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인형’ 같은 언론인들 시사INLive | 문정우 대기자 | 입력 2012.07.14 14:07 댓글149마이피플 트위터페이스북 더보기 툴바 메뉴 폰트변경하기 폰트 크게하기폰트 작게하기 메일로 보내기 인쇄하기 스크랩하기 고객센터 이동 MBC 전 노조위원장인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가 또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지난해 10월24일 안종필 언론상을 받던 때가 생각났다. 안종필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압제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했다가 회사에서 대거 쫓겨난 동아자유언론실천투쟁위원회(동아투위) 2대 위원장을 지낸 분이다. 그는 유신 말기 긴급조치 9호에 맞서 '민권일지'를 발행하다 옥고를 치렀다. 박정희가 죽은 뒤 풀려났으나 감옥에서 얻은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차장급 간부에 가장이었으면서도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은 그를 기리기 위해 동아투위는 안종필 언론상을 만들었다. 시상식장에 앉아 나를 포함한 < 시사IN > 기자들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던 중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시상식장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한 대도 없었다. 자기 회사 기자들이 기자협회 주최 축구대회에서 4강에만 올라가도 대거 몰려와 법석을 떨던 그 카메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뿐만 아니라 볼펜(글 쓰는 기자)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성원 그림
민 주화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가 맞다면 동아투위가 여는 행사는 이보다 훨씬 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후배 기자와 PD만은 전체가 즐기는 축제 한마당으로 만들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인권을 위해, 언론자유를 지키려고 일신의 영달을 박차고 고문과 투옥을 이겨낸 이들이 여는 행사가 찬밥 신세라면 그 사회는, 그 언론계는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였는지 자기들 머릿수로 간신히 시상식장을 채운 동아투위 선배들의 굽은 어깨가 더욱 스산해 보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을 때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뱉었던 탄식이 기억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단물만 빠느라 정신이 빠져 동아투위와 1980년 해직 선배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등한히 했던 업보를 받게 될 거라던. 결국 그 자신이 아내와 어린 자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갑을 차고 연행되는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올해 들어 각 방송사와 신문사의 파업이 줄을 잇고 해직자가 속출하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는 소속사가 어디든 젊은 기자 사이에는 연대의식이 있었다. 유신 정권 때 간부들이 벙어리가 되자 차장급 이하 기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한데 뭉쳐 만든 단체가 바로 한국기자협회이다. 이 21세기 개명 천지에 멀쩡하게 일 잘하던 기자와 PD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지만 언론계 내부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 느슨하다. 기자협회조차 명색도 없다. 서슬 퍼런 5공 때도 일선 기자는 무슨 사건이 나기만 하면 아무리 회사나 간부가 꺼리는 내용이라도 써서 데스크에 던져놓기라도 했으나 지금은 알아서 취재조차 하지 않는다. 인터넷 발달 때문이 아니라 젊은 기자와 PD가 정신줄을 놓은 탓에 언론은 지금 멸종 위기에 몰린지도 모른다.
모두를 위해 나와 내 가족을 희생한 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년에 투쟁의 대가로 얻은 육체적 고통과 빈곤을 혼자만 지고 가며 세상을 냉소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더구나 비겁하게 숨었던 이들이 그들에게 좌빨이니 종북이니 낙인을 찍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 바로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책이 < 교수대의 비망록 > (여름언덕 펴냄, 2012년)이다. 이 책을 쓴 체코의 지식인 율리우스 푸치크는 저널리스트이자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기자란 어떤 족속인지 말해준다. 인류의 미래와 평범한 일상을 동시에 소중하게 여긴 그는 공산주의자를 함부로 머리에 뿔 달린 괴물처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1942년에 썼다고 믿기 힘든 작품

< 교수대의 비망록)율리우스 푸치크 지음 여름언덕 펴냄
1941 년 체코를 점령한 나치에 맞서 지하운동을 하던 율(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은 1942년 4월24일 아름다운 봄날 게슈타포에 붙잡혔다. 동지들의 사소한 규율 위반과 악운이 겹친 탓이다. 이 책은 그가 체포돼 1943년 9월8일 처형될 때까지의 기록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책을 직접 썼다. 체코인 간수가 게슈타포의 엄중한 감시를 피해 그에게 종이와 필기구를 건네고 그가 쓴 원고 한 장 한 장을 빼돌린 뒤 많은 사람이 분산해 숨겨놓았던 덕분이다. 적어도 열 사람 이상이 목숨을 내놓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책이다.
그 는 저널리스트답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냉정하게 기록했다. 자신과 투옥된 동지와 조력자, 가해자들을 거리를 두고 면밀히 관찰했다. 1942년에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언어는 현대적이다. 당장 오늘 밤, 혹은 내일 아침에라도 형장에 끌려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이어서인지 시대를 초월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그는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렸고, 또 부활했다. 말처럼 튼튼했던 그는 모진 고문을 견디며 입을 열지 않다가 24시간 만에 거의 맞아 죽었다. 의무관이나 간수는 그가 살아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감방 동료는 "세상에 이 사람은 굴라시(묽은 죽)조차 삼키지 못해요"라며 탄식했다.
