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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어느 신화창조의 이야기

신화만세 |2013.01.28 18:32
조회 985 |추천 14

25살 신화창조 Story

나의 신화사랑은 1999년 부터 시작된다.
시골학교 반에 학생수는 거의 13명 정도?!
작고 작은 학교였지만
신화팬 지오디팬 에쵸티팬 다 있었다.ㅋ
13명중 여자가 다섯명이라는게 함정...ㅋㅋㅋㅋ

수련회때는 꼭 신화노래로 장기자랑을 한 사람은 꼭 있었고...ㅋㅋ
사진을 프린터로 뽑아서 책갈피를 만들고 책받힘을 사기도 했다.
주말에 교회가 끝나면 티비를 켜고 음악방송을 꼭 보며 응원을 하고 못본것은 꼭 예약녹화를 했었다
그러다 잘 못 녹화되거나 녹화가 안되는 경우엔....
괜히 부모님에게 화를 내 오히려 혼나기도 했었고
카세트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신화노래가 나오면 테이프로 숨울 죽이며 녹음도 했었다
3집 온리온테잎을 구매해서
잠을 잘 때 항상 듣고 잠을 자다가 부모님에게 혼나서 테잎의 생명인 줄을 끊어버리는 사태가 발생
테잎을 붙잡고 울기도 했다.
친척동생과는 민우오빠를 갖기(?)위해 게임을 해 승부를 가지기도 했다.킼ㅋㅋㅋㅋㅋ

그렇게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시절...
학용품을 사고 이름표를 붙이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신화를 사랑하는 00이꼬 가져가면 신화가 가만두지 않을 꺼다'
라는....문구가...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책상에는 신화시간표도 사진도
혹시 신화필통 들어 보았나?
나무플라스틱?필통에 인화된 사진을 붙여 완성되는 필통이다. ㅎㅎㅎ

그리고
나의 방황과 이탈은 시작됬다.
그리 큰...방황과 이탈은 아니다..지금 생각해보면?
난 담양에서 광주까지 학교로 통학을 했기에
서울로 오빠들을 보러가는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부모님도 허락을 안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광주에 오빠들이 오지 않는 이상 난 티비로 밖에 볼 수 가 없었다
민우오빠가 원탁의 천사를 찍고 무대인사를 하러 광주에 온 뒤로 난 변하기 시작했다
신화가 광주에 오다니 ♥*♥
이건 잊을 수 없는 일
하늘이 내게 주시는 선물이자 기회였다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영화를 보러 하미시네마로 갔다
젤 앞에서 봤다....
오 마이 갓....존잘...ㅠ.ㅠ
더...빠졌다...
거의 일주일 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내가 신화이민우를 보다니 ㅠ.ㅠ 감격이였다
에릭오빠의 U.G.I.Z 팬싸인회가 있던 날도 어김없이 조퇴...
바나나를 들고가 바나나쏭을 부르며 오빠도 불러달라며 했는데 거절당했지만 깍지끼고 좋아라했던 나의 모습..ㅋㅋ
지역축제라능건 관심없던 나였는데
광주김치축제 홍보대사가 진이오빠란걸 알고 난 후
나의 발걸음은 비엔날레로...
이렇게 민우오빠 에릭오빠 진이오빠를 보고
간간히 광주에서 오빠들이 행사를 뛰는 날 엔 무조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진이오빠의 솔로곡 발표
진이오빠의 광주 스케줄이 잡혔고 난 당연 갔다
그러다가 막차를 놓쳐 담양집에 못 들어갈 뻔 한 상황이 ....일어났었다..^^;

그러고 20살이 되어도 나의 팬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20살이 된 후 지방과 수도권을 넘나들며 오빠들을 보러다닌거 같다.
목포가 출발점이였던걸로 기억 한다
김뎅의 손수건...
뎅수니였던 나로써는 이거는 대박이였다.
우비를 입고 목포로 갔다.
잘생겼다. 실물이 더 ...♥*♥
그리고 뎅 오빠의 약속앨범 이벤트도 참여해 당첨이 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서울 투어는 10주년 콘서트로부터 시작
이민우콘서트
신혜성콘서트
김동완팬미팅
앤디콘서트
그리고 14주년 콘서트까지
죽음의 티켓팅을 치루고 오빠들을 보러다녔다.

사람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나이먹고 아직도 신화 좋아하냐고 하지만 신화는 나에게 그냥 가수가 아니라 유년시절 추억이다.
그래서 쉽게 잊을 수 도 버릴 수 도 없는거 같다.
신화의 공연을 본 순 간 만큼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공연에만 집중하게 되는 내 모습은 제일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모습을 꼭 어리석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야 말로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중요한인물들 중 한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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