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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 황금시대를 빛낸 예술가들

민진 |2012.07.24 00:29
조회 125 |추천 0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 영감님이 선물하는 파리의 영롱한 밤거리다. 영화를 보고 나면 파리에 흠뻑 빠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흥얼거리게 되는 콜 포터의 명곡 <Let’s do it>처럼 우아한 파리의 영롱한 밤이 관객의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그리고 비로소 한 남자가 1920년대 ‘골든타임’행 마차에 탑승할 때, 예술이 주는 영감 그리고 내가 사는 이 거리의 밤거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대는 언제였는가. 약혼녀와 함께 파리에 온 할리우드 작가 길(오언 윌슨)은 위대한 문학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던 1920년대가 바로 ‘골든에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1920년대 파리의 ‘벨 에포크’를 동경하는 것이다. 예술·문화가 번창하고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가 넘치는 그곳 파리. 물랭루즈와 레스토랑 맥심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꽃의 파리. 미국의 위대한 문학가 그리고 세계의 미술가들이 모여 자신의 재능을 뽐내던 거리 파리.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과거의 향취에 빠지고픈 우리의 주인공 ‘길’은 요새 흔히 말하는 ‘파리지엥’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한가. 파리에 오면 뭐하나. 약혼한 여친은 완전히 다른 취향으로 자신을 힐난한다. 재수 없는 그녀의 친구들은 길을 하찮은 존재로 보는지 사사건건 무시한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약혼녀의 부모까지 탐정을 고용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한다. 그래 뭐 다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의 소설을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만큼 ‘길’은 자신감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길의 어깨는 펴질 날이 없다.


그런 그에게 광명의 마차가 나타난다. 어느 밤 자정에 파리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은 ‘길’은 놀랍게도 시간을 건너는 마차에 탑승하게 된다. 꿈이라도 꾼 걸까. 이렇게 생생한 꿈이 있을까. 마차에서 내린 그곳에서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을 만나 자신의 문학관을 쉴 새 없이 떠들던 길은 자신이 만난 이 세계가 1920년대 바로 자신이 꿈꾸던 예술가의 시대임을 직감한다. 아 파리의 밤은 아름답도다. 결국 그곳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무려 마리온 코티아르)와 꿈같은 사랑에 빠진 ‘길’은 새로운 자아를 찾으려 한다. 비로써 예술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알지 못하면 일부 관객들을 따라 어색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짓궂은 영화다.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하기에 그들의 특성을 알지 못하면, 이 영화의 유머코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준비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특징과 그들의 삶을 한번 정리해본다.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피츠제럴드는 무성한 소문이 많은 사교계의 꽃이었다. 알라바마 출신 지방법관의 딸이어서매우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녀의 혼란스러운 성격과 넘치는 끼는 제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는 프린스턴 출신의 야망에 찬 소설가 F. 스캇 피츠제럴드의 애인으로 등장하는데, 그녀는 스캇의 사랑을 의심하고, 딱딱한 독설가 헤밍웨이를 증오한다. 실제 그녀는 독립적이며 인생과 예술을 즐기는 여자였다. 스캇의 불투명한 미래로 그를 차버릴 만큼 현실감각도 투철했고, 돈과 명성 그리고 유럽, 재즈, 알코올, 문학, 섹스, 연애, 미모까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 시대의 it Girl이었다.(요즘 말하면 레이디가가?) 결국 1920년 <This Side of Paradise>로 재능을 빵 터뜨린 스캇과 결혼하여 뉴욕의 샐러브리티 커플로 등극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의 어두움이 파리까지 여파를 미치자, 그녀의 미모도 시대와 함께 저물어갔다. 우울증에 걸린 젤다는 피부가 썩어가고, 힘없는 넝마와 같은 늘어진 머릿결을 견디지 못했다.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야망의 스캇 피츠제럴드와 다르게 그녀가 남긴 것은 스캇의 목숨을 앗아간 여자라는 서슬 퍼런 시선뿐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허밍웨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자전적인 영미문학의 대문호다. 기자출신의 그는 저널리즘 특유의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를 통해 미국 현대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문체는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글쓰기의 매뉴얼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허밍웨이 특유의 까칠한 성격과 공격적인 말투가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에서의 배경은 그가 1921년 기자신분으로 미국 거물급 작가들과 친분을 쌓을 당시를 보여준다.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가의 천국, 특히 미국인 예술가의 천국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미국 작가들이 파리를 근거지로 삼았기에 허밍웨이는 재능이 넘치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허밍웨이가 젤다의 문학을 혹평하는 장면은 그의 철학과 문학관을 단숨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전투적인 성격으로 주인공 길에게 툭툭 뼈있는 독설을 던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


