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이제 나는 너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만큼 잘해주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날 다시 더 좋아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게 잘 되든 안되든
미련두지 않고 헤어질거다
너를 만나면서 자존감이 너무 없어져서
나는 이제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받을 줄은 모르고
사랑해줄 줄만 아는 사람인 듯이 생활해와서
내가 너무 불쌍해졌다
너를 만나면서 나는
마음껏 사랑을 줘 놓고도
내가 준 걸 아까워하고 아쉬워하게 됐다
너는 내가 곱게 키워온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돌려줄 줄은 모르는 아기같은 사람이라서
내가 주는 사랑에 기대서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너희 집에 가기 위해 40분 넘게 버스를 타는데
너는 이런 저런 핑계로 날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5분마저 꺼려한다
너는 나한테 어떠한 이벤트도 해 준 적이 없고
10개월을 만나는 동안 꽃 한 송이 사준 적도 없다
아무런 일도 없이 날 집까지 버스타고 데려다 준 적은 단 한번
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줄 때는 늘
날 데려다 주고 집에 가는 길이 힘들다고 불평했었고
요즘은 내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이 니 할일을 하느라 답장이 느리다
마치 너 혼자만 이세상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인듯이 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데
난 여태 그런 것에 별 불평 없이 늘 걱정하며 들어줬었다
하지만 넌 내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는데도 걱정 한마디에 인색했었지
다른 보통의 남자친구들처럼
내가 덜 아플 수 있게 약을 사다 준다거나
날 걱정해서 집에 찾아오는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날 걱정하는 마음이라도 표현해주길 바랬는데
넌 무뚝뚝한 남자라며 그냥 넘어갔다
넌 가까운 사람일수록 좋아하고 아끼는 표현을 하는게 어렵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소중히 대해져야 할 니 여자친구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니 기분이 상했거나 화가 나는 것에 대한 표현은 너무나 잘하는 니가
내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감정같은 걸 표현하는 데에만 그토록 서투르다는걸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보다 보통의 남자친구들이 다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너한테 기대조차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는 자존심 상하지도 않니
나는 사랑받으며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랑할만한 교양있는 부모 아래에서 자라서
어딜 내놔도 사랑받을 만한 여자였고
눈치보거나 재지 않고 마음껏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내 이득을 취하는데 있어 둔하고 남에게 잘해주는 걸 더 우선으로 생각하던 아이였지만
널 만나고 난 뒤 나는
마치 나라는 여자는 이만큼의 사랑밖엔 못받는게 당연한
그 정도밖에 안되는 여자처럼 여겨지고
내가 이만큼 해줘도 너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을 해주니
나는 내가 주는 사랑을 아까워하고 아끼게 되었다
내가 사랑을 더 주고 더 잘해주고 싶어도
너는 내가 그렇게 잘해주는게 그저 당연한 줄만 알고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게 너한텐 그냥 부담스럽고 과한 이벤트인가 싶고
그래서 점점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게 되었다
나는 너와 만나면서 사랑받는 여자라기보단
그저 니가 독립한 이후 가정을 떠나 살면서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주는 사람으로만 살게 되었고
그게 당연해졌다
그리고 사귀는 내내 나는 니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안삼았고
너를 치켜세우고
오히려 나 자신은 내팽개쳤다
나는 지금 너에게 받고 있는 조금의 사랑조차 없어질 것에 두려워하며
니가 마다하는데도 바보처럼 내가 너에게 잘해줘야 마음이 놓인다
남자친구 집에 가서 편안히 앉아서
남자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남자친구가 다 치울 동안 멍하니 컴퓨터를 하다가
다 치우고 오면 잘 먹었다 인사하고
그러고도 사랑받는 일이 내겐 어렵다
나는 너의 집에 가서도 내가 밥을 차려야 할 것 같고
밥 먹고 나서도 내가 그릇을 치워야 할 것 같고
반찬 만드느라 어지럽힌 그릇을 내가 설거지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집에 니가 왔을땐
너혼자 먹을 밥을 차리는데도
내가 밥을 차리는 동안 너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티비를 보다가
내가 불러서야 먹으러 왔고
다 먹고 난 뒤 내가 치우고 설거지하는 동안 또다시 편하게 누워서 놀면서도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우리가 여태 만나는 동안의 우리 관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잘해주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해서 발을 굴렀고
너는 아무것도 안해주면서도 그게 당연한 듯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너는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안해줘도 되는 여자라서
그래서 편안해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같이 만나면서 너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이벤트나 선물에는 물론이고
데이트 비용도 내가 조금 더 내는 식이라서
그냥 너는 정말 부담없이 날 옆에 두고 있는거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나한테 잘해주면 나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너무 행복해하고
조금 못해줘도 서운해할 뿐 절대 헤어지자고 하지 않으니
너로써는 나한테 자주 잘해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제 지쳐서
이제 너한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며칠 전 너와 싸우고 내가 집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니가 날 잡아줄 줄 알았고
그렇게 가버리는게 어딨냐고 말해줄 줄 알았고
다시 와서 앉아서 얘기하라고 가라고라도 해줄 줄 알았다
너는 그저 내가 가버린 것에 기분이 나빠서 보란듯이 나보다 먼저 가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날 잡아주러 와주는 줄 알았던 바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얘기하고 나온 뒤에 너는 나한테 할말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할말이 혹시 헤어지자는 말일까봐 마음 졸이는 병신이었다
지금 이걸 쓰면서 난 마음이 너무나 아픈데
내 자신이 불쌍해서 마음이 아픈 것 같다
나는 이제 너와 헤어지고 나면 다신 좋은 사람 못 만날 것 같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너랑 헤어지는게 힘이 든다
하지만 난 꼭 그래야 하고
헤어진 다음 내가 얼마나 불행해지든 간에
지금보단 덜 불행하겠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보고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사랑이 깊어도 이유 없는 헤어짐은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이란게 아무 노력 없이도 움직일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사랑도 기억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