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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백선엽 장군이 요즘 왜 까이는가?

한규돈 |2012.10.25 06:21
조회 313 |추천 1

 

 

 

 

어이가 없는 기사를 보게 됐고 이글을 쓴다.









1. 당시 시대적 상황



당연하겠지만 일제시대였고, 


일본은 만주국에 괴뢰국을 세우고 나서 그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무장항일 운동을 진압하고자 했고.


그래서 만든 것이 간도 특설대



간도 특설부대(間島特設隊) 또는 간도특설대는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 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하여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800~900여명 규모의 대대급 특수부대였다. (위키피디아)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 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무장조직. 간도 특설대는 당시, 간도에서 조선 독립군과 중국인이 연계한 반일-반만주국 투쟁(대표적인 조직은 중국 공산당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으로 곤경에 빠진 만주국-일본 당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백선엽 장군은 여기 소속이었다.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주 시베리아 중국 그 주변에서 무장 투쟁을 하는 집단들을 우린 지금 모두 합쳐서 "독립군"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좌익 우익 할 것없이 같이 독립 운동에 힘쓰고 있었다는게 문제다.


그리고 그 "독립군"을 토벌하는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실제 그들 토벌 작전에 참가 했었던 것도 백선엽 장군 자서전에 보면 나온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 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백선엽 장군 자서전 中)


근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는데.


백선엽 장군의 표현이다. "게릴라" 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모 인터뷰에서는 "마적단(폭도)"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 독립군 토벌??


그렇다면 백선엽 장군이 말한 게릴라, 마적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문제의 팔로군 그리고 동북항일연군이다.


현 좌익들이 백선엽을 깎아내리는 가장 큰 이유인 "독립군 토벌"에서 "독립군" 이란 바로 이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이다.




자 그럼 팔로군이 누군지 설명 들어갑니다~

 

 

 


 

 

팔로군은 조선인이 섞여있긴 하지만 항일운동하는 중국 공산당계열의 군단이었다.


이들은 공산당 답게 하는 짓이 상당히 대륙스러웟는데.



"팔로군은 점령지에서 어느 정도의 소지를 소유한 농민을 「부농」이라고 판단해 인민재판에 걸쳐 처형했다. 이것은 팔로군의 힘을 과시해 주민에게 공포심을 안게 하기 위한 목표였고 팔로군에 대한 부정적 측면으로서 말해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팔로군)



오 이런..말이 필요가 없다.


팔로군을 우리나라 역사의 독립군으로 받아들이자고 할 셈인가..?




동북항일연군은 그럼 우리나라 독립군이겟지!?


맞다. 조선인들이 모인 독립군이다.



근데



동북항일연군 [東北抗日聯軍]

요약:중국에서 중국공산당 주도하에 항일연합전선을 형성한 일.
1935 년 중국공산당은 쓰촨성[四川省] 모아개(毛兒盖)에서 항일 투쟁을 위한 8·1선언을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중국 침략 주요목표 지역인 만주지방의 동북인민혁명군과 그 밖의 모든 반일무장부대를 항일구국의 기치 아래 연합하여 부대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 주도하에 만들어졌고.. 


여기 소속된 사람이 누구냐면




-당시 동북항일연군의 지도자들-

김일성(후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김책(후일 6.25당시 북한군 전선사령관)

최용건(후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

안길(후일 조선공산당 평안남도당 책임 비서)

서철(후일 인민군 총정치국장)

오백룡(후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임춘추(후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

최현(후일 인민무력부장, 조선노동당 중앙,정치,군사위원)




우리 백두산 정기를 받으신 수령님이시네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냐 안보냐는


개개인의 이념에 달려있다.


좌좀들은 이 이념을 굉장히 무시하면서 지들은 종교화 하고있는데. 이념은 인간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아주 중요하다.


좌좀들은 60년 넘게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편가르기, 색깔론이라며 똥칠을 해서 와해시켜놨지만 일게이들은 정신차려라.




팔로군의 정체를 알게된다면 솔직히 항일운동이라해도 중국계라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일성"도 독립운동 한거 맞거든요? 독립투사거든요?



라고 주장하는 오유종자들이 분명 있다.


