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의 지식
백 경 옥(대구가톨릭대)
[한글요약]
그리스 비극은 정치 선전과 시민 교육을 위한 계몽극으로서 작가가 당대의 사회적 사상적 문제점들을 신화를 소재로 극화한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소재로 하여 당대의 이성주의자들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지식의 맹목성을 역설적 방법으로 증명해 보임으로써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주지주의적 경향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본논문에서는 인간의 이성의 승리를 대변하는 오이디푸스는 곧 황금기 아테네의 정치가이며 전형적인 주지주의자였던 페리클레스가 은유적으로 묘사된 존재라는 점을 <오이디푸스 왕>을 신비평주의에 입각하여 독해함으로써 추론해 내었다. 즉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는 아낙사고라스적 지식론의 대변자이며 스핑크스와 테이레시아스는 모니즘적 지식론의 대변자로서 은유하면서 후자의 우월성을 피력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쇠퇴기에 접한 아테네에서 대두되었던 주지주의가 일종의 지성사적 전환점을 이루는 요소이며, 이 현상을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적 지식론으로 비판함으로써 포스트모던적 지식론의 원형을 제시했음을 논하였다.
주제분야 : 前 소크라테스 철학, 고전비극, 그리스 신화
주 제 어 : 오이디푸스 신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
주지주의, 페리클레스
1. 머리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앎'과 '알고자 하는 자'에 관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는 오래 전에 발생하였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색출(알아내고자)하는 데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는 집요한 조사와 탐문 끝에 그가 찾던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그때까지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지식 혹은 자기 인식은 그리스 고전 비극의 형식에서 갖추어야 할 요소 중의 하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플롯에서 급전(急轉)과 발견(자기 인식)이 전개되는 전형적 작품으로서 {오이디푸스 왕}을 들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오이디푸스가 모르고 아버지를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살해범을 찾는 과정에서 급전의 상황을 맞이한다. 즉 오이디푸스에게 두려움과 의혹을 씻어줄 코린트의 사자(使者)가 온다. 그러나 사자는 오이디푸스의 정체를 알려줌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와 결혼하였다는 사실을 발견 혹은 인지(認知)하게 되었다. 그는 비록 그 희생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살인 행위를 저질렀지만 실제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애정의 유대가 얽힌 생부(生父)를 죽였던 것이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냄에 따라 왕에서 눈 먼 거지로 전락하게 된다.
소포클레스는 모든 것을 아는 현명한 왕에서 진정 알아야 할 것을 몰랐던 근친살해범이자 근친혼을 했던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자각한 오이디푸스가 겪는 수난을 통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의 지식의 맹목성과 한계를 인식케 하였던 것이다. 퍼거슨이 {오이디푸스 왕}에 대하여, "작중 인물들은 인간적 상황에 대한 연민과 공포를 수반하는 수난을 체험한다. 이 수난 또는 정념(情念)을 통하여 변한 시각(視角)으로부터 인간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지각 능력이 생겨난다"고 하였는데 비극의 주인공들은 수난을 통해서 '자기 인식'을 성취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극적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를 느끼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았으므로, 비극의 플롯 속에 반드시 이 기능이 포함되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에 나타나 있는 바, 인간의 지식은 맹목적이며 한계가 있다는 견해는 실인즉 호메로스 이후 여러 시인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피력되었다. 호메로스의 경우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신적 지식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였다. 즉 그는 "나를 가르친 것은 내 자신입니다. 그러나 신은 나의 마음에 다양한 종류의 노래를 심어주셨습니다"라는 시인 페미니오스의 말을 통하여 인간의 재능은 신들에게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한편 헤시오도스는 일찍이 뮤즈들이 헬리콘 산에서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었다고 하며, 그가 다른 시인들이나 고향의 양치기들과 달리 자신의 지식이 뮤즈들의 신적 지식과 어리석은 자들의 인간적 지식 사이에 위치한다고 자각함으로써 인간적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였다.
