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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1) 한국인 고유의 정서를 세련된 모국어로 빚어내다

작지만큰아이 |2012.09.26 09:57
조회 117 |추천 0

  

 

 [영상 출처]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 | 감독: 곽재용 | 주연: 전지현, 차태현

  

 

소설 <소나기>

시적인 감수성,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

한국인 유년기 정서의 원형

 

 

   나이를 먹으면 왜 말이 많아질까?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의 감수성은 이제 압축된 운문보다는 산문에 가까워졌다. 타인과 대화를 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은 재차 반복하고, 할 말은 많은데 정리는 안돼 중언부언(重言復言)하고, 전달할 한 가지 핵심내용에 해당하는 예만 최소한 5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겪은 게 많아서, 후배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게 많아서,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게 많아서, 직업병처럼 말이 많아진다. 결코 원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나의 문장 또한 언제부터인지 만연체가 되었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라고 하면, 아마 10권도 넘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우리 어머니처럼, 나도 겪은 게 많아서 이젠 요약 불가! 간혹 고민스럽다. '친절한 혜원 씨'가 되려고 말을 많이 한 건데, 듣는 이들은 지리멸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 또 서두부터 장황해진다.


  각설, 황순원 문학촌 기행을 다녀와서 감상문(후기)을 부탁받고, <소나기>의 원문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작품과 현재의 나에 대해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만연체에 비해 <소나기>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분량도 A4 용지로 5장. 단편소설이라 부르기에도 참 짧다. 청춘은 짦고, 유년은 더욱 짧다. 하지만,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년기의 경험과 정서는 전생애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강력한 것일 수 있다.

 

   <소나기>는 어린 날, 이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틋한 첫 감성을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다. <산골 아이>, <매>, <골목 안 아이> 등 황순원의 성장소설들은 '시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흔히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로 출발했던 이력과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 왔다."는 그의 말을 통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긴 인생살이에 찰나와도 같았던 소녀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소년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이라서, 성인으로 살아내야 할 만만찮은 현실이 말을 절제하기보단 PR하고, 설득하고, 해명해야 해서, 소설 <소나기> 속의 주인공들의 '서툴고 어색한 첫마음'이 더 예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사진 출처] KBS2 'HDTV TV문학관-소나기'(2005) | 기획: 고영탁 | 주연: 이세영, 이재응

 

[여기서, 잠깐 퀴즈!]

 

 

 

 

 

*  정답을 아는 학생(일반인도 포함)은 정답과 함께 작큰샘의 문학 변신 황순원 블로그를 읽은

   짤막한 감상평을 비공개 댓글로 달아주세요. 공개 댓글을 달면, 다른 사람들이 퀴즈를 푸는 의미가 없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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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랏빛이 좋아!" 끝나지 않는 성장통 

   지난해 나는 독립했다. 이제 사회경험 좀 해보겠다는 스물다섯 청춘도 아니고, 결혼으로 인한 자동독립도 아니면서 요즘같은 불황기에 홀로서기가 웬 말이냐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 생각해도 나로서는 최적기였다. 내가 새로 구입하는 세간살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부분 보라색이란 점이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보라색이 좋아지지? 너무 예쁘게 보인단 말야. 보라색은 예술성을 지닌 색이지. 색감이 세련되고 섬세한 느낌이 들어.' 

 

   색깔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그저 말쟁이, 글쟁이, 문과쟁이인 내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보라색을 사모하게 되었는지? 어느 날 약속이 있어 치장이라도 하고 나갈라치면 원피스에 샌들, 손가방에 손수건까지 짙든 흐리든, 어쨌거나 저쨌거나 보라, 보라, 오매불망(寤寐不忘) 보라! 보라 천지가 될 때까지 나는 몰랐다. 내가 왜 집착하고 있는지.


   그러던 어느 날, 내 증상을 설명할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학원강의를 하기 위해 고1 국어 교과서에서 <시적 이미지의 미학>이란 제목의 소설 '소나기'에 대한 비평문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엔 내가 지금까지 <소나기>를 읽으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새로운 관점, 미학적 측면에서 소설을 기술하고 있었다.


