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아줌마를 기억하시나요?
어렸을 때를 되돌아보면 기억나는 사람 중 하나가, 저희 집에 가끔 놀러 오시는 아주머니였습니다.
저희 친가 쪽도 외가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머니의 학교 동창도 아닌 분이
어머니와는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잊을 만 하면(두어 달에 한번씩?) 집에 찾아오셔서 어머니와 한참 동안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하시곤 했습니다.
신기한게, 그 아주머니가 오셨다 가신 날이면 어머니에게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곤 했습니다.
역사와 전통의 화장품 아줌마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이래
여성들에게 방물장수가 화장품을 공급해줬습니다.
방물장수는 화장품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필요한 일회용 잡화를 짊어지고 마을과 도회지를 돌아다니며
판매를 했다고 하네요. 나중에는 방물장수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서 여성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북을 치거나 아코디언 연주를 하기도 했다죠.
일본의 지배 말기에는 전쟁(태평양 전쟁)물자를 조달해야 한다는 이유로 화장품 원료도 통제해
화장품 생산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얼마 되지 않아 터진 한국전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컸던 터라
화장품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전쟁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던 1960년도 초, 당시 쥬리아화장품이 방문판매를 시작합니다.
여성의 마음은 여성이 안다고, 방문판매사원들은 단골고객을 확보하며 화장품 유통을 이끌기 시작합니다.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였음을 감안하면 사람이 직접 재화를 나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 자주 오셨던 아주머니도 방문판매를 하시는 분이셨던 거죠.
화장품 방문판매가 대세가 되면서 태평양, 한국화장품 등 당시 장업계(粧業界)를 이끌던 회사들도
뒤이어 방판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게 됩니다.
그래서 8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 화장품 의 90%가 ‘화장품 아줌마’들의 손에 의해 판매됩니다.
다양한 채널의 등장
당시만 해도 화장품은 사치품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부터 화장품 수입이 부분적으로 개방되고, 1986년에는 화장품 전품목에 대한
수입제한이 풀립니다. 국내 브랜드와 외산 브랜드의 무한경쟁이 시작된 거죠.
화장품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해외 브랜드로 인해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기존의 방문판매로는
이러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새로운 화장품 유통채널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또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굳이 집 안에서 화장품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방문판매의 비중이 줄어들고 백화점, 할인매장, 전문점 매출이 늘기 시작합니다.
다양화 된 화장품 유통 채널
그러면서 동시에 직판이라는 유통형태도 생깁니다.
사람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화장품을 판매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화장품회사에 속한
30대 전후의 여성들이 화장품 아줌마를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방문판매의 가장 큰 무기는 화장품 샘플+인간적인 친밀함이었다면,
직판은 미용/마사지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해주며 여성들에게 어필합니다.
백화점이라는 유통채널의 성장도 화장품시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1990년대, 백화점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백화점 1층 매장에는 반드시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야 하는 것이 공식이 됐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죠) 백화점이라는 고급스러운 공간을 통해
화장품 소비가 활성화되고, 화장품브랜드들은 백화점에 들어가기 위해
굴욕적인 조건을 감수하기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또 해외여행객들이 늘면서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사는 경우도 많아졌죠.
한국은 M/S가 10%가 넘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면세시장이며 한국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1, 2위가 여성화장품과 여성향수입니다.
화장품의 현재는?
지금까지는 고객이 직접 판매원과 마주보며 마사지도 받고 피부 상담도 하며 화장품을 구매하는
형태였으나,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며 온라인을 통한 화장품 구입도 활발해집니다.
다만 화장품은 직접 샘플을 써보며 피부에 맞는지 향기는 어떤지 알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온라인을 통한 유통비중의 상승세는 다른 품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아직까지는 인적 판매(방판/직판) > 전문점 > 백화점 > 마트 > 온라인의 순서로
화장품이 많이 팔리고 있죠.
아직까지는 온라인을 통한 화장품 구매는 적은 편 입니다.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바꿀게요. 전자상거래가 발달하고 온라인의 패러다임이 소셜(social)로
넘어오면서, 티켓몬스터로 대표되는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1ption Commerce)가 등장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와 화장품 유통이 접목된 형태도 등장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잡지를 구독하듯이 매월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전문 지식을 가진 MD가 소비자를 대신하여
고객에 맞춘 제품(화장품, 악세서리, 의류 등)을 매월 집으로 배송해주는 모델입니다.
국내에서는 2011년 글로시박스(GLOSSYBOX)가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죠.
소비자를 대신하여 고객에 맞춘 제품을 배송해주는, 글로시박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개의 제품을 소비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새로운 제품이 너무 많아서 나한테 맞는 제품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어’ 라는 것과
또 하나는 ‘어차피 거의 매일 혹은 매달 소비하는데 귀찮게 또 가서 구매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들입니다.
2월의 글로시 박스 – 발렌타인 데이 박스
특히, 화장품과 같이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정보가 과잉으로 공급되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구매력은 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젊은 여성들에게 전문 MD가
소비자의 피부 고민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매월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모델인 셈이죠.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시장에서 서브스크라이브 커머스와 화장품이 결합된 형태가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