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당
바보가 되...
|2013.03.0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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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당1전주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시간을 내어 출발한 내일로여행의 4일째 일정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하루는 저물어갔지만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우리는 한옥마을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전주역으로 가고 있었다. 얼른 역으로 가서 맞이방의자에 앉아서 쉬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다. 여행 내내 비도 오고, 게다가 어젯밤에 음식을 잘 못 먹었는지 체한 배때문에 우리 3명 모두 피곤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버스는 빨리 역으로 우리를 옮겨주었고 우리는 짐같은 몸을 끌어 맞이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앉을 자리는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무거워보이는 짐을 메고서 서있었다. 곳곳에 사람이 앉지 않은 자리가 있었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누군가의 짐들이 의자 위, 그곳에 고히 모셔져있었다. 사람보다 중요한 짐이라니. 짐주인 같은 사람에게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놈의 스마트폰에 신경을 쏟아부은 척 반응하나 없다. 그렇다고 구차하게 가방 좀 치워달라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랬다. 피곤한 몸때문에 낯선 누군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가방을 치워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편히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니 기대가 실망이 된 몸은 피로에 더욱 더 무거워져 우리의 몸을 축 늘어지게 했다. 거울이 없어 보진 못했지만 표정도 가관일것이다. 앉을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한녀석은 담배를 피러, 한녀석은 화장실로. 앉을 곳도 할것도 갈곳도 없는 나는 그저 이 넓은 역사 안을 돌아다닐뿐이었다. 그러다 매표소 앞에 의자에 자리가 빈 것을 보았다. 맞이방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서있었는데. 왜 그 사람들은 이 매표소 앞 자리에 앉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리는 쉬고 싶었고 아픈배는 휴식을 원했다. 설사 자리를 뺏길까 싶어서 빠른걸음으로 얼른 가서 그곳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몸이 축 늘어졌지만 피곤한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놈의 남자였기에. 할 짓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챙겨온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책은 작고 얇은 책이었다. 존 러보크의 <인생의 선용>. 읽으면 읽을 수록 좋은 문장들이 참 많이 들어있다고 느끼는 책이었다. 이번 여행와서도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서 챙겨왔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중에 제일 가볍고 작은 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게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읽지도 않았지만 그새 스르르 감기는 눈과 이성은 싸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잘 순 없다. 사나이니까. 하지만 잠을 자고자하는 욕구와 이런 곳에서 잠을 자선 안된다고 말하는 이성간의 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 나의 그런 모습때문에 내가 정신을 차릴때 마다 매표소 직원분은 웃음을 참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졸았다. 친구들은 잠시 나에게 왔다가 각자 자기의 자리를 찾아서 떠났다. 일어나 보니 비어있던 자리는 남자 두명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두사람도 열차도착알림방송에 가방을 다시 메고 가버렸다. 그리고 내 옆자리는 다시 비어있었다. 웃음을 참던 매표소 직원분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다른 직원이 그자리에 앉아있었다. 어느정도 졸음으로 피곤을 날려보낸 나는 다시 존러보크의 <인생의 선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코레일 잡지가 있길래 그것을 들고 와 읽기 시작했다. 1896년 영국에서 쓰여진 인생의 선용보다는 최근에 쓰여진 글들은 어딘가 신선해 보였고 눈에도 잘 들어왔다.‘ 충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먼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 당긴다는 소리아닌가. ’ 한창훈 소설가가 쓴 이 문장을 읽고 있었을 때 쯤. 조용하던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었던 터라 사람이 걸어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던것 같다. 인기척이 일어나는 곳을 바라보니 내일러로 보이는 여자 한사람이 이제야 앉을 곳을 찾았다라는 안도감으로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여자와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나도모르게 고개를 재빨리 돌려 잡지에 눈을 내려 꽂았다. 그리고 익숙한 문장이 가슴에 들어왔다.‘ 충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먼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 당긴다는 소리아닌가. ’2다시금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볼 순 없었다. 내 고개는 가만히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었다. 나의 시선도 잡지 어느 한켠에 멈춰있었다. 