그는 짚이불 위에서 6주간 버틴 끝에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부활의 순간을 '조명담당이 모든 불빛을 내 무대에 비추는 것 같았다'고 썼다. 그는 망원경에 현미경을 덧댄 듯 세상을 훨씬 명료하게 볼 수 있었다.
나 치 본부인 페체크 궁 안에는 '영화관'이 있었다. 심문하기 전에 기를 꺾기 위해 나치가 만들어놓은, 고문실로 가기 위한 대기실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신음과 비명을 들으며, 멀쩡하던 사람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불구가 되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자기 인생을 돌아봤다. 율도 자기 인생에서 소중했던 순간의 모습을 수천 번이나 틀어보았다. 누가 영화관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천재이다.
율은 이 영화관에서 세상의 축소판을 봤다. 인간이라는 동물을 알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많은 동지가 배신했다. 겁에 질린 그들의 입이 수많은 동지를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목숨을 잠깐 연장했는지는 몰라도 생명 이상의 것을 잃었다. 신념을 지킨 이들은 빈사지경에서도 누가 악마와 거래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다 씌어 있었다. 고문과 굴욕을 참아낸 이들 사이의 유대는 훨씬 견고해졌다. 그들은 빵을 건네며 잠깐 손가락을 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잠깐의 눈짓, 주먹 한번 쥐어 보이는 것으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치 SS대원과 체코인 경찰과 간수, 그리고 행정관료를 인간과 나무 인형, 그리고 짐승으로 구분했다. 압제에 협력하는 자들 가운데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살인자가 많았다. 그들은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 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것을 즐겼다.
나무 인형은 자기 몸을 지키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율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부류는 당신이 물에 빠졌을 때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다가 혼자 뭍에 기어오르면 반갑게 손을 내민다. 나무 인형은 비열하지만 가련하기까지 하다. 예심 판사 같은 관료는 소름끼치게 정확하고 냉정했다. 게슈타포에게는 전사나 맹수와 같은 정열이라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인간의 생명마저 관공서 업무일 따름이다. 이 또한 썩어빠진 나무 인형이다. 율은 야수든 나무 인형이든 서로 간에 신뢰나 정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외부 상황 변화에 따라 죄수들에게 아부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불안한 존재였다. 그에게 필기구를 건넨 체코인 간수 같은 이가 진정한 인간이다.
이 책은 고전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닌데도 그동안 세 번이나 번역돼 나왔다. 우리 사회가 희생자를 잊거나 냉대하는 한 아마도 출판은 계속될 것이다. 율은 그의 유명한 어록을 이 시대 기자들에게도 들이대는 듯하다. 당신들은 깨어 있냐고. 우군이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기에 우군이란 걸 믿냐고.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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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급 간부에 가장이었으면서도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은 그를 기리기 위해 동아투위는 안종필 언론상을 만들었다. 시상식장에 앉아 나를 포함한 < 시사IN > 기자들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던 중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시상식장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한 대도 없었다. 자기 회사 기자들이 기자협회 주최 축구대회에서 4강에만 올라가도 대거 몰려와 법석을 떨던 그 카메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뿐만 아니라 볼펜(글 쓰는 기자)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성원 그림
민 주화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가 맞다면 동아투위가 여는 행사는 이보다 훨씬 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후배 기자와 PD만은 전체가 즐기는 축제 한마당으로 만들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인권을 위해, 언론자유를 지키려고 일신의 영달을 박차고 고문과 투옥을 이겨낸 이들이 여는 행사가 찬밥 신세라면 그 사회는, 그 언론계는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였는지 자기들 머릿수로 간신히 시상식장을 채운 동아투위 선배들의 굽은 어깨가 더욱 스산해 보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을 때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뱉었던 탄식이 기억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단물만 빠느라 정신이 빠져 동아투위와 1980년 해직 선배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등한히 했던 업보를 받게 될 거라던. 결국 그 자신이 아내와 어린 자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갑을 차고 연행되는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올해 들어 각 방송사와 신문사의 파업이 줄을 잇고 해직자가 속출하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는 소속사가 어디든 젊은 기자 사이에는 연대의식이 있었다. 유신 정권 때 간부들이 벙어리가 되자 차장급 이하 기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한데 뭉쳐 만든 단체가 바로 한국기자협회이다. 이 21세기 개명 천지에 멀쩡하게 일 잘하던 기자와 PD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지만 언론계 내부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 느슨하다. 기자협회조차 명색도 없다. 서슬 퍼런 5공 때도 일선 기자는 무슨 사건이 나기만 하면 아무리 회사나 간부가 꺼리는 내용이라도 써서 데스크에 던져놓기라도 했으나 지금은 알아서 취재조차 하지 않는다. 인터넷 발달 때문이 아니라 젊은 기자와 PD가 정신줄을 놓은 탓에 언론은 지금 멸종 위기에 몰린지도 모른다.
