쳐다보았다.
좀비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였다.
다만 무슨 일을 당해 좀비가 된 건지 뒤통수가 완전히 벗겨져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혹시 저기 보이는 허연 게 혹시 뇌 피질인가..?
"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입을 막은 채 다시 녀석을 관찰했다.
옷은 초록색 남방을 입고 있었고, 밑은 반바지.
신발은 신지 않고 있었다.
추측해보건데 아마 슬리퍼를 신고 있었을 것이다.
좀비가 되어 로봇처럼 걸어다니다보니 벗겨졌겠지.
다행히 내 예상과는 다른 것 같았다.
녀석은 이곳에 완전히 신경을 끊고 있었다.
그저 이 앞에서 계속 배회했을 뿐이겠지.
나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약 4미터정도 되는 바깥복도가 있고,
그대로 왼쪽으로 다시 꺾으면 정면으로 이층 문이 보인다.
쇠로 된 현관문이다.
이층 바깥복도에는 화분이 다섯 개가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화분의 아래 두껍게 깔린 신문지
속에 사무실 예비열쇠가 있었다.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열쇠를 찾아내 현관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목검이 어딨더라.. 아 쇠파이프 찾았다."
이층에 들어가면 바로 큰 거실이 있고, 거실 왼쪽에 방이 둘, 정면에 화장실과 녹음실, 오른쪽에 기계들이
가즉 찬 큰 스튜디오가 있다.
운좋게도, 거실의 오른쪽 모퉁이에 기자재 고정용으로 쓰이는 쇠파이프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휘두르기 좋은 크기의 견실한 놈으로 셋을 골라내어 따로 추려놓았다.
일단 무기를 확보한 나는 여기에 올라온 최고 목적인 목검을 찾아 헤맸다.
두 개의 방과 녹음실을 찾아본 나는 녹음실의 스튜디오와 연결된 창문을 통해 목검을 볼 수 있었다.
저 목검 두 자루는 비록 장식용이지만,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도록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스튜디오로 건너가 목검을 챙겼다.
하나는 상당히 길고, 하나는 내 팔뚝보다 좀 긴 정도였다.
검은색으로 옻칠이 되어 있고 손잡이에 용 무늬가 새겨져있는 이 목검은 언젠가 썩은 피와 살이
마구 묻어 흉한 몰골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멋진 물건이었다.
"태완이에게 맡기면 되겠군."
태완이는 덩치가 상당히 작고 공부를 잘 한다.
흔히 말하는 범생이다. 하지만 숨겨진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대한검도 2단이라는 사실.
검도 삼배단이라고, 내가 격투기로 작대기 든 태완이 상대하려면 6단은 되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상황에서니 더 믿음직하겠지.
무기술이니.. 뭐 상대가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목검 들었으면 손목 부러뜨리는거 일도 아닌데 천천히
걸어오는 마네킹같은 좀비라면 10초동안 대가리 15개쯤은 뽀갤 수 있을거다.
이건 나도 무기술을 해 봐서 안다.
"..가만."
쇠파이프와 목검을 들고 다른 무기 쓸만한 게 없나 서성거리던 나는 문득 체육관을 생각해냈다.
분명히 체육관엔 관장님이 쓰시는 진검이 한 자루 있었다.
관장님은 애들을 데리고 급히 나갔기 때문에 분명 남아있을 것이다.
그걸 태완이가 든다면 아마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체육관에 가려면..
집 앞에 서성거리고 있던 그 녀석을 해치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얼마나 더 만날지 모르지.
나는 목검을 양쪽 다리에 하나씩 끼워넣고, 쇠파이프 뭉치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리고 들어올 때 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밑으로 내려갔다.
밑으로 내려가다 보니 아까 그 좀비가 보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벽에 달라붙어 최대한 시야를 넓혀 주변을 살폈다.
너무 갑작스레 닥친 일이라서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집은 골목 안에 위치한 상황.
이 골목은 ㄴ자 모양의 골목인데, ㄴ자의 구석 부분에 우리집이 북쪽을 향해 나 있다.
정면을 바라보면 저 쪽에 큰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보면 다른 골목이 보인다.
잘 보니 큰길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다른 쪽엔 좀비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안쪽까지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이미 우리 서교동도 죄다 감염됬다는 소리인가?
나는 골목 정찰을 그만두고 근처 다른 집들의 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안경을 쓴 내 눈으로 이런 거리에서 봐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켄시로도 아니고 집 밖에서 안에 있는 사람 인기척을 느낄 수야 없으니까 말이다.
"아 망원경!"
이런 상황에서 망원경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빠르게 아버지 스튜디오로 돌아가 익숙한 자리에 놓여있던 망원경을 챙겨와 다시 정찰을 시작했다.
우리집 맞은편 차도의 건너편엔 큰 빌딩이 있는데,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안에 사람들이 보였다.
몇몇 층의 복도가 전신창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가운 김에 저쪽에서 보건 말건 마구 팔을 흔들었다. 근데 다음 순간.
와장창
여기서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퍼지며 내가 보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며 그 사람은 잔디밭에 떨어졌다.
"..미친.."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나는 황급히 망원경으로 그 사람이 떨어진 창문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올려다보려 했다. 그러나..
퍽
퍽퍽
퍽
둔탁한 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차마 망원경을 눈 앞에 가져다대지 못한 내 시야에 사람들이
차례대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깨물며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땅에 떨어져 죽었어야 할 인간들이 부시시 일어나 제일 처음 떨어진 그 사람을 마구 물어뜯기..
아니, '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돼.. 그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는 덜덜 떨면서 망원경을 눈에 대고 다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제발.. 제발.."