세계의 질서를 보다 명료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이러한 초기 시인들의 노력은 기원전 600년경에 이르러서 세계의 진정한 실재에 관해서 물음을 던지는 시인 및 사상가들에게도 계승되었다. 기원전 500년경의 시인 크세노파네스는 단편 18에서 "신들은 애초부터 모든 것들을 죽어야만 하는 자들(인간)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은 점차로 추구해 나가면서 보다 나은 지식을 찾는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크세노파네스는 인간의 지식은 불명료한 것으로서 스스로 탐구함으로써 신적인 지식에 다가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크세노파네스는 본질적인 것과 실재하는 것을 질료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신적인 것에서 찾았다.
신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한 사상가는 헤라클레이토스였다. 그는 단편 41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통찰력을 이해하는 지혜는 오직 일자(一者)이다"라고 하여 인간의 지식은 바로 그 일자로 향하는 경향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인간적 지식과 감각적 지식을 배제하고 '신적인' 지식으로의 길을 찾으려 했던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표명한 장시(長詩) {자연에 관해서}에서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과 억견(臆見)에로 나아가는 길에 관하여 논하였다. 그에 의하면 억견에로 나아가는 길은 감각적 인식에 바탕을 둔 길로서 가상(假象)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여기서 우주는 두 개의 대립적이고 양립 불가능한 실체들, 즉 빛과 어둠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에는 만물의 진행을 관장하는 필연의 여신 아낭케가 거한다. 그런데 이 억견에로 나아가는 길의 출입구에 당도한 젊은이는 그 출입구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의 환영을 받으며 밤과 낮, 빛과 어둠은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감각의 가상으로서 '있는 것'에 대한 단 하나의 별명임을 깨닫게 된다.
파르메니데스는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에서 세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원론을 부정하고 "그것은 있다"(it is)라는 가정을 긍정하고 "그것은 있지 않다"(it is not)라는 반대 가정을 부정함으로써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을 펼친다. 그는 단편 8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남은 유일한 길은 '그것은 있다'의 길이다. 있는 것이 불생·불멸한다는 징표는 많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이고, 운동하지 않으며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에 있던 것도 아니요 앞으로 있을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안에 동시적으로 있고 하나이며 연속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파르메니데스는 진리는 일자(一者)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는 감각에 의해 파악될 수 없고 순수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에 대한 사상은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에 거주하였던 그의 제자 제논에 의하여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전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아테네에서는 잘 알려진 대로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이 실시되고 있었고, 사상적으로는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띠고 인간의 능력과 성취, 특히 과학적, 철학적 탐구에 낙관적 입장을 취하며 인간은 그 스스로 배우는 자라는 자부심이 팽배해 있었다. 당시의 아테네인들의 인간에 대한 자부심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명제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으로 전통적인 신의 질서에 대하여 회의를 야기하였다. 실제 '신의 진리와 인간의 미망 사이의 갈등'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철학과 종교 사상에서 널리 알려져 있던 주제였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인간이 뛰어난 지성이 있다고 하여도 신이 정해준 운명을 뛰어넘지 못함을 오이디푸스의 처절한 인생 역정을 통하여 보여주었다고 하겠는데, 이것은 실은 경건한 신앙가였던 소포클레스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조화와 균형이라는 그리스의 전통적 이상이 와해되어 가는 현실에 대하여 던진 경고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신의 지식을 대변하는 스핑크스와 테이레시아스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의 지식이 갖는 맹목성과 한계성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테네 사회에 팽배했던 이성주의 내지 계몽주의, 나아가서는 페리클레스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비판적 메시지임을 추론하고자 한다.
2.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극의 모두(冒頭)에서 테바이의 늙은 신관이 오이디푸스에 대해서 재앙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해줄 것을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그대는 카드모스의 도시에 와서 그 비정한 노래꾼에게 바치던 공납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었습니다. 우리한테서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어떠한 도움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말하는 바와 같이, 신의 가호(加護)에 의해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없이 훌륭한 오이디푸스 왕이시여, 여기 온 우리 탄원자 모두의 소원입니다. 신의 말씀에 의하건 사람의 가르침에 의하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찾아 주십시오.