모두를 위해 나와 내 가족을 희생한 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년에 투쟁의 대가로 얻은 육체적 고통과 빈곤을 혼자만 지고 가며 세상을 냉소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더구나 비겁하게 숨었던 이들이 그들에게 좌빨이니 종북이니 낙인을 찍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 바로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책이 < 교수대의 비망록 > (여름언덕 펴냄, 2012년)이다. 이 책을 쓴 체코의 지식인 율리우스 푸치크는 저널리스트이자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기자란 어떤 족속인지 말해준다. 인류의 미래와 평범한 일상을 동시에 소중하게 여긴 그는 공산주의자를 함부로 머리에 뿔 달린 괴물처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1942년에 썼다고 믿기 힘든 작품

< 교수대의 비망록)율리우스 푸치크 지음 여름언덕 펴냄
1941년 체코를 점령한 나치에 맞서 지하운동을 하던 율(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은 1942년 4월24일 아름다운 봄날 게슈타포에 붙잡혔다. 동지들의 사소한 규율 위반과 악운이 겹친 탓이다. 이 책은 그가 체포돼 1943년 9월8일 처형될 때까지의 기록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책을 직접 썼다. 체코인 간수가 게슈타포의 엄중한 감시를 피해 그에게 종이와 필기구를 건네고 그가 쓴 원고 한 장 한 장을 빼돌린 뒤 많은 사람이 분산해 숨겨놓았던 덕분이다. 적어도 열 사람 이상이 목숨을 내놓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책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답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냉정하게 기록했다. 자신과 투옥된 동지와 조력자, 가해자들을 거리를 두고 면밀히 관찰했다. 1942년에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언어는 현대적이다. 당장 오늘 밤, 혹은 내일 아침에라도 형장에 끌려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이어서인지 시대를 초월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그는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렸고, 또 부활했다. 말처럼 튼튼했던 그는 모진 고문을 견디며 입을 열지 않다가 24시간 만에 거의 맞아 죽었다. 의무관이나 간수는 그가 살아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감방 동료는 "세상에 이 사람은 굴라시(묽은 죽)조차 삼키지 못해요"라며 탄식했다.
그는 짚이불 위에서 6주간 버틴 끝에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부활의 순간을 '조명담당이 모든 불빛을 내 무대에 비추는 것 같았다'고 썼다. 그는 망원경에 현미경을 덧댄 듯 세상을 훨씬 명료하게 볼 수 있었다.
나 치 본부인 페체크 궁 안에는 '영화관'이 있었다. 심문하기 전에 기를 꺾기 위해 나치가 만들어놓은, 고문실로 가기 위한 대기실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신음과 비명을 들으며, 멀쩡하던 사람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불구가 되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자기 인생을 돌아봤다. 율도 자기 인생에서 소중했던 순간의 모습을 수천 번이나 틀어보았다. 누가 영화관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천재이다.
율은 이 영화관에서 세상의 축소판을 봤다. 인간이라는 동물을 알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많은 동지가 배신했다. 겁에 질린 그들의 입이 수많은 동지를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목숨을 잠깐 연장했는지는 몰라도 생명 이상의 것을 잃었다. 신념을 지킨 이들은 빈사지경에서도 누가 악마와 거래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다 씌어 있었다. 고문과 굴욕을 참아낸 이들 사이의 유대는 훨씬 견고해졌다. 그들은 빵을 건네며 잠깐 손가락을 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잠깐의 눈짓, 주먹 한번 쥐어 보이는 것으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치 SS대원과 체코인 경찰과 간수, 그리고 행정관료를 인간과 나무 인형, 그리고 짐승으로 구분했다. 압제에 협력하는 자들 가운데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살인자가 많았다. 그들은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 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것을 즐겼다.
나무 인형은 자기 몸을 지키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율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부류는 당신이 물에 빠졌을 때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다가 혼자 뭍에 기어오르면 반갑게 손을 내민다. 나무 인형은 비열하지만 가련하기까지 하다. 예심 판사 같은 관료는 소름끼치게 정확하고 냉정했다. 게슈타포에게는 전사나 맹수와 같은 정열이라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인간의 생명마저 관공서 업무일 따름이다. 이 또한 썩어빠진 나무 인형이다. 율은 야수든 나무 인형이든 서로 간에 신뢰나 정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외부 상황 변화에 따라 죄수들에게 아부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불안한 존재였다. 그에게 필기구를 건넨 체코인 간수 같은 이가 진정한 인간이다.
이 책은 고전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닌데도 그동안 세 번이나 번역돼 나왔다. 우리 사회가 희생자를 잊거나 냉대하는 한 아마도 출판은 계속될 것이다. 율은 그의 유명한 어록을 이 시대 기자들에게도 들이대는 듯하다. 당신들은 깨어 있냐고. 우군이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기에 우군이란 걸 믿냐고.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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