그래서 준비한다.











3. 김일성은 독립 투사인가?



아 미리 말하는걸 까먹엇는데. 난 역사학도가 아니라 전자공학도다. 근데 수업으로 북한학을 들었다. 그러니 테클 ㄴㄴ해



김일성은 북한에서 워낙에 미화떡칠을 해놔서 어이가 없을 정돈데.


우선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이다.


소련에서 공부도 햇고 전선에도 참가햇던 빨갱이 엘리트였고


백두산에서 이름을 날리던 김일성 장군과는 다른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을 빌려서 활동햇다는 것은 밝혀진 바이다.



그렇다면 김성주. 즉 김일성은 독립 운동을 위해 무엇을 햇나?




딱 1개 있다. 




보천보 전투.




그것도 북한에선 공식적으로 전과를 공개하진 않지만 일본 기록으로 살펴보면.


 

 

보천보 습격 사건(普天堡 襲擊 事件) 또는 보천보 전투(普天堡 戰鬪)는 1937년 6월 4일 만주에서 활약하던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최현김일성 부대와 박달박금철의 조국광복회 등이 조선으로 진공하여 보천보(당시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 현재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퇴각한 사건이다. (위키피디아)



이는 내가 가진 북한학 교재와도 같은 설명이다.



북한에선 어마어마한 미화를 하고있지만 일본 쪽에서 남긴 기록에 의하면


"경찰서, 면사무소, 우체국 등 관공서 등을 습격했고 민간인 1명과 어린아이 1명이 사망. 


격문을 뿌리고 물자를 노획" 고 한다.




이게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한 것인가 백두산에서 추워서 도적질하러 내려온건가?



백선엽 장군이 말한 "마적" 은 어찌보면 그 시대의 증언이 아닌가?



이것 외에 공식적인 김일성의 항일운동은 전무하다.



그는 소련이 북한에 진주한 이후에 소련에서 활동한 경험이 잇어 지원을 받고


보천보 전투를 팔아서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다.



이게 독립 운동으로 봐야되냐?



마찬가지로 니들의 이념이 답해줄 문제다.



그런데 웃긴점이 있다. 



보천보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즉 동북항일연군의 활동 시기는 1930년대 말 1940년대 이다. 


뭔 말인지 알겟나?



1937년 7월 7일. 중일 전쟁이 발발하기 바로 전이라는 거다. 


이걸 뭘 의미하는가?


 

 

 

 

좌우 할 것 없이 독립 운동으로 힘을 합쳐 활동하던 대한독립군단이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햇다는 데에는 나 또한 반대할 근거가 없다. 이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신 분들이 맞다. 

(물론 공산당 빨갱이 새끼들도 섞여있지만 어쩌겠나? 역사를 판단할때는 그 시대를 기준으로 봐야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유시 참변"으로 와해 됐다는 점이다.


근현대사에서 보면 알듯이 중일전쟁 전후로 만주 독립군은 중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것으로 아는데,


자유시 참변이 뭔가?

 

 

 

 

1921년 6월 27일 소련에 의해 대한독립군단이 괘멸당하는 사건이다.





조온나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빨갱이들 사이의 내분이 원인이었다.

 

 

 


 

우리가 과연 이러고도 공산주의자들을 독립 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야되는가?



뭐 마찬가지로 이념에 따라 다른거다. ^^7




그리고 또 한가지 더.



1921년이라는 점이다.





백선엽 장군이 소속된 간도 특설대의 활동은?



1939년.






결론은 뭐다?





현 좌파들이 주장하는 백선엽 장군의

 

독립군 토벌은 구라다




백선엽 장군이 활동한 1939년 이후에는 우리가 아는 "독립군"은 이미 와해된 뒤며


백선엽 장군이 토벌한 "독립군"은 우리가 아는 "독립군" 이 아닌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혁명 투쟁을 위해 반공 노선인 일제를 공격한 


산적, 마적단, 게릴라 들을 토벌한 것이다.



그들을 독립군으로 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이념에 달렸다. 



사족을 달자면 난 절대 그들을 독립군으로 인정할 수 없다.

 

 

출처(: http://www.ilbe.com/30117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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