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주의 하지만 읽어주세요 ※
1. 독도는 울릉도에 속한 섬이 아니다.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에서는 독도는 울릉도에 속해있다 라고 이미 100여년전에 표기한 바 있다. 또한 시마네현에 독도가 편입되기 이전에 100년정도 전에는 이미 강원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지정이 되있어 독도는 울릉도에 속한섬이며,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 의하면 '자국소속도서 독도가...'로 시작하였는데 이미 100여년전부터 확실하게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섬임을 확인시켰다.
2. 독도에 관해서는 한일양국 간에 아무런 조약이 없었다.
한일 양국간에 특별한 조약이 없으며, 김대중정권당시 수역협정을 맺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독도가 일본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제국 패망, 한국의 해방후 UN총사령관의 지시하에 한국의 섬들 제주도, 울릉도, 독도 등을 일본 영토에서 제외시킨다고 하였다.
<SKAPIN 제 677호>
3. 독도의 존재는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독도의 존재가 문헌상으로 나타난 때는 지증왕 13년인 512년이다. 이곳을 우산도라고 표기하였다. 당시 우산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아우르는 언어이다. 그러나 일본은 우산국은 울릉도만을 소지한 소국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황실지리학자인 당빌이 1732년 조선왕국 전도에는 우산도(독도)는 한국의 땅이라고 표기 및 그려져있다. 이 그려져있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표기되어있다고 한다면 일본의 억지주장에 따라서 묵살될수도 있다. 그러나 우산도(독도)를 그린것은 확실히 조선왕국전도에서 독도가 당시 조선의 지배하에 있었고 신라시대에 사용된 우산국이란 단어는 확실히 독도, 울릉도를 아우르는 표현이 되는것이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우산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쓰여있어 일본의 역사서에서 512년 이전에 독도에 관한 글이나 유적은 없으므로 한국이 일본보다 독도의 존재여부를 더 먼저 알고있었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울릉도를 무릉도라고 표현하였다.)
4. 한국의 유명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나오지 않는다.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나오지 않는것은 사실이다. 또한 김정호가 돌아다니며 만든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 돌아다니며 만든것은 극히 일부로, 대동여지도는 이전의 다른 지도들을 규합하여 조정한 끝에 만들어진것이므로, 오류가 많을 수 있다. 또한 독도가 당시 왜구의 침입이 있어 김정호가 갈수 없었거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아래에 동양에 나타나는 서양의 배들이 많아짐에 따라 그곳으로 못 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김정호가 백두산을 7번 올랐다는것은 거짓으로, 일제때에 '희가 이정도로 무지했으니 우리에게 지배당한 일이다'라고 써먹으려고 한 짓이다.
5.시마네현이 독도를 일본 영토를 편입하기 이전에 일본 어민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에 맞지 않는다. 위에도 언급했듯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을 정복하여 신라어민이 우산도에서 배를 몰아 고기잡이를 할수 있도록 한것이 문헌상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야마토 정권으로 일본이 찢어져서 싸우던 시대였는데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섬에서 일본이 독도까지 갈 여유가 있었을까? 이러한 기준으로 보아하여 신라의 어민들이 더 일찍 독도를 실효적으로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태종때에 독도에 공도정책을 실시한 이유는 독도지방까지 일본해적이 다녀갔다는 소리가 된다. 일본어민들이 뭐하러 해적들한테 물건 털려갈려고 독도까지 갔을까? 내생각으로 미루커보건데 일본어민들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경영했다기보다는 일본해적들이 독도를 여러번 약탈해갔다는 소리가 더 알맞을 듯 하며, 해적들이 한 섬을 약탈하여서 그 섬이 해적국(여기서는 일본을 말한다)에 소유한다는 역사적 사례는 없었으므로 이것또한 억지이다.
6. 사람이 살지 않고 주인없는 땅인 독도를 먼저 영토에 편입시켜 세상에 알린 것은 일본이므로
선점권에 의하여 국제법상으로 일본의 영토이다.
선점권으로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러일전쟁당시 일본이 침탈한것으로 하는것이 더 옳을 것이다. 울릉군수 심흠택이 정부에 보고서를 올린것을 보면 자국소속 도서 독도가...로 시작하여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불법이다.(물론 당시에 일본어민들이 한국 해역에 올수 있도록 한것은 사실이나 한국 영토를 자국영토로 편입 시킨다는 조항은 없기에 이 주장 또한 논리적 근거를 잃을 수 밖에 없다.)
