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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알라, 아후라 마즈다)님께서 말씀하신 경고

임근호 |2013.02.28 23:37
조회 248 |추천 0

경고(警告)

 

1.
적그리스도는 복제인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된 괴리로 영적인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영생을 이상한 방법으로 누리려 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파괴할 것입니다. 똑같은 인간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클론이 아닌 실제의 그로 본다면 클론은 그가 아니면서 그처럼 행동하여 우리를 파괴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富)가 집중되면서 그 한 사람이 죽으면 안 되는 위치에 오르면 그가 죽었을 때 권력의 이동과 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그리고 잘못된 믿음이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것을 기반으로 클론을 만들 것입니다. 그 클론이 적그리스도가 되어 우리를 역으로 계략과 악으로 몰아서 모두를 죽일 것입니다.

 

2.
이 모든 것보다 시급한 일은 북극의 빙하가 녹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빙하가 다 녹으면 악마들이 지상을 휩쓸기가 쉬워집니다. 빙하는 극과 극태극의 원리로 악의 기운밤이면 악마가 다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을 제압할 지상의 원리가 사라집니다. 이윽고 악마와 상충되는 성령의 기운이 공격을 받을 것이고 지구는 지진같은 재해로 혼란을 겪은 다음 드러눕는 기울기를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악마가 거주할 빛이 안드는 곳을 지구 이승 상에 마련하기 위해서 영적 거주지를 스스로 하기 위해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구 이승의 장소를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에만 어두워지면 선보다는 돈을 주는 악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선한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우린 필수적으로 오직 선을 위해서  이것이 하느님을 위해 쓰는 유일한 일과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것을 부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구를 다스리지만 지구를 아끼지 않듯이 어떤 것보다 우선시 하여야 할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하느님께서도 창조하신 지구를 다스릴 권능을 준 우리가 망쳐가는 것을 보시면서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악이 상주하시는 것을 보시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애써 우리가 스스로 외면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3.
복제인간이라든지 염색체변이를 과학의 힘만 믿고 행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은 하느님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생명체는 괴물이 되어 우리를 사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 이승에는 악마유다를 비롯한 수많은 장군들과 악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며 사람들의 그릇된 신앙으로 꾸준한 영적 믿음의 삶(원기 흡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악마들이 육체를 원하는 원기의 존재를 원하는데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가 개개인마다 가진 영혼은 원기만 빨아들일 뿐 건드리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임의로 만든 생명체(미생물 포함 바이러스 세균 복제생물 염색체변이 등)에는 악마가 육체를 얻게 됩니다. 악마는 우리처럼 사람이 악으로 거듭난 존재이기에 매우 불량스럽고 하느님의 눈물(은총과 반대되는)을 최고의 목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악마에게 과학을 바치게 될 때 악마는 자유의 날개를 얻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악으로 이끌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직 우리에게만 주신 것이 정신영혼입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영혼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하느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과거입니다. 우리가 에덴에서 이곳으로 내려오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만드신 영혼은 없고 지능만 뛰어난 생물들이 창궐했었습니다. 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 이들 모두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창궐 시기는 단계적으로 어류에서 양서류로 파충류포유류로 번성했었습니다. 우린 참고로 포유류가 아닙니다. 포유류의 지능대표동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또한 악으로만 치달았기에 하느님께서는 정신이 없고 지능만 있어도 선하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 여기시고 모든 생물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상으로 내려보내실 때 지상에 영위할 수 있도록 포유류의 장점으로 하느님과 닮은 형상을 빚으시고 창조하시어 정신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내려오지 않으면(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모든 생물들을 다 정리하실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에덴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표상인 파충류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게 됩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어떤 생물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끼시는 우리를 지상에 내려보내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덴(천국=하늘나라)에서 인간과 함께 계셨을 때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지키며 들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정신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았고 어길 수도 없었으며 선으로만 하느님 곁에 있었습니다. 