뭘 빌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좀비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럴 때 더욱 그렇듯, 내 예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창에도, 저 창에도 보이는 것들은 살아있는 시체들 뿐.
욕지기가 올라오려는 나를 부추기기라도 하듯, 한 좀비가 전신창문에 대고 마구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우린 그저 운이 좋을 뿐이야. 지금 바깥은 완전한 지옥..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머리 한켠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저 저 빌딩이 운이 나쁜 거였을 수도 있어.
다른 곳들은? 우리처럼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거지?
우린 이미 끝인가? 오기로 한 군대는 대체 뭘 하는거야!
궁금해서 참을수가 없다.
불안해서 참을수가 없다.
밖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나는 물끄러미 그 빌딩을 쳐다보았다. 저 빌딩 안은 아비규환이겠지.
이제 머지않아 늘어난 좀비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정찰은 빠를수록 좋겠지.
나는 조용히 일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찾았어?"
"어.. 목검 두자루랑 쇠파이프."
"우와!"
태완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목검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아직도 멍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태완아, 너 진검 쓸줄 아냐?"
"어? 응. 신문지밖에 안 잘라봤지만 해봤어. 왜?"
"내가 다니는 도장에 진검이 있어. 그리고 쓸만한 무기들이 있을거야. 관장님 방에 가면 진검 외에 날 달린
무기들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언제까지나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서 운을 시험하느니, 정찰도 할겸 밖으로
나가보는게 어떨까 해서."
"..미쳤어 너?"
태완이가 정색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안 미쳤어. 다만 밖에 저것들은 느리잖아. 해볼만 할까 해서 그러는거야."
"그건 몰라. 저 놈들이 느리기만 할지, 또 다른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놈들이 있을지, 또 어떤 상황에 처해서
우리가 다치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미쳐돌아가는 어떤 사고에 휩쓸려 죽게 될지.. 너무 위험하다고.
그걸 넌 다 보장할 수 있어?"
태완이의 말을 듣고 나는 아까의 빌딩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말했다.
"그딴 거 다 보장하고 다니다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거야! 너도 누나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외치자 태완이는 잠시 멈칫하며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나와 태완이가 서로 씩씩거리며 쳐다보고 있는데 멍때리고 있던 윤호가 말했다.
"난 갈란다."
"어?"
태완이가 놀라서 쳐다보자 윤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가져온 쇠파이프를 하나 집어들며 말했다.
"난 진환이랑 나갔다 온다구. 여기서만 죽치고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다."
"너희들 진짜.."
"사실 진환이 말이 맞아. 안전만 찾고 있다가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결정적일 때 결단을 내리기 힘들어질
거야. 그리고.."
윤호는 눈을 매섭게 뜨며 파이프를 꽉 쥐었다.
"저 강아지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지 않고는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어."
"야, 그렇다고 너네 가족이 죽었다는 보장은.."
"그 소리 이제 그만해라. 지쳤으니까."
윤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내게 말했다.
"나가자, 김진환. 저 새끼들 조져보자구. 살아서 걸어다니는 걸 쇠파이프로 때려볼 기회가 흔하겠냐?"
"별로 그럴 의도는 아니다만 나는 어쨌건 나가볼거야. 바깥의 상황을 봐야 앞으로 대처를 어떻게 할 지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 불안해서 말이지."
"아~ 진짜.. 너네 미쳤어."
태완이는 한숨을 크게 쉬고 손톱을 입에 물었다.
우리가 녀석을 빤히 바라보며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녀석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간다고. 가면 되잖아. 다만 밖에서 위험해지면 너네 때려죽일거야."
"맘대로 하셔. 이래뵈도 나는 공수도 2단에 최강 MMA 천무관의 초단이다. 윤호는 합기도 3단에 유도가
3단이고. 가만 안 있을거라구, 마."
"지금 그딴거 따져봤자야. 가자."
그렇게 우리는 첫 사냥을 시작했다.
4화-첫외출
"준비됐지?"
나는 쇠파이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태완이와 윤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무장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장은 2층에 갔을 때와 완전히 같다.
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인라인 스케이트용 팔꿈치 보호대를 끼었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
윤호는 내 파카를 빌려입고 신고있던 슬리퍼 대신 내 장화를 신었다.
나와 같이 쇠파이프를 들었다.
태완이는 내 인라인 스케이트용 팔 보호대(손목부터 팔꿈치 아래까지를 보호한다)를 끼고 역시 재킷과
긴 바지와 운동화를 신었다.
무기는 물론 긴 목검. 나는 예비용으로 재킷 안쪽에 수건으로 싼 식칼을 달아놓았다.
나는 태완이에게 넌 키가 작으니 혹시 머리를 물릴 수도 있다고 헬멧을 끼라고 얘기했지만
검 휘두르는 데에 방해된다며 쓰지 않겠다고 했다.
"가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현관을 열고 나와 대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철문을 닫고 옆을 보니 오른쪽 약 5미터-불과 서너 걸음정도 되는 곳에 아까의 좀비가 보였다.
녀석은 우리가 내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왓!"
"오.. 온다.."
나는 이를 꽉 물며 쇠파이프를 치켜들었다. 겁이 덜컥 나는 동시에 내 머릿속에 갑자기 아까
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리고 그 때 느꼈던 떨림과 흥분, 그리고 분노가 기억났다.
"죽여버린다.."
금방까지 이를 꽉 물고 있던 나는 엄청나게 떨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녀석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을 뿐인데,
나는 겁을 먹고 이성적인 전략을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속이 울렸다.
다리와 팔이 미친듯이 떨렸다. 다 던져버리고 일단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내 친구들을 보았다.
태완이는 검을 앞으로 치켜든 자세로 검끝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역시 다리가 덜덜 떨리는게 보였다.