여기서 늙은 신관이 과거에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백성을 구했다는 것은 스핑크스(비정한 노래꾼)의 수수께끼에 의해 고난을 겪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준 일을 가리킨다. 이 작품에는 스핑크스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스핑크스는 처녀의 얼굴에 날개와 사자의 몸통을 갖는 괴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페니키아의 여인들>의 고주(古註)에 의하면 스핑크스는 괴물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예언이나 신탁을 제시하는 존재이며, 자신이 제시한 신탁을 해석하지 못하는 자들을 파멸시키나 자기가 지키는 비밀이 밝혀질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란 2세기의 저술가 아테나이오스의 <데이프노소피스타이>(현인들의 향연)이나 여러 고주에 의하면 목소리는 하나이나 두 개의 다리, 네 개의 다리, 세 개의 다리로 자기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인간 일반을 의미하나 오이디푸스 자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앞서 언급한 에우리피데스의 고주에 의하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물음에 대해 '사람'이라고 답하려고 자기 자신을 가리켰는데 스핑크스는 그가 정답을 했다고 생각하여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는 것이다.
베르낭도 동일한 견해를 제시한다. 즉 오이디푸스는 이름 그대로 dipous(두 다리)의 성인이며, 어머니와 동침함으로써 지팡이를 짚는 세 다리의 노인인 아버지와 동일하게 되며, 또한 그의 어머니 사이에 아이를 얻음으로써 아이인 네 다리와 자신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준 '사람'이라는 해답은 그 생애에 있어 동시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변해 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며, 따라서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말로서는 불충분하게 답할 수밖에 없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대해 자기 자신의 비극적 운명 자체에 의해 보다 완전하고 정확한 답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해결함으로써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위에 올랐으며, 지혜롭고 영명한 군주로서 20년 가까이 나라를 훌륭하게 통치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제2의 수수께끼가 과해진 것이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오이디푸스의 실존에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지혜와 통찰력으로 풀었던 오이디푸스는 탄원하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나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고, 궁리하기에 편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거듭한 끝에 유일한 희망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 즉 그는 심사숙고(skopein) 끝에 신에게 해결책을 구하기 위하여 사자(使者)를 퓨토에 파견하였다고 하는데 심사숙고, 즉 skopein이라는 용어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비판적이며 용의주도한 조사를 의미한다.
오이디푸스의 이러한 수사 방법은 퓨토에 파견한 사자인 크레온이 신탁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를 접견하는 장면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퓨토에서 돌아온 크레온에게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자에 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성급하고 빗발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극의 89행에서 129행 사이에 오이디푸스가 크레온과 주고받은 21차례의 대화 중에서 오이디푸스는 11차례에 걸쳐서 재빠른 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한다. 오이디푸스는 이처럼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historien으로 표기되는 이오니아 탐구 정신의 발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라이오스 왕이 여행 도중에 도둑들에 의하여 살해되었으며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써 오이디푸스는 어두운 일들을 밝힐 단서를 잡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철저한 조사를 하고자 하는 각오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어두운 일들을 밝혀 놓도록 하겠다. 아폴론 신께서는 훌륭하게도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이런 마음을 쓰셨구나. 처남 또한 그렇소, 그래서 나도 거기에 맞도록 이 나라를 위해서 또한 신을 위해서 그대들과 힘을 합하여 이 원수를 갚아야겠다. 친척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도 이 더러운 피를 씻어야한다. 왕을 시해한 자가 누구이건, 그 자는 내게도 칼날을 돌릴 터인즉 왕을 위한 일은 바로 나를 위한 일이다.
아아. 아들들아 어서 이 탄원의 나뭇가지들을 들고 일어나거라. 그리고 카드모스의 모든 백성을 이곳에 모이도록 하여 내가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노라고 그들에게 전하여라. 신의 가호로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아니면 망하고 만다.