뱀 또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었으며 하느님께서는 뱀에게 저멀리 선악과의 근처에서 맴돌고 지키게 합니다. 두 천사에게 지키게 하셨지만 두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습니다. 그 후 어느날부터인가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인류(아담과 이브로 비유된 영혼인 상태; 완전한 선천사)로 된 채로 영원한 삶을 누렸습니다(인류의 시초가 지구에 내려왔으며 이들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내려온 상태 그대로 였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내려오지 않고 인류의 표상으로 에덴동산에 남아 있으며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라 불리는 이유는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는 이랬지만 그 후에는 에덴에만 머물 수 없고 이승에서도 살아야(선악과를 먹었기에) 하는 선악과의 근처에 다가섭니다. 하지만 우린 정신을 뱀(하느님과 함께 있던 시기에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 선이 아닌 무엇에 대해 궁금하게 하는 비유적인 유혹적 존재)에게 빼앗겨 버리고 시키는 대로 하고 맙니다. 이 때 선악과를 지키는 뱀(비유적 표현인 파충류의 창조적 표상)은 선악과를 따먹은 지능적 존재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죄(선악과를 먹은 죄가 아닌 다른 약속을 어긴 죄)로 인해 선악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뱀이 에덴에 있으면서 선악과를 먹게된 경위는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정신영혼마음양심과 관련된 부분은 하늘나라에 그대로 두셨습니다. 하지만 이 뱀이란 존재는 파충류에게 부여해준 지능적 존재였기에 파충류가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파충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영적 대표 창조물은 에덴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파충류 마다 영혼이 부여된 것이 아니라 파충류의 형상을 만드실 때 그 형상에 기초가 되는 영적 물체는 그 때 에덴에 남겨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개개인마다 영혼이 있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덴에 있는 파충류의 형상적 대표 상징물은 하나뿐이고 . 이 표상에서 파충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파충류에게 지능을 주신 것이지 영혼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충류는 그 형상에 기초해서 모두 모습을 띄었고 파충류는 이승 지구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그 심장을 뛰게하는 기운이 죽으면 이 뱀이란 존재에게 모두 투영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이전에 정신이 없고 지능만을 가진 생명체들이 두번이나 하느님의 기대를 어긋나서 악으로 변했기에 번째인 파충류에게서만은 더 큰 지능을 주셨습니다. 그 지능의 악랄함에서 크게 실망하셨기에 포유류의 지능대표동물은 파충류보다 지능이 떨어진 상태로 창조하십니다. 그 지능의 영적 기초가 되는 것이 선악과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에덴저승에 기반을 둔 이승을 만드셨습니다. 에덴에 없는 것은 이승에도 없고 이승에 있는 것이 에덴에 없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를 지키게 한 영적 표상물이 뱀이었고 뱀은 하느님께서 지능을 부여해준 존재이전 생명체보다 지능이 더 뛰어난 파충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선악과의 곁에 두셔서 맡기셨고 뱀은 선악과 곁에 있으면서정신이 아닌 지능을 부여받은 존재로써 자유자재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파충류가 악으로 치닫자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자신의 모습을 닮은 생명체를 에덴에서 창조하셨습니다(선악과를 먹었고 이로 인해 미리 만들어놓으신 아담과 이브가 있었기에 이를 기반으로 천사들에게 육체를 주어 내려보내셨습니다.). 이승에는 파충류가 이미 악이 되었기에 그것을 심판하시기 전에 나아지시기를 바라시면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다음 창조물로써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을 만드셨지만 이승에는 내려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파충류를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에하지만 이승에서의 육체적 삶에서 겪을 고초를 하느님 자신과 닮은 생명체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체의 창조가 헛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지상에서도 선이 이룩되기를 원하시는 뜻에서 생명의 모든 부분을 모아 인류를 위한 공간을 재창조하시기 시작하셨지만 인류를 보내시기를 고민하셨습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를 대로 흐르고 에덴동산에서 평화를 누리던 두 천사(인류, 천사들의 대표)[에덴동산 지키던 두 천사로 대표되는 남녀; 선악과를 먼저 먹은 천사는 여성이 되고 그 뒤에 따라 먹은 천사는 남성이 됨; 하나님께서는 여성이 더 착했기에 뱀에게 꼬임을 당했다고 말씀하시었으며 여성에게 생명의 권리를 주시고 천지창조의 아름다움을 주셨습니다.)는 한 정신(마음) 한 몸입니다. 선악과 이후 모든 천사들이 골고루 내려와서 신앙심을 시험받는]는 어느날 선악과의 곁에서 뱀의 지능적인 말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됩니다. 이로써 뱀은 에덴에서 사라지고 지상에 있는 뱀의 자손들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이 공룡의 멸종 원인입니다. 인류를 꼬드긴 죄로 공룡은 멸종을 한 것입니다. 파충류 자체가 악으로 치달은 것도 있었고 영적 기초 표상인 뱀마저 악으로 치달았기에 멸종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뱀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였기에 그대로 버리지 않으시도 정화하셔서 다시 재창조하셨습니다. 인류가 어긴 약속에 대해 하느님께선 이승에 있게 할 때라고 여기시고는 인류에 맞게 우리가 다스릴 수 있도록(우린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우리의 크기역량에 맞게 재창조된 이승 세계에 우리를 내려보내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천지창조가 재창조된 후에도 포유류의 시험까지 지켜보았으며 포유류까지 실망을 드리고 난 후(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등의 유인원이 모두 포유류들입니다.) 다시 재창조된 천지창조의 공간에 우리가 내려오게 됩니다. 우린 정신을 망각하고 악에 빠져 이익만 지능적으로 탐한다면 노아의 방주 때처럼 정신이 없는 육체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노아의 방주와 똑같이는 심판하시지 않으신다 하셨기에 어떻게 하실지 모를).