윤호는 쇠파이프를 늘어뜨린 채 달려들까 말까 하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 역시 미세하게 몸을 떨며 거칠게 숨을 쉬었다.
"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바로 내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기합을 외치며 놈의 이마를 향해 쇠파이프를 힘껏 내리쳤다.
"크아악!"
빠각
엄청난 소리가 울려퍼지며 좀비의 이마빡이 뭉개졌다.
녀석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며 내 앞에서 비틀거렸다.
타격을 준 것이 분명했으나 나는 손아귀에 힘을 있는대로 쥔 채 때린 탓에,
쇠파이프의 진동이 내 팔로 그대로 전해져 그 고통에 몸을 꼬았다.
"아우우.. 팔아파!"
"어어-"
그 놈은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리다가 아래쪽에서 그대로 나를 덮쳤다.
생각과 너무 달랐다. 앞차기로 놈을 쓰러뜨리고 쇠파이프로 때려? 그딴 걸로 해결될 리가 없었다.
녀석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 미친듯이 때려도 무시하고 일어나 내 팔을 잡아 물어뜯어 버릴 것이다.
별의 별 생각이 다 일었다.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놈의 머리를 뭉개버릴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쇠파이프 정도로 일격에 두개골을 박살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와 좀비가 달라붙자 내 친구 둘은 나에게서 순간적으로 떨어졌다.
좀비가 내 어깨를 잡고 얼굴을 확 들이밀었다.
나는 패닉에 빠져 쇠파이프를 내던지고 녀석의 손을 뿌리치려고 팔을 흔들었다.
"아 신발! 우아아아! 놔 새꺄!"
"허어- 허어-"
놈은 내 살이 보이는 곳을 물어뜯으려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으려 했다.
코나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것이었을까? 어깨에 나를 잡은 손아귀의 힘이 정말 엄청났다.
쉽사리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한 김에 복싱선수들이 가드를 하듯 양 팔을 올려 녀석의 얼굴을 가로막았다.
녀석의 얼굴이 계속 내 팔을 밀더니 갑자기 와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움직임이 멈추었다.
동시에 내 오른팔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걸 느꼈다.
나는 고통이 느껴지는지 아닌지 판단도 못하고 미친듯이 소리쳤다.
"우아악 신발! 이 새끼가 내 팔 물었나봐!"
"아냐 진정해! 그 새끼 니 그거 물었어! 그거, 팔꿈치 보호대!"
나는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팔을 마구 흔들다가 왼팔을 들어 녀석을 보았다.
놈은 초점없는 표정으로 내 팔꿈치 보호대를 힘껏 깨물고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세상에 보호대라는 물건이 이렇게까지 내게 희망을 준 건 처음이었다.
나는 놈이 정신차리지 못하게 온몸을 이용해 오른팔을 흔들면서 외쳤다.
"미친 무뇌아시꺄! 놔! 으아아!"
퍼걱
나는 오른팔을 당기면서 왼쪽 팔꿈치의 보호대로 놈의 눈가를 내리쳤다.
와드득 하는 소리가 나며 놈의 내 팔꿈치보호대를 물고 있던 이빨이 우수수 뽑혀 떨어졌다.
힘껏 물고있었던 차에 내가 강한 타격을 주니 물고있던 이빨이 죄다 빠지면서 잇몸 자체가 뭉개진 것이다.
나는 마라톤이라도 뛴 듯 헉헉거리며 내 오른팔을 확인한 뒤 반쯤 울먹거리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놈이 나에게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나는 아까 시뮬레이션했듯이 온 힘을 다해
놈의 가슴팍에 앞차기를 꽂아넣었다.
하지만 놈은 쉽사리 넘어지지 않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계산착오였다. 무슨 목각인형이라도 된 듯 놈들의 살은 뻣뻣했고, 무엇보다 힘이 엄청났다.
나는 몸을 덜덜 떨면서 놈을 쳐다보며 어디를 쳐야 놈을 넘어뜨릴 수 있을 지 생각했다.
"탓!"
순간적이었다.
내가 잠깐 주저하는 사이 태완이가 한걸음에 놈까지 다가가 내가 아까 파이프로 함몰시킨 부분에
목검을 꽂아넣었다.
뻐걱 하는 기분나쁜 소리가 골목에 울려퍼지며 놈의 머리 파편이 태완이의 정면에 튀었다.
그리고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놈은 쓰러졌다. 끝이었다.
"허억.. 허.. 하악! 하악! 하악.. 신발 뒤지는 줄 알았어.."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그렁거리며 힘겹게 말했다.
정말로 무서웠다.
생각과 너무 달랐고 무엇보다 눈앞에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니 이건 정말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내가 무너지기 무섭게 태완이도 다리를 덜덜덜 떨면서 휘청거리다가 얼굴에 팔을 얹으며 벽에 기대었다.
"께아아악!"
태완이가 숨을 돌리려는 찰나, 이마 윗부분이 두 쪽으로 쪼개져 엎어져 있던 좀비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굴러서 일어나듯 태완이에게 다가가 다리춤을 붙잡았다.
태완이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놀라 완전히 겁에 질려 목검을 떨어뜨리고 발을 버둥거렸다.
"우.. 우와아..!"
태완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놈이 입을 벌리고 태완이의 다리춤을 물려는 찰나 윤호가 괴성을 지르면서 놈에게 달려가 쇠 파이프로
그 놈의 팔을 때렸다.
뿌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놈의 팔은 부러졌고, 덕분에 놈의 이빨은 공기만을 한움큼 깨물었을 뿐이었다.
