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도 여기에 구구절절 신세한탄하려 글을 올려봅니다. 글이 깁니다. 저의 우여곡절을 담은 인생 자서전의 축소판이라.. 이 글 읽기전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23살인 휴학생입니다.(여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가 2살일 때 친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친아버지가 일식집에서 조리사로 일하셨는데 저를 업어서 며칠 키웠다고 하시더이다...(과연.....)
그러다 저는 입양이 되었고 어릴 적에는 제 부모님이라고 생각됬던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살았습니다.
...씻을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충격을 받았죠...제가 5살 때 양아버지가 저 보는 앞에서 양어머니를 목에다 커다란 식칼을 들고 방문턱에서 양어머니를 누르고 죽이려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양어머니는 '애가 보잖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면서 울부짖더라구요.... 그 때는 그냥 공포 이런 것도 잘 몰랐었던 것 같고.. 그냥 울었습니다. 상황이 너무....독특(?)해서..
다행히 제 눈 앞에서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살 때...집에서 수십번을 보던 백설공주 비디오를 양어머니께서 틀어주시곤 ..'엄마 장 보고 올게
냉장고에서 사과 꺼내먹어 '라고 하시며 종종 같이 시장에 장보러 갔던 저를 두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8시가 되어도 해가 져도 사과를 한개를 다먹었는데도... 백설공주는 이미 끝났는데도..
양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양아버지와 함께 저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주차를 하시더니...양아버지가 엉엉 우시면서... '양지야 ..너 죽음이 뭔지 아니?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안돌아올거야 이제'라고 하시는데..저는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그냥 그 땐 아버지가 울기에 따라 울었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1주일 정도 뒤에 양아버지는 갑자기 저의 삼촌을 만나러 가자고 합니다. 별생각없이 따라나섰습니다.
차 뒷자석에 앉아있었는데 차가 멈추더니 어떤 남자분이 타셨습니다. 저의 삼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양아버지가 '양지야 3일동안만 삼촌이랑 지내'라고 하시더이다..
무척이나 뻘쭘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촌이라는 사람의 손을 잡고 그 당시 여인숙?여관? 같은 곳에서 잠을 자는데...갑자기 삼촌이라는 분이...'XX야 내가 사실 너의 친아빠란다..(저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척이나 뻘쭘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양아버지가 저의 입양을 포기하셨던 모양이더라구요...그게 가능한지나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아버지라고 판명이 난 사람과 함께 일주일을 지냅니다. 손을 잡고 여러 친척집을 방문합니다.
저는 다 들었습니다.
'얘 좀 맡아줘요~'
'아 됬어~데리고 나가 우리도 살기 힘든데 애를 어떻게 키워~!'
라는 식의 대화를 몇번이나... 거실에서 ,,저는 들었습니다.
하지만...살기 힘들다는 친척집들의 집은 벽 한쪽을 비싼 장식품들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다 한 분이 절 맡아주겠다 하셨나봅니다. 저의 고모랍디다..
고모는 사정이 안좋으셨습니다. 약간 시골같은 허름한 곳에서 1년간 생활을 합니다.
고모는 저를 싫어하셨습니다. 저를 때리고 욕을하고...오히려 고모부께서 저를 보듬어주셨죠..
하루는 고모와 둘이 같이 저녁에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는데...
고모가 '야 난 너 키우기 싫으니까 꺼져버려'하면서 절 놔두고 가더군요..
집까지 어린 애가 가기에 먼 길을 혼자 걸어갔습니다...
그러다..친아버지가 등장했습니다. 결국 고모는 저를 내치신 모양입니다.
다시 친아버지는 그렇게 되자마자, 이번엔 아는 동생 집에서 1주일 동안만 지내라고 합니다.
이젠 어느 정도 뻘쭘함도 숨기는 게 능숙해졌고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것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아는 동생들이 우글우글 남자들만 사는 허름한 방에 제 짐들이 놓여집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제가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땐 임꺽정이 TV에서 방영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1주일이 훨씬 넘게 지났으나 친아버지는 오지 않습니다.
연락 한 통 없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1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안와서 아는 동생분이 연락을 해보니..
'난 내 손으로는 고아원에 못 맡기겠다..그러니 네가 고아원에 애를 데려가렴'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그 아는 동생분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하는 마음에 저를 도맡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저는 또 다른 친척 집에 와있습니다. 그 가운데 과정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큰어머니 큰아버지라고 합니다. 그 집엔 돌을 지내기 전의 여자아이와 저와 2살 차이나는 쌍둥이 사촌언니 2명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전원주택이었습니다.
