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안로맨틱한 대학교 연극동아리 적응기
안녕하세요. 판을 즐겨보는 20대 흔녀입니다.
매번 눈팅만 하다가 저의 캠퍼스 라이프의 무수한 날들을 바친 우리 연극 동아리를 소개하기 위해서
마우스가 아니라 키보드를 잡아 보았습니다ㅋㅋ
그럼, 네이트 판의 공용어인 음슴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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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아무튼 비슷한 말 한 100개 갖다 붙여도 모자른 흔녀 글쓴이가
우연히 고딩 때 ‘날 보러 와요’ 라는 연극을 보고 컬쳐쇼크를 받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됨.
그 쇼크가 너무 강력했기에 글쓴이, 상경해서 대학교에 가자마자 연극부에 지원함.
같이 간 친구같은 거 업씀... ㅋ
혼자 문 두들기고 들어가서 저 연극부 하고 싶슴당 하고 오디션 봄ㅋ
지금 생각하면 무슨 똥배짱으로 혼자 기어 들어갔는지 모르게씀.
사실 로망이 좀 컸음...... 그래서 용기 냈던 것 같음.
커피 프린스에 나올 법한 훈훈한 선배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열정의 무대, 아름다운 의상과 분장, 조명, 무대 위에서 받는 갈채....
![]()
ㅋ.....
그런 거 없음.
그냥 헬게이트임.
글쓴이는 내 손으로 헬게이트를 열고 들어갔던 거임.
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음.
님들,
연극부에서 제일 인기 있는 부원이 어떤 부원일 것 같음?
연기 잘 하는 부원?
성격 좋은 부원?
목소리 짱인 부원?
것도 아님, 보다 일반적으로,
몽타주가 그럴 듯한 부원?
다 틀렸음.
연극부에서 제일 인기 있는 부원은 힘 센 부원임.
힘.
힘.
힘.
힘.
바로 힘.
연영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대학교 아마추어 연극부에서는 무대 연출 조명 의상 음향 우리가 다 함.
한 쪽에서 연기 연습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전기톱 돌리고,
저 쪽에서는 의상 박스 어깨에 하나씩 두 개 나르고
이쪽에서는 철봉에 매달려 조명 달고 있음.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한테 점수를 매김.
넌 1인분.
넌 0.5인분.
넌 0.2인분.... 야, 알짱거리지 말고 나가서 커피나 타와라.
대략 이런 분위기임...
그럼 분위기도 대략 설명했으니, 이제 연극부에서의 소소한 적응기를 풀어 보겠음.
1.
글쓴이가 1학년 신입이던 때였음. 그 때 연극부에서 올린 정기 공연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었음.
워낙 대작인 만큼 무대도 웅장했음.
대학교 극장 무대 앞에 나무로 된 단을 2개 덧대서 너비를 넓힘. 무도회장이랑 줄리엣의 발코니도 만듦.
계단, 벽도 있던 거 삐걱거린다고 안 쓰고 목재랑 판 주문해서 다 새로 만들었음.
여름방학 내내 낮에는 연습하고 밤에는 무대 만듦. 전기톱을 너무 돌리니까 나중에는 톱날이랑 손잡이에서 열남. 그럴 때면 내가 들어온 게 연극 동아리인지 토목 동아리인지 정체성이 혼미해짐....
그렇게 여름방학 내내 땀 흘려 무대는 완성됨. 나름 뿌듯했음.
개강 후 2주 뒤로 공연 날짜도 잡힘.
그리고 개강함.
근데 님들 그거 앎?
보통 대학교 강당은
교양과목 강의실로 쓰임.
1학년 교양과목 수강생 엄청 많음.
그래서 교수님이 강당에서 마이크로 수업하심.
그런데 우리가 거기다가 무대를 만들어 놓은 거심.
일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안 보이는데 저기 담쟁이덩굴 뒤로 보이는 게 줄리엣의 발코니임.
그 뒤로 무대 좀 더 있음.
교수님 경악.
![]()
강의해야 하니까 무대 다 치우라고 하심.
헐.......