태완이가 옆으로 굴러 엎어지는 동시에 윤호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좀비를 쇠파이프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살점과 썩은 피가 튀기며 사방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며 떨고 있던 나는,
얻어맞고 있던 놈의 팔이 움찔 하며 다시 움직이는 걸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혔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완전히 정신이 나간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쇠파이프를 다시 집어들고 윤호와 함께 좀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친 신발새끼! 죽어! 죽어! 제발 좀 죽으라고!! 으아아아!!"
머리를 깨야 놈의 움직임이 멈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그 놈의
온 몸을 사정없이 때리기만 했다.
20번쯤 휘둘렀을까, 제풀에 지쳐 팔을 멈춘 우리들의 앞에는 온 몸의 뼈가 부러져 이상한 방향으로
관절이 꺾여있고, 무언가가 몸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인간과 비슷한 형상의 고깃덩이가 엎어져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움직임을 멈춘 좀비를 보며 숨을 헐떡이던 나는 놈의 머리에서 피가 팍 뿜어져나오는 걸 보는 순간
놈이 움직였다고 착각해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품에 넣어놓았던 식칼을 꺼내 놈의 위에 올라타
목을 쑤시기 시작했다.
"안 죽어? 어? 이래도 안 죽어? 어디 계속 움직여보시지 신발새꺄! 어? 움직여보라고! 으으으.. 헉! 헉!
움직여보라고.. 헉.."
목에다가 칼을 팍팍 쑤셔넣던 나는 말소리를 줄임에 따라 칼을 휘두는 걸 멈추고 놈의 목을 자르려고
칼로 설근설근 썰기 시작했다. 피가 줄줄 흘러나오면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뭐지? 구멍? 식도인가? 허연 게 보이는군.. 잘 안 잘리는데..
"으으.. 으히히..?"
나는 괴상한 소리를 흘리면서 목뼈 주변으로 칼을 돌리면서 살점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 모르게 되며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올라오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퍽 하며 눈앞이 번쩍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손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았다. 태완이였다.
태완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니 내 뒤통수를 때린 손을 거두며 말했다.
"정신차려."
그리고 녀석은 비척비척 다가가 벽에 엎어졌다.
나는 멍하니 녀석을 쳐다보고 있다가 무언가에 잔뜩 젖어 질척거리는 내 손을 쳐다보았다.
"우.. 우웨엑! 쿠웨어어억! 카학.."
딱 1초가 지나자 나는 격렬하게 토사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잘라낸 좀비의 목구멍 속으로.
나는 코와 입으로 토사물을 쏟아내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옆으로 굴러 엎어졌다.
내가 누워있는 바로 옆에 윤호가 씩씩거리며 몸을 숙이고 숨을 돌리고 있었다.
"씨바.. 헉.. 헉.."
"살면서 이렇게 소리지른 건 처음이다.. 팔 부러진거 맞췄을 때에도 이것보단 덜 소리질렀던 것 같아."
윤호는 이성이 좀 남아있는지 내게 농담을 던졌다.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몸을 뒤척여 태완이를 바라보았다.
태완이는 목검을 힘없이 손에 들고 목검에 묻은 살점을 쳐다보다가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 미친놈아. 게임 많이하더니 게임같은짓만 한다. 왜 올라타서 그 지랄을 떨어? 괜찮냐?"
나는 팔로 입가와 코를 훔쳐내며 침을 뱉었다.
"몰라 병신아.. 헉.. 헉.. 그나저나 진짜 같이 나오길 잘 했다. 혼자 나왔으면 뒤졌을 거야 분명히.
고맙다 새끼들아."
"뭘."
"별로 안 고마울 수도?"
태완이가 요상한 말투로 내게 말하자 나는 몸을 일으켜 녀석을 쳐다보았다.
태완이는 이 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녀석의 시선은 골목 저편으로 가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본 나는 다시 한번 입에서 욕을 터뜨렸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그 쪽에선 좀비 두 마리가 이 쪽으로 비척비척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 우리가 반쯤 미쳐 마구 소리를 질러댄 탓에 우리들의 소재를 알아챈 듯 했다.
저대로 이 쪽으로 오면 1분도 안 걸린다. 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호와 태완이도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집었다.
집앞에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어디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배는 물론 든든하게 채운 뒤다.
"한마리 죽인거 까짓 두마리 더 해보지 뭐.."
"거 진심이냐?"
"..솔직히 나는 더는 싫다.."
가만히 무기를 쥐고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야 잘 들어봐.. 쿨럭! 아 입에서 구린내 난다.."
"병신 그러게 왜 혼자 주접떨다가 토하고 난리치냐? 나도 토할뻔 했지만."
"아 닥치고 들어봐."
나는 좀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 발로 찼을 때, 쉽게 넘어지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 땐 가슴 중앙을 찼었거든? 사람 차듯이.
근데 별 효과가 없었으니까 이제부턴 넘어지는 발차기를 할거야. 너희들도 알아둬, 저 새끼들은 고통이
없으니까 명치같은덴 의미가 없어. 내가 지금 실험을 할 테니 넘어지는 즉시 머리를 뽀개는거야."
"실험? 니 목숨을 담보로 한 실험? 미쳤냐 너?"
"가만 좀 있어봐. 난 아까 저 새끼가 달라붙고 나서라 이제 별로 안 무서워. 저놈들 힘이 무지 좋아. 대신
몸이 뻣뻣하니까 한쪽 사타구니를 치던가 하면 넘어질거야. 오케이?"
"오케이."
"또 질질 짜면서 난리치면 안 구해줘."
나는 살짝 찌그러진 내 쇠파이프를 윤호한테 들리고 태완이를 옆에 세운 뒤 좀비들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놈들은 동시에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다가오고 있었다.
한 놈이 약 3미터 앞까지 오자 나는 팔로 상체를 가리면서 놈의 왼쪽 사타구니를 힘껏 찼다.
