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년의 추억
사니
|2013.02.20 23:44
조회 379 |추천 1
저는 7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언니와 함께 아빠 손에서 자랐습니다. 아빠는 이혼하신 그 해 바로 재혼을 하셨구요. 계모는 아들이 둘 달린 과부였습니다. 가족이 여섯명이 되었죠. 저희가 살던 아파트는 방이 두개여서, 방네개였던 그 계모네 집으로 들어가 살게되었습니다. 계모의 집은 집만 컸지, 당장 쌀이 없어서 얻어먹고 그랬다는군요. 집은 계모의 죽은 남편이 마련한 것으로 세명의 공동명의로 되어있었어요. 그 계모의 재혼 목적은 둘째아들의 대학등록금때문이었습니다. 그 계모는 정말 국민 샹년이었습니다. 저희 아빠가 벌어온 돈의 대부분을 자기 아들한테만 썼어요. 저희 아빠 LG출신임.. 맛있는것도 좋은 옷도 자기 아들들한테만 제공했죠. 저희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때는 집을 나가라고 그랬구요. 언니가 대들면 칼을 막 휘두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거의 수돗물에.. 초등학교때부터 아침도 걸렀고 점심은 컵라면 저녁은 아빠와 함께 계모와 제대로 된 식사를 했죠.. 그 계모의 집 한 칸은 전세로 내놨었는데 저희 식구가 들어오면서 저희 아파트를 전세내고 그 전세금 받은걸로 계모의 전세금을 갚아줬습니다. 그리고 재건축 확정(지금은 대단지의 풍림아이원)된 아파트를 팔아서 강화에 땅을 사자고 했었어요. 그리고 그걸 아빠와 계모 둘이 공동명의를 하자고 엄청 싸웠는데.. 결국은 아빠가 지켜냈구요. 그 집 큰 아들은 중간에 다른 여자를 성폭행 하여 합의금 천만원도 지급해서 감방에서 나왔었어요 -_- 계모는 저의 엄마와 관련된 사진, 녹음테이프 다 갖다 버렸구요, 저의 엄마의 물건들도 쓸만한건 다 가져갔어요 완전 도둑년이죠. 저 간난애기때 엄마랑 찍은 단 하나뿐인 사진도 없애버림.. 전 저의 애기때 얼굴을 모름 ㅠㅠ 그리고 나서, 지 막내아들 대학, 군대 다 보내고 이제 자리 잡히고 하니깐 아빠한테 이혼을 요구하더라구요. 아빠가 그때쯤 LG에서도 퇴직을 햇었죠.. 그리고 10년만에 그 계모와 가족들에게서 벗어났죠. 7살때부터 17살때까지 같이 삼 첨엔 그래도 아빠의 두번째 이혼이 달갑지 않았었는데... 지금 제 나이가 28살이거든요. 아직도 꿈에 나와요.. 다시 그 계모네 식구들하고 사는꿈.. 저는 아빠한테 애원해요.. 다시 헤어지라고... 계모식구들하고 같이 살기 싫다고... 지금은 정말 느낍니다. 굳어있던 제 표정도,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저.. 많이 좋아져서 잘 웃고 친구도 어느정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계모와의 상처들이.. 다 나으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될것같습니다. 저희 친 엄마가 그랬어요.. 저는 잘 웃는 아기였다고... 잘못을 해도 웃으며 말할줄아는 이쁜 아이여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고,, 근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제가 툭하면 화를내서 인지 몰라도 ;;;; 엄마와 아빠를 원망하고 싶진 않습니다. 단지 그 계모년과 그 자식새끼들한테 분할 뿐이죠. 강화땅 급하게 처분하고 2천만원에.. 아빠 퇴직금 2천만원..에 융자를 끼고 빌라를 얻어서 아빠랑 단 둘이 살았죠.. 저도 대학에 대한 꿈이 많았는데.... 나이가 많으신 아버지가 융자금 갚기에도 힘이들어.. 대학진학을 하지 말라고 하셨었어요.. 그래도 너무 가고싶어서 시립전문대를 지원하고, 고3 방학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평일에도 일을 하고, 공부하러 간거였는데.. 알바한 기억밖에 없어요 ^^;; 대학가면 다 돈이더라구요, 옷도 사야되고 책도 사야되고 밥도 사먹어야되고 등록금, 용돈, 차비 등... 정말,,,,,,,, 그 계모년과 그 아들새끼들....... 인천에 사는 박난*(서구에 사는걸로 추정), 김정*, 김동*(만수동에 사는걸로 추정)... 실명 거론해도 되나요? 어디 잘 사나 두고보겠습니다. 아 맞다! 기억나는게 하나 더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여름이니깐 난닝구좀 10장정도 사다달라고 하던군요, 알았다고 하덥니다. 저 중학교때... 여름교복, 하복이 흰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달라고 했더니.. 난닝구가 왜 필요하냐고.... 안사주덥니다..... 저 난닝구 두장하고 팬티 한장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