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투명한 슬픔」
저자 : 카타야마 쿄이치
역자 : 안중식
출판사 : 지식여행
출판일 : 2003년 12월
■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 목소리도 확실히 귀에 남아 있다. 꿈이 현실이고, 이 현실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나는 언제나 운다. 슬퍼서가 아니라 즐거운 꿈에서 슬픈 현실로 돌아 올 때에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균열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그곳을 넘을 수가 없다. 몇 번을 반복해도 안 되는 일이다. -p.7~8
■ 돌연, 무서운 확신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지금 이 순간보다 더한 행복은 바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행복을 언제까지나 소중하게 지켜가는 것뿐이다. 내 손에 넣은 행복이 어쩐지 두렵게 느껴졌다. 만약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의 양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이 순간에 평생 분의 행복을 탕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33~34
■ 어떤 날을 택해도 그 앞의 날과는 단절되어 있었다. 연속적인 시간은 내 안에 흐르지 않았다. 무언가가 계속되어간다는 감각, 무언가가 자라서 변화해간다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살아가는 것은 한 순간 한 순간의 존재로만 있는 것이었다. 미래는 없고 어떤 전망도 열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건드리면 피가 날 것 같은 추억이 뒹굴고 있었다. 나는 피를 흘리며 그런 추억만 가지고 놀았다. 흘린 피는 이윽고 굳어져서 딱딱한 딱지가 되겠지. 그러면 아키와의 추억을 건드려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일까. -p.195
■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어째서 괴로운 것일까? 그건 이미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이별이나 부재 그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준 마음이 이미 있으니까 이별을 괴로워하며 그 모습을 애타게 찾는 거지. 애석한 마음은 끝이 없어. 그렇다면 비애나 안타까움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커다란 감정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까? -p.198~199
■ 아름다움의 정체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인생에는 실현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실현된 것이라면 인간은 금방 잊어버리지. 그런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언제까지고 소중하게 가슴속에서 키워간다. 꿈이라든가 동경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모두 그러한 것이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으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실현되지 않은 것이 있다 해도 아무 가치없이 남겨지는 게 아니다. 사실은 아름다움으로 이미 실현되어 있는 거란다. -p.201~202
리뷰
요즘은 신간도서 대신에 예전에 읽지못하고 지나쳤던 책들을 다시 찾아가며 읽고있는 중이다.
이 책도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발간됐고 언젠가 영화로도 상영된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제목이었다.
그 익숙함때문인지 이미 결말을 알고있어서 조금은 감동이 무뎌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게 사실이지만
계절이니 계절이니만큼 요즘같이 추운 날엔 자꾸만 따뜻한 내용의 책에 손이 가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백혈병에 걸린 여자친구의 옆자리를 끝까지 지켜주는 한 소년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발간 당시에 바로 읽었다면 어땠을까? 왠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니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러번 나왔을 법한 너무나 진부한 스토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대사와 순수한 그 어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너무 뻔해서 새롭지 않은 책이라고 단정지어버리기보다, 일단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주인공과 함께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식상한 소재라고 해도 책을 읽는 그 순간에
아름답고 풍부한 감성으로 나를 젖어들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 사쿠타로와 그의 여자친구인 아키, 두 남녀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책 줄거리의 전부지만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느껴가며
미소가 번져가기도 하고 오래 전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해준다.
그러다 점점 두 사람에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느껴질 때쯤부터는 차차 눈시울이 붉어져간다.
아키와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사쿠타로를 보면서 이렇게 가슴절절한 사랑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임윤택과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생존률이 5%도 채 안된다는 위암4기 판정을 받고도
사랑은 길이보다 깊이가 더 중요한 거라며 결혼식을 올리고 하루하루 서로의 옆자리를 지켜주던 두 사람.
결국 안타깝게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됐지만, 이토록 멋진 남자의 아내라 행복했다고 말하던 그의 아내.
참 슬프지만 아름답고 가슴뭉클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다시 한 번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