내 예상대로 놈은 허리가 팍 돌아가며 등을 보이고 땅에 엎어졌다.
녀석이 버둥거리며 기어오기 직전 태완이가 목도로 힘껏 놈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뻐억 하며 뒤통수가 함몰되더니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보다 훨씬 깔끔한 결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우리는 놈이 넘어진 자리에서 살짝 멀어졌다.
"씨.. 씨바 진짜 해냈다."
"야, 한놈 더 오잖아."
철퍼덕
정말로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차놀이를 하며 먼저 온 놈의 뒤를 졸졸 따라오던 그 놈은 먼젓놈이 엎어진 자리로 계속 다가오더니
그 시체에 발이 걸려 우리의 발치에 확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사태에 어이를 상실한 우리는 잠깐동안 멍하니 그 좀비의 발버둥을 바라보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놈의 뒤통수를 부쉈다. 너무도 싱거운 결말이었다.
태완이는 목검을 팍 털어내곤 말했다.
"뒤통수.. 알았다."
"어?"
태완이는 목검으로 엎어져 있는 좀비의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저 머리가 약점이 아니야. 소뇌가 약점이지. 우리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소뇌 말야. 이 놈들은 심장은
멈췄지만 몸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소뇌는 살아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움직이고, 힘도 센 거지.
사람은 보통 자신의 힘의 20퍼센트 정도밖에 못 쓰는데 이 놈들은 그런 거 없잖아. 리빙데드(Living Dead)
니까. 하여튼 놈들을 한방에 죽이려면 뒤통수를 깨는게 제일 효과적이다 이거야."
"우리 전교1등 시작하셨구만. 그래서?"
태완이는 목검으로 좀비들의 뒤통수와 목의 연결부위를 가리켰다.
"이 부분. 푹 파인 곳. 여기를 비스듬하게 목검 같은걸로 올려쳐 두개골과 함께 부수면 될거야. 거기가
소뇌가 위치한 곳이니까. 아까 진환이랑 내가 이마를 쪼갰잖아? 근데도 움직였으니까.. 확신할 수 있어."
그러면서 태완이는 제일 처음 우리가 처리한 좀비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그걸 가만히 쳐다보더니 입을 가리면서 벽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아.. 죽일땐 머리에 피쏠려서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진짜 싫다."
"나는 그래서 안 보고 있지."
"에?"
윤호의 말을 듣고 쳐다보니 녀석은 교묘하게 시선을 위로 향하고 있었다.
"아까 죽이고 나서 니가 칼로 쑤시는거 볼때 토할뻔했거든.. 그래서 안 볼라구 난."
"치사한 놈."
나는 벽에 무너지듯이 기대며 앉았다.
이제 세 마리 죽였는데 이런 꼴이라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느리고 멍청한 저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이 퍼졌는지 이제 이해할 것 같다.
저런 게 열 마리정도 밀폐된 장소에 나와 같이 있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후우우우.."
나는 길게 한숨을 뽑아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뒤로 한숨을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도장까지 잘도 가겠구만. 빌어먹을.
5화-대반전
짧지만 격렬했던 전투를 치룬 후로부터 우리의 이동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요령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요령이라는 것이 좀비를 죽이는 요령이 아닌 좀비에게서부터 피하는 요령이라는
게 웃긴 점이라면 웃긴 점이랄까?
이 좀비들은 느리다. 멍청하다.
하지만 끈질기고, 힘이 세고, 감염성이 있다.
그 덕분에 더욱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고, 당하는 순간 공포심을 배로 증가시킨다.
좀비에게 물리면 K-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잠복형으로, 감염된 즉시 그 사람을 좀비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몸이 쇠약해졌을 때가 바로 바이러스의 활동 시점.
서서히 사람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해 만약 해당 인간이 죽는다면 즉시 그 사람은 좀비로 변화된다.
내가 이 태완이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죽은 시체의, 썩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누런 이빨에 물어뜯겼는데 과연 몸이 무사할까? 이런 위급시에
얻은 상처는 아주 사소한 위생상태의 변화만으로도 인간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켜. 더군다나 지금은 한
여름이고. 결론은 물리지 말라는 거지."
과연. 그런 이야기였다.
하기야 그 놈들이 누구 좋으라고 이빨자국만 살짝 내겠는가?
한움큼을 물어뜯을텐데 몸에 그렇게 큰 이빨자국이 나고도 멀쩡할 리가 없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고, 각종 잡병에 시달릴 것이다. 거기다 목 같은데를 물어뜯겼다면.. 게임오버지.
우리는 도장으로 가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길을 가는동안 대략 10마리의 좀비를 만났다.
우리는 녀석들 중 단 한 마리만을 죽이고 그 길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
물론 몇몇 놈들은 우리에게서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피해 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천천히 길을 가며 조사해본 바로 녀석들의 먹이 감지 센서는 바로 '기척'.
소리도, 시야도, 냄새도 아닌 기척이다.
녀석들의 시각과 후각이 제로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확신하고 있던 우리는 혹시나
녀석들의 청각이 발달되었나 해서 먼 거리에서 녀석들 근처에 돌을 던져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녀석들은 돌이 바로 근처에 떨어져 큰 소리가 나기 전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실험을 해 보았다.
큰길가에 나 있는 문방구점에서 세발 자전거를 가져와 큰길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좀비들
근처로 멜로디 사이렌을 켜놓고 있는힘껏 굴려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길 저 쪽까지 달려가버린 세발자전거를 좀비들은 딸리는 다리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열심히 쫓아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대폭소한 우리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도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길가에 서 있던 좀비는 태완이가 목도로 밀거나 나와 윤호가 파이프로 밀치면서 지나갔다.