큰어머니는 저를 학대했습니다. 불을 끈 깜깜한 방에 가둬놓고 제가 문을 긁으며 무섭다고 울면서 열어달라고 제가 다 잘못했다고 사정하자 한시간 동안 저를 내비두다가 들어와서는 빗자루로 저를 마구 내리쳤습니다. 그 힘이 어찌나 쎘던지.. 저를 겨냥한 휘둘림이 절 빗겨가서 문고리에 맞았는데 동그란 문고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또 한번은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멀뚱멀뚱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 때문에 켜져있거나 그런게 아니라 큰어머니가 보시는 컬 저는 그냥 잠이 오지 않아 눈요기를 했을 뿐입니다.
큰어머니는 저에게 자라고 엄포를 놓으십니다. 저는 잠이 오지 않아요 라고 대답합니다.그랬더니
'그래..그럼 너 매일 새벽 4시까지 자지마 자면 맞을 줄 알아'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일주일간 정말...재우지 않습니다.,,시계가 4시를 가르키면 그제서야 이젠 자도 돼...
일주일이 지났을 때...제가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합니다. 그러니 화장실로 절 따라오더니
'이젠 앞으로 일찍 자,안그럼 또 못자게 할거야!라고 하십니다.
또 ,,제가 책을 좋아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소리를 잘 못들었었는데...한번은 거실에서 엎드려서 탈무드를 읽고 있는데 쌍둥이 사촌언니들이 오더니 저에게 막 ㅆ,욕울 하며 야 XX년아 너 때문에 싸우잖아 니가 가서 빨리 말려 X년아~!'
저는 책을 읽느라 그 소리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냥 책만 읽고 있었죠..
친아버지한테 졸라졸라서 세계 위인 전집40권을 택배로 받았습니다. 큰어머니가 사촌언니들과 저를 한자리 부르더니 언니들을 향해 " 쌍둥이들, 얘 책 한 권도 못 읽게해.. '
나에겐..' 야 너 몰래라도 읽다가 걸리면 맞을 줄 알아!'
며칠간 기회를 엿보다 창고에 들어가서 파스퇴르 딱 한권을 두려움에 떨면서 2장만 읽고나왔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한겨울에 겨울신발이 없어서 여름 샌들 신고다니고, 언니들이 입고 버릴 옷 저에게 줘서 바지엔 구멍이 뚫려있고. 제 방 , 제 자리도 없어서 가구 수납장 조그만 한칸이 제 자리의 전부였고,
저 있는 자리에서 친아버지에게 전화해 돈 내놓으라고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고. 전화로 호통하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사촌동생은 저에게 맡기고... ( 유모차 태우고 같이 나가면 큰어머니 없으면 안우는데 제가 안보이면 사촌동생이 울정도..)
한 여름에 저는 혼자 남겨놓고 가족들이 다 나가면서 하는 말..
'야 우리 니 아빠가 보내준 돈으로 맛있는거 먹으러 갈거야 넌 혼자 집이나 지켜!'
등 등...너무 많습니다.
하루는 맨날 가던 학교 등교길을 갑자기 잊어버려서 1시간이나 넘게 헤메다가 지각한 적 있습니다. 참고로 학교 가는데 걸리던 시간은 10분도 채 안됬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과도하게 받아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걸린 거였다고 하더라구요..
쉽게 말해 단기 기억 상실증..
저에게 인생의 전환기가 옵니다. 저를 잠깐 맡아서 키워주시던 그 친아버지의 '아는 동생'분이 제가 잘 자라고 있나 확인하러 1년 뒤에 절 찾아왔다가 제가 행색이 거지꼴을 하고있으니까 절 다시 데러가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에게는 선생님이 탄생합니다. 저의 인생의 멘토이자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선생님은 저의 애정결핍과 수십가지의 정신적 결핍을 고쳐주려 아동심리학을 공부하십니다.
원래 철학과 영어와 심리학에 능통하시긴 합니다.
어릴 적 많이도 혼나고 회초리도 많이 맞으며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 수록 성적이 top class로 진입하게 됩니다. 전교권을 맴돌며 저는 이제 친구 부모님들에게 온갖 이쁨을 받았고 학우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제 부족한 것들을 잊고 지내며 자신감에 짧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행복하다 했더라도 그 와중에 아버지는 계속 사고를 쳤지만...그 정도 쯤이야..행복하다고 저의 인생에서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
선생님은 저의 아버지를 개과천선 시켜 제가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투자를 합니다. 일식집만 여러개... 차례차례 아버지가 다 말아먹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시험을 봐서 합격하면 입학을 할 수 있는 학교로 그 중에서도 외국어와 언어는 전교 2등과 전교 9등을 하며 특별반으로 입학을 합니다.