   글의 요지는 황순원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고 소설 <소나기>는 황순원의 미학적 재능(즉, 창작기법)으로 탄생한 작품이란 것이었다.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주제의 효과적인 전달과 관객의 감동을 위해 고도로 계산된 '미장센(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을 뜻함.)'을 놀라울 정도로 적절하게 배치했다는 것이었다. 

 

   징검다리, 하얀 조약돌, 메밀꽃 냄새, 비단조개, 가을걷이 하는 들판의 허수아비, 쪽빛 가을 하늘, 원두막, 무밭, 도라지꽃, 마타리꽃, 먹장구름, 수숫단, 소년의 등에서 옮겨 묻은 소녀의 검붉은 진흙물 분홍 스웨터. 소녀에게 주기 위해 소년이 딴 호두알.

 

   나는 소재, 특히 소재가 주는 색감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름다운 자연물들이 소나기가 내리기 전과 내리는 상황, 그리고 내린 후의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재와 소년의 정서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다음 부분이 백미가 아닐까. ^^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누런 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영상 출처] KBS2 'HDTV TV문학관-소나기'(2005) | 기획: 고영탁 | 주연: 이세영, 이재응 

 

   그리고, 주인공 소녀가 좋아했던 보라색은 병에 걸린 소녀의 슬픔과 비애, 또는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의 매개체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해석을 두고 인터넷 공간의 네티즌들은 "보라색을 좋아해서 썼을 뿐"이었다는 황순원 작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주입식 교육의 폐해'니 '비평가들이란 말 만들길 좋아한다'느니 하고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나는 비평은 '제2의 창작물'이므로 독자들이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힐난(詰難)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 현장에서 문학수업과 평가가 단선적인 암기식이 되어선 곤란하기 때문에, 수업 방향과 방법이 왜곡되어 학생들에게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겠다.


   어쨌든, 이 날 이후에 보라색에 대해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을 통해 '보라색 색채 심리학'에 대해 알아 보았다. 얘기인 즉슨, 보라색은 하늘을 의미하는 파란색과 인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 섞인 중간색으로 색채 심리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도 저도 아닌 과도기적 상황에서 좋아하게 되는 색깔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색깔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주로 노란색, 주황색 등 밝은 색상을 답하는데,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아이의 경우 대개 건강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한다. 또, 보라색은 심리적 특성 이외에도 파장이 가장 짧은 광학적 특성 때문에 빛, 전자, 환상, 신비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색상이라고도 한다.

   

보라색의 긍정적 의미 - 지혜, 신비, 환상, 낭만, 신성, 거룩, 숭고, 고귀

보라색의 부정적 의미 - 비애, 우울, 고독, 죽음의 고통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비평문의 실마리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나는 어쩌다 내가 보라색 마니아(mania)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법적으로 성년이 된 이래, 스스로를 '어른아이(키덜트, kidult: 20~30대가 되어서도 어린 아이의 감수성과 분위기를 지닌 성인)'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런 내가 요즘 꽂혀 있는 말은 최승호 시인의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라는 표현이다. 가끔 성인과 아이의 이분법을 경계에 놓고 날 특이하게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는 최 시인의 말을 해줄 것이다. 아, 왜 이제서야 이런 멋진 말을 알게 되었는가. 어른도 아이도 아닌,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닌, 정체성 불분명하고 이중적이며 혼란스러운 과도기가 아니라, 두 가지가 지닌 장점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면 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이란 사는 동안은 항상 과도기란 걸 이 철 모르는 철학자는 주장하고 싶다.

 

   초등학생ㆍ유치원생 아이 둘, 셋을 둔 엄마가 된 친구들에 비하면 난 아직 훨씬 덜 어른스러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민폐 캥거루족'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만 아직은 '내 자식의 엄마'란 존재가 되기보다, 사는 게 빠듯해 나들이 한 번 가보지 못했던 엄마가 더 늙으시기 전, 함께 외식도 하고 소풍도 다니며 노년을 즐겁게 사시도록 배려해드리는 '딸'이고 싶다.

 

   그래, 난 보라색을 좋아하는 키덜트다.

    

-보라색의 색채 심리학 중에서- 

 

      보라색은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외로움이나 슬픔을 연상시키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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