일단 넘어지기만 하면 별 위협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완전히 열려있던 도장 안에 있던 좀비 한마리..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는 녀석을 처리하고 도장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근데 너네 관장님도 대단하다. 이렇게 문단속도 안 하고 살어?"
"그게 아니고, 제대로 된 위험감지센서가 있는거지. 그 뉴스 뜨는 걸 보자마자 관장님은 아이들부터 챙겼어.
근데 늬들은 뭐냐? 내가 그 난리를 떨어야 겨우 우리집으로 왔잖아. 나 진짜 너희들이 좀비 된 꼴 봤으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상상도 안 간다."
"으음. 그건 확실히 싫군."
구조를 잘 모르는 친구녀석들에게 아무데나 뒤지도록 시켜놓고 나는 관장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얻은 무기는 역시 익숙한 곳에 걸려있던 진검.
한국의 장인이 만든 도검이라는데 글쎄 나는 그정도까지 알 수준은 아니라 별 감상은 없었다.
그 외에 3단 이상부터 만질 수 있는 낫 달린 쌍절곤, 창 등이 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길을 다니기 위해선 좀비들과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러려면 기다란 무기가 필요하다.
다른 케이스로, 확실하게 전투를 해야 할 상황을 위해 좀비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가 또한 필요하다.
창을 짧게 해서 쓰면 좋겠지만 낭창거리면서도 튼튼한 저 중국창을 부러뜨릴 능력이 내겐 없다.
나는 기다란 무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가져온 식칼을 떠올렸다.
우리 집에 있던 것 중에 제일 큰 것을 골라온 것이다.
나는 이 녀석을 곤봉 끝에 달면 훌륭한 견제용 무기가 되리라 생각하며 가볍고 튼튼한 막대기를 찾아 헤맸다.
쇠파이프는 조금 무거워서..
"아 김윤호, 김태완! 거기 체육관 모퉁이에 선반 있을거야. 거기서 우리가 쓰는 오픈핑거 글러브 있어.
그거 3페어 챙겨."
"왜?"
"글러브 끼면 손 물릴 가능성이 적어지니까. 그리고 싸우다보면 땀 때문에 무기를 미끄러트릴수도 있잖아."
"이거 말하는거야?"
태완이가 MMA용 글러브를 들고 오며 말했다. 나는 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그건 펀치글러브 겸용이라 쿠션이 꽤 두꺼워. 그거 끼고는 무기 못 휘둘러. 거기 바이크글러브처럼
얇지만 그랩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검은 장갑 있을거야."
"아 찾았다 찾았다. 이거 들고가기보단 아예 지금 끼고 있자."
"뭐 그러던가.."
나는 진검과 관장님 책상에 들어있던 현금, 던지는 나이프 5자루를 들고 나왔다.
현금은 자판기에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나중에 이 사태가 끝나면 갚아드려야지 뭐..
지금은 일단 챙길 수 있을만큼 챙기자.
내가 챙긴 물건들을 들고 방 가운데로 오자 태완이와 윤호도 각각 챙긴 물건들을 들고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가 챙긴 물건들은 아래와 같았다.
목도 세 자루
진검 두 자루(한 자루가 더 있었다!)
죽도 두 자루
나무배트 두 개(초단 이상 기합용, 격파용)
서바이벌 나이프 세 자루(이건 파는건데 윤호가 멋대로 꺼내왔다. 도둑놈새끼)
스로잉 나이프 일곱 자루
아이언피스트 두 개
나무곤봉 두 자루
그래플링 글러브 세 페어
"이 정도면 되겠지? 솔직히 이 이상 들어봤자 들고가지도 못할 것 같아."
"그래. 여기 말고도 바로 옆에 철물점 있어. 거기도 들릴 거니까.."
"에? 더 가자고?"
"이왕 나온거 더 가야지 뭐. 그리고 좀비 상대로는 쌍절곤보단 쇠망치가 나을 테니까."
나는 글러브를 손에 끼고 목도를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목도를 몇 번 휘둘러본 뒤 내려놓고 곤봉과 식칼의 손잡이를 대조해보았다.
별로 큰 차이는 없었다.
나는 두 녀석에게 각각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린 뒤 곤봉이나 쇠파이프에 나이프를 달아놓으라고 시켰다.
투명한 박스테이프를 이용해서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윤호놈이 이상한 짓을 했다.
곤봉과 나이프를 이용해 창을 만들지 않고 둘을 기역자로 맞붙혀 낫과 같은 찍는 무기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괴상한 무기를 만들고 좋아라 하고 있는 윤호에게 내가 말했다.
"뭔 짓이야?"
"어? 아니 그게 나는 그런 무기 다루는 건 익숙하질 않아서 그냥 찍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네가 만든
그걸로 폭 찔러봤자 좀비를 죽이진 못할 거 아냐.
나는 말없이 관장실로 가서 낫달린 쌍절곤을 가져왔다.
"이거랑 곤봉 연결하는게 백만배 낫겠다."
"...."
윤호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더니 곧 궁시렁거리며 자신의 무기를 해체해
우리와 같은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태완이는 윤호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더니 관장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진환아. 저 창은 안가져가?"
"쓸줄도 모르고 취급도 어려워. 또 크고. 그건 휘청거리는 창이라서 견제용으로는 별로야. 대 인간용이지
대 괴물용은 아니야. 그렇다고 좀비를 확실히 죽일만한 물건도 아니고."
"흐음.."
윤호가 무기를 고치는 동안 나는 서바이벌 나이프 세 자루를 다시 챙겼다.
휴대할 수 있는 단검이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곧 무기의 수리를 마친 윤호와 함께 우리는 각각 무기를 챙기고 체육관을 나섰다.
