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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 : 내가 책을 모으는 이유

민진 |2012.07.04 19:17
조회 19 |추천 0

 

 

책을 꽤 많이 사 모으고 있다. 한 권 한 권 읽은 책을 책꽂이 꽂아두는 게 마치 흥부가 쌀을 축적하듯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수집은 아닌 것 같고, 읽은 후에 내가 흡수한 이 책의 자양분을 만져보는 느낌이 날 기분 좋게 한다. 빌려서 본 책은 왠지 정이 덜 가고, 기억에서 쉽게 사라진다. 내 것이 아닌 공간에서 텐트치고 야영하는 기분이랄까. 진정 내 집이라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없다. 책꽂이 앞에서 서서 내가 마음을 주었던 책들을 펼쳐보며 기억을 되새기는 기분이 무척 근사하다. 우선 책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물성이 맘에 든다. 책이 주는 냄새, 감촉, 기억들과 소리까지 마치 새로 산 흰 운동화를 만지듯 기분이 좋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도중에 내 영역표시를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다. 밑줄과 메모, 필요할 땐 잘 접어두는 등 열심히 흔적을 남긴다. 다시 찾았을 때 완전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제든 인상적인 구절을 후루룩 펼쳐 이곳에 꽂혀있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한다. 내 곁을 떠나간 일회용 책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고귀한 기회인 것이다.

 

 

가끔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난 책을 빌려준다. 책만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부담이 없는데다가 독서를 아주 싫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책만큼 좋은 대화주제는 있을 수 없다. 며칠이라는 시간동안 같은 생각을 해왔다는 것은 실제보다 꽤 큰 친밀감을 준다. 마치 같은 팀으로 축구경기를 뛴 듯 일종이 기분 좋은 동질감을 공유 가능하다. 어쩐지 책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위 자체가 그와의 관계까지 한층 격을 높여주는 것 같은 느낌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책을 보유하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역시 아니다. 나 같은 혼자 사는 총각들은 책을 모으면 모을수록 그 공간과 무게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거처를 옮기기라도 할라치면 이 책은 그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짐이 되는 것이다. 일정부분이나마 울며 겨자 먹듯 근처 도서관에 기부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난 가끔 책을 정리하여 인터넷에서 교환을 하기도 한다. 애착이 가는 책은 꽂아두고, 내 맘을 떠난 책들과 이별하는 것이다. 때론 슬프지만 어쩐지 그것이 이 책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부유한 축구구단이 대승적 차원에서 선소를 헐값에 놓아주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제품이 전자책 이북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북이라면 보관도 쉬운데다가,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게다가 불룩한 가방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 스타일도 살고, 언제 어디서든 구입이 가능하니 실속파들에게는 좋은 신문물일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이북 몇 권을 실제 판매가보다 싼 값으로 사서 읽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책이라는 존재가 내 손에서 만져지지 않자, 그 훌륭한 텍스트들도 내 가슴속에서 빗나가기 일쑤였다. 책의 물성이 사라지자 마치 LP판으로 음악을 즐겨듣던 세대가 보관이 간편한 CD를 멀리하듯 난 이북이 주는 깔끔함이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CD가 사라지고 MP3를 통해 음악을 공짜로 공유할 수 있게 되자 음악이라는 창작의 산물을 껌처럼 무시하던 인간의 심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내가 수고나 지출을 아끼지 않고 깊이 사랑해주는 만큼 반드시 그 보답이 돌아온다고 말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느 짧은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시대와 문물의 발전이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출판사 솔에서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라는 이름으로 발간한 원제 The Man Who Loved Books Too Much의 저자 앨리슨 후버 바틀릿은 책을 좋아하여 책에 미친 사람들과 책 수집과 절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파고든다. 뉴욕타임즈에 기고중인 기자 앨리슨은 우연히 접한 17세기 고서 한 권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희귀고서에 대한 세계에 절도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다. 절도 사례를 살펴보던 그녀는 기자답게 결국 근래 가장 악명 높은 책 도둑 존 길키의 존재를 파악한다. 그러던 와중에 길키를 잡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탐정이 된 서적상 켄 샌더스의 이야기에 특별히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책을 사랑해서 도둑질을 하는 남자와 그를 쫓는 남자 역시 책을 사 모으는 서적상이라니 어쩐지 이 책의 전쟁이 그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감탄하고 만 것은 내가 책을 사 모으는 재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책에 미친 남자들의 심리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차례 그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도둑의 절도 과정과 탐정의 추격을 긴장감과 통찰과 유머를 한권의 소설로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희귀도서 판매상, 도서관 사서, 수집가 들을 만나고 수집과 절도의 역사를 다룬 책을 탐독하면서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책 사이를 잇는 밀도 높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책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문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기록하여 많은 독서애호가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람의 책에 대한 집착은 범죄로까지 이어질 만큼 큰 힘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수십 시간을 몰두하여 마음을 내어준 텍스트와 그것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상. 그리고 현실적으로 밟아볼 수 없는 세상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두보이자, 영원히 내 곁에 두고픈 수집가의 탐욕일 것이다. 21세기 첨단 기술은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지만, 괴테의 초판본이나 나보코프의 헌사와 나비 그림이 있는 '롤리타'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특별한 개인사가 담긴 책이나 출판의 역사에 기록될 희귀 작품을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은 시대가 바뀌어도 꺾이지 않는다. 나 같이 책을 모으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난 6월 23일 코엑스에서 열렸던 서울 국제도서전에 몰린 인파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싼 가격에 판매하는 각양 각국의 책들을 무지막지하게 구입하는 청년들과 나이 드신 독서 애호가들의 발길은 내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21세기 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어쩌지 이 지치고, 우울한 일만 가득한 세상에 사무실 책상에서 커피 한 잔 뽑아놓고 미스터리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보다 고귀한 느낌은 없다. 이래저래 난 책에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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