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진정한 그림속에 진실이 숨어있다는데 ??
사람을 소, 짐승,으로 비유 하는 말들을 하는데 뜻깊은 의미를 알고 있다면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 의 참의미를 알것도 같네요.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소를 찾아 나서는 것에 비유하여 선수행의 단계를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로부터 소는 인도나 중국에서 농경생활의 필수적인 동물이므로 사람과 매우 친숙하다.
세존께서 성불하기 이전에 '고타마'태자였는 데 이 '고타마'가 곧 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급자족을 내세우는 선종에서 노동과 관련 있는 소를 등장시켜 선수행의 단계를 비유하 여 마음을
조복받는 10가지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십우도에 관한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宋代의 곽암사원(廓庵師遠)스 님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며
석고희이(石鼓希夷)라는 스님이 화답하 는 게송을 지었으며 다시 괴납대련(壞衲大璉)스님이
화답게송을 넣 고 있다.
곽암의 십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나서서 소를 보고 잡아 끌어서 마침내 소와 내가 하나가
되어 결국 공적(空寂)이 되고 다시 당초의 일상 생활로 되돌아가는 차례를 그리고 있다.
마음의 작용을 잘 다룬 곽암의 십우도 가 가장 널리 유행하여 오늘날 우리나라 각 사찰 벽화에는
어김없이 십우도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아래의 십우도는 대구팔공산대웅전의 것이다.
10폭의 그림 내용을 그 제목과 함께 간략히 살펴 보기로 하자.
제1 심우(尋牛) :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떠나는 동자의 모습.

망망발초거추심(茫茫撥草去追尋)
수활산요로갱심(水闊 山遙路更深)
역진신피무처멱(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만선음(但聞楓樹晩蟬吟)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피로해 소 찾을 길은 없는데,
오로지 저녁 나뭇가지 매미 울음만이 들리네.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심우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해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본래 잃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깨달음을 등지니 번뇌에 휩싸여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 소의 자취를 발견하다(見跡)
수변림하적편다(水邊 林下跡偏多)
방초리피견야마(芳草離披見也?)
종시심산갱심처(縱是深山更深處)
요천비공즘장타(遼天鼻孔 藏他)
물가 나무 아래 발자국 어지럽게 많으니,
방초를 헤치고서 그대는 보는가 못보는가?
가령 깊은 산 깊은 곳에 있다 해도
하늘 향한 등창코를 어찌 숨기랴!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견적은 소의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본성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풀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한 그림이다.
교범의 가르침에 의해 선학과 그 뜻을 알고 가르침을 살펴서 심성의 자취를 깨닫는다.
아직 깨달음의 문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제 겨우 심성의 자취를 깨닫는 단계를 나타낸다.
3. 소를 보다(見牛)

황앵지상일성성(黃鶯 枝上一聲聲)
일난풍화안유청(日暖風和岸柳靑)
지차갱무회피처(只此更無回避處)
삼삼두각화난성(森森頭角畵難成)
노란 꾀꼬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고,
햇볕은 따사하고 바람은 서늘한데 언덕의 버들은
푸르기 만 하다
더 이상 빠져나아 갈 곳이 다시 없나니,
위풍당당한 쇠뿔은 그리기가 어려워라.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견우는 동자가 멀리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끝에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다.
물에는 짠맛이 있으나 보기만 해서는 모른다 맛을 보아야 짠지 아닌지 알수 있다.
그림의 색깔만 보아서는 그 그림을 채색할 때 아교가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자기가 직접 그림을 그려 보아야 알 수 있다. 즉 본성을 찾기 위한 선은 남이 한는 것을 보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기가 직접 체험해야만 깨칠 수 있고 본성을 찾을수 있는 것이다.
4. 소를 얻다(得牛)

갈진정신획득거(竭盡精神獲得渠)
심강력장졸난제(心强力壯卒難除)
유시재도고원상(有時裳到高原上)
우입연운심처거(又入煙雲深處居)
온 정신을 다하여 이 놈을 잡았으나,
힘 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고원 위에 올랐다가도,
어느 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누나.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득우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속에서 아직 제련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같은 상태라고 한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삼독에 물들어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한다.
오랫동안 산천에 파묻혀 있던 소와 같이 온갖 번뇌 속에 파묻혀있던 본성을 비로소 만났으나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야성을 그리워 하고 방종하려 한다. 그러므로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이다.
5. 소를 기르다(牧牛)

