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견자(好父犬子)’라는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서는 ‘아버지는 항일독립운동의 맹장(호랑이)이었는데 그 아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고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눈 민족반역자(개자식)’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 안준생, 노은 김규식 장군의 첫째 아들 김진국, 단주 유림 지사의 외아들 유원식 등이 대표적인 ‘호부견자’로 손꼽힌다.
6·25남북전쟁에서의 영웅으로 숭상받는 김백일도 ‘호부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김백일은 1926년 병인의용대에 가담하여 항일의열투쟁을 벌였고 백범 김구 지사를 암살하려던 일본군 헌병대의 밀정 이태서를 제거했으며 1936년에 맹혈단의 일원으로서 상해의 일본 총영사관을 습격하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서 순국했던 김창근 열사의 넷째 아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일본의 군인으로서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참전했다.
1940년에 만주국의 봉천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한 김백일은 송상하·백선엽·박창암 등과 더불어 만주국군 간도특설대의 지휘관으로 복무하였다. 만주국의 참의원을 지낸 친일파 정치인 이범익이 “조선의 독립군은 조선인들에 의해 토벌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창설한 이 부대는 일부 중간 지휘관을 제외한 말단 병사에서 고위급 장교까지 거의 조선인들로 채워졌으며, 1939년부터 1943년까지 만주국 영토내에서 동북항일연군·조선의용대를 비롯한 항일유격대를 공격하는 전투를 수행하였다. 1944년부터는 열하성과 하북성 일대에서 팔로군을 토벌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만주국군 간도특설대와 교전하다가 전사한 항일유격대원이나 이들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수는 172명에 달했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약탈·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또한 관내방면의 석갑진에서 팔로군을 대상으로 36차례의 토벌전을 수행하여 103명을 총살하였으며, 62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김백일은 또 만주국군 상위 계급으로 태평양전쟁에 종군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서보훈장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종전됐을 때에 고향인 명천으로 귀국했다가 월남하여 미군정 영역으로 들어온 그가 본래 이름인 찬규 대신 백일이라는 예명으로 바꾼 것은 혹시 만주국군 복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1950년 12월 남한군과 유엔군의 흥남철수작전 당시 알몬드 장군을 설득해 9만여명의 피난민을 미국의 군용수송선에 탑승시켜 거제도로 이동하게 한 장본인은 사실 육군 보병 제1군단장인 김백일이 아니라 해병대 소속 민간 군의관이었던 현봉학 박사였다.
이처럼 친일파가 분명하고 ‘호부견자’이기도 한 김백일의 동상을 철거하는 거제시의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예비역 군 간부를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이 있다. 그들은 친일파 출신 군 장성들을 6·25남북전쟁 당시 북괴의 침입을 막아낸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에 대해 비난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로 매도하는 한편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까지 했다. 일제에 협력한 민족반역자에게 무슨 명예가 있다고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김백일 뿐만 아니라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태까지 사망하지 않고 있는 백선엽까지 과거에 일본 군인이 되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근거가 필요하겠는가?
친일파를 영웅으로 숭상하면서 동상 철거를 극력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도대체 무슨 염치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일본 정치권의 망언과 왜곡을 규탄할 수 있겠는가? ‘친일파가 되면 삼대가 흥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이 허구화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문화·경제·대외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토까지 빼앗길 것이다. 김백일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당신들은 친일파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과 항일독립운동 지사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