교수님 바짓가랑이 붙들고 눈물로 호소함.
저거 여름방학 내내 만든 거라고, 한 번만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앞으로 동아리 활동은 쪼금만 하고 공부 빡세게 해서 졸업하면 이 학교를 위해 헌신하는 바람직한 동문이 될 거라고 울고불고 매달림.
학생의 눈물에 마음 약해지신 교수님,
됐으니까 강의하게 마이크만 달아 놓으라고 하심.
.......![]()
그렇게 교수님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는 무도회장 가운데에서 마이크 잡고 수업하심. 2주 동안.
그리고 글쓴이는 그 수업을 들었음....
그 수업은 한국사 강의였음.
한국사 강의...
무대는 이탈리아...
강의 내내 애들이 수업은 안 듣고 글쓴이한테 저거 니가 만든 거야? 저거 어케 만든 거야? 물어봄.
쉬는 시간에는 무대에 올라가서 애들이 셀카 찍음.
지금 생각하면 교수님 진심 짜증났을 거 같음.
교수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공연은 대박 났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
글쓴이가 무대감독 겸 배우로 참여했던 공연이었음.
공연 제목은 ‘청춘 정담’, 대학로에서도 꽤 알려진 공연임.
제목 딱 들으면 알겠지만 청춘 남녀의 꽁냥꽁냥 눈물 펑펑 이별과 사랑 이야기임.
연극에 4커플이 나오는데 그 중 5년 사귀고 헤어지는 커플이 메인 캐릭임.
메인 캐릭 플롯에서 중간에 남주가 바람피워서 헤어지자니까 여주가 울면서 매달리는 장면이 있음.
여주가 대략 이런 대사를 함,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해부터, 사랑하지 않아? 그래? 모르지? 병신... 넌 평생 모를 거야. 평생 그 따위로 살아 게세끼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이런 대사를 치면서 여주 퇴장함.
근데 연습하면서 여주 후배가 계속 실수를 하는 거임.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해부터, 사랑하지 않아? 그래? 모르지? 게세끼... 넌 평생 모를 거야. 평생 그 따위로 살아 병신아!"
![]()
........?
???????????
님들 뭐가 틀린 건지 모르겠음?
충분히 그럴 수 있음.
게세끼와 병신의 위치가 바뀌었음.
대본 : .... 그래? 모르지? 병신... 넌 평생 모를 거야. 평생 그 따위로 살아 게세끼야!
연기 : .... 그래? 모르지? 게세끼... 넌 평생 모를 거야. 평생 그 따위로 살아 병신아!
ㅋ.....
뭐 이따위 거 신경 쓰냐고 그럴 수도 있음.
그치만 우리, 나름대로 소신 있는 연극부임.
대본의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작가의 무수한 고민이 배어 있다고 믿고 있음. 작가가 쓴 대사가 납득이 안 되면 납득 될 때까지 대본 팜. 타당한 이유 없으면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연기함.
여주 후배의 그 실수는 타당한 이유가 아니었음. 적어도 연출님이 보기에는 그랬음.
그래서 연출님, 여주한테 똑바로 하라고 함.
근데 여주 후배는 계속 실수함.
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가겠습니다.
몇 번 반복하다보니 연출님 완전 열 받음.
여주 후배도 완전 쫀 거 눈에 보였음.
극장은 완전 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고 연출님, 완전 목소리 깔고,
다시 한 번 가겠습니다, 라고 함.
여주 후배 진심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무대에 오름.
그리고 혼신을 다해 연기함.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해부터, 사랑하지 않아? 그래? 모르지? 개(아차)병신아...
........![]()
ㅋ...
ㅋㅋ....
ㅋㅋㅋㅋㅋㅋ....
겁나 웃긴데 연출님 무서워서 웃을 수도 없었음.
덕분에 남주는 사랑도 모르고 바람 핀 개병신 됨.
3.
아까 말한 청춘정담 연습하던 때였음.
보통 대본 연습 들어가기 전 1~2주 정도는 자유 연기 연습을 하면서 몸을 풂.