편삭시시불리신(鞭索時時不理身)
공이종보입애진(恐伊縱步入埃塵)
상장목득순화야(相將牧得純和也)
기쇄무구자축인( 鎖無拘自逐人)
채찍과 고삐를 늘 몸에서 떼지 말라.
두렵도다, 멋대로 걸어서 티끌 세계에 들어갈까봐.
잘 길들여서 온순하게 되면,
고삐를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을 따를 것이다.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목우는 자연스럽게 놓아 두어도 저절로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도록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삼독의 때를 지운 보임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한번에 유순하게 길들여야지 만약 이때 달아나면 그 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소는 길들여진 정도에 따라 차츰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6. 소 타고 집에 돌아가다(騎牛歸家)

기우이리욕환가(騎牛 欲還家)
강적성성송만하( 笛聲聲送晩霞)
일박일가무한의(日拍一歌無限意)
지음하필고순아(知音何必鼓唇牙)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노라니,
오랑캐 피리소리가 저녁 놀에 실려간다.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려니,
곡조 아는 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기우귀가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행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미 본성을 찾았으니 모든 것이 완숙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몸을 소 등에 올려 놓고 하늘을 쳐다보니, 소는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잡아당겨도 서지 않으며 오직 본향을 말없이 향하고 있다.
7.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忘牛存人)

기우이득도가산(騎牛已得到家山)
우야공혜인야한(牛也空兮人也閑)
홍일삼간유작몽(紅日三竿猶作夢)
편승공돈초당간(鞭繩空頓草堂間)
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
소도 공하고 사람까지 한가롭네.
붉은 해는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띠집 사이에 부질없이 놓여 있네.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망우존인 은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던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역인 심원에 도착하게 하는 방법이었으므로 이제 고향 집과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법은 잊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금은 광석에서 나오고 달은 구름에서 나온다. 그러나 금을 얻은 다음 폐광석은 버려야하고
달이 뜬 다음 구름에는 마음을 두지 않아야 한다. 깨달음의 한줄기 빛이 영원한 위음왕불 밖의
세계까지 밝게 비춘다.
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

편삭인우진속공(鞭索人牛盡屬空)
벽천요활신난통(壁天遼闊信難通)
홍로염상쟁용설(紅爐焰上爭容雪)
도차방능합조종(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는 다 비어 있나니,
푸른 허공만이 가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도다.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조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라.
인우구망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 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원상은 주객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모든것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니 전부가 오직 공이다.
부처가 있는 곳에서도 노닐지 않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려나와 두 곳 모두에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은 오직 허허로울 뿐이다. 백 가지 새들이 만 가지 꽃을 물어 오더라도
모두 오직 한바탕 웃음으로 그친다는 뜻이다
9. 근원으로 돌아가다(返本還源)

반본환원이비공(返本還源已費功)
쟁여직하약맹롱(爭如直下若盲聾)
암중불견암전물(庵中不見庵前物)
수자망망화자홍(水自茫茫花自紅)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 보니 온갖 노력을 기울였구나!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장님 같은 것을,
암자 속에 앉아 암자 밖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반본환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만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인생이란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의 미흑도 받지 않는다. 유상의 영고성쇠를 보고 무위의 적정에 도달하니 눈앞에 보이는것 모두가 환상과 같다고 하는 실상을 바로 알라는 내용이다
10. 저자에 들아가 손을 드리우다(入廛垂手)

로흉선족입전래(露胸跣足入廛來)
말토도회소만시(抹土途灰笑滿 )
불용신선진비결(不用神仙眞秘訣)
직교고목방화개(直敎枯木放花開)
맨 가슴 맨발로 저자에 들어오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에 가득한 함박웃음.
신선이 지닌 비법 따위를 쓰지 않아도,
당장에 마른 나무 위에 꽃을 피게 하누나!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
입전수수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사립문 닫고 홀로 앉으니 아무도 그 크고 넓고 편안한
마음을 할리 없다.
자기의 모든 것을 묻어 버리고, 앞의 현인들을 뒤좇던 길도 모두 저버렸다.
오직 마음속엔 공이 있을 뿐이다.
표주박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