 

5.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신을 악에 넘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악마들은 악한 인간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들지 못하고 잡귀가 되어 그 넋이 악에 악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이 아니었던 영혼이 없고 사람에게 영혼이 있기에 우리가 물리치지 못할 존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다스릴 권능; 사람과 같지 아니한 영혼 다른 형체의 영혼은 없다는 뜻.). 우리가 선한 마음을 어떠한 경우에도 잃지 않고 맑고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을 향한 길속에서 악의 유혹을 뿌리칠 때 악은 힘쓸 곳을 잃고 하느님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6.
누구든지 종교를 떠나서 하느님을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모든 종교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을 속일 수 없고 마음에게 잘못한 것은 어떤 것보다 더 잘 깨닫고 그 그릇된 것이 무엇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이 모든 것을 옳게 만들지만 그것이 남에게 피해주는 사랑이라면 그 마음마저 아픔으로 멍들 것입니다. 우린 선악과를 먹을 때처럼 선과 악 속에서 갈팡질팡 이랬다 저랬다 언제나 죄를 범하고 또는 반성하며 살아갑니다. 반성이 수반된 진심은 용서를 낳지만 기회만 엿보는 반성은 더 큰 악의 유혹을 낳을 뿐입니다. 하느님을 모욕하는 자신의 마음이 이 같은 기회만 엿보는 진심에서 비롯된 악의 영향이 아닌지 눈여겨 봐야 합니다. 우린 하느님의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우린 하나님을 닮아서 어떤 존재보다도 선을 알고 있으며 선으로 깨닫고 반성하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다 하여 또는 착하게 살아왔는데 무교라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님을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것이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예수님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은 어떤 이유가 되었든 그 이유가 모독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종교가 달라서 또는 내키지 않아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은 선한 일을 아예 안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보다 더 극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선한 분이시라면 하느님을 모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가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하느님을 소중히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교인데도 선하게 살았고 진심으로 선하다면 하느님을 무턱대고 모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선한 마음이 하느님을 더욱 더 원할 것입니다.

 

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님을 모두 알고 있으며 아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분명하고 선명한 바른 길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길이 하느님과 가까와지는 길입니다. 우린 이렇게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관심을 바라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하느님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를 심판 날로 정하고 계십니다. 그 날이 우리가 기다리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악을 정복하지 못하고 악을 위해 살아갈 때 올바른 것을 잊을 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에라도 그렇게 된다면 우린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린 하느님과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정신이 늘 우리에게 바른 길을 말하고 있기에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을 외면하는 사람에겐 하느님의 말씀이 사랑을 어긋난 자애이기의 욕심이란 것을 하느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기에 살아있는 이승 동안에는 눈 감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악마들에게는 지상의 벌을 통하여 서라도 그 존재의 영역을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십니다. 바로 일본의 신사처럼 악마들이 우글대는 곳은 지진이라든지 태풍으로 또는 다른 영향으로 악마를 지상에서 떨치는 영향을 배제하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집된 곳의 악령들은 사람들에게 붙어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더 귀히 여기시기에 정화하시기에는 악마를 믿는 이들이 그 악마를 데리고 다니기에 정화하는 동안 악마에게 속은 이들까지 함께 죽는(종교는 기독교 뿐입니다. 이교를 믿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어도 좋을만큼 악마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기에) 안타까움을 낳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린 나약하지만 성선이기에 선으로 모든 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린 돈만 귀히 여기는 눈꺼풀을 벗어버리고 세상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8.

세상은 사람들과 공존할 수 없는 생태계가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물질 동물 무생물을 다스릴 권능을 주셨기에 우리가 망치는 결과를 보고만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무리한 악마들의 존재에 영향을 끼치실 수는 있지만 그 또한 우리가 따르고 믿으면 우리를 더 아끼십니다.

 

9.
우리가 회개할 때는 저지를 때처럼 과감하고 정중하게 진심으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이에게 응당한 댓가를 주려 하시기 보단 위로하고 감싸주시려 하십니다. 하지만 저지르고 회개하기를 반복하고 버릇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회개한 죄악에 대해서 다시 또 저지른다면 회개의 의미가 헛되기만 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고 더 가까이하는 체험이 될 것입니다. 회개하는 곳에서 악은 머물 수 있어도 죄는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선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곳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과 복락을 부르는 곳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죄사함의 은총과 축복과 복락이 우리를 계속 구원하고 있듯이 하나의 선(구원(救贖))이 악의 무리를 구원합니다.