7.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국에 반환해야 할 섬들의 이름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주장도 위에 내용에 대입시켜보면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반환해야 할 섬들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영토에서 독도등의 섬들을 제외시킨다는 것을 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일 국가적 조약이지만, 일본영토에서 독도등의 섬들을 제외시킨다는것은 국제적인 일로 독도는 확실히 일본영토는 아니며, 우리의 역사적 근거와 지리적근거, 국민의 여론등을 구체적으로 들어 조약에 대해 말해 본다면, 조약을 폐기 시킬수는 있으므로 자연히 일본영토에서는 제외되며, 우리영토의 편입에 대한 가능성은 있으며, 현재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있으므로, 우리에게 유리한 주장이 될 수 있다.(그러나 국제재판소 경험이 있는 일본에게 이러한 것을 먹혀들게 하려면 우선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불평등 조약인것을 밝혀야 할것이며, 판정법에 갈등이 있는 지역을 각 국민의 여론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제도를 채택해야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일본이 중학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것을 넣었으니 우리또한 대마도는 우리땅이라는것을 하여 똑같은 행동을 해야할 것이다.)
8.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된 이후인 1952년에 미.일 안보 합동위원회가
독도를 미국 공군의 폭격연습지로 선정한 것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기초 위에서 취해진 조치이다
그러나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우리의 어민이 300명 희생되어 폭격연습지가 바뀌었으므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생각은 여러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위의 여러 해결방안을 통하여 현재 일본을 지지하는 미국을 중립적으로 바꿔놓다거나, 이벤트를 연다거나,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일본의 영토라는것이 기초위에서 취해진 조치가 아님을 미국을 통하여 밝혀야 한다.
[출처]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가 일본땅인 이유|작성자 역사탐구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백 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오징어 꼴뚜기 대구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 칠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땅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
러일전쟁이후에 임자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출처] 대한민국 땅 독도, 반드시 지켜야합니다.|작성자 연우준우맘
일본아 독도지키고있는거 우리다 건드리지마라 - by.울엄니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근거
1. 고구려는 중국영토인 졸본에서 건국되었고 중국 영토인 송화강에서 멸망하였다.
2. 고구려는 중국의 황제책봉을 받았다.
3. 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출신이었으므로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가 아니지만, 발해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출신이었으므로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이다.
4. 광개토왕부터 안장왕까지만 해도 고구려는 중국에 엄청난 수와 양의 조공을 바쳤다.
5. 현재 고구려·발해의 후손은 남아있지 않다.
필자의 반박
1. 만주가 중국의 영토가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시절이 아니다.
만주가 중국의 영토가 된 것은 청나라때로, 길어야 3~4백년에 불과하다. 오히려 단군조선시기부터 대발해국까지 만주는 우리의 영토였으며, 고려 공민왕 시절에도 북진을 하여 1여년동안의 짧은 세월이지만 만주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안장태왕, 문자명왕은 계속해서 북진책을 펼쳤고 말기 영양태왕때도 동서 6천리로 영토가 넓어졌다. 발해도 선왕시절 영토가 넓어져 해동성국이라고 불렸고, 고려는 강동 6주와 동북 9성을 포함하여 영토는 전기간에 걸쳐서 조금씩 넓어졌으며, 조선도 4군 6진과 나선정벌로 인하여 영토가 넓어졌다.
2천여년동안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이 아닌 아랍인의 땅이었고, 1948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세웠다.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대로라면 아랍인의 땅에 세워진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의 역사라고 표기해야 한다.
2. 동아시아의 관례
고구려는 b.c.37 건국되서 d.c 668년 멸망했다. 그 사이 중국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한, 삼국, 위진, 5호 16국, 남북조, 수, 당으로 이어졌다. 고구려 일부 왕은 중국의 황제 책봉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속국이나 지방정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또한 당시 중원보다 강했던 돌궐이나 토번도 중국에게 황제 책봉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토번이나 돌걸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사서는 왜곡이 상대적으로 심하다. 예를들면 신대왕 시절, 명림답부가 후한군의 10만대군을 5천명의 결사대로 격파하여 후한군이 전멸한 '좌원대첩'이나 보장왕 시절, 연개소문이 당군의 20만대군을 3만명의 군사로 격파하여 당군이 전멸한 '사수대첩'은 <삼국사기>엔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 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외에도 살수대첩, 매소성전투, 기벌포대첩 등이 기록되지 않거나 우리나라 군이 전멸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으로 고구려 태왕이 중국의 황제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3. 고려는 명백한 고구려의 계승국
고려는 명백하게 고구려의 계승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왕건은 신라 장군이었고 신라를 멸하고 고려를 건립했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역사왜곡이다. 필자의 포스팅을 여러번 본 사람이라면, 고구려 20대 태왕 장수태왕 시절 고구려가 고려로 국명을 변경했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왕건의 국가도 고려이다. 나라명이 똑같은 것이다. 국명만 봐도 고려 = 고구려 계승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발해 태자 대광현이 고려로 귀순하자, 신라인의 귀순과 똑같이 대우하였다.
