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새삼 드는 창조의 섭리는 굉장히 경제적 미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곡을 쓴다는 것은 그 작가의 실력과 깊이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태인데, 의뢰받게 되는 작곡이나 편곡을 할 때 의뢰받는 대상때문에 구속과 제약이 생긴다.
-내 곡을 연주하게 될 연주자의 실력. -원곡에 담겨있는 정서와 문헌적인 깊이. -내가 쓴 곡으로 연주자의 가능성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그 사람을 음악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지. -금전적인 문제와 그에 상응하여 작가가 겪게되는 수고로움. -작가가 연주에 동참하게 될 경우의 변수.
당장 떠오르는 대표적 제약들은 저정도인것 같다. 요새는 특히 작곡가가 그 사람의 작품활동으로만은 입신양명하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부차적으로도 입신양명하기도 쉽기도 한 시대로, 굉장히 작가의 스펙트럼에 따라 모든 작가들에 편차가 일반화하기에 모순이 전보다 심한 양상을 띈다. 그렇기 때문에 기량이 높지 않은 사람도 가끔 '성공'의 요건을 갖추어 이름을 날린다.
내가 쓴 곡을 그 사람이 연주함으로써 -연주자의 기량이 늘게된다. -청중들이 감동을 받는다. -나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는다.(레이블로 남을 가치가 있다.) -금전적 혹은 정신적으로 벨런스가 된 만족이 온다. -그로써 작품성이 남고, 널리 연주가 된다.
등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 보통 '작품'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습작'으로 남는다.
그 경제적이고도 오묘한 벨런스를 '영감'이라는 기원에 따라 맞추어 곡이 쓰여지는 것이다. 너무 경제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러가지 아다리가 맞을때 나오는 그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염색체 개수가 반개만 더 적거나 많았어도, 아마 우리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돌연변이, 하등동물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론 참 경제적이신 분이다.
곡이나 쓰지 뭐하고 있는건지ㅜㅜ 곡보다 글이 더 많으니 내겐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