오이디푸스는 신은 단지 그에게 힘을 주는 존재로 여기며,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배운 자의 프라이드를 분명히 표명한다.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은 그가 백성들로부터 신과 같은 존재로 숭앙받음으로써 인간의 지식이 신의 지식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가진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태도에는 그들의 도시를 '그리스 지혜의 회의실'이라고 자부하였던 아테네인들의 강한 자부심이 반영되어 있다. 고르기아스가 올림피아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들에게는 위험을 견뎌내는 용기와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소포클레스 시대 아테네인들의 지적 경향은 탐구적이며 비판적이었다.
실제로 소포클레스 시대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탐구였다. 경제적·문화적·정치적 번영을 누리던 아테네의 지식인들은 진보의 공적을 인간에게 돌렸으므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이었듯이 당대의 큰 수수께끼의 답은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인간은 '스스로 배운 자'로서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지성으로써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 스스로가 지배자가 된 티라노스라고 여겼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프로타고라스의 명제는 인간의 지식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긍지를 전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일생과 성격을 통하여 볼 때, 소포클레스 시대에 처음으로 인간의 성격은 문화적 이상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형성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이디푸스 성격이나 행동 양식은 소포클레스의 극중 인물 가운데서 페리클레스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만물의 척도인 인간중의 일인자 오이디푸스는 지성(gnome)이 이끄는 데 따라서 증거를 수집하고 진실을 추적함으로써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에게서 알고자 하는(oida) 욕구는 이 극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실은 그가 테바이에 오기 전에 이미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답을 구하던 데서 나타났었다. 그리고 극이 전개됨에 따라 한동안 잊었던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되살아나고, 수사는 오이디푸스 자신의 수수께끼적인 정체 규명의 과정으로 변하게 된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 당도하기 전에 세 갈래 갈림길에서 그가 살해하였던 자들 중 한 사람이 라이오스 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알아내었다. 말하자면 오이디푸스는 집요한 질문과 그로부터 얻은 증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끔찍한 운명의 비밀을 발견하였고,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탄생의 조건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극의 서두에서 그가 미지의 살해범에게 퍼부은 지독한 저주가 자신에게로 돌아왔음을 자각한 순간 오이디푸스는 국왕의 지위에서 눈먼 거지의 처지로 급전하게 된다. 그는 테바이를 구제하였던 자에서 테바이를 재앙에 빠뜨린 죄로 구제되어져야 할 자로 전락하였고,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지성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척도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패배시킴으로써 의식적인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어 무의식과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영혼의 힘을 간파하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른 전형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결국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풂으로써 자아 발견을 위한 험난한 노정(路程)의 첫 관문을 통과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진실은 오이디푸스의 출세와 몰락을 예시한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듯이 오이디푸스도 그 자신의 인생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 국왕에서 거지로, 즉 높은 데서 나락으로 추락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일종의 신탁으로서 인간의 지식으로 풀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발의 비밀을 자기 나름으로 알았으나 정작 자신의 부은 발의 비밀은 알지 못한 채 미망(迷妄)에 빠졌고, 애써 노력한 끝에 제2의 스핑크스가 됨으로써 인간의 지식은 아무리 탁월하다 할지라도 신의 지식 앞에서 무력할 뿐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3. 테이레시아스와 오이디푸스
인간의 지식은 신의 지식에 비하여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오이디푸스와 테이레시아스와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테바이의 신관과 장로들은 테바이를 파탄으로 몰고 간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왕국의 종교를 관장하며 지난날 그들을 곤경에서 구제하였던 오이디푸스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오이디푸스는 탄원하러 온 신관과 장로들에게 "온 성내에 향연(香煙)이 감돌고 기도와 신음 소리가 가득 찬 것은 무엇 때문이냐?"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자신이 감각 능력이 뛰어났음을 먼저 강조한 셈인데,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정신적 자세는 이 극이 상연되던 시기의 아테네 철학자들의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스 정신에서는 보는 능력은 지식을 얻는 데 있어서 그 어떤 감각 능력보다 더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보고 생각하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theor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관상(觀想)을 의미하는 theoria에서 비롯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 자부심이 강한 오이디푸스이지만 그는 관례에 따라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알아내고자 아폴로의 충복이며 영감이 뛰어난, 말하자면 신의 지식을 대변하는 테이레시아스를 불러들인다.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오이디푸스는 "모든 것에 통달하고 있는 테이레시아스여, 말할 수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하늘의 일이건 땅의 일이건,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어떤 재앙이 이 나라를 뒤덮는지 그대는 알 것이요"라며 테이레시아스가 직관적이며 천상의 지식을 가진 자라고 칭송하며 그에게 답을 구한다.
