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든 그 도시의 괴담이 있습니다. '도시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떠돌기도 합니다. 학교마다 선배들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내는 공간이니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사건이 있기 마련이고, 건물은 지은 터도 산을 깎아 만들거나 과거 묘지로 썼던 자리를 이장하고 활용한 이력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부대에서 인명 사고가 있었습니다. 자살이었고 사인은 질식사였습니다. 목을 메고 어린 영혼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날 이후 친하게 지내던 2년차 선배는 퇴근길에 그 사고가 일어난 근처를 지나올 때마다 온몸이 쭈뼛거린다며 가끔은 막 뛰어서 지나갈 때도 있다고 토로했는데, 저는 사실 사건이 막 일어난 그 당시에는 매일 사무실에서 야근하는데 지쳐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6시 30분(가끔 5시 30분)출근 저녁 11시(가끔은 12시나 1시) 퇴근의 나날이라 별을 보면서 출근하고 별을 보면서 퇴근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제 방으로 들어오면 씻고 바로 지쳐서 잠들고 눈뜨면 다시 출근하는 루트의 무한 반복.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퇴근 길이었습니다. 시각은 밤 11시. 여느 날과 별다를 바 없었는데 차량 정비고 근처에서 왠 병사 한 녀석이 낄낄 거리면서(진짜 웃음소리가 낄낄이었음) 그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미쳤어? 누구야 너, 이리와" 제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고 주변을 뛰던 그 병사가 무서운 속도로 제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까지도 그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어와 갑자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 앞을 그대로 지나 예전에 사고가 났던 그 방향으로 뛰어가는데 뛰어가는 사람 목 위에 머리가 없었습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가 쥐어짜기라도 하듯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그때 처음 느껴봤습니다. 제 방까지 죽어라 달려왔습니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광경이었는데 또다시 일에 치이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그 일은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신과 기수별 장교 후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졸업하신 학교와 같은 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유머코드도 잘통해 내심 아끼는 후배가 있었는데 자대로 전입온 후 몇 주가 지난 다음부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가 허해진 것 같다는 둥 헛 것을 볼 때가 있다는 둥 익살맞게 이야기하는데 사람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니까 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야근을 처음해봐서 그런다, 이게 익숙해지면 남들 다 퇴근하면 "자 이제부터 일 좀 시작해볼까?"라고 외치면서 보고서를 쓰게 된다고 어깨나 한대 쳐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헛 것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이제까지 먹어본 적 없는 비타민제와 오메가3 같은 보조식품을 사먹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야 근데 너 그 헛 것을 자꾸 본다는 데가 어디냐?"
아니나 다를까 후배가 이야기한 곳은 그 사고가 일어난 그 지점에서 가까운 퇴근길이었습니다. 퇴근길에 그 자리를 지날 때면 꼭 누가 자길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헛 것도 보고 어질어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혼자서 그 길을 퇴근하기가 무섭다며 저보다 일이 먼저 끝나도 저를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남자가- 장교가- 창피하지도 않냐고 덩치는 니가 나보다 갑절은 크다고 해도 자신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여깁니다 이 자리에요"하고 말하는 후배를 볼 때마다 '어휴 이걸 그냥 확 말해 말어'라고 하면서 내가 알아도 너보다는 너 많이 안다 이놈아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겉으로는 그냥 한 번 씩 웃고 퇴근길을 동행했습니다. 후배 녀석,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대학생활 내내 운동을 했던 몸이라 건강 하나는 자신있었는데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기가 허해졌나?" 중얼거리며 비타민을 하나 또 입에 털어 넣습니다. 그 이야기를 그냥 해줄까 하다가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굳이 해서 뭐하냐 싶은 마음에 그냥 겉도는 좋은 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은 조용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 저녁 9시 30분에 퇴근을 해서 치킨도 한 마리 주문하고 영화도 다운받아서 영화보면서 치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급히 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주니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후배가 서 있었습니다. 봤다고, 봤다는 말만 자꾸 반복합니다. 뭘 봤냐고 묻는데 설마 싶습니다. 후배가 퇴근 길에 그 지점에 누가 가만히 서있더랍니다. 얜 뭐지 하고 앞으로 가서 봤더니 사람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서 헉 하면서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절했는지 기억이 없고, 너무 추워서 깬 다음에 혼비백산해서 뛰어온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뭔가 있는 것 같다면서 얼이 나간 후배한테 결국 그 사고를 말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