어디서 들은 건데 연영과 연기 전공하는 애들도 자유 연기랑 즉흥극, 모놀로그 같은 거 많이 한다고 함. 뭐, 글쓴이는 연영과의 연자 근처에도 안 가본 아마추어라 정확하지는 않음. 말 그대로 ‘어디서 들은 거’임.
아무튼 이 때가 제일 재밌는 시기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연기욕구와 창의성이 쑥쑥 자라서 막 열매를 맺는 것 같음. 물론 대본 들어가면 연기욕구와 창의성은 애니웨어노웨어 사라지고 굳은 혀와 오그라든 손과 발만 남음.
어쨌거나 각설하고 자유연기 연습하던 그 날, 연출님이 재미있는 과제를 주심.
배우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서 각자 그림을 그림.
그리고 그림을 바꾸어서 상대팀이 그린 그림을 토대로 자유연기를 하는 거임.
글쓴이랑, 아까 말한 여주 후배랑 한 팀.
사랑도 모르는 개병신 남자 배우랑 다른 여자 후배랑 한 팀이 됨.
글쓴이랑 여주 후배는 나름대로 상대팀을 진심 배려함.
연기하기 편하라고 최대한 노멀한 그림으로 그려줌.
평화로운 집에서 사는 두 부부를 그리는 거야. 예쁜 집에 창문도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나무랑 화분도 많이 있고... 두 부부의 아름다운 하루를 연기하게.
이 정도면 연기하기 쉽겠지?
그려놓고 우리 진짜 착하다고 우리끼리 자찬함.
시간 다 돼서 우리 그림을 주었음. 그리고 상대팀 그림을 받음.
![]()
그림을 받았는데...
?????????
와...
내가 뭘 잘못했지 쟤네한테?????
우리가 받은 그림은 이거였음.
거짓말 아니라 진짜 이렇게 그려서 줌.
님들 이거 뭔 것 같음?????
글쓴이 : 야.. 이거 뭔 거 같냐?
여주후배 : ...글쎄요...
글쓴이 : 이거 둥글둥글한 거 뭐지?
여주후배 : 지구같은데요...
글쓴이 : 너도 그렇게 보여?
여주후배 : 네..
글쓴이 : 그럼 이건 태양인가?
여주후배 : 그런 것 같은데요...
글쓴이 : 아나 진짜 이것들이 태양으로 처 맞고 싶나. 그림이 뭐 이따구야.
그러다가 시간 다 됨. 연출님이 가위바위보해서 진 팀부터 무대에 올라가라고 함.
우리가 졌음.
무대 올라가면서 울고 싶었음.
나랑 여주 후배는,
아마겟돈을 연기함.
슈웅 펑(입으로 소리냄)
선배님! 선배님! 지구에 행성이...!!!
안 돼! 너만이라도 살아!
안돼요, 선배님!
아니야. 살아나아서 공연을 끝까지 올려..
으헝헝헝허헣허허허허헝헝헝... 선배님....ㅠㅠ
무대를... 부탁해...
슈웅 펑(역시 입으로 소리냄)
미궁 수준이 아니라 블랙홀로 빠져들었음.
객석에서 그 그림 그린 놈들은 배 찢어지게 웃고 있는데,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음.
걔네 무대 올라갈 때
니네 어떻게 하나 보자, 이 심정이었음.
그리고 걔네들은,
작은 집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연기했음...
남자는 사실 초능력자였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꾀어내 화분을 장풍으로 날려 잔혹하게 살해한다. 여자의 시체를 끌고 들어간 집에서는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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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이러는 거임.
아진짜 그림이 뭐 이따구야.
아무튼 연기든 뭐든, 소통이 중요함을 느낌.
연극부의 소소한 일화는 여기까지임.
소소한 웃음도 웃음이라고 들었음.
뭔 놈의 글이 이렇게 길어.
턱 괴고 휠 내린 분 추천! 하면 가슴 아프다오...
선플 달아주면 착한 사람~~~~~
그럼,
화요일도 웃으며 보내는 하루 되길 바람.
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