비극의 지식은 이성과 이성으로써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과의 팽팽한 긴장이 내포되어 있는 모순적인 것인데, 테이레시아스는 바로 그 '무엇'을 터득한 예언자이다. 오이디푸스가 인정하였듯이 테이레시아스의 지식은 아폴로가 델피 신탁에서 사람들에게 암시한 징조를 이해함으로써 얻은 것으로서 영적인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델피의 신탁을 의뢰하였을 때 그 뜻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미망의 길로 들어섰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테이레시아스의 지식과 오이디푸스의 지식은 불가피하게 대립하고 충돌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를 재촉하여 답을 알아내고자 하지만, 사건의 끔찍한 진상을 이미 알고 있는 테이레시아스로서는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다. 자신만만하고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오이디푸스는 급기야 테이레시아스로부터 그가 가장 가까운 핏줄과 부끄러운 인연을 맺고 살면서 그 사실을 채 모르고 있다는 대답을 듣는다. 진실을 알기 위하여 자문을 구하였던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어처구니 없는 답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분노에 차서 그의 답을 즉각적으로 거부한다. 자신의 정신적 몽매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눈먼 상태를 조롱하며 그의 '앎'에 대하여 강렬한 불신을 드러낸다.
말해 봐라. 네가 한 번이라도 참다운 예언자임을 보여준 적이 있었더냐? 저 요사한 노래를 부르는 스핑크스가 이곳에 나타났을 때 너는 어디 있었더냐? 너는 그때 이 백성을 위해서 과연 무슨 도움이 되었더냐? 그 수수께끼는 보통 재주로는 풀 수 없는 것이었다. 예언자가 풀었어야 했지만 너는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새의 점도 신의 계시도 다 너를 돕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내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 무식한 오이디푸스가. 그리하여 새의 점이 아니라 나는 나의 지성으로 그 수수께끼를 풀고야 말았다.
이처럼 오이디푸스는 지성에 의지하여 테바이를 구했음을 자랑스러워 할 뿐만 아니라, 테이레시아스가 영원한 어둠 속에 사는 자로서 빛을 보는 자를 해치지 못한다며 조롱한다. 자신의 감각적 지각이 뛰어났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오이디푸스로서는 늙은 예언자의 해괴한 답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함과 지성을 굳게 믿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과 공모하여 자신을 음해하기 위한 의도에서 자신을 살해범으로 지목하는 것이라고 분노하기까지 한다.
이 같은 오이디푸스의 분노는 소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지식인들이 신탁이나 신들에 대해 회의적인 의문을 제기하던 지적 경향이 강력하게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저술에서 현저하게 드러나는 실험 정신과 낙관적 자신감은 조사를 통하여 얻어진 지식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론을 주창하는 자들은 발견하고, 드러내고, 명백히 하고 논증하며 가르친다. 그리고 이들은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을 비추고 의문이 있는 곳에는 명백히 함으로써 혼돈을 지양시킨다. 이러한 아테네 지식인들의 지적 혁신의 태도와 활동상이 오이디푸스의 감각적 지식론에 여실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신탁을 완전히 이해하는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이며 저주스러운 결혼을 한 자로서 소경 거지가 되어 쫓겨날 것이라는 예언을 반복하고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보지 못한 것을 알지 못하므로 그의 예언을 알아들을 길이 없다. 자기가 속해 있는 위치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통해서만 지식을 얻을 뿐인 인간의 속성이 오이디푸스에게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유일한 해결책을 발견하였다(heuriskon, 68)"고 극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듣고 본 사실을 근거로 하여 과거를 밝혀냄으로써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고자 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노력은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그는 테이레시아스나 크레온의 과묵함 혹은 조심스러움에 비해 주저함 없이 질문하고 추궁하여 의혹에 가려져 있는 라이오스 왕 살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phainen, 132). 그리하여 테이레시아스가 말했듯이 오이디푸스는 그가 찾는 자는 테바이 태생임을 밝혀내고(453) 또한 그 자신의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형제임을 밝혀낸다(457).
