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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에서 주장하는 5.18광주민주항쟁에 대한 반박글.

5.18민주항쟁 |2013.01.09 12:09
조회 185 |추천 2

만일 일베에서 5.18은 폭동이다 라며 선동하는 일베충들을 보면 이팩트로 반박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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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측에서 의도적인 버스 돌격으로 경찰이 먼저 사망했다.?
출처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dh&no=5295


말도 안 되는 거짓입니다.

1. 시민군의 무기 사용
1.01 계엄군이 총기를 발포하기 전 시민군이 먼저 총을 쐈다. 이를 증명하는 힌츠페터의 영상이 있다.
출처 : http://study21.org/518/photo/5-19.htm
http://www.study21.org/518/video/5-20.htm

 

이같은 유언비어의 퍼져나간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역사학도라는 한 극우인사의 황당한 주장에 있습니다.


역사학도에 따르면, 위 사진은 계엄군이 발포하기 전날인 20일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http://www.youtube.com/watch?v=Rq_qa1HhnBo)에서 가져온 캡쳐 사진입니다. 사실 역사학도는 힌츠페터가 "조총련의 간계에 말려들어 조총련 충복 노룻"을 했다며 영상 촬영 날짜의 신뢰성을 스스로 비하하고 있지만, 이를 떠나서 영상 어디에도 해당 영상이 20일에 촬영됐다는 코멘트는 보이지 않습니다. 힌츠페터는 5월 19일에 광주로 내려갔다가, 도쿄에 돌아간 뒤 5월 23일에 다시 광주로 돌아가 광주 시민들을 촬영했습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4715) 즉, 해당 영상은 광주시민들이 무장한 뒤인 23일에 촬영된 영상입니다. 20일에 촬영됐다는 주장은 단순히 그가 19일에 광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내세우는 황당한 추측일 뿐입니다.

 

또한 역사학도는 위 사진이 5월 19~20일 사이의 사진이라는 단서가 "[광주 시민]이 이미 5월 19일에 나주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입니다. 1995년 완료된 5.18사건 의문점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에 따르면(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02648), 시위대가 본격적으로 무기탈취에 나서 나주 경찰소의 무기 가져간 것은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있었던 공수부대의 발포 다음입니다.


실제로 총을 먼저 발사한 건 계엄군입니다. 5월 19일, 계엄군 장갑차가 시위 군중에게 포위되자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발포해 당시 조대부고에 다니던 학생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이를 보고 군의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5월 20일 밤 11시경 광주역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와 시위대의 공방전이 격렬해지고 시위대가 차량을 앞세워 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하자 계엄군이 또다시 발포를 했습니다. 이 때 비무장 시민 두 명이 죽었다는 것은 당시 계엄군의 총기 사용이 정당방위로 볼 수 없는 까닭입니다. 뿐만 아니라 5월 21일 13시 공수부대가 금남로에서 시민들에게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던 이 시점 이후로 광주 시민들은 총기로 무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총기 사용 이전에, 청각 장애인 김경철 씨가 계엄군에 의해 5월 19일 사망한 사례가 있습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73631). 즉, 최초의 사망자는 시민입니다.


우선, 먼저 사망한 쪽은 시민 측입니다.
경찰이 시민 측에서 온 버스에 의해 사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하게 의도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광주민주화운동 일지의 원전인 5.18 正史에 수록된 증언에 따르면(http://cafe.daum.net/80518/N8mQ/40?docid=DKjbN8mQ4020031117052216)


"한편 이날 차량시위는 금남로에 이어 노동청 앞에서도 계속된다. 소위 노동청 전투라고 불리는 노동청 앞 오거리에서는 9시20분께 광주고속 차량 10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함평경찰서 소속 경관4명이 사망하기도 한다. 당시 광주∼남원간 정기노선을 운행하던 광주고속 운전기사 배용주씨 (당시나이 34세)는 정기노선운행을 마치고 본사에 도착, 이소식을 듣자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간다. 노동청과 도청사이로 들어온 배씨는 다른 차량들과 함께 맨앞으로 차를 운전, 도청을 향해나가기 시작한다. 갑자기 공수대로부터 발사된 최루탄 하나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차내에서 터지자 엉겹결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뛰어내린다. 그러나 그대로 시동이 걸린 차량은 계속 앞으로 돌진, 경찰들을 깔아버린 것. 배씨는 이 사건으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기에 이른다. 또 차량시위는 현대교통기사 김복만씨 (당시 29세)의 희생이 뒤따르기도 한다."


당시 경찰들을 사망하게 한 건 버스 기사의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차 안에서 제대로 된 운전이 가능했을까요. 증언이 거짓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아래 사진을 봐주십시오.

 


버스 안에 가득한 최루탄 연기를 보십시오. 이 상황에서 제대로 운전을 해서 의도적으로 경찰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이건 상식의 문제입니다.

 

 

 

 

국립5.18묘지서 방명록 쓰는 박근혜
(아시아뉴스통신=이재호 기자)  26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가 방명록을 쓰고 있다. 박 후보는 방명록에 "숭고한 희생을 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사진제공=국립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93055&s_no=93055&page=1

팩트총정리

 

 

 

출처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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