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암 극복을 위한 몸짓(그 열일곱)

윤화숙 |2012.09.11 13:45
조회 39 |추천 0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없는 것도 없는 무무(無無)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은 있으되 물질이 없는 원시우주가 태어난 것도 그렇고, 그것이 순간적으로 물질로 형성된 우주와 반물질로 형성된 반우주로 갈라진 다음, 다시 합쳐진 것도 그러하며 그 과정에서 미세한 불일치가 발생하여 현재의 우주가 태어난 것도 그렇다.

 

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여 생성된 물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시스템(생명체)으로 발전하였으며 그것이 또 다른 물질을 빨아들여 내부에서 화학반응(이화작용과 동화작용)을 일으키고 그렇게 하여 생성된 물질로 무한 증식을 하는 것도 역시 그렇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생명체가 단순한 무한증식에서 헌 몸은 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타는 방법으로 변화하고 서로 뭉쳐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가 하면 종국에는 지능을 갖춘 생물로까지 진화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도 그의 한 산물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존속과 번식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설사,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암 환자라고 할지라도 삶에 대한 애착만큼은 쉽게 버릴 수가 없는 법이다. 또, 하루를 더 살기 위해서 천만금을 쾌히 쓸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서 발로한 것인 만큼, 도덕적으로 악덕시 할 사안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환우에게도 쉽게, “이제 편안히 가시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게 마련이다.

 

그에 더하여, 인간은 고차원의 지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형이하학적으로는 쾌락을 추구하게끔 되어 있다. 암 환자라고 하여 그것을 포기하거나 비난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아니, 잔여수명이 짧은 만큼 더욱 밀도 있게 즐길 필요도 있다. 그리고 형이상학적으로는 진선미와 더불어 보람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쾌락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전국암환우연대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 참여해서 얻어지는 유익은 단지 부수적인 것일 뿐, 그 진정한 목적은 아닌 것이다.

 

나아가서 인간은 신성을 희구한다. 영원한 삶을 갈망한 나머지, 인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을 인식하였거나 만들어내었다. 그러므로 종교는 현세의 기복이 아니라 내세의 삶을 예비하는 수단이라 여겨진다. 특히,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이 곧, 내세로 통하는 관문임을 믿게 하는 것은 큰 구원이 아닐 수 없다. 혹, 어떤 종교인을 비방할 수는 있으나 종교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소이이기도 하다 하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영원히 살기 보다는 차라리, 대자연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이 몸이 죽어 흩어져 흙이 되고, 구름(물)이 되고, 바람(공기)이 되고.........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