이렇게 하여 오이디푸스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고 또한 불명확한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게 되었다.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는 불명료하고 애매한 일을 다루는 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명백함을 추구하는 오이디푸스는 조사의 결과를 통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예비 지식은 없지만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발견하고자 하는 인간의 지성의 힘을 빌어 명백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발견하고, 드러내고, 명백히 하여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찾고자 했던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영감과 내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테이레시아스의 우연하고 예측 불가능한 지식을 부인하고 피하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 알게 된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순간에 오이디푸스는 그가 명백히 하고 확실히 하고자 하였던 사실에 실망하면서 "오, 오, 오, 모든 것이 명백해졌구나"하고 절규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태양의 빛이여 오늘 이후 그대를 보지 않게 하라…"고 하며, 자신이 찾고 있었던 것들에 대하여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자신의 눈을 찌른다. 말하자면 그는 지식을 담는 신체 조직인 눈에 자해를 가함으로써 마음의 눈이 멀었음에 대하여 통렬하게 자책하였던 것이다.
명징(明澄)함이 곧 진실이라고 생각하였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정신적, 청각적 능력까지 없으므로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비웃었지만, 이제 상황은 역전되어 오이디푸스는 자청하여 테이레시아스와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오이디푸스의 운명의 역전은 감각적 지각에서 도출된 지식에 근거하는 자기 확신이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소경이 됨으로써 그가 그 이전까지 신봉하였던 지식과 통찰력에 일격을 가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예언하였듯이 눈이 멀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본 바에 의하면 오이디푸스는 참혹한 운명을 통하여 감각적이며 추론적인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또한 내적이며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지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의 추론 활동은 결국 신의 진리 앞에서 '미망의 베일'을 찢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지식론, 즉 오이디푸스의 감각적 지식은 테이레시아스의 직관적 지식에 비하면 완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망의 소산이라고 보는 견해는 기원전 5세기 언어와 과학, 수사학의 발전에 대하여 과도한 프라이드를 가졌던 아테네인들의 휴브리즈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는데, 소포클레스의 이러한 지식론은 파르메니데스의 Monism, 일원론(一元論)을 강력히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은 감각 세계를 부정하고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진정한 지식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에 살았던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은 유명한 아테네인 제자를 몇 명 두었는데 소포클레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지식의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두었던 경건한 소포클레스로서는 아테네 사회에 팽배해 있었던 프로타고라스적 지식론, 즉 '인간척도론'에 내포되어 있는 위험성을 필경 인식하였을 것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에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고전학자들은 {오이디푸스 왕}에는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적 메시지가 많이 보이고 있다고 본다. 파르메니데스는 인간의 정신에 의해 작용되며 감각으로부터 도출되는 제한된 지식을 부정하고 직관으로부터 도출되는 총괄적인 지식을 존중하였는데, 오이디푸스의 자기 기만적인 지식은 전자에, 그리고 테이레시아스의 직관적 지식은 후자에 적용시킬 수 있다.
