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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파(친한파) 사람들

ㅅㅅㄴ |2012.09.05 20:10
조회 3,868 |추천 3

<근대,과거>

 


 


김충선

임진왜란때 귀화한 일본 장수. 본명은 사야카

사이카 마고이치란 설도 있지만 나이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적고 그 휘하의 철포 용병집단인 사이카슈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여문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항왜 장수.

원래의 이름은 요여문(要汝文)이었다. 투항한 일본인을 후대한다는 말을 듣고 투항을 결심하였다. 투항한 후에 귀화하였으며, 김충선과 함께 대표적으로 활약한 항왜 장수였다. 검술에 무척 능해 조선 조정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보통 왜인이 아니니, 대우를 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영국인 언론인

열여섯 살 때부터 일본에서 살다가 1904년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원래는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종군기자로서 입국. 하지만 곧 일본에 침탈당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일본의 침략상을 고발하는 대한매일신보를 양기탁과 함께 창간했다. 당시 체결되어 있던 영일동맹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일제에게 치외법권을 내세우며 저항하였으나, 일본이 직접 영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면서 결국 벌금과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재판 과정에서 건강을 해쳐 향년 37세로 사망. 합정역근처의 양화진 외국인 무덤에 안장되었다.

조지 쇼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당시 자신의 조국인 아일랜드와 똑같이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을 동정하여 이륭양행이라는 무역선박회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도 겸하도록 허가해 독립군의 자금을 운송하는 것을 도왔다.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

러시아의 외교관. 1884년 조선-러시아 통상조약 체결에 참여하고 조선주재 러시아 공사로 부임. 고종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에도 관여하였다. 러시아 재무상 비테는 그를 가리켜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 같다."고 평가했다.

탕지야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로로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프랭크 스코필드

제암리 학살사건을 폭로한 캐나다인. 그 외에도 여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외국인이 되었다.


후세 타츠지

일본의 변호사. 재판에 기소된 독립운동가들을 수차례 변호했다.



호머 b 헐버트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한국명으로 '흘법','할보'.

미국인 선교사였으며, 1886년 길모어, 벙커 등과 함께 조선에서 육영공원에 교사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이 때 외국 서적의 번역 작업과 외국에 대한 한국 홍보 활동을 벌여 많은 서적과 기사를 번역, 저술했다.

이후 고종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으로, 한국의 자주독립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특히 1905년 미국 대통령에게 밀서 전달,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한 사전 작업(이로 인해 '제 4의 특사'로 불리기도 한다) 등이 유명하다.


<현대>



거스 히딩크

한국명 희동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하 200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맡아 4강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많다.

2002 월드컵에서의 공로로 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최고의 체육 훈장인 청룡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레알 베티스 같은 팀에서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는 등 자신의 감독 커리어 중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의 4강 신화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히딩크가 대한민국에 대해 유독 각별한 애정을 표하는 것을 단순한 립서비스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지 않았더라면 자칫 한물간 3류 감독 신세가 될 수 있었기 때문. 거기에 각종 상금과 CF 출연료 등으로 거액의 돈까지 벌어들였으므로 대한민국 활동을 통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존재하는 외국 국가원수 전용 비밀 출입문을 이용한 유일한 비국가 원수. 생각보다 한국에서의 위상은 상당히 대단하다.



다카하시 아이

아이돌가수. 전 모닝구 무스메 맴버.

2010년 초부터 라디오로 "마이붐은 한국"이라고 선언. 2011년 6월 현재 블로그 프로필 상에도 빠져들어 있는 것, 여행가고 싶은 곳 항목이 한국으로 되어있다. 아저씨 팬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 좋아한다고 하면 싫은 소리하는 인간도 분명히 있는데도 직설적으로 한국에 빠져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프랑스 소설가

한때, 개미가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대박 터뜨리면서 덩달아 다른 곳에도 알려진 케이스. 그래서 소설에 한국 사람을 등장시킨다던가 하는 등 나름...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한국팬에게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성룡

무명이었던 젊은 시절에 한국에서 머물며 한국 홍콩 합작영화를 몇편 찍었다. 덕분에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한국어쓰면 성룡모르는사람은 진짜한국인인줄 오해할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홍콩 구룡반도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프린팅과 함께 그의 사인이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적혀있는데, 이중 하나가 한글.

한국에는 불국사나 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되면서 지내게 되었고, 이 당시 한국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 그리고 안 남기고 다 먹는다!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이 당시 한국 여자를 사귀어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으며 한국어도 그 덕에 배웠다고 하는데, 장발 단속에 걸렸다가 한국어가 능숙해 도리어 중국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냐며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우스이 요시토

만화가.

크레용 신짱이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을 매우 좋아하며 단골 한국 음식점도 있다고 한다. 부인도 대단한 한류 팬이라고. 실제로 노하라 미사에가 열심히 보는 겨울 찬장은 겨울 연가의 패러디다.