 

10.

우리는 회개의 자유를 가졌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삶의 시간동안 부여해주신 회개할 수 있는 기회의 기한입니다. 회개는 누가 시켜주는 것도 아니며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가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정신을 부여받은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자유는 구원 또는 회개없는 속박을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회개를 하면 선한 영혼이 되는 것이며 회개하지 못하면 악에 구속(拘束)되는 것입니다. 그 날(심판의 날; 휴거)이 왔을 때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는 가는 곳이 갈리어집니다. 회개하는 자가 가는 곳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고 회개하지 않는 자가 가는 곳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입니다. 제가 말하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란 악마만이 남아있으며 그 암흑 속에서 악마와 함께 언젠가 스스로 선을 깨달을 때까지 영원히 머물게 되는 곳입니다. 악이 나아가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타락과 몰락 극악입니다. 악마 또한 하느님께서 부여한 영혼이 변한 것이기에 기회의 공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정화되지 못하는 영혼들은 소멸시켜 주시지만 하느님을 모독하고 따르지 않는 영혼들은 정화의 과정보다는 하느님을 받아들임을 깨닫고 그 스스로가 신이 아님을 인정할 때까지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한 영혼들은 아무리 정화시켜도 소멸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받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이 바치는 기도를 아시기에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혼들은 시간이 갈수록 악마가 되었으며 악마들이 원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하느님의 눈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날심판의 날은 선과 악이 갈리는 날입니다. 그 날이 되면 악마가 더이상 영혼들을 괴롭히지 못하며 회개하지 못하고 악의 속박에 머무는 영혼들이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 악마와 함께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소멸할 수 있는 것 또한 은총에서 가능한 일이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회개하는 영혼들은 다시 하느님 곁으로 올 수 있겠지만 회개가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그곳에서 선을 깨닫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11.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이보다 더 이른 시점에서 우리가 악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끝을 보이게 된다면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선과 정화해야할 악을 구분하시어 불러올리실 것은 불러올리시고 정화하여야 할 것은 정화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승도 하느님의 나라이시기에 이승의 창조가 하느님의 눈물이 되시는 것을 하느님께선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악의 보금자리(악마를 믿는)가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으로 윤택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지상을 가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2.
우린 결혼을 하고 사랑의 결실을 가꾸고 새로이 아름답게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따르는 성직자는 하느님께 드리는 맹약으로 자신의 희생어린 사랑의 실천을 구합니다. 즉 어떤 사리사욕을 범하지 않으며 하느님께 올바로이 나아간다는 맹약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뜻 따르기 어려운 힘든 선택입니다. 성직자는 이 정도의 다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사랑을 남기지 못하는 이런 납득하지 못할 뼈아픈 심적 고통과 선택으로써 통공을 겪은 이해와 자비로 모든 것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은 분명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가장 큰 은총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입니다. 하지만 성직자는 다릅니다. 성직이란 그저 일상 속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자신의 성심을 인내하며 통감하는 것입니다. 통감이란 우리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신앙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배려하고 이해하시어 우리에게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우린 어떻게 합니까. 하느님께선 성직자들에게 자신의 자녀를 죽이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느끼는 살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행위를 본받고 따르는 심신의 성심을 성직자가 가져야할 본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직자가 자녀를 갖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그 믿음으로써 그보다 더 큰 은혜와 은총으로 자녀에 대한 보상을 그리고 하느님의 성심에 다가가는 성직자의 신념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자녀보다 더한 하느님의 은총과 자녀로써의 성스런 직함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직자가 자녀를 잃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성심이 자신을 따를 수 있는지를 그 성직자 자신에게서 우러나 행실로 보여주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에 이르러 성직자들은 진심어린 성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믿음이 없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신앙심(신앙심이 여러가지 논리로 인해 흔들리니 자신의 무사태평함을 거드름 피우는 이로 인해 안일한 일상 땀흘리지 않으니 좋아서 결혼은 귀하지 못한 힘든 것 아이낳고 기르는 것이 끔찍하여 이라 여겨서 여성은 죄악 얼토당토 않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위반하는 교리로)을 택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성직자는 개신교의 목사님과 가톨릭의 신부님과 수녀님이십니다. 이 세 성직 외에는 성직자로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다른 교단 모두를 포함해서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서는 모두가 크리스찬으로 하나임을 인정하십니다.

 

13.

