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저의 글이 실시간 2위에 올랐어요ㅠㅠ 감사합니다ㅠㅠㅠ
베플에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에 대해서 요로코롬
왜 우범곤순경은 없어??????
라며 .... 물음표를 6개나 달아주신
33님분!
그리고 2탄에 나오겠죠 라며 ㅋㅋㅋㅋ깨알같이 남기신 20님분!을 위해
우범곤순경은 자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그리고 1탄에 조두순 사진이 아닌것 같다고 하신분들
많으신데 제가 잘못찾았나봐요 죄송합니다ㅠㅠ
1탄 댓글달아주신 박주현님 조두순 사건으로 정정했습니다^^
그럼 잡소리 집어치우고 2탄 GOGO!
우범곤 총기 난사사건
(우범곤 순경)
우범곤은 1955년 11월5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4남중 셋째 아들로 출생
어렸을적 경찰관인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며 나중에 자신도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라납니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후 우범곤은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두드러지고
학업에 흥미를 잃어 무단결석을 하게되고
고3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병사하면서
우범곤은 점차 성격이 삐뚤어져 유리창을 깨고
그파편으로 배를 긋는등의 자해를 하게 됩니다.
이후 우범곤은 해병대 군복무를 하였으며
특등사수로 뽐힐정도로 사격솜씨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경찰이된 우범곤은 초임지인 부산 남부경찰서 감만 2 파출소에서
근무할때부터 피의자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윽박지르는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습니다.
우범곤(27)은 서울 청와대에서 엘리트 경호원으로 근무하다가
성격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의 판단을 받고
인사 과정에서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하숙생활을 하다 이웃집에서 살던
전말순과 사귀게되 3월초부터 전양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하지만
여자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컴플렉스를 갖게 됩니다.
1982년 4월26일 낮 12시경 저녁 근무를 위해
잠을자고 있는 도중 동거녀 전말순(27)이 몸에 붙은
파리를 잡아주기위해 손바닥으로 우범곤의 가슴을 친 계기로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후 저녁 7시경
술에취에 집에 들어와 동거녀 전말순을 코피가 날정도로
주먹으로 내려쳤으며 동거녀의 친척언니가 뛰어와 말리자
친척언니마져 닥치는대로 두들겨 팼으며 이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나가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있던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8발 등을
탈취해 지서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1차범행◀
우범곤은 지서 앞 시장에서 수류탄 1발을 던진후
궁류 우체국에 일하던 집배원과 전화교환원 3명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킴
▶2차범행◀
수류탄 폭음 소리에 놀라 집박으로 달려나온
주민을 카빈총 난사
34명이 그자리에서 사망 마을뒷산으로 도주
▶3차범행◀
저녁 9시30분 의령군 압곡리
동거녀 전말순 집에 침입해 전말순외 4명의 가족을 현장에서 즉사
인기척소리가 나자 마당에 수류탄 1발을 던짐
▶4차범행◀
인근 평촌리 마을로 이동해
마을주민 서진규 박종덕 한명규씨를 총쏘아 살해후
총기난사를 멈춤
▶5차범행◀
1982년 4월27일 새벽 5시 30분 평촌리 농가에서
서인수씨 부인과 아들을 살해후 수류탄 2발을 터트려 자폭.
궁유면 4개마을을 돌며 8시간동안 56명을 사망(남20,여36명 살해)
34명 중경상중 6명이 더 사망해 총 62명 사망
희생자중 생후 1주일된 영아, 70세 넘은 할머니도 있었으며
당일 온천에 놀러가 자리를 비운 궁류지서장 등 4명 구속
내무부 장관 사임
당시 수사본부는 범인 우범곤의 수법이 너무 잔인하여
일반인 뇌조직과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기 위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을 보내 우범곤의
뇌세포를 검사하려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이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우범곤 사건이후 경찰에 적성검사가 생겨났다고 하네요^^;)
(마을 장례식사진)
반응 좋으면 3탄도 쓸게요~
그럼 저는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