하지만..점점 머리가 커 갈수록 현실은 다가오고.. 계속되는 아버지의 망나니 짓에
가세는 점점 기울어 가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 선생님은 점점 강인한 정신력을 잃어가십니다.
그 와중에 학교에선 담임이라는 선생님이 반 친구들 다 있는 앞에서 저한테 돈내놓으라고 왜 너만 안내냐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냅니다. ( 사전에 저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정이 어려워서 그냥 그 행사에 참여를 않하고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겠다고.. 담임 선생님 왈..'사정은 알겠지만 공동체 생활이라 너도 참여해야 한다. 대신 편의를 봐줄터이니 며칠 여유를 갖고 천천히 내도록해라'
친구들과 재밌게 수다를 떠다가... 위의 대화가 오간지가 어제인데..저렇게 수치심을 주는 담임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서 교실을 박차고 나갑니다. 친구인 반장을 시켜서 저를 교무실로 부릅니다.
제가 존경하는 다른 선생님들, 혹은 이상한 성격 때문에 싫어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다 계시는 교무실 안에서 돈 돈 어쩌고 하면서 저에게 욕을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 죄송하지만..다른 분들이 안계신 자리에서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얘기하는데..
' 왜 이 썅년아 꼴에 자존심은 있냐? 내가 너같은 새끼들 때문에 선생하기 싫어 내가 너 때문에 출근하기 싫다고 이새끼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꾹 참습니다.
이야기가 끝이나고 교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몸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근현대사 선생님께서 따라나오시더니 저를 안아주십니다. 복도에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하루는 또 저에대해서 잘 모르는 다른 반의 그 소위 '일찐 무리가 ' 제가 원조교제를 하고다닌다며 소문을 퍼트립니다.
제 친구가 와서 말합니다. '야 정말 넌 어떻게 학교다니냐 나같으면 콱죽었다'
그저 웃습니다. 뭐 난 걔네 이름도 모르는데 뭐
절 좋아하던 친구들이 배신을 때리고 ..
돌아서서 말합니다. 너와 같이 다니면 나까지 욕먹을 것 같아 무섭다고..
그나마 우정을 지키는 친구들도 반 안에서는 잘 지내지만 교실 문을 나가 다른 애들이 보는 곳에서는 저와 거리를 두고 걷습니다. 다 느낍니다. 하지만 뭐라 하지 않습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그 때쯤 선생님은.. 정신력이 극도로 약해져 계십니다.
죽고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죽으면 절 그동안 남인데도 불구하고 고려대학교의 학력까지 포기하시며 키워주신 선생님께 너무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참습니다.
선생님에게 매를 맞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처럼 손바닥이나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거나 무거운 사전을 한시간동안 들고 있기 등이 아닌...
따귀를.. 머리끄댕이를...
저는 점점 비뚤어져 갑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크게 비뚤어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공부를 않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인 척...하지만...결과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허송세월로 보내다 수능을 앞둔 모의고사에서 1,2등급을 찍던 성적표가 이젠 2~5등급까지 들쑥날쑥합니다.
수능을 망쳤습니다.
저의 성적은 언어 1등급 외국어 3등급 수리 4등급 사회탐구 영역 (2~4등급)
선생님께서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재수를 하라고 합니다.
수능 본 다음날부터 도서관에 다닙니다.
하지만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맞을 때 저에게 '넌 기생충이야 내 인생을 빨아먹는'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가
저를 무겁게 짓눌러옵니다. 물론 핑계입니다. 귀찮은 것입니다. 현실을 모른 것입니다...
이젠 허리띠를 빼서 때립니다. 바닥에 저를 넘어뜨리고는 배를 발로 짓밟고 주먹으로 배를 치고 벽에다가 목을 조르고 따귀는 셀수없을 정도로 번쩍번쩍 지나가고..칼이 날아옵니다 다행히 피했습니다.
저를 죽이겠다며 부엌으로 가서 숨소리가 거칠게 들립니다. 두렵습니다.
죽고싶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럴지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써오던 일기장엔 언제부턴가 죽음에 대한 음영 짙은 글자만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가출을 했습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알바를 하고..
