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글귀와 이모티콘이 안 어울리죠?
ㅎㅎ
장기화 된 경기침체로 인한 청년실업이 40만을 육박하는 이 시대에..쿨럭..ㅡ_ㅡ;;
저 역시 정말 죽을만큼 힘이 듭니다.
이제 대학 졸업인데..한 가지 길만을 바라보고 있던 터라 겁이 많이 납니다.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 무지무지 좋은 것도 아니고, 집이 부자라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이 시대 청년들을 나타내는 표본이라 할 수 있죠.
얼마전에는 넋 놓고 있다가, 전공선택이 기본이수과목에 포함이 되어버려 전공필수가 아니더라도 그 과목을 듣지 않으면 졸업이 안된다는 ㅡ_ㅡ;; 기가 막힌 말을 듣게 되었지요.
아니, 어떻게 전공선택 한 과목을 안들었다고 졸업을 안시켜주는 겁니까.
말 그대로 선택!! 과목인데. (으윽..고전문학사
)
조교선생님이 말씀해 주신것도 아니고, 학교 측에서도 2001년에 과사무실에 공문 한장 달랑 보내놓고, 2004년에 졸업하는 애들한테 단 한 번의 확인 절차도 없이..
제가 찾아가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었을 때야 (저 졸업예비사정 3번 했습니다)
'어, 혹시..고전문학사 안들으셨어요?'라며 졸업이 안된다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약 3일간 엄청나게 울었답니다 ![]()
항간에는 졸업을 늦추기 위해 일부러 교수님께 F학점을 받는 학생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졸업이 안되면 교사자격증도 안나올테고(사범대 학생이거든요), 그럼 임용시험 본 것도 무효가 되는 거고..
일년간 내내 취업 재수생 내지는 백수 ㅡ_ㅡ;;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긴데,
그럼 휴학하고 다시 등록해야 하고,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고..
제일 먼저 부모님 생각이 나더군요. 죄송해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엄마 아빠, 칠칠맞아서 제 학점 관리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졸업 못합니다. 휴학해야 합니다. 단 한 과목 때문에.. ㅜ_ㅜ
계절학기는 설강시기가 지나서 설강하지도 못하고,
그 공문을 보냈던 학사관리과 아저씨는 다른 것으로 전근을 가버리는 바람에 책임을 질 수 없다 하고,
2001년에 그 공문을 받은 예전 조교 선생님은 말로만 자기가 다 책임진다 하고,
지금의 조교 선생님은 공문은 보지도 못했고, 아무 소리도 못들었으니 자기 책임이 아니다 하고,
전 분명히 학교측에 고전문학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거냐며, 지난 3년간 10번도 더 물었는데..
그런데 왜 그 책임을 제가 다 져야 하는 건지..![]()
졸업식에 오시겠다는 부모님..
학사모 쓴 딸 얼굴 보시겠다고 열일 마다하고 달려오시겠다는 부모님께 어찌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지난 4년간 힘들여서 등록금 내주신 부모님께..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건지..![]()
정말 힘들더군요.
별별 생각이 다 났는데, 그 때 문득 어린 시절..죽을 뻔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여섯 살쯤 되던 해였던가요..
어린 시절 기차길 옆의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건널목이 없는 곳이라 그런지 유독 기차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일년에 꼭 서 너명씩 사망사건이 있어서 곡성 소리가 늘 끊이지 않았죠.
아파트와 예식장 사이에 기차길이 있는 그런 구조였는데, 솔직히 건널목까지 빙 둘러가면 3-4km 정도, 기차길을 가로질러가면 200m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아, 누구나 가로질러 다니는 그런 곳이었지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친절한 예식장 직원 언니 덕분에
생면부지인 남의 결혼식이나, 예식장에 딸린 미술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릴 수 있었구요.
그날도 어김없이 예식장에 놀러가려고 집을 나온 저는,
기차길 앞에서 망설이다가 가로질러 건너는 쪽을 택했습니다.
호..왜 있잖습니까. 삼류 통속 소설에 나오는..