아마 다시 볼 일을 없겠지만, 세상이 안정되어 다시 여기서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빌었다.
"다음은 철물점이랑 편의점이다."
----------------------------------------------------------------------------------------------------
"죽여!"
"으아아아!"
푸석
정말 듣기싫은 소리였다.
내가 생각해낸 무기로 죽이는 거지만, 넘어진 좀비의 두개골을 식칼창으로 찔러 쪼갤 때 들리는
서걱거리는 소리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뭐랄까, 뭔가를 자르는 서걱 하는 소리와 쩌억 하며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를 합친 것 같달까?
거기다 그 촉감. 뻣뻣하지만 부드러운 살을 가르고 들어가며 뼈나 장기에 걸려 뚝뚝 끊어지는
그 느낌은 기다란 곤봉을 타고 내 손에 똑똑히 느껴졌다. 정말 할 짓이 못 된다.
체육관에서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붙은 편의점에 들어가 좀비 두 마리를 없앴다.
문을 여는 순간 벨이 울리는 바람에 달려든 좀비의 머리를 태완이가 눈부신 솜씨로 가르며 일단 한 마리.
무서운 속도로 때려내린 진검은 소뇌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좀비의 정수리부터 턱까지를 둘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깊히 박힌 칼을 뽑아내기 위해 태완이는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렇게 넘어지는 좀비 옆에서 달려오는 다른 놈.
우리는 옆으로 급히 달려 피한 뒤 껌 진열대를 넘어뜨리고 그 너머에서 대기했다.
아니나다를까 진열대에 걸려 넘어진 좀비를 윤호가 목도로 두들겼고,
확실히 죽이지 못한 것을 확인한 나는 카운터의 계산기를 뽑아다 내리쳤다.
그래도 움찔거리는 좀비를 보고 내가 식칼창으로 내리꽃아 뒤통수를 쑤신 것이다. 정말 싫다.
"일단 여기서 인스턴트랑 음료수, 과자같은 걸 가져가자."
"짐이 많은데 말이지."
"만약을 위해서야. 부피가 작고 안 썩는것만 골라서 가져가자구. 음료수는 물만. 콜라같은거 챙겼다간
주욱는다? 특히 김윤호."
"내가 뭘!"
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쇼핑백에 육포나 초콜릿, 껌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가스가 떨어지거나 전기가 끊어질 것을 대비해 라이터를 충분히 챙겼다.
진열대에서 빙빙 돌고 있는 보충이 가능한 고급 지포라이터도 다섯개쯤 챙겼다. 담배는 물론 안 챙겼고.
가정시간에 배운 걸 여기서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보관이 용이하고
위급할때 쓸 보조식품, 그리고 약을 챙겼다.
약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던 나와 윤호는 태완이가 여러가지 약을 챙기는걸 보고 부리나케 태완이
흉내를 냈다. 마데카솔과 부루펜 등을 챙기던 나는 다른 약을 보려다가 태완이가 약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는 걸 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괜한 거 챙겨봤자 짐만 될테니 녀석에게 맡기자.
슬슬 나가려고 하는데 윤호가 태완이 옆에서 뭔가를 덜컹거리면서 꺼냈다.
보니 녀석은 구급상자 키트를 꺼내고 있었다. 먹는 약을 생각하다보니 저걸 생각 못했군.
저 안엔 붕대라던가 가위, 바늘, 실 등이 있어서 기본적인 응급처치는 가능하다.
다만 그걸 제대로 쓸 놈이 있을까 하는 게 문제겠지.
"대충 챙겼으면 가자 다들."
"어."
"딸리면 나중에 또 오는거지 뭐."
나는 문을 열기에 앞서 문에 달린 종을 떼어버렸다.
혹시 윤호 말마따나 또 왔을때 이 종 때문에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을 살며시 열고 옆의 철물점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좀비들이 서성거렸으나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철물점은 문 자체가 없어서 자칫 뭔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철물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짐을 많이 챙긴 우리는 일단 짐을 입구쪽에 내려놓고 제일 우선인 무기를 챙겼다. 일단 망치.
윤호가 장도리를 챙기고 있는데 내 눈에 주인 방 근처에 놓여있는 손도끼가 보였다.
"야아 이거 쓸만한데.."
손도끼는 두가지 타입이 있다.
손잡이가 짧고 날이 긴 넓은 도끼 유형과, 손잡이가 기다랗고 끝에 날이 붙은 전형적인 유형의 도끼.
이건 전자였다. 이거면 잘 하면 목을 자르는데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도끼를 천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무거웠다.
"어 진환아 이거좀 봐."
태완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손도끼를 들어야 할지 넣고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걸 넣었다 빼었다 하며 태완이에게 다가갔다.
태완이가 무언가를 집어들며 말했다.
"타정총이야."
"타정총? 그게 뭐야?"
태완이는 타정총이라 부른 물건과 작은 책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공사장에서 못 박을때 쓰는 총 있잖아? 그거."
"오오 대못총? 그거 멋진데. 대한민국에서 총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니까. 근데 그거 어떻게 쓰는줄은 알아?"
"뭐 대충은.."
태완이는 예의 그 작은 책을 뒤적거렸다. 설명서인 모양이었다.
설명서를 읽고 있던 태완이가 얼굴색을 흐리면서 말했다.
"아 이거 못쓰겠다."
"왜?"
내가 묻자 태완이는 타정총의 주둥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이 부분을 못을 박고 싶은 곳에 꾹 누르고 쏴야 한대. 좀비한테 다가가서 이걸 누르고 쏘느니 그냥 검이
낫지 않겠어?"
"흐음.. 줘봐봐."