알바에서도..온갖 일을 다 겪습니다. 알바 사장님이 저와 다른 알바생들을 이간질 시키는데 그걸 다른 알바생들한테 다 들으면서도 참고 있다가.. 심지어는 제가 일을 관두고 3달이 지난 상태에서도 제 욕을 하며 비하하는것에 대해 전화를 걸어
'죄송하지만..그런 소리가 들리니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그런 소리를 듣지 않고싶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더니...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어? 누가 그래? 증거있어? 이 신발년이 가방끈 짧은 쪼끄만 애주제에 어디서 깝쳐 너 길가다가 만나면 나한테 맞아 죽을줄 알아 알았어 이 성기같은 년아?'
한번은 고대 아는 친구들이 당구장에서 당구게임하고 있다길래 너무 심심해서 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알고보니 그 알바집 사장님이 술이 취해서 눈이 뻘개진 상태로 당구 큣대로 저를 찍으려고 하며 욕을 퍼부읍니다.
'너 내가 내 눈에 걸리면 죽는다고 했지? 이 신발년아."
옆에 있던 사장님 친구들이 말립니다.
당구장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납니다...
모범생으로서 선생님과 부모님들 친구들의 존대를 받는 그 때..
해맑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가겠다고 다짐한 그 때 !
다양한 장면들이 오버랩이 되며 제 눈에도 눈물들이 오버랩이 됩니다.
대학교 입학 철이 다가왔습니다. 그 전날 새벽3시까지 알바를 하다가 수능을 보러 내려갑니다.
모텔을 잡고 어두운 불빛에서 공부를 합니다.
마음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수능이 끝났습니다. 저는 저의 취약점이었던 수리를 보완하기 위해
수리영역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항공과를 택합니다. 알바를 하며 불면증에 걸려 2시간 잠을 자고
알바비로 학원비에 100만원 가량을 다 쏟아붓고는 저는 컵라면 하나로 하루에 한끼를 때웁니다.
면접을 봤던 5곳에서 1군데를 제외하고 합격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알바비를 아무리 뼈빠지게 벌어봤자 등록금 400만원이 하루만에 생길리가 없습니다.
입금을 하지않으면 입학이 취소가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연락을 합니다.
선생님께서 학비를 내주셨습니다. 대출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1학기 동안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던 7월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오질 않습니다.
연락을 해봅니다. 더이상 안되겠다고 하십니다. 연락을 않하고 지내는게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강인했고 자존심이 강했던 분인지 알기에 알겠다고 하고는 그 이후로 1년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되지 않은 이상 연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당장 아무 돈도 없고 ....가족보다도 더 가족같았던 분과의 인연이 끊기고..
저는 당장 강원도의 숙식 제공이 되는 현대성우 리조트의 오스타 CC라는 골프 리조트의 프론트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스트레스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서운건가봅니다.
몸이 망가졌습니다. 위경련에 위염에 장염에 편두통에 극심한 우울증에..
서울로 내려왔습니다. 회사에 면접을 봐서 인포메이션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몸이 망가진게 회복이 안되서
그동안 입원에 , 약을 달고 살고 있습니다.
수술할 때 주치의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학생의 몸안에 염증이 생기고 있다고..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술도 거의 안마시고 담배도 입에 안대는 제가 담석이 있답니다.
거기에 여기저기에 염증이 나서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답니다.
아직도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병원으로 직행해야 하는 약골이 되었습니다.
한 때는 만년 체력장 1급에 육상부까지 제의를 받았던 저인데..
역시 건강은 한순간인가봅니다.
지금 밖에는 비가 마구마구 쏟아집니다.
내방하시는 분들이 폭우에 아연실색을 하며 저를 쳐다보십니다. 웃으며 안내를 해드립니다.
길고 긴 .. 재미없는 스토리를 조리있게 짜내지 못하였는데..
마무리는 더더욱 엉터리입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23살 8월달 복학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대생입니다.
사람은 죽기전에 자신의 인생이 떠오른다고 하던데..
저는 죽기 전에 어떤 영상부터 떠올려야 할지... 너무 많아서 죽음이 미뤄질 것 같네요..
아 참고로 저의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저에게 연락두절인지 오래입니다.
저에게 관심도 없고..
얼마전에 친아버지 연락처를 알아내서
국가장학금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오랜만에 연락된 딸인데... 어디서 사냐..밥은 먹냐.. 뭐하고 지내냐가 아닌
'왜 '
이 한마디를 하더군요..
'왜 전화했는데'라며..
지금은 법적으로도 저 혼자이고 실질적으로도 혼자입니다.
친척들은 어디서 사는지 이름도 모르고..
세상에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속 썩인다고 ..울상이신 여러분들..
가족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세요.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은 ...절대...느껴서도 안되지만..
정말 혼자라는 느낌은 굉장히 서글프니까요...
제 글을 읽으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
저에게 행운을 비는 마음 속의 한 마디 응원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