신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러 가다가, 웨딩드레스 자락이 기차 길에 걸려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전 드레스 자락이 아니라 샌들 끈이 걸렸지요.
조그만 아이의 발이라 레일 틈새에 끼이고, 나사에 샌들 끈이 걸리고..
아무리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저 멀리서 빠앙~하고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오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겁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난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기차는 점점 다가오고, 기관사 아저씨가 절 발견한건지 빵빵 거리는 경적 소리는 계속해서 울리고..
그 순간 누가 저를 확 덮치더니, 발목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후..기차는 그대로 지나갔고, 길 저쪽편에 누워있는 제가 느껴졌습니다.
살았구나 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되자 끊임 없이 눈물이 나더군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발목의 통증 때문에 밑을 내려다보았고, 샌들이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훗.. 그 나이에 신발 잃어버린 것을 어찌 엄마한테 말할까 두려워 더 크게 울었죠..
새로 산지 이틀 밖에 안 된 신발이었거든요![]()
절 구해준 분은 그 동안 계속 절 끌어안고 있었고.. 집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걷지 못하는 저를 들쳐 업고, 전 계속 신발 잃어버린 것이 두려워 울었고..
그 분은 업고 가는 내내 우는 저를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계속 달래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에 도착하여 엄마는 제 꼴을 보시고는 놀라셔서 다급히 어찌된 일이냐 물으셨고,
그 분은 차근히 설명을 해주셨다 합니다.
지나가는데 왠 아이가 기차길에서 끙끙대는 것을 보았고, 저 멀리 기차가 오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었다고..
저는 그 와중에도 엄마가 신발 잃어버린 것을 알아차릴까봐 그게 무서워서 울고 있었답니다![]()
엄마도 놀라셨는지 절 끌어안고 계속해서 우셨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분은 사라진 뒤였다는군요.
17살쯤 되는 여학생이었다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하셨다고..지금도 늘 그 소리를 하신답니다.
죄송해서 어쩌냐고.. 생명의 은인인데.. 인사 한마디 못 해드렸다고..
나중에 신발 잃어버린 게 무서워서 그 언니 이름도 못 물어봤다고 하자 엄마께서 어찌나 웃으시던지..
후..![]()
그 때 일이 지금의 제 상황과 너무 비슷하더라구요.
제발 국어교육과에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때가 엊그제 같은데..
막상 들어오자 졸업이 일년 늦어진다는 사소한 문제로 걱정하고 있는 제 모습이 말입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대며 임기응변으로 숨기기에만 급급한 모습까지두요.
죽을 고비도 그렇게 넘겼는데..
정말 힘들게 원하던 과에 왔는데..
이 일을 떠올리자 지금의 상황이 서서히 정리가 되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께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졸업식 전에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일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현 상황에서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날 밤.. 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은회에 뒤늦게 참석하였고,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제 맞은 편에 앉아계시던 교수님의 눈에는 제 얼굴이 어둡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이유를 물으시자 웃음으로 더 이상 무마할 수가 없었고, 솔직히 말씀드리니 노발대발하시더군요.
그런 문제를 너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어쩌냐.. 조교는 뭐하는 거냐..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학과장님께 긴급히 그 문제가 말씀드려졌고 다음 날, 계절학기 "특별" 설강이라는, 사상 유래가 없는 엄청난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지요
아..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더군요.
누군가는 제게 도움을 주기 마련이고, 저 역시 남에게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제 친구는 운이 억세게 좋다 ㅡ_ㅡ;; 고 했지만 전 제가 특별히 운이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참고 기다리면, 죽을만큼 힘든 고비는 언젠가 지나기 마련입니다.
단지 그 순간을 참지 못할 뿐인 것이죠.
지금 우리가 취업 문제로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지금의 이 모습을 추억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제가 죽을 뻔 했던 일을 추억하는 것처럼요.
20대 여러분. 우리 힘냅시다.
죽을만큼 힘들어도, 그것이 죽으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모두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