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핑거>의 사랑 이야기.
오랜 준비 끝에 정말 숭고한 사랑을 했던
아름다운 커플의 실화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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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수재였습니다.
청소년기에 이미 유력 문인들의 인정을 받는 시인이 되었고, 그 나라 최고의 명문대에서 수학했으며, 20대 초반에는 대도시 시장의 비서를 맡기도 했습니다.
조금 특이한 성격이었지만 그의 천재성 앞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사춘기 여고생 시절, 그녀는 오빠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습니다.
참 이상한 남자였습니다.
그녀 앞에서 코를 후비는가 하면 웃음소리는 어찌나 큰지 같이 앉아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짧고 어색했던 그날의 만남 후 몇 년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대학을 그만두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혹자는 기인이라 부르기도 할 만큼 정말 자유로운 시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이들이 남자 앞에 나타납니다.
우악스런 손에 붙잡혀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간 남자는 어딘지 모를 어두운 방에 갇힙니다.
간첩죄.
즐거이 시만 쓰며 살아 온 남자에게 무서운 죄목이 덧씌워졌습니다.
대학 동기와 술 한 잔 했을 뿐인데 간첩이라니...
남자는 아니라 부인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끔찍한 고문이었습니다. 반 년만에 겨우 풀려난 남자는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길바닥에 쓰러지고, 실종됩니다.
친했던 문인들이 오랜 기간 남자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죽었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생전 작품들을 모아 유고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한 의사가 그 소식을 접하고 남자의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친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는 경찰에게 발견되어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중년의 남자 앞에 그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단발머리 여고생은 서른다섯 노처녀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극진히 간호합니다.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그를 보살핍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시간은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년 후, 이들은 결혼하게 됩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남편과, 찻집을 운영하며 생계전선에 뛰어든 아내. 그러나 아내는 묵묵히 남편을 향해 준비된 사랑을 쏟아냅니다. 아침마다 담배 한 갑과 맥주 한 병 값을 남기고 출근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고,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 부부의 웃음은 어느 행복보다도 진했습니다.
20년 동안 그녀는 남편을 간호하며 가정을 꾸려 갔습니다. 폐인이 된 남편은 여전히 기이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사랑으로 인해 남은 평생동안 그의 시는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천상병 시인(1930~1993)과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1935~2010)입니다.
부인 목 여사의 사랑으로 인해 천상병 시인은 새로운 20년을 살았습니다. 이 사랑은 젊은 시절의 뜨거운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동안 잘 준비되고 다듬어지고 성숙해진 사랑입니다.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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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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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된 성숙한 사랑.
그 사랑을 누린 천상병 시인은
자신의 삶을 아름다웠다 말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랑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까?
혹은, 어떤 사랑을 주고자 합니까?
물질적 가치들이 사랑의 기준으로 재단되는 세상에서
오래 준비된 성숙한 사랑을 이야기해 봅니다.
그 사랑을 누린 가장 순수한 행복을 여러분께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