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용사의 이야기
나는 XX동 헤어샵의 헤어디자이너다. 헤어디자이너, 말은 좋다. 하지만 남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가게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해 봐야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갔다 눈뜨면 똑같은 날이 반복될 뿐이다.
... "마지막 손님인가 보네. 언니, 제가 할께요."
"됐어. 사장님도 안 오시는데 뭐. 내가 할테니 넌 도구들 정리하렴"
나는 혼자 남은 남자 곁으로 다가가 분무기를 쥐었다.
"잘 좀 다듬어주세요. 오늘 밤 오디션 봐야 하거든요."
"밤에 오디션도 보나요? 어떤 오디션인데요, 손님?"
"네, 영화 쪽인데 배우가 펑크가 났아봐요. 그래서 촬영 스케줄에 맞춰 잠깐 감독님이 보러오실 거거든요."
별로 들어도 상관없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꿈에 젖은 20대 손님이다. 나는 자신만의 헤어쇼를 연출해 보겠다는 꿈도 내 이름이 걸린 가게를 연다는 현실적인 소망도 저 멀리 접어버린지 오래다. 나는 익숙한 서비스 멘트를 날려주었다.
"들어보니까 흔치 않은 기회 같아요, 손님 좋으시겠어요. 손님 뽑아주라고 제가 예쁘게 꾸며드려야 겠는데요."
머리를 매만지며 분무기를 착착 뿌리고, 곧 익숙한 내 손놀림에 그의 머리 끝에 잘려나갔다. 벌써 30대로 완만하게 흘러가는 내 인생 바닥엔 수없이 많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쌓였겠지. 젊은 남자의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분주히 났다. 나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주 눈을 잠깐씩 감으며 이발을 했다. 우리 헤어샵은 일찌감치 문을 닫는다. 벌써 저녁 8시. 나는 퇴근할 생각을 하며 앞치마를 풀었다.
그때,
끝무렵 정말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 저기요 ... 머리 좀.. 할 수 있을까요...?"
"영업 끝났는데..."
자신감 없이 쭈뻣거리며 들어온 손님은 한참 산발한 머리. 윤기 없이 푸석푸석하며 지저분한 그 긴 머리를 달고 다니면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지저분한 머리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을지도 모른다. 난, 그 기막힌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이걸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지.
"어떤 머리로 해드릴까요, 손님"
"...... ......"
"...... 알아서 해주세요. 알아서..."
나는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하고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분무기를 뿌렸다. 이 머리 상태를 보니 일찍 퇴근하긴 글렀다. 내가 화가 나서 좀 세게 손님의 머릴 잡아당겼던 것 같다. 그러나, 손님이 화를 내긴 커녕 몸을 움찔하며 움츠리자 나는 괜시리 미안해지며 마음도 좀 누그러들었다. 내가 좀 짜증을 부린다고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이왕 할 거면, 할 수 있는 한 해 볼까. 긴 머리가 거의 절반이나 뭉텅이로 잘리고, 막내는 퇴근 전에 이 머릴 언제 다 치워야 하는지 불평하는 표정으로 날 지켜봤지만 나는 이미 머리를 마지막으로 다듬는 데에만 열중해 있었다.
"저.. 다 되어가나요?"
"아직 눈뜨지 마세요. 자를게 남았거든요"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머리를 기르신 거예요?"
"에... 병원이요.."
"병원......?"
"네, 그게 저... 쭉 누워만 있었거든요. 암 치료 받으려고..."
"그래요? 그럼 이제 병원에서 나오셨나 봐요."
"...... 아.. 아뇨.. 저, 머리 기르는 마지막 날이에요."
그녀의 앞머리 마지막 마무리를 하던 내 손이 굳어졌다.
"의사 선생님이 머리를 빡빡 깎아야 한대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가족들이랑 머리기른 사진 한번 찍어 보고 싶었어요... 머리가 너무 지저분했었죠? 이왕이면 예쁘게 찍고 싶었어요..."
내 손이 굳어지며 째깍거리던 가위도 멈췄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마무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막내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고, 헤어샵엔 침묵이 돈다.
"손님, 손님 잠시만 더 기다리세요."
"아.. 아뇨. 지금 가야해요. 병원문 닫기 전에 가야죠. 아직 다 못끝내셨나봐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이건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몇 시지...? 밤 11시? 손님 머리가 너무 길어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특별히 잘 매만지지도 못했는데. 너무 늦어버렸는데.
"아가씨......?"
"아, 네. 다 끝났어요... 손님."
나는 그녀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볼 용기는 없었다. 그저 뒤에 서서 바닥에 떨어진 윤기없는 머리털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오래전에 미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에게 내가 만진 머리를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난 무슨 생각으로 잘랐었을까. 나는 최선을 다했을까.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난 너무 당황했다.
"왜 그러세요, 손님"
"아녜요... 예뻐서 우는 거예요. 이런 모습... 오랫만이라.."
확실히 그녀는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달라졌다. 정리된 머리도 머리였지만 주눅들어 있던 얼굴은 다소나마 생기를 되찾아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모습에 울고 있었다.
"문 닫을 시간도 한참 지나신거 같은데. 머리 너무 마음에 드는거 있죠. 나 또 머리길면... 이 머리. 하러 오고싶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 머리 하나 했을 뿐인데,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었구나. 나는 막내와 함께 헤어샵을 닫고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참 부럽다. 그런데 말이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돈이 안 벌렸어, 실패했어, 아무것도 이루질 못했어.
그러면 이루지 못한 꿈은 여전히 달콤하게 느껴지더라고. 하고 있는 일은 점점 싫어진다. 꿈을 잃어버린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믿고 산다면 희망은 바로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 실로엣 님의 그림극장 -
여러분의 상황은 저것보다 좋잖아요^^ 힘내세요.
오늘도 눈물 펑펑 흘리면서 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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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자유게시판에 링크 있으니 직접 보시는게 더 좋을거같아요. 너무 슬프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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