역시 필자의 포스팅을 여러번 본 사람이면 지겹도록 알 듯한 고려·거란의 1차 전쟁 (993)때 서희와 소손녕이 한 담판도 근거로 해석이 가능하다.
소손녕 - 그대들의 나라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으며,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오. 그런데 왜 압록강 유역을 넘보는 것이오?
서희 - 그대의 말은 틀렸소.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했소. 국호를 고려라 한 것만 봐도 모르겠소? 그대들의 이치대로라면 옛 고구려의 땅이었으니 거란의 땅을 대부분 내 놓아야 할 것이오.
또한 서병국 교수는 왕건이 고구려 고씨였다는 사실을 제기하였다. <신오대사>에 의하면 당 말기에 일어난 혼란에서 고구려 유민이 자립하여 국가를 세웠고 그 나라 국왕이 고씨였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후당 장종때인 923년, 국호와 왕이 상실되어 있는 이 나라가 후당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서병국 교수는 이 왕이 태조 왕건이라고 주장하였다. 2005년에는 북한 학자들이 고려 태조 왕건이 발해 유민 출신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4. 조공을 바쳤다고 속국이나 지방정권은 아니다.
다음으로 조공을 바쳤다고 속국이나 지방정권이 아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약 5천년동안 동아시아는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나라가 바뀌게 되는 20세기 초 (러일전쟁시기)까지 조공이 있었다. 동아시아의 관례라고 볼 수 있다.
광개토태왕부터 안장태왕까지 고구려왕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친 이유는 바로 외교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이거나 중국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중국왕조와 주변국가들이 조공관계를 맺으면 중국왕조는 여러가지 불평등한 것들을 내밀었는데, 장수태왕이 즉위하던 남북조시대에는 그런게 힘들었다. 그 와중에 장수태왕은 북위에 조공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남북조시대의 송, 제, 양, 진과의 전쟁을 불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광개토태왕부터 안장태왕까지는 391~531까지 140년의 세월이었는데, 중국은 그때 남북조시대였다. 북위에 조공을 하면 송, 제, 양, 진을 무시한 것이었다. 장수태왕은 북위에 43번의 조공을 했는데 송과 제를 합치면 4번에 불과하다. 국가의 이득과 중국과의 전쟁을 위해서 조공을 바쳤던 것이다. 반대로 고려시대의 송과 요 같은 경우는 고려에게 조공을 간혹 바쳤으니 중국의 속국이나 지방정권인가?
5. 고구려·발해인의 후손은 일부 존재한다.
고구려가 보장왕때 멸망하고 대부분은 당에 끌려갔지만, 신분을 감추고 신라로 건너간 성씨도 있다. 대표적으로 진주 강씨가 있는데, 살수대첩의 숨은 영웅 강이식 장군의 후손이다. 현재 약 1백만명이 있다. 또한 신천 강씨도 있다. 고구려 출신 신라의 장군 강호경 장군이 시조이다. 현재 약 4만명이 있다.
아예 대놓고 고구려 왕족 후예인 사람도 있다.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인 고인승이 시조인 횡성 고씨가 필자가 말하는 주인공이다. 발해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을 시조로 하는 영순태씨도 있고, 협계태씨·밀양대씨·남원 태씨는 영순태씨에서 갈라진 성씨라고 한다.
학자 출신으로는 고구려 영양태왕때의 태학박사인 이문진을 시조로 하는 익산 이씨가 있으며, 고려 29대 충목왕때인 온신은 온달 장군의 후손이면서 봉성 온씨의 시조이다. 고려 17대 인종때는 묘청의 난을 진압할때 목천 돈씨를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을지문덕 장군의 후손이 목천 돈씨이다. 6·25 전쟁때 상당수 월남했다고 한다. 무송 유씨는 중국 동진때 고구려에 왔다가 정착한 유순우의 후손인 유금필이 후손이며, 북원 선우씨는 마한 원왕의 아들이 고구려로 귀순하여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근거에 대한 반박|작성자 CSH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사 등록 : lsj8**** 님 / 가사 수정
동북공정으로 발해는 지네꺼 백두산 반은 지네꺼라하는데 발해 우리나라 역사고 백두산은 북한이 일부넘겼으니 어쩔수없지만 니네꺼라고 말하지 마라 애국가가 빡친다 - by.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