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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형(神獸之形) 7

Wagi |2003.12.22 13:15
조회 161 |추천 0

재형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옆에 달린 혹을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자꾸 끼워넣는 과자가 벌써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아무리 자신이 필요해서 불렀다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눈감아준다 치지만
어떻게 매대에 있는 과자를 전부 한 봉씩 담는단 말인가.

 

고르는 것의 반이상을 덜어내던 재형은
문득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결국은 늘 지고 마는 싸움을 한다는 자각 정도는 재형에게도 있었다.
왜 그렇게 되는지 곰곰 생각해 봐도 결국 이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왜인지 늘 승리자는 봉황이었고
봉황의 어이없는 요구도 마지막엔 들어주고야 마는 것이다.

 

 

혹시 나, 저 새끼한테 세뇌된 건가.

 

설마.

 

몸서리를 치며 퍼뜩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리고
재형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재형은 죽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넉살좋은 봉황새끼는 처음 본 민혁이한테
거리낌없이 이것 사자, 저것 사자며 저 먹고 싶은 것만 골라대고 있다.

민혁은 재형의 어릴적 친구라는 봉황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자질구레한 질문을 하며 은근슬쩍 재형의 약점을 캐고 있었다.

 

두 놈다 하도 얄미워 뒤통수를 갈겨주려 했지만
재형의 손바닥은 바람을 가르며 크게 헛스윙을 할 뿐이다.

 

민혁이야 늘 당하는 패턴이니 익숙해질만 하다 치지만 봉황은 달랐다.
그래서 더 약이 오른다.


귀신 같은 새끼. 한 대를 안 맞아요.
한 대만 맞아줘도 이렇게 밉지는 않을 것을. 젠장.


못 이기는 척 하고 한 대만 맞아준다면
재형은 정말로 봉황을 못 말리는 친구새끼, 정도로 치부하고
사이좋게 지내 줄 수도 있단 말이다!

 

귀신같이 감이 빠른 건 안 변했다.
어렸을 때도 뭘 던지거나 뒤통수를 치려고 하면
쥐새끼같이 잘 피했던 놈이다.

 

재형은 봉황을 때리려는 생각을 고이 접고
봉황이 주워담은 과자들을 도로 진열대에 놓았다.

 

"야! 나 콘칩 먹을거야!"
"니 돈으로 사먹어, 새꺄."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주 조금 봉황새끼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것일까.

 

형과 누나들에 둘러싸여 곱게 자라온 봉황은
정색을 하고 명령하는 데에 무지 약했다.
막내로서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반대급부로 아직도 스스로를 어린애로 착각하고 있는
못봐줄 행태가 빈번해 문제지만.


그러고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바로 이 녀석의 형과 누나들이다.

 

큰형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참 의사이고,
뒤의 누나는 현역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수재,
막내 누나는 해외유명콩쿨에도 몇번이나 입상한
촉망받는 재미 대학생 바이올리니스트로
세 사람 다 서늘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인들이다.
(봉황새끼와 닮았다는 말은 차마 안 하고 싶다.)

 

어렸을 때 그 집에 가면
막내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세사람의 남매들이
톡톡 던지는 한 마디에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다섯살 차이가 나는 둘째누나는
특히 단정하게 빚어놓은 도자기인형같은 용모라서
어린 마음에도 컬을 크게 넣은 까만 머리카락과
그것을 묶은 파란색 리본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것은 불가사의할 정도의 독설.

 

유치원때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도대체 고작 초등학생이 어쩌면 그렇게 사람 가슴을 찢는 말을
표정 하나 흩뜨리지 않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났기에!)

 

그런 그들이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이 반봉황군.
특유의 독설이야 어디가랴만은 이 녀석은 무딜 정도로 순진한 면이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새파랗게 질렸다가 엉엉 울어버릴 수준의 차가운 말들을
에? 하는 느낌으로 넘겨버린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눈으로 보아도
그런 무던함만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뒤틀리지 않은 면이
세사람의 비뚤어진 애정관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그렇게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재형은 한숨을 쉬었다.

 

볼 거라곤 외모밖에 없는 녀석이 된 이유에는
그 비뚤어진 애정이 과하게 부어졌던 데에
원인의 대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나.

 

자신이 여자라면, 죽어도 봉황 같은 남자는 사양이다.
어린애 같은 천진함과 모델뺨치는 프로포션만이 장점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외모에 속아 다가온 사람들이 더 평가에 냉혹한 법이다.
단아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라면 성격까지 완벽할 거라고 믿는
바보 같은 여자들이 더 많은 세상인 것이다.
그렇게 다가와서 실상을 발견하면 제멋대로 실망이라며 휙 돌아서는 것이 여자다.

 

뭐, 아직까지는 세 남매의 가드가 확실한 모양인지
그런 쓴맛은 한번도 보지 못한 모양이지만.

 

뭐라 해도 그 도자기 남매들이 그토록 귀여워하는 동생을
바보 같은 여자한테 성처받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언제쯤이나  깨달을지.


헉, 하고 재형은 고개를 들었다.

 

뭐냐, 왜 내가 이딴 녀석을 위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특히 그 도자기 남매들과는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단 말이다!

 

재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젠장, 네 녀석은 친구 따위가 아냐!

 

제정신을 차린 재형은
슬그머니 좋아하는 츄파츕스를 집어넣은 봉황의 손을 탁 쳐내고
그 바보 같은 사탕을 도로 기괴하게 생긴 구멍 숭숭난 통에 푸욱 꽂아주었다.

물론 매섭게 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풀죽은 봉황의 어깨를 곁눈질로 보며 그제서야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하는 짓이 봉황의 남매들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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