결혼한 사람은 그 배우자와 맺어졌으므로 갈라서서는 안 됩니다. 성교가 결혼입니다. 천생연분과 맺어지게 되어 있으나 여러 불의의 사건으로 맺어지지 못할 수가 있으며 못 맺어지면 다른 배우자를 하느님께서 맺어지게끔 조정해주십니다. 결혼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정해주신 것이십니다. 우리는 이곳에 올 때부터 천생연분을 맺고 내려오며 천생연분과 만나고 맺어지게끔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조종을 받지는 않기에 다른 사람과도 맺어질 수 있으며 자의로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스스로 가를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은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가 됩니다(흔히 천륜이라 하는). 이렇기에 천생연분을 맺어 나오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천사)들과 함께 가정을 이룰 수 있으며 자녀 또한 하느님께서 보내주시기에 천생연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님을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님의 천생연분이 요셉 성인이셨기에 요셉 성인에게 현몽하시고는 이러한 모든 일들에 대해 설득하시고 응하고 받아들이도록(물음이 아닌 응해야만 하는) 강조하신 것이십니다.

 

14. 

하느님께선 생명잉태창조질서의 권능을 여성에게 부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선 없다 여기고 그저 자신의 망상자신 나름대로 무속신앙과 불교 또는 다른 종교를 마음에 담는 성직자분이 계셔서는 안 되시며 이렇게 마음가지시는 성직자분들은 회개하셔야 하며 그대로는 하늘나라에 들지 못합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포괄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바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전례를 집전하려는 교회(천주교회 포함)를 어디가 어디까진지 기도하면서도 분간하지 못하는 기도문을 외우면서도 기독교의 기도문과 정교회의 기도문과 가톨릭의 기도문을 섭렵하는 어리석은 이는(교회가 갈리어 이렇게 된 일입니다. 자꾸 갈릴수록 우린 하느님과 멀어질 것입니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종교라 믿어서 또는 이곳이 맞는 것 같고 저곳이 맞는 것 같아서 모든 방법을 따로이 섭렵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님을 종파마다 달리 보는 잘못됨에 있어서 이러기에 서로의 기도문이 서로에게 다 같이 통하며 우리는 분파로 나뉘었어도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서 하나이기에 혼란해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5.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카이사르가 아닌 베드로에게 주신 반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만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휴거될 수 있으며 수명이 다하여 삶이 죽어서도 하나님께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반석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의 가르침이 모든 분파에게 퍼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분께서 죽음의 순간까지 믿음이 부족하여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불교의 또는 이슬람교의 또는 힌두교의 또는 무속신앙의 갈등에서 고민하다 선종하시는 자신의 기도가 한스럽고 성모송 바칠때 성직자들께서는 갈등합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성직의 본분을 망각하고 갈등하는 순간 믿음은 모래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여러가지 과학과 지식의 습득으로 하느님의 존재조차 갈등하여 잘못 나아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6.

기독교가 잘못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사님들이 성직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교회의 가정의 기본적인 성가정을 모독하는 가정을 이루는 목사님들은 목회직을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여 베드로가 반석을 세우고 그 토대로 나아가기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때에 이르러 기독교의 성실한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목사를 성직자로 인정하셨습니다. 믿음이 굳건하고 성실한 목회자들은 어떤 신부나 그 이상보다 더 훌륭한 성직자임을 하느님께서 높이 칭찬하시고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리사욕과 무사한 쾌락에 빠진 목회자들이 더 많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사람들을 순간 현혹하여 이속만 차리려고 하고 몸의 육욕을 견디지 못해 간음을 생활화한 목회자들은 인간 행세하는 악마가 되어 사람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릇되었는데 누구를 바른 길로 인도하겠습니까? 기독교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자신들에게 되물어서 떳떳해야만 목회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7.

하느님의 뜻을 반하는 이교도들의 행태는 죽어서도 진심으로 하느님을 외면하는 지를 하느님께서는 시험하십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시험하였듯이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왜곡된 믿음을 그들 자체에게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그 잡귀들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직접 잘못되었다고 일러주고 고쳐질 때까지 어떻게 하는 가를 그 잡귀들에게 시험하십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는 신념을 낳아서는 절대로 안 되겠습니다.

 

18.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뜻하는 것을 원해서 그랬다 하면 되는 것을 다른 높은 이의 뜻인양 외치면서 자꾸 갈리고 그것을 원한 것은 이익이면서 스스로가 이익이 아니라 부정한 채로 다른 높은 이와 재물권력욕망 등를 섬기면서 진정으로 높은 이를 높은 이로 여기지 않는 어긋난 행위를 하고 나서 하느님께 그 뜻을 의탁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19.

