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때였다.
훈련소땐, 면회도 전화도 아무것도 안된다.
외부와의 단절.
민간인 군인화
정말 다른세상에 온 듯 했다.
매일 아침 6시 나팔기상소리 들으며 일어나서
눈뜨자 마자 3분안에
모포와 침낭을 갬과 동시에
전투복으로 환복하며, 전투화를 신어야하니..
정말 말도 안되는 아침준비시간이다.
하루하루 흙바닥에서 구르고 , 기합받고
넘어지고 까지고 피나고 해도
밥먹을때면 헤벌레~ 일과끝나면 헤벌쭉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23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순수한,아무것도 모르고 잊고 지낸 순간이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 이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3주차.
3주차에는 수루탄 훈련이 있었는데
워낙 위험하다보니, 훈련강도가 조금 강했다.
조교曰 "죽기싫으면 알아서들 연습해라"
생활관 내에서도 똥그랗게 말아올린 양말을 붙잡고
"수류탄 투척!" 이러면서 연습을 시켰다
한참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우와!!!!!!!!!!!!!!!!!!!!!!!!!!"하는 함성소리를 기점으로
전 생활관이 난리가 났다.
드디어. !
편지가 온 것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부모님이나 여자친구한테 문자로 훈련병들 훈련소 주소를 보내주는걸로 알고있다.
주소를 받은 즉시 훈련병에게 편지를 보내도, 훈련소로 편지가 도착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알고있다.
드디어 3주만에 편지가 도착했다.
동기들 사이에 비집고 뚫고가서 '야,육 찾아라 육 육있으면 내도 '
지지고볶고 하다가 나에게 온 편지한통을 발견했다.
슥슥 흘려쓴 필기체. 아버지의 글씨였다.
사실 난 그때까지만해도 여자친구 편지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여자친구편지가 가장 먼저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보고 "와~ 난 편지 2통왔나보다. 야 여자친구편지찾게 나와봐"
한참을 찾아도 여자친구 편지는 없었다.
씁쓸해 하면서 자리로 돌아와 편지를 뚝 뜯어서 보는데
그안엔 편지 한장을 가득 채운 아버지의 글씨체가 있었다.
그때의 편지내용은 ...
'승완아!
기다리던 너의 편지를 2번 받아보고 무척 기뻤다.
네가 9사단에서 훈련받고 1경비단으로 자대배치 받았다는 소식은
문자메시지로 받았다.
엄마아빠는 좋아서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또 9사단이
어딘지 알아보고 ...참으로 바빴단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서울에 살아보아야 하는데,
군생활을 서울에서 하게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너는 모든것을 잘 참고 열심히 군생활 할것을 아빠는 믿는다.
승완아
너를 군에 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그동안 아빠가 너무 엄하게 대하고 핀잔만 주고 한것이
마음에 걸리는 구나. 아빠는 네가 누나들 밑에서 자라니까 좀더 강한 남자로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는데...
네가 이해를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다보면 너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부디 힘들고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헤쳐나가는 진짜 사나이로 태어나서
우리들앞에 나타날 것을 기대하마.
인생의 황금기라 할수있는 20대에 좋은 경험과 인내심을 기르는
기회로 만들기 바란다.
사랑한다 아들아.'
읽고 또 읽고 또읽고... 정말 그자리에서 가만히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뒤에는 어머니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아들 승완아 보고싶다.
눈이 침침해서 이 편지도 겨우 쓴단다. 너를 보내고 엄마는 울기도 많이울고
매일 생각나고 보고싶고 우울한 마음 더 우울했지만
너의 편지를 받아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사랑하는 아들아. 눈만 뜨면 너의 생각에 하루를 시작한다.
너에게 맛잇는 밥상 차려준지도 벌써 7~8년이 되었구나. 미안하다.
아들덕분에 몇십년만에 손편지 쓰니 너무 좋구나.
엄마 글씨 못쓴다고 흉보진 마라.
안녕.아들. 사랑한다. 아들..아들아들'
계속해서 멍하니 읽고만 있었다.
부모님 편지를 읽고있다는 걸 눈치챈 동기들이 '야임마 ㅋㅋ 우냐?'
라고 장난으로 툭 내뱉은 말이
그때 순간의 눈물샘을 툭 건드렸다.
평소 장난도 많이치고 맨날 소리지르고 생각없어 보이던
내가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고
몇몇 동기들은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고
몇몇 동기들은 묵묵히 말없이 곁에 있어주었고
몇몇 동기들은 옆에서 같이 울어주었다.
훈련소 기간동안, 한번씩 시켜주는 전화 하면서 '엄마 보고싶어 ' 하면서 울던 동기들 보며
'아~사내새끼가 뭔 짓이냐 ㅋㅋㅋ쪽팔리지도않냐?' 이랬던 나인데
아버지의 멋있는 필기체와 어머니의 삐뚤삐뚤하지만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편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을 짠하게 울렸다.
후에 여자친구 편지도 도착하였다.
물론 기뻤지만, 부모님 편지를 받고 난 뒤라,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부모님의 편지만 계속해서 읽어내려 갈 뿐이었다.
2년이 넘은 지금도
이떄의 편지 내용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한번씩 힘들때면, 서랍속 편지함속에서 이 편지를 꺼내서
묵묵히 읽어보곤 마음을 다잡는다.
군시절 첫 편지. 내게 큰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