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녀 1남 가정의 막내이자 홀남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김해시에서 졸업했고, 신기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동네에서 좀 괜찮게 산다던 우리집은 부도가 났고 그 영향으로 인해 나는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 속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친구" 라는 그 어울림속에 끼어들기란 쉽지않아 어린 마음에 잘난 체를 하며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려했고, 그 것은 단기간동안 효율적이었으나 끝은 아름답지 못했고 결국 나는 학교를 중퇴했고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학교를 자퇴하고서는 한창 아이들사이에서는 네이트온이 거의 필수다싶이 했었고, 그 속에서 타인의 신상정보와 ID를 공유하면서 친구를 소개하는 문화가 한창이었다. 나는 그것을 약 3개월 간 즐겼고, 얼굴도 성격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재미난 대화, 실제 만남 등 그것을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14살을 보냈다.
부모님은 나에게 학업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고 풀어주시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얼씨구나! 하고 방황을 시작했고 그 방황의 늪에서 나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갔다.
내 나이 15살, 게임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짐을 싸고 집을 나섰다. 그 친구가 자신의 아는 누나들이 있다고 같이 가출을 하자고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약 3일간 시내의 15층 건물 14~15층 계단 사이에서 자고 식품점에서 입가심을 할 간식들을 훔쳐와 간간히 요기를 채우고 버티고는 했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자 우리는 허술한 찜질방의 옥상을 통해 무일푼으로 몰래 들어가서 생활하고 사람들이 반납하지 않은 키들을 주워 사용하고, 이 조차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힘들게 되자 17세의 나이였던 누나는 찜질방 컴퓨터의 프로세서를 삭제하는 방법으로 무료컴퓨터 이용을 할 수 있었는데, 컴퓨터를 통해서 원조교제를 시작했고 하루 6만원 가량을 벌어오던 그 누나 덕분에 우리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생활이 가능하자 방황은 더 깊어지고 대담해졌다. 집에 몰래 들어가서 돈과 식량을 훔쳐오기는 기본이고 배달을 대기하는 오토바이들을 몰래타고 도주해 그 오토바이 키로 이것 저것 쑤셔보며 장물을 훔쳐서 내다팔고 어린 나이에 수십만원의 돈을 만져봤다. 고작 15살의 어린 학생이 말이다.
결국 나는 이 생활조차 오래가지 못하고 집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잦은 가출로 인해서 부모님은 무언가 결단을 내리신 듯, 떨어진 이모의 집에서 24시간 집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감금 조취를 취했으나 사실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바로 다시 가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고 자연스럽게 장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사리 넘어갈 순 없었다. 결국 15살의 나이에 경찰서에 출석하고 진술서를 작성하고 부모님이 경찰서에 출석해 무릎을 끓고 사과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눈물" 이라는 단어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하지만 그 것은 로망일 뿐 잠시 정신을 차린 듯 하였으나, 나의 방황은 다르게 이어졌다.
16살의 나이에 검정고시 학원을 등록했고 새 삶을 사는 듯 하였으나, 그 학원에서 친구를 한명 알았고 그 친구와 매일 매순간을 함께 했고, 당시 아는 형이 일하고있던 편의점에서 팔린 물품을 환불 처리하고 돈을 빼서 챙기던 수법으로 한달 간 약 200만원 가량을 훔쳤고 당연히 출고정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들키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경찰서로 또 다시 직행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몇십만원이 아니라 2000만원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경찰서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곧 바로 검찰청으로 인계되고 소환날짜가 정해졌고 나는 우리집의 형편을 알기에 그 합의금을 채워주지 못할 것이라는 어린 판단으로 인해 서울로 도주해 살기를 결심했다.
어머니는 만만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결심한 듯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농에서 모아두신 40만원의 돈을 꾸깃꾸깃 나의 손에 쥐어주시며 현관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럽게 우셨다. 정말 서러워보였다. 가슴이 정말 한 없이 시리고 아팠다.
결국 서울로 도주한 지 4일째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도망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우선 내려와서 선처를 빌고 그게 안된다면 그 책임을 닳게 받고 정신 좀 차려라 이 새끼야" 라고, 그 얘기를 듣고서 나는 다시 나의 지역으로 출발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아버지가 차를 몰고 나와계셨고, 그 합의금을 명목으로 아버지가 타고다니시던 자가용을 팔았다. 당시 합의금 명목으로 400만원을 요구했고 그 것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이후로 스스로 다짐했다. 다시는 집 밖을 나가지 않기로 그리고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또 다시 장애물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 것은 바로 첫사랑이었다.
16세의 나이에 만난 첫사랑은 역시나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시작부터 술로 시작해서 약 1년간의 연애를 했고, 그 동안 검정고시도 합격했고 고등학교도 진학했다. 서로 많이 헤어지고 힘들어했지만, 그 덕분에 조금씩 성장하고 바른 길로 서로를 인도할 수 있었다.