우린 많은 번민과 고뇌 속에서 많은 생각을 거치면서 판단하고 결심하며 실행합니다. 이중에서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자신이 속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발상을 하는 것에서 박애주의적인 발상을 하는 것 또는 그 너머까지 자신은 생각하며 늘 추구합니다. 믿음이란 이런 자신에게서 오는 생각을 이룸에서 얻어지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복합적이고 이기적이면서 박애적이고 기회적이고 생산적이고 사회적이고 타협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20.

정신은 양심을 원하고 그에 따르도록 모든 생각들을 촉구합니다. 생각이 정신을 따를 때 비로소 생각은 맑아지고 튼실해지며 축복으로 은총으로 풍요로워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개개인에게 불어넣어주신 올바른 정신은 우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지만 성장하는 동안 생각의 혼란과 결핍과 욕망으로 정신을 외면하고 질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과 거래하는 정신을 믿게 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처럼 우리는 우리가 어긋나고 잘못된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무엇에서 어긋나였고 무엇을 하여야 바로 설 수 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개선될 수 있는지 또한 우리 모두 확실히 선명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21.

 무엇이 우리를 올바르게 이끌고 있을까요? 생각일까요? 아니면 계산일까요? 아니면 지식일까요? 우리를 올바르게 이끄는 유일한 그것은 정신입니다. 정신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주신 유일무이한 것이며 하느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증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선의 주인이시기에 그 혼숨결을 이어받은 우리는 선을 모든 것에서 볼 줄 알며 키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마음과 양심)이 맑고 밝으면 욕되고 악한 것이 언사와 행동에서 나올 수 없으며 행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선을 이끌게 됩니다.

 

정신을 잃고 혹은 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을 멀리하며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생각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고 매사 계산적으로 실리에 따라 이리저리 악한 것이어도 타협하고 지식을 익혔음에도 살상과 파괴빈곤의 지식에 거리낌없이 노력하고 다른 이를 자신만큼 위하기 꺼려할 때 등등의 모든 일들이 정신을 잃고 또는 일부러 버렸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자신을 돌아보면 무엇이 자신을 병들게 하였고 피폐하게 하였으며 죄악으로 물들게 하였는지를 누구나 확실히 분명하게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22.

세상의 구원은 외면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가 있으면 우리는 외면하고 다른 이가 돕기만을 바랍니다. 길에서 도와달라 하거나 도와줄 일이 있어도 우린 외면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바라시는 실천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우린 수많은 좋은 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핍박과 편견 외면 위선 계략 이기적 협력 등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정신을 외면하고 욕망을 따르기에 어떤 좋은 말과 행동도 모범이 되지 못하고 정신에서 외치는 모든 것이 이익을 찾는 참고사항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탐욕을 받드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도있게 고심하여야 할 때입니다.

 

23.

자꾸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여 죄에 빠지고 악에 물들어간다면 어떠한 구원도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향해 합하지 못하고 갈리어 갈리면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잃게 되는 것이며 교회를 스스로 파괴하는 뜻하지 않은 힘을 결집시키는 것이 됩니다.

 

24.

사랑,자비,자선은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큰 봉헌이자 기도가 됩니다. 그 봉헌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됩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하느님께 드리는 어떤 기도보다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곳은 하느님의 기쁨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사랑은 어떤 자격을 논하지 않으며 어떤 능력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에는 계산도 필요하지 않으며 지식의 많고 적음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대로가 사랑이 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정신영혼 그 자체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더하고 덜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주고 받고 더하고 덜함은 채권채무관계가 되는 것이라서 사랑이 깃들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을 외면한 채 그저 하느님께 보여드리고 드리기 위함을 계산하듯 의식하여 사랑,자선,자비한다면 꾸미기 위한 꾸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력을 사랑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거래하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으며 도와줄 수 있으며 배부를 수 있습니다.

 

25.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십니다. 입으로 들이마시는 것은 모두 축복받아야 할 하느님의 산물이자 은총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는 양식과 물과 공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매 순간 들이마시는 공기와 자주 마시는 물과 매일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하는 양식은 그 축복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은총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느님의 은총을 저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염전쟁시키는 환경을 하느님께서 정화시켜주길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기도로써 우리가 깨끗하고 맑은 환경에 살게 되리라 바라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것처럼 우리가 정화할 수 있는 것인데도 하느님 탓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하느님의 자녀로써 이곳을 누리는 영광과 다스릴 권능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명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을 슬기롭고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26.