 


거트루드 스타인


소설가이자 비평가, 미술애호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의 문학작품을 높게 평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명배우 캐시 베이츠가 연기해서 그런지 더욱 정이 가는 거트루드 스타인은 극중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혹평하면서 우리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결국 피카소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가 후대에 그녀를 떠올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질 것을 그녀는 상상이나 했을까. 소설이나 시에서 대담한 언어상의 실험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운동의 비호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 모더니스트로서 활약한 한 사람으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 문학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 단편집 <3인의 생애>, 시집 <텐더 버턴스>등이 있다.후대에 재평가되어 현대문학에서 더욱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녀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피카소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비평가 ‘거트루드 스타인’에 혼쭐이 나며 등장한다. 피카소는 1900년 19세에 처음 파리를 방문했다.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창작을 하던 ‘보헤미안’ 무리에 합류했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고,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모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도시의 가난을 두려워하였다. 그 당시 피카소는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를 피카소의 ‘청색시대(靑色時代)’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 넣던 당시의 화가들은 마치 화폭에 실제 하는 것처럼 그려 넣는 것을 완성도의 척도로 삼았다. 하지만 피카소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입체주의 화가들은 ‘하나의 화폭 안에 사물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모두 담고 싶다’는 열망으로 르네상스 이래 근 500년을 지속되어 온 단일 시점에 따른 원근법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물론, 그 중심에는 피카소가 있었다. 큐비즘(입체주의)이란 그 당시 피카소가 주창했던 미술의 한 장르로서 입체주의의 완성으로 불린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거트루드 스타인과 논쟁을 하는 장면은 그의 이런 철학이 반영된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맨 레이


아방가르드 사진작가로 초현실주의적 사진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시의 유명 여성 화가들과 파리 사교계 여성스타들을 모델로 등장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인화지에 직접 피사체를 배치하여 빛을 비춘 결과 나타나는 추상적 영상을 레이요 그래프(Rayograph)라 명명하면서 사진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그의 친구 달리, 루이스 브뉘엘과 깜짝 등장하여 초현실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때 길의 표정이 압권이다.


 

루이스 브뉘엘


루이스 브뉘엘은 192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후 1929년 충격적인 데뷔작 <안달루시의 개>와 1930년의 <황금시대>로 일약 초현실주의의 기수가 된 영화감독이다. 영화에서는 달리와 맨 레이가 등장하는 신에서 역시나 초현실주의자답게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무정부주의자, 초현실주의자, 무신론자였던 루이스 브뉘엘은 영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고 파격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스페인, 멕시코 등을 떠돌다 1964년 <하녀의 일기>부터 프랑스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 <세브린느>(1967), <은하수>(1969), <트리스타나>(1970),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자유의 환영>(1974),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 등 후기 걸작들을 남겼다.