반대로 헤어질 때 마다 서로 극단적이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1주일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진학 후 결국 3일만에 다시 학교를 중퇴했다. 친구들은 너무나 아쉬워 했으나, 사실 나는 연애 때문에 힘든 것과 학교에 적응이 되질 않아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17세,18세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전 여자친구를 잊기위해 그 사이에 2명의 여자를 만났다.
첫번째 여자는 동갑의 나이지만, 바에서 일하는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그 것을 알고도 나는 이해하고 만났다 사실 많이 외롭고 힘들었기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여자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두번째 여자를 만났다 한 살의 연상의 누나였다 이 연애도 1달도 가지 못한 채 싱겁게 끝나고 결국 1년간의 연애를 했던 전 여자친구를 만났으나 이 조차도 1주일만에 끝났다.
18살이 되고서도 몇개월 간 전 여자친구 때문에 폐인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사람이 너무 그리웠으나, 그 기회가 나에게는 없는 것 같았고 "진짜 친구" 가 아닌 "놀기좋은 친구" 마저도 전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모두 연락이 끊긴 상태였고 결국 나는 게임에 의지했다.
게임에서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현실과는 다르게 나를 인정했다. 나는 외모가 꾀 준수한 편인데 게임에서 이 것을 빌미로 삼아 여자친구도 사겨본 적이 한 번 있었으나, 몇 번을 만나도 별 감정이 없어 서로 원해 헤어지게 되었고, 18살의 나이의 반을 남겨놓고서 게임과 인연을 끊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부터 약 4개월 전까지 나는 뒤늦은 자아를 느끼기 시작했고 엄청난 혼란속에 힘들어했다.
배워둔 것 하나 없고, 제대로 의지할 친구 없고, 가족들과 대화는 없는 편이고, 게임도 슬슬 끊어가고 있었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그리울 정도였는데, 그 시기에 나는 나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19세의 나이에 검정고시 학원을 다시 찾았고, 나는 또 다시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4월과 8월에 시험이 있는데 하필이면 4월 시험날과 누나의 결혼식날이 겹쳤다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누나의 결혼식으로 직행했고, 다음 시험준비는 기필코 열심히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시험 날 바로 이 글 작성일 2일 전, 시험 시작 2시간 전 급히 벼락치기를 시도했다, 도덕과 가정 그리고 국사 이 세가지 과목의 요점만 빠르게 암기하기 시작했고, 운이 따라줘서 평균61점의 점수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사실 노력보단 운이었다 아니, 노력은 없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현재 평소에 대학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의 지원을 통해서 직업훈련을 받고 적성에 맞는 직업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을 하면 남들처럼 그저그렇게 살거라는 평탄함을 기대했으나, 알아볼수록 좌절스러웠다. 수능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나는 많은 것을 알아보고 검정고시 학원의 수능 종합반의 수강료를 확인했다. 한달에 50만원이고 첫달은 반값 할인, 그리고 6개월 이상 한꺼번에 결제시 10% 추가할인.
25만원, 첫달 수강료다 우물쭈물 하다가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에 쫒기는 듯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니가 그동안 신뢰가 있었어야지 학원 보내주면 잘 나가지도 않고 하니까 아빠가 보내주겠냐" 는 말에 틀린 말은 없다고 생각했고, 수십번도 들은 말이라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그래서 학원비라는 명목이 아닌 그냥 아들의 시기어린 투정이라고 생각하고 용돈을 주듯 25만원을 내어달라, 그리고 이 한달간 나도 수능공부를 해보면서 가능할 지 몸소 체험해보려고 하니까 그 한달간의 진행과정과 결과를 지켜본 후 추후 등록을 고려해봐도 좋다. 한달만 학원을 보내줘라" 는 나름 일리있는 이야기로 설득을 시도했고, 돌아온 대답은 "그리고 떠나서 25만원이 지금 없다. 못 믿겠으면 통장을 봐라 진짜 25만원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못 보내준다" 사실 이런 사정을 잘 알지만 25만원의 여유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얘기를 꺼냈다.
19살의 나이에 25만원의 돈을 직접 준비할 수도 있었고, 집의 사정이 정말 어려운걸 잘 알면서도 갑작스럽게 수능학원 등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한 나의 책임도 물론 알기에 그리고 내가 그동안 깨놨던 신뢰라는 것의 책임에 대해 잘 알기에 이해는 했으나, 섭섭했고 결국 "그래 돈이 없어서 못 보내주는건 잘 알겠고 이해하는데 그래도 신뢰가 없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마라 어떻게 다른것도 아니고 공부하게 25만원만 지원해달라는 말에 꼭 마음먹은 아들한테 그렇게 의욕 떨어뜨리는 이야기를 해야겠냐"고 이야기했고, 결국 작은 다툼을 벌인 후 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공부에 살짝 흥미를 느끼고 있고, 수능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평소처럼 내 탓을 하려니 오늘따라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이 곳에서 넋두리로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읽어준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