  모든 종교는 하느님께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니(하늘나라 에덴에서) 이곳 이승에서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다시 하늘나라 에덴에 가는)이며 이곳 이승 또한 하늘나라입니다. 에덴은 오직 선만이 존재하며 본래 지녔던 정신영혼마음양심 그 자체로 하느님께 다가가 하느님 곁에서 영생을 얻는 곳입니다. 영혼이 에덴에 있기 위해서는 선으로 정화되어야 하기에(정화의 공간; 지옥;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와 같은 경한 죄를 지은 영혼을 쉽게 정화되지만 그렇지 못한 중한 죄를 지은 영혼은 거듭 깨우침을 통해 정화되게 됩니다.) 정화의 과정을 거쳐 에덴에 들게 됩니다.

 

27.

회개는 선의 부르짖음입니다. 무슨 잘못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선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면 평화롭고 풍요로우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28.
이젠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나서서 전쟁을 사라지게 해야합니다. 모든 인류가 합심하여 전쟁물자를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전쟁의 불씨가 피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잘못으로 빗어지는 참극입니다. 만약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세계는 이 마지막 전쟁을 끝으로 발전의 원동력인 사람과 여러 자원석유와 기술 등을 잃고 초토화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있어도 물을 마시지 못하며 공기가 있어도 숨 쉴 수가 없게됩니다. 그 때는 결코 오지 않겠지요.


29.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세월의 영겁을 이겨내듯이 믿음 또한 그러해야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구원이며 우리를 평화로 이끕니다. 나무가 다른 생명보다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과 그 자리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태계에서 배울 점을 배우고 멀리하고 고쳐야 할 것은 개선해서 배워야합니다. 생태계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고 건강할 수 있으며 편안할 수 있습니다. 숲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듯이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정화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집을 치우고 마음을 맑게 유지하듯 지구 또한 그러할 때 우리는 평화롭고 편안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30.
우리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여러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젠 지하자원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에너지로만 삶의 증진을 이룩해야합니다. 순수에너지는 마르지 않으며 연소된 후 오염 물질을 내보내지 않으며 우리를 더욱 이롭게 합니다. 우리는 순수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물질적 논리에 치우쳐 나아가야할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31.
멸망을 바라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심판의 날은 우리의 멸망이 아니라 악이 멸망하는 것이고 우리가 악에서 구원받는 날입니다. 우리의 신앙 목적은 사랑입니다. 이것을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32.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은 사랑의 참 뜻과 실천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이유에서든 반목하고 욕심내며 소유의 덜함과 더함을 과시하고 비교하려 한다면 사랑은 편견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가 다르고 처지가 다르고 여러가지가 다름을 일부러 교화시키고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며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한마음이 될 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느님께로 향할 것이며 외면했던 이는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도 악 감정을 갖는 이는 없으며 사랑을 주면서 행복하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려해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이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33.
하얀 돌. 지금의 신용카드처럼 모든 돈과 점수와 능력이 입력된 물질로 된 것이 만들어 지는 날 사람들은 마음사랑을 부숴뜨릴 것이며 그 돌을 계산하고 분석하며 정의의 양심이 계산대 위에서 그 목적에 따라 사고 팔린다. 이는 그 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돌로 마음사랑을 때리고 파괴하려는 욕망을 위해 돌을 사용하게 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음사랑이 있어서 돌에서 얻으려는 욕망이 계산을 맞출 수 없기에 돌이 마음을 부숴뜨리는 것처럼 마음사랑을 잃고 싶어하는 이들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물질보다는 마음사랑을 잃지 않고 사랑마음을 실천하는 것 뿐이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니 바른 것을 잃지 않고 그릇된 것을 타파하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

 

34.

대륙에 살고 있는 이권이 다른 이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살아가고 살리며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이권이 이것을 잊게 하고 있기에 더 없이 중요한 것을 정신마음양심에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정신을 잊을 때 이 땅은 없는 것이 되고 이 물은 물이 아닌 것이 되고 마니 주의해야한다.

 

35.

