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날의 해가 떠올랐다.
지금도 이 글을 올리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못내 아쉬운점이 많다. 더 많이 더 좋은 추억과 함께 사진을 찍을 걸 하는 생각이다.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그 정겨움이 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호텔이라는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바로 한국의 집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쉼을 얻을 마지막날이다. 물론 집이 좋다. 그러나 이럴때에는 떠나는 것이 아쉽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집의 편안함이 사라지니 조금은 떠나는 것이 싫겠지만, 일정의 마무리는 반대이다.
아침에 남은 파리의 모습을 둘러보고, 최종 종교개혁 및 경건주의 유적지 탐방의 마지막 도착지에 갈 것이다. 바로 칼빈이 출생한 노용이다. 파리에서 약 2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개선문이다. 거기에 샹제리제거리를 걷지 않고 왔다면 파리를 방문한 것이 아닐 것이다.
노용으로 떠나기 전 개선문으로 향했다. 여름의 파리는 파리거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여름행사를 위해 곳곳에 많은 준비를 하느라 그것을 못 본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행사를 위해 파리를 분주했다.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를 바라보며 우뚝솟은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정말 파리는 도시자체가 예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멋지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카페가 많다.
당당히 서있는 개선문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 위용에 다시금 놀랜다.
잠시동안 샹제리제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워낙 더운 날씨이고 짧은 시간이라 개선문 앞근처만 걸었다. 이것도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개선문을 마지막으로 파리시내에서의 모든 일정은 마치고, 노용으로 달려갔다.
사실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면 사람들은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하고 갈 것이다.
칼빈(칼뱅)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스위스로 망명하여,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하였던 인물이며, 종교개혁으로 이루어낸 성과에 '기독교강요'를 통해 기독교교리의 집대성하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프랑스가 가톨릭중심 국가이기에 칼빈은 루터의 자취를 잘 관리하고 선전하는 독일과 달리 초라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칼빈의 생가는 정말 조용했다. 마침 마을 축제가 있을 것 같았는지 분주하게 광장에 모여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용에는 칼빈의 아버님이 시무하던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모든 일정은 이렇게 끝나고 파리 드골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다음에는 편하게 찾아가서 보고 싶은 여정이다.
루브르박물관
역시 많은 인파는 그 유명새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매체에서만 보던 곳에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멋진 박물관이다.
모나리자상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잘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실제로 보는 작품에서 나도 그렇게 느꼈다^^
모나리자 그림
정말 인산인해였다.
한장의 사진을 찍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결코 사진찍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멀리서 찍어서인지 감흥을 느끼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잔다르크상
개선문을 향하던 차안에서 발견한 동상이다.
황금색으로 칠한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개선문
그 당당함에 놀라웠다.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샹제리제거리
관광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거리이다.
더워서 그렇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닐었다. 짧은 시간이라 일단 사진으로 만족해야한다.
느와용의 거리
한적한 시골도시였다.
여느 유럽의 도시처럼 아름다웠다.
칼빈의 생가
루터의 유적지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칼빈의 유적지의 초라함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신앙인이라면 다 알 것이다^^
느와용성당
칼빈의 아버지가 시무하던 성당이다.
조용한 마을에 위치했지만 그 위용은 당당했다.
내부는 들어가지를 못했다.
드골공항
인천공항보다는 더 넓다고 한다.
그런데 시설은 인천공항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