또 실제로 노하라 일가가 한국으로 여행을 온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국에도 여러번 방한했다.

김혁의 글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듣보잡된 지방 애니 관련 페스티벌에까지 참가한 적도 있는데. 우스이 이 사람 하나 덕에 그 행사가 실속을 차렸을 정도였다고 한다.(다른 해외 애니 유명인이나 심지어 한국 만화가들까지도 불참했던 거와 달리 그가 참가하면서 사인회를 여러번 가졌을 정도라고...) 덕분에 관계자들이 밥에서 숙박비 그 모든 걸 죄다 부담하면서도 고마워했던 일이 있다.

유우키 히로

남성 성우. 친한파로 유명. 한국에 가장 많이 방문한 일본 성우로, 언젠가 인터뷰에서 한국에 방한하는 성우들 대부분이 자신이 권해서 가보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카리야 테츠

일본의 만화 스토리 작가, 에세이 작가.
맛의 달인의 원작자이자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걸출한 천황까 작품을 쓴 사람.

맛의 달인은 일식을 중심으로 하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 대해서 대단히 정치적으로 배려가 잘 돼있다. 일본의 전쟁중, 학살과 만행에 대해서도 대부분 인정하고 비판한다. 이런 점은 한국편에 잘 나타나 있다.






쿠라시나 카나

예능프로인 2010년 9월 16일자 구루구루 나인틴나인에 출연해서 밝힌 이상형은 한국의 배우 공유.
개인 블로그에도 수시로 한국어를 공부 중이라고 올리며 직접 쓴 한국어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문장은 "수고하십니다." 열성적인 한국 매니아이다.


친한파 연예인으로 한국 여행을 다녀온 후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 취미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여자배우들이 귀여워 보인다고 한다.

쿠사나기 츠요시

아이돌 그룹 스맵의 맴버

일본 연예인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친한파(한국에선 친일파란 단어가 워낙 이미지가 나빠서 지한파라고 부르기도 한다)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항간에는 한국을 좋아하는게 기믹이라는 말도 있지만, 바쁜 스케쥴에서도 한국에 오거나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등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진지한 모양.


코지마 히데오

게임 디렉터

박찬욱 감독의 소문난 팬으로도 유명하다. 본인은 올드보이 때 처음 보고 팬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후 박찬욱이 친절한 금자씨를 촬영하던 도중, 방한해 개인적인 면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 외에 박찬욱이 메탈기어 솔리드 3의 발매 축사를 써주기도 하고, 메탈기어 솔리드 4 시사회 때 박찬욱을 초청하는 등, 나름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2010년 박쥐 일본 시사회에도 초청됐다고 한다. 이 둘이 만나서 코지마가 뭔 영화 음악을 중얼거려봤는데 박찬욱은 단번에 그거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프로폰도로쏘" (영어 제목은 딥 레드 , 일본과 한국 비디오 제목은 서스페리아 2) 음악을 단번에 맞추면서 둘이 웃기도 했다.

이렇듯 코지마 감독은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MGS3 EXTREME BOX소책자에서는 내한 당시 MGS3엔딩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한국팬들의 소감을 듣고 한국인은 동족상잔의 비극(6.25와 이후 휴전상황)을 겪었기에 혈연보다 더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 더 보스와 스네이크의 대립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도 깊은 것 같다고 서술한 바 있다.

2008년 7월 내한 당시 공항에서 환영하는 팬들의 코지마 콜을 녹음하여 라디오에서 들려주며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뜨겁게 이야기하였고, 2010년 5월 내한에서는 환호하는 팬들의 사진을 찍어 그 자리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뒤 폰을 차창에 갖다대서 모두에게 보여주는 등 극한의 팬서비스를 자랑한다. 아트 디렉터인 신카와 요지 또한 이벤트에서 팬들을 무척 잘 챙겨준다.






하마사키 아유미

팝가수. 동방신기의 팬이라고 본인이 밝혔으며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보는 편이라고 한다.

히로하시 료

여성 성우.

카레이도 스타의 인터넷 라디오 일명 스고라지 진행 당시 한국팬들로부터 많은 응원 메일을 받아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다.....라고 적혀있는데, 스고라지 1화를 들어보면 '가고싶은 나라'를 말하는 때에 겨울연가에 빠졌다면서 한국에 가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즉 이전부터 한류팬이었단 얘기. 이 때 스고라지 방송 사이트인 온센에 외국인&한국인 최초로 메일을 보낸 사람은 바로 스컬로 케이라고 한다.

후지타 사유리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잘못을 사죄하고 100만원을 기탁하는 등 보통 생각할 수 없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에 있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인터뷰 중 "나는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창피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에서 해코지 안당할까 걱정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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