나는 타정총을 받아 주둥아리쪽을 살펴보았다.
과연, 이 총의 주둥아리쪽엔 원통형의 조그마한 파이프 모양 쇠가 덧씌워져 있었는데,
이걸 꾹 누르니 뒤쪽으로 밀리면서 속에 발사구가 보였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하면 고정시킬 수 있을까 하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잠깐동안 주변을 뒤진 나는 찾던 물건을 발견하고 말했다.
"이걸로 개조를 해 보지."
"글루건? 그건 왜?"
뒤쪽에다 글루 스틱을 넣고 전력을 공급한 뒤 방아쇠를 누르면 강력한 본드가 나오는 글루건을 찾아낸 나는,
그걸 이용해 타정총의 입구 부분을 뒤로 당긴 후 봉합시켜 버렸다. 태완이가 작게 탄성을 지르면서 말했다.
"대단한데?"
"내가 좀 하지. 킥킥. 일단 이거 두 개 다 가져가자. 타정총은 근데 못을 어떻게 쓰는거야?"
"어.. 자동권총과 거의 같은 원리인데, 코드를 꼽아야 쓸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이건 충전식인것 같아.
우리한텐 행운이지."
태완이는 설명서를 보며 타정총 옆에 있던 못과 이상한 색색깔의 주렁거리는 줄을 챙겼다.
"그게 뭐야?"
"화약. 이걸 못 뒤에 붙이고 장전해야 타정총이 나가는거야."
"진짜 빨리도 이해한다."
태완이에게 타정총을 맡기고 글루건을 챙긴 뒤에 나는 윤호를 찾았다.
녀석은 망치와 장도리중 무엇을 챙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녀석 옆에는 튼실해보이는 쇠파이프 두 개와 알루미늄 배트가 있었다.
나는 파이프를 치우면서 말했다.
"우리 이미 짐이 넘칠듯이 많으니까 이건 두자. 알미늄 배트는 챙기고."
"아 그것보다 나 얘내중에 뭘 골라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장도리와 망치를 보며 잠깐 생각을 했다. 망치가 상대적으로 무거운 만큼 살상력은 크겠지만 장도리는
뒤가 뾰족하니까 여러가지 용도에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레로도 자주 쓰이고. 나는 말없이 장도리를 챙기라고 한 뒤 입구로 나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이제 가자. 날이 어두워질라고 그래."
삼류 좀비영화처럼 날이 어두워지면 좀비가 강해진다던가 하는 설정은 없겠지만
시야가 차단되면 불리한쪽은 우리다.
그것도 절대적으로. 내 말을 들은 태완이와 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옷의 틈이라는 틈, 가방과 쇼핑백의 구멍이라는 구멍에 있는대로 무기를 쑤셔넣은 우리의 모
습은 정말 가관이었따.
특히 태완이는 작은 몸집에 온 도검류를 다 챙긴 탓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목도는 무거워도 챙기기가 쉬웠지만 죽도는 손목 분리대 때문에 상당히 방해가 되어서
일단 여기에 버리고 가기로 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 Home sweet home 으로."
"아 배고파.. 샤워도 하고 싶다."
나와 태완이가 궁시렁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윤호가 말했다.
"야 저기 봐봐."
"뭐?"
윤호가 가리킨 곳은 길 건너편이었는데,
좀비 두 마리가 사람 시첸지 같은 좀비인지 모를 무언가를 열심이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저게 뭐?"
"실험 또 해보자구. 나 그때 웃겨 죽는줄 알았다."
싱글벙글거리는 윤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누구누구랑 연락이 없다고 지랄을 하더니 이젠 혼자 신났다.
이런 상황에 좀비들을 자극해봐야 좋을 게 하나 없겠지만 우리들 근처엔 좀비가 한 마리도 없었고,
아까의 실험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전할지 알고있던 나는 맘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자.. 1번투구 김윤호 갑니다."
윤호는 짐을 내려놓고,
돌멩이를 하나 집어든 뒤 퉁퉁한 몸으로 멋지게 와인드업을 하며 놈들에게 돌을 던졌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며 한 놈의 머리에 돌이 맞았다.
그 놈은 먹고있던 시체에 얼굴을 박았고, 뭔가를 느꼈는지 다른 한 놈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감지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있었다. 윤호는 키득거리면서 돌멩이를 하나 더 집으려고 몸을 숙였다.
"자 하나 더.."
땡그랑 땡땡
윤호가 돌을 집어들려는 순간 등에 지고 있던 야구배트가 땅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저 쪽에 있던 그 좀비 두 놈이 이쪽을 확 바라보았다.
"아.. 미친."
"야 빨리 가자. 나 더 피보기 싫어."
"쏘리 쏘리."
우리들은 좀비들이 멀리 있음에도 잔뜩 쫄아 짐을 추스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걷고 있는데 익숙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탁..
발걸음 소리? 아니 근데 너무 간격이 짧다. 이건 흡사 달리는..
유난히 감이 뛰어난 나는 이상한 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태완이를 밀고 윤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윤호가 짜증을 내며 내게 말했다.
"뭐야 임마! 왜 차!"
"빨리 뛰어 미친새꺄!"
"뭐?"
그제서야 윤호와 태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녀석들 역시 뭣빠지게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 뒤의 그 좀비들이, 우리에게 미친듯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다른 이야기
http://pann.nate.com/b315723228
http://pann.nate.com/b315737692
http://pann.nate.com/b315738286
http://pann.nate.com/b315775792
http://pann.nate.com/b315775938
http://pann.nate.com/b315783901
http://pann.nate.com/b315806213
http://pann.nate.com/b315825660
http://pann.nate.com/b315839806
http://pann.nate.com/b315840325
http://pann.nate.com/b315849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