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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포지션별 베스트(주관적!)

홍세완 |2012.06.25 20:25
조회 4,863 |추천 4

1루수(장성호)

 

이거야 뭐.. 장성호. 밖에 없을것같다. 09년 포텐이 대폭발한 최희섭에 밀려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장성호는 여전히 기아의 레전드.

1996년 해태에 입단하여 3년차였던 1998년, 첫 3할을 기록하며 9년 연속 3할의 스타트를 끊는다.

(2004년과 2005년은 .2996을 기록했으나 3할 인정. 허나 정확히는 3할이라 할 수 없다.) (2008년에도 3할 기록.)

매년 15~20홈런을 기록하는 파워를 겸비했던 KIA의 (한때)4번타자 장성호.

한화로 갔지만.. 현재 한화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힘내라!)

 

2루수(김종국)-2010년 은퇴

 

장성호와 마찬가지로 1996년 해태에 입단.

김종국은 통산 타율이 .247에 불과할정도로 타격에서는 별로 두각을 내민 타자는 아니었다.

(고교-2군 시절 타격왕..)

허나 그는 안정적인 수비(선수 말년에 가서는 수비가 흔들렸지만...)와 정상급의 발을 가진선수였다.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2002년에는 개인 최고인 .287의 타율과 50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타이틀도 획득하였다.

사실 김종국의 성적은 그다지 눈에 띄진 않지만, 기아에서 그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는 알만한 사람은 안다.

현재 기아의 코치로 있다.

 

3루수(김상현..?)

 

젠장! 막상 쓰려고보니 기아엔 참 3루수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현곤.. 이범호.. 김상현.. 정성훈.. 죄다 이적생이나 이적.(그나마 이현곤이 가장 오랬동안 3루 자리를 지켰으나..)

결국 가장 임팩트가 컸던 김상현을 선택했다.

2000년에 (역시) 해태에 입단. (이 당시 정성훈-정성훈은 이후에도 김상현의 앞길을 막는다-에 밀린데다가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못해 2군에 머무른다)

하지만 기아의 3루엔 정성훈이 있었고.. 김상현은 LG로 트레이드 된다.

김상현은 별 활약 없이 2004년 입대하게된다.(상무 입단)

그후로 김상현은 2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홈런-타점 1위) 배리본즈(2군의..)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다른 별명으로는 곤조가 있다. 1군만 오면 삽삽삽삽)

2007년 제대하여 LG의 엄청난 기대를 모았으나... 여기서도 그다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성훈마저 LG에 들어오고.. 결국 김상현은 KIA로 트레이된다(으잌ㅋㅋ)

김상현은 뭔가 악이 받쳤는지 2009년 .315 36홈런 127타점으로 대폭발한다. (한시즌 만루홈런 4방은 역대 타이 기록)

2010년엔 21홈런(최소경기 20홈런)을 때려냈으나, 2011년엔 부상으로 인해 14홈런에 그친다.

(김상현은 3루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옮겼으며, 사실 3루에서도 그리 수비가 좋진 않았다. 망할 기아 3루수...)

 

포수(김상훈)

 

사실 기아팬중 김상훈을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별로 없을것으로 추정)

김상훈하면 떠오르는게 물어깨 병타격 뭐 이정도인데.. 김상훈 전성기때는 이런말은 별로 없었던것으로 기억..

2000년 해태에 입단하였으며, 2001~2003년 연속으로 도루저지율 4할을 기록하며 강견을 뽐냈다.

(2003년은 .554의 도루저지율로 KBO 기록을 세웠다. 김경문의 6할대가 있으나 조범현과의 플래툰으로 규정타석 미달.) 2003년에는 .279(개인 최고)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7년까지도 쭉 기아의 안방을 지키다 2008년엔 부상으로 이탈(이때부터 김상훈의 물어깨화..)

2009년에 돌아와 기아의 우승을 이끌며(개인 성적은 그리 좋진 않았으나 12홈런)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다.

 

유격수(홍세완)-2010년 은퇴

 

기아엔 유격수 자원도 부족.. 홍세완도 베스트에는 약간 못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IA 유격수 베스트는 김선빈이 가져갈것이 확실시 되고 있으나, 일단 홍세완으로 정했다.

홍세완의 유격수 수비는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안전빵!)

하지만 홍세완은 유격수로는 갖추기 힘든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2001년 풀타임 출장하며 .293의 타율을 기록.(14홈런)

2002년에는 전년보다 떨어진 성적을 기록했으나.

커리어하이 시즌인 2003년, 홍세완은 .290 22홈런 100타점 이라는 성적을 내며 골든 글러브를 따낸다.

(KBO 유격수로는 최초,유일한 100타점-강정호가 깰듯하다.-)

하지만 2004년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출장 기회가 적어졌고,(2004년엔 .295를 기록.)

그후로는 대타로 전향한다(2006~). 홍세완은 결국 2010년 은퇴하면서 최연소 코치의 기록을 세운다.

 

외야수(이종범)-2012년 은퇴

 

특이하게 왼손잡이가 우투우타가 된 케이스.(리키 헨더슨??) 해태 시절은 빼고..

일본에서 삽삽 하다 결국 2001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종범. 2001년에는 45경기에만 출장하였다.

2002년, 18홈런 .293 35도루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종범.

2003년에는 20홈런 50도루 .315의 성적으로 도루왕에 올랐으며, 그당시로는 최고령 20-20을 기록한다.(양신이 갱신.)

2004년엔 17홈런 42도루를 기록했으나, 무려 .260의 타율을 기록해버렸다.

허나 2005년에는 .312로 다시 타격페이스를 찾았다. (28도루로 노쇠화 징조)

2006년, WBC에서 명장면 하나를 연출하신 종범갑은 개인 최저 타율을 기록하고 연봉이 대폭 삭감크리!

2007년에도 삽질을 하며 은퇴설까지 나돌았으나... 2008년 .284로 부활하였다.

2009년에도 준수한 성적을 냈으며, 2010~11시즌에도 대타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2012시즌 시범경기에서 .333의 타율을 마크중이었으나, 프런트의 장난으로 갑작스러운 은퇴..

한일 통산 200홈런-500도루-2000안타 등을 기록하였다.

 

외야수(이용규)

 

이용규 역시 LG의 트레이드로 KIA에 왔다.(일부는 이순철의 신의 한수라고 부르기도...)

2004년까지 별 활약을 해주지 못하다가, 2005년 기아로 트레이드 되어 31도루를 기록한다.

2006년에는 .317의 타율과 154안타, 38도루(개인 최다)로 최다안타상을 수상한다.

허나 2007년, 이용규의 약점인 몸쪽공으로 유린당하면서, 홀수해 징크스의 막을 연다.

2008년에는 .311을 기록하며 다시 3할을 찍어낸다.

2009년에는 부상으로 인해(홀수해) 50경기에 출전하지만,

2010년 .307의 타율로 기아의 타선을 이끈다.(2010년 아)

2011년, .333(개인 최고)의 타율로 타격 4위에 오르며 드디어 홀수해 징크스를 깨게된다.

 

외야수 한명은 김원섭.. 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럼 수고하시길

 

지극히 주관적인 글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태클은... 가급적이면 하지말아주세요

 

 

 

 

 

 

 

 

 

 

추천수4
반대수17
베플해태|2012.06.26 10:40
포수 장채근 1루수 김성한2루수 홍현우3루수 한대화지명타자 김봉연유격수 이종범외야수 김일권 외야수 이순철외야수 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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