 

실바도르 달리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작가인 “실바도르 달리”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천재적 또라이다.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달리는 1904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장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영감을 받아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기는 1928년으로 추측된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초현실주의파의 일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후에는 다시 고전주의로 회귀하면서, 초현실주의파에서 제명된다. 무서운 초현실주의파 같으니. 말년에는 행위예술에도 관여할 만큼 또라이 기질이 다분했다. 하지만 그의 독창적이고 기괴한 작품세계는 대중에게 잊을 수 없는 영감을 주었다. 대표작 <기억의 집념>은 아직도 초현실주의를 대변할 때마다 거론되는 작품이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20세기 문학의 변혁을 대표하는 인물로 37년간 망명 생활로 전 세계를 떠돌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근간은 고향 아일랜드 더블린이었다. 더블린을 추억하는 작품을 통해 향수를 치유하는 것일까. 그의 대표작은 <더블린의 사람들, 1914>, <젊은 예술가의 초상, 1916>, <율리시스, 1922>까지 이름 바 더블린 3부작이다. 조이스 문학은 19세기 영국의 사실주의 소설과 20세기 유럽의 실험주의 소설의 경계선 상에 있고, 내용적으로는 자서전과 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블린 사람들의 내밀한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연재하는 내내 연재중단과 소송 위협을 받았다. 이런 불화 때문에 조이스는 1915년 아일랜드를 떠나 취리히로 옮긴 뒤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더블린이 자신의 문학 전체를 지배하는 터전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비난과 위협의 진원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조이스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조국에서의 외면과 영어권 사용국가 전체의 매도와는 대조적으로 조이스 문학이 비영어권인 유럽 대륙에서 먼저 인정받고 공인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조이스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모딜리아니


이 영화에 풍문으로만 등장한 모딜리아니는 무덤 속에서도 귀가 간지러웠을 것이다. 이름 바 파리의 보헤미안,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여성을 그림에 담아내었던 천재 화가. 하지만 불운한 운명을 피하지 못했던 이름처럼 슬픈 기운을 지닌 남자. 검은 모자와 빨간 스카프로 대변되는 모딜리아니는 파리의 빈민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 자신에게 새겨진 부르주아적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자신의 초기 작품들마저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이런 파괴적인 성격을 여성들은 감싸주고 싶어 했다. 그는 수많은 여성들의 그림을 그렸으며, 조각가로서의 기질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엄청난 양의 작품을 양산했던 그는 불운하게도 건강이 무척 나빴다. 그는 자신의 빠른 죽음을 직감했던지 황폐한 생활을 계속하였고, 그의 작품은 허무한 기운 속에 온전하게 보전되지 못했다.


 

T.S. 엘리엇


188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태어난 T.S.엘리엇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14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통해 프랑스문학을 접한 그는 상징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모더니즘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당시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에 살며 T.S. 엘리엇 이외에도 허밍웨이와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숨은 인재들에 도움을 주며 그들을 세계적인 문학가로 키워냈다. 그는 재능이 넘치는 T.S. 엘리엇이 은행에 근무하여 자신의 재능을 썩히는 것을 안타까워 한 나머지 다른 문학가들에게 후원금을 모아 그를 지원했다. 이후 엘리엇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1922년 황무지를 비롯한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극시(Dramatic Poetry)들을 쏟아냈다. 그의 극시는 세계적인 연출가들에 의해 연극화되어 뮤지컬 <캣츠>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의 원안이 되기도 하였다.




 이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 중 직접적으로 내용에 관여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을 알아보았다. 1920년대라니. 무려 피츠제럴드라니. 무려 모딜리아니, 피카소, 헤밍웨이라니. 파리의 밤은 그들로 하여 아름다움을 넘어선 환상적인 판타지가 되었다. ‘우디 앨런 할배’는 더 이상 노이로제에 걸린 뉴요커의 축도가 아니다. 두꺼운 검은 뿔테안경은 더 이상 폼이 아니다. 할배는 1920년대가 낯선 이들에게까지 그 시대의 문학성과 예술의 향취를 그립게 만든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문학을 그립게 하고, 영화를 애달프게 하며, 철학이 멀지 않음을 일러주는 영화다.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걷는 소공동 밤거리가 파리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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