결국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제2의 테이레시아스가 됨으로써 진정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함은 소포클레스가 감각적 지각에서 도출되는 지식을 신봉하며 인간의 한계를 망각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교훈성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오이디푸스와 페리클레스
우리는 이제까지 스핑크스와 테이레시아스가 대변하는 신의 지식에 맞서는 인간의 지식의 파라데이그마로서 오이디푸스의 지식의 정체를 분석하였다. 오직 인간의 위치와 태도 및 행위에 관심을 두었던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신탁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비극적 운명은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고 맹목적이기 때문에 보다 본질적인 신의 지식에 나아가고자 하는 경건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던 소포클레스는 인간을 최고로 여기며 인간은 그 스스로 배운 자라는 사상이 정치 사상에도 깊이 침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기원전 443년 헬레노타미아와 기원전 441년에 스트라테고스 직(職)을 맡았으므로 당시 아테네 제국을 영도하던 페리클레스와 각별한 정치적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와 페리클레스의 정치적 관계가 각별하였다는 말은 굳이 양자의 관계의 친소(親疎)를 가늠하려는 표현이 아님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학자들 사이에서도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 대립된 견해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이어와 웨이드 게리는 양자의 관계가 친밀하여 소포클레스를 페리클레스의 최측근의 한 사람으로 여기는가 하면, 에렌버그는 페리클레스는 소포클레스가 스트라테고스 직에 취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오히려 소포클레스는 정치적으로 보수파로서 페리클레스의 반대파인 키몬의 지지자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된 견해 중 어느 편이 소포클레스의 정치적 입장인가 하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소포클레스가 헬레노타미아나 스트라테고스 같은 고위 공직에 피임될 수 있었던 것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민주정이 아마츄어쉽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가 특별히 정치가적 소질이나 관심이 없었다하더라도 시인으로서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만으로도 자격이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소포클레스에게는 신화 속의 위대한 왕 오이디푸스를 통하여 황금기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를 그려낼 수 있는 지적·정치적 이점(利點)이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야기된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상연된 {오이디푸스 왕}에서 아테네인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던 시인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에게서 페리클레스의 모습을 추론해 내고 궁극적으로는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를 통하여 아테네인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기 위하여서는 먼저 페리클레스의 지식론이 어떠했는지를 고찰하여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페리클레스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와 긴밀한 교우 관계를 가졌는데, 그의 위엄있는 풍모와 행동과 과학적 사고는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페리클레스의 지식은 과학적 이성주의와 낙관주의라는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과학적 설명에 의하여 인정되며 지식과 지혜에 기초하는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정신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페리클레스는 티케와 아낭케에 대신하여 순수하고 절대적인 지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였던 아낙사고라스처럼 지성의 힘과 효과를 확실히 믿었던 휴매니스트이며 리얼리스트였다.
이러한 페리클레스의 지적 태도는 국가와 사회의 이상적 형태에 대한 견해가 표명되어 있는 {추도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의 지적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페리클레스는 우연 이나 희망보다는 항상 자신의 판단 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줄곧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였고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지적 경향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발견된다.
아테네인 여러분, 펠로폰네소스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판단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사람은 전쟁을 일으키도록 설득하고 고무하는 감정을 그대로 실제 행동 때에는 지니지 못하고, 사태가 변하면 그 의견도 변하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전과 다름없이 거의 똑같은 권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견을 바꾼 여러분은, 우리가 비록 실패한다 해도 의회의 결의를 끝까지 지지해야 하며, 자기 주장이 옳았다고 자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우는 계획과 마찬가지로 사태의 결과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지성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진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운명의 힘으로 돌립니다. 페르샤군을 훌륭히 격퇴한 우리의 선인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물자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분들은 가지고 있는 것조차 내버리고 운이나 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용기와 계책으로 이어 족(族)을 격파하고 오늘날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선인들 못지 않게 전력을 기울여 적을 격파하고, 물려받은 것을 아무 손상없이 후세에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외에 그의 연설문 도처에서 그는 우연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이성과 훌륭한 의식을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페리클레스의 생각은 마치 오이디푸스가 지식의 힘으로 왕이 되고 자신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둘째, 페리클레스는 지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에 당면하게 되는 위험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면서 그 해결 방안으로써 '알고자 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점에서도 우리는 남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목적을 신중히 검토하는 자세와 그것을 과감하게 단행하는 능력을 아울러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남들을 보면 무지가 만용을 불러일으키고 신중한 생각은 망설이는 태도를 가져옵니다. 공포도 환희도 잘 알고, 게다가 또 위험에 겁을 먹지 않는 자야말로 참된 용자(勇者)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물 속의 개구리도 자만심은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우월감은 적을 알고 있는 자신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페리클레스는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였으며 알고자 하는 욕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므로 그가 {오이디푸스 왕}에서의 오이디푸스로 은유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페리클레스가 {추도연설}에서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도덕적·지적으로 완전한 폴리스로서 그렸을 뿐 아니라 전통주의와 종교적 신념을 배제했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추론의 개연성을 한층 더 강력히 뒷받침해 준다.