교황(교황직을 수행하는 모든 교황은 직무를 수행할 만큼은 건강하다. 은총이 함께하기에)이 부득이한 일로 없어지는 일이 생기게 되면 교황이 없는 상태 그대로 두거나 새로 뽑는다면 흑인 교황을 선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요한 계시록이 나간 후이니(나를 통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일러준 지역대로의 영광에 맞게 직위와 은총이 따라야 한다. 올곧이 믿은 민족이 교황을 하였는데 그 교황이 없어졌다면 같은 공덕의 민족에서 선출되어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날은 오지 않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버린 십자가를 같은 민족이 짊어져야 옳을 것이다. 많은 시대를 거쳐 성심으로 쌓은 각 지역과 민족만의 공덕과 성화는 다른 민족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교황은 맘대로 그만 두거나 교황이 있는데도 선출하는 것은 아니며 교황의 직무를 마치는 것은 선출된 교황이 죽었을 때 뿐이다.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백인이나 흑인 할 때가 있을 것인데 차후에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누가 하든 교황이 있어도 없는 상태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때가 되면 그대로 교황이 없는 상태로 교황직을 그만둔 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개신교와 통합하여서 교황직을 끊어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가 오면 마지막 교황이 되고 만다. 나(하느님)를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피를 토하고서라도 소임을 다해야 하는 직무를 싫다고 버리는 때가 오면 마지막 교황이 세상을 구원하고 곧이어 심판이(휴거가) 닥쳐올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면 교황이 없어진 것이 믿음의 통합을 위해(천주교와 개신교가 통일되기 위해) 그리된 것임을 너희 스스로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곳은 시험장이니 재미로 믿는 것처럼 신앙생활한다면 너희 모두가 다른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에라도 이 때가 닥치면 시험은 이미 주어져 있을 것이며 일어나는 모든 일이 놀라운 시험이 되어 각자가 모두를 통해 선택하고 선택받는 증명을 하게 될 것이다.

 

36.

 오늘날에 있어서 하느님께서는 교회(천주교와 개신교)가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교회는 사업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있어 가장 힘있고 큰 사업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남기는 이윤을 크리스찬들에게 돌려주라 하셨습니다. 교회의 유지와 운영은 그 이윤만으로 충당되니 남는 것은 골고루 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가진 모든 사업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사업은 사업으로 사업하고픈 사람들에게 두고 성직자와 신앙인(사업자와 그 외)들은 신앙 생활을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사업의 도구가 아닌 사랑의 도구로 쓰려할 때 하느님의 뜻에 맞게 쓰는 것이 됩니다.

 

 저는 어지럽히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꿈에서 야훼(=알라, 아후라 마즈다)님께 들은 대로 들려드리는 것 뿐입니다.
  

2015년쯤에 이르러서야 야훼(=알라, 아후라 마즈다)님은 최고신이 아니시고 더 높은 신께서 계심을 알았습니다.

야훼님께서는 하느님도 아니시고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하느님과 하나님은 우리나라의 신이십니다.

세상은 유일신이 아닌 다신입니다.

 

인류 태초부터 행실로써 천국과 지옥을 갔습니다. 죄인들이 믿음으로 천국가려고 믿는 종교적 목적이 있지만 선행을 더 쌓는 것이 천국을 가게 하는 것이지 믿음으로 십일조나 종교적 의식(면죄부나 각종 의식)을 한다고 해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유령이 존재하는 것은 사후세계를 안내하는 영령들(저승사자나 천국에 계신 친족이 데리러 옴 만약 천국에 있는 분들이 안 계시다면 다른 이가 저승사자가 되어 데리러 옴. 검은 옷을 입고 데리러 오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것임 서양도 검은 옷을 입고 오고 동양도 검은 옷을 입고 옴)을 술법과 주술로 피하였거나 너무 어렸을 때 종교를 알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떠돌게 된 영혼들도 있습니다. 대개 죄많은 영혼들이 떠돕니다. 사후세계를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후세계는 문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 문을 들어가고 싶어하다가도 교회문이 아니거나 절의 문 또는 종교적 문이 아니라서 안 들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문을 들어가지 않으면 저승사자가 옵니다. 저승사자는 사후세계의 안내자입니다. 이러한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지 못하면 떠돌게 됩니다.

 

오늘날은 선행을 말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과거엔 선을 가르치기 위해 성인과 같은 분들께서 종교를 이끄시고 천국가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선을 위해 성립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선 종교 중에 선이 아닌 종교도 있으나 그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서 고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야훼님보다 더 높은 분께서 알려주신 것은 행실로써 천국과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그럴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류는 살고 있는 곳에 따라 사회적 풍습이나 관습,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선과 악이 뒤섞여 기준이 모호하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영혼의 활동입니다. 영혼은 선과 악을 알고 있습니다. 안 가르쳐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선과 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혈연에 치우쳐 혈연을 위해 부정을 저질러도 그것의 정도는 누구나 갈등하였을 것이며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고 선과 악의 갈등으로 선의 행실을 하거나 그 중간의 적절히 섞인 선택을 하거나 악의 행실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마음에서 다 느껴졌었고 모두 느끼는 감성입니다. 감각과 감성을 인류 공통입니다. 어쨌든 사후세계는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행실로써 가는 곳입니다. 생각만 하는 것은 괜찮으나 생각이 확고해지거나 각오하면 행동으로 옮겨지겠죠. 종교와 생각이 아닌 행실로써 가는 곳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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