초기 소피스트들과 유사한 지적 태도를 지녔던 페리클레스는 '인간척도론'의 기본적 이념을 따랐으므로 그에게 있어서 종교란 인간의 문명과 사회 구조의 의미와 기능에 비추어 이해되어지는 요소에 불과하였다. 페리클레스는 공동체 전체 생활을 과학적이며 인간적인 정신에 따라 영위해 나가기를 원하였던 정치가였으므로 그 역시 오이디푸스처럼 지성과 인간의 힘을 과도하게 믿었고, 그럼으로써 성스러운 종교적 전통에 위배되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이와 같은 지식론에 입각하여 제국의 승리는 지성의 승리라고 갈파하였는데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이성 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정치사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 정책을 잘 알 수 있는 정치적 경험을 가졌던 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의 지식론을 비판하였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수십년 동안 아테네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던 폴리스들을 희생시키면서 부와 권력을 축적하였으므로, 제국의 막강한 힘의 우위를 확신하던 아테네인들의 휴브리즈는 스파르타를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폴리스는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세계는 영원한 신의 법률로써 다스려져야 한다고 믿으며 인간이 만든 이념이나 법률에 반대되는 이념과 행동의 기반을 중시했던 소포클레스는 전통적인 신의 질서를 거부하였던 페리클레스의 지식론이 가지는 위험성을 오이디푸스를 통하여 지적하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연은 신이요 physis는 노모스라고 여기면서 파르메니데스의 모니즘적 지식론에 입각하여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이성주의자들에 의해 휴브리즈의 함정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던 아테네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었던 것이다.
5. 맺는말
이상에서 오이디푸스의 지식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그가 실제로는 황금기의 아테네를 통치하였던 페리클레스가 극적으로 은유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추론하였다. 그리스 지혜의 산실이었던 계몽시대 아테네의 이성주의자들은 그들의 찬란한 위업은 당시 유행을 이루었던 상대적 지식론의 소산이라고 믿었다. 당대의 이성주의자들과 친밀한 지적 교우 관계를 가졌던 페리클레스는 이성을 통하여 알고자 하는 욕망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강조하였고 또한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였던 정치가였다. 그는 이성이나 추론이 전통적인 신앙심과 직관과 유기적으로 일원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전혀 유념하지 않았던 리얼리스트이며 휴매니스트였다. 그의 이러한 지식론은 결국 미망의 함정에 빠져 휴브리즈를 자초하였고, 그 결과 그가 이끌던 강력한 제국 아테네라는 함대는 이류 농업국 스파르타에 의하여 좌초되었다.
성스럽고 영원한 법인 쓰여지지 않은 법(unwritten law)을 통하여 신의 힘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믿었던 경건한 신앙심을 가졌던 소포클레스는 인간중심적인 지식론이 팽배하던 아테네 사회의 종말을 예감했을는지 모른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포클레스는 비극적 운명의 왕 오이디푸스의 알고자 하는 혼신의 노력을 극화(劇化)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지식은 비록 인간을 세계의 지배자가 되게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은 결코 같아진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자기 다리의 비밀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하여 진정한 지식에 눈을 뜨게 함으로써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인들에게 인간의 자기 기만적 지식에 대비하여 직관적이며 보다 근원적인 진리가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휴브리즈에 빠진 아테네인들에게 조화와 균형이라는 그리스적 이상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