나의 손은 날씨 때문에 차가워진 잡지에 의해 느낌이 희미해질만큼 차가워졌지만 한페이지를 꼭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순간 마주친 그 여자를 회상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그 여자를.그 여자는 푸른 윈드브레이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날씨에 맞지 않게 얇아보이기까지하는 파란 옷은 안에 입은 다른 검은옷이 비춰보이는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꼼꼼하게 꽉 묶은 머리는 하얀 목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분명 눈이 마주쳤지만. 그 여자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세세한 얼굴의 이목구비보다는 인상. 느낌 따위가 그 찰나의 순간 기억 속에 들아와버렸다. 야위여보이는 외형에 빛나는 눈동자. 세상의 거친파도를 제 온힘으로 헤쳐가면서도 내면의 여성스러움을 포기하지 않는듯한 얼굴이었다. 뭐라 똑부러지게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흔하지 않은 여자같았고 그리고 그 점이 찰나의 순간에 바로 느껴질만큼 세상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줏대를 움켜쥐며 살아온 사람 같았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사람 같았다. 조용히 앉아 휴식을 취하던 그 여자는 이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상대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엄마 딸 아니냐며 전화 속 그 여자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열차도착방송에 맞춰 내게로 온 친구들과 함께 난 그 의자를 떠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나왔지만 다시 일상같아져버린 여행의 일정에 발을 옮길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나를 일상에서 빼내 줄것만 같은 충동 같은 그 여자를 고개를 돌려 뒤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나와 그여자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붉은실타래 처럼 이미 섞이고 있었다.3열차에 몸을 실었다. 해가 져물어 가던 전주역을 떠난 열차는 해가 져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두운 풍경에 드문 드문 켜진 불빛들. 친구녀석들은 금새 잠들어 버렸지만 나는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피곤한 몸은 여전히 달콤해보이기만하는 잠을 원하였지만 누군가로 인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부자연스럽게 뛰어버린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와 공간적으로 멀어지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을거란 생각에 하지 못한 질문들이 떠 올랐다. 어째서 혼자서 여행을 온 것일까.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밤새 한다고 해도 집중하여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호기심이 그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고요하게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거짓말 같은 바깥풍경과 가끔씩 들리는 열차소리가 그 여자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색하게 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잠이 오질 않아 숙소가는 길을 적어 둔 수첩을 가방에서 꺼내었다. 가방에서 꺼낸 나의 파란 수첩을 보자. 파란 옷을 입고 있던 그 여자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 파란옷의 여자. 혼자서 여행을 온 여자.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억양. 겨우 찰나의 순간 마주한 그 여자의 눈에는 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동태같은 눈을 하며 수동적으로 살아오지만, 그여자의 눈에서는 역경을 극복할려는 듯한 능동적은 자세가 당차게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어딘가 기대어 쉬고 싶은 곳을 찾는 삶에 지쳐버린 여린 모습이 조그마하게 숨어있었다. 생각보다 앉을 자리가 없는 열차안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내일러들이 돌아다녔다. 혹시나 싶어 그 사람들 사이에서 그여자가 있을 가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그 여자는 보이질않았다. 순간의 충동을 붙잡지 못한 미련 때문에 열차가 환승역인 익산역에 까지 가는 동안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여자를 찾고 있었다.4열차는 금새 익산역에 도착했다. 익산역은 한참 공사중이었다. 공사현장이 주는 불완전함때문이었을까 전주역보다 더 많은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 추웠진것만 같았다. 더 추워진 탓에 미세하던 배의 아픔은 커져만 갔다. 익산역에는 많은 사람이 내렸다. 행여나 싶어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찾아보았지만, 그 여자는 보이질 않았다. 파란 옷도 쉽게 눈에 띄질 않았다. 익산역 맞이방에 가서 앉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보며 그 여자를 찾아 보았지만 보이진 않았다. 해가 지기 전 순간의 마주침 때문에 해가 져물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나는 그 여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손에 든 수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읽지 않을 책을 넘기듯 수첩을 넘겼다. 그리고 어느 한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함께한 수첩이었다. 늘 어딜가나 들고 다니는 수첩이였다. 가끔가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가하면,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둘려고 적기도하고, 누군가에게 빚진거, 빌려준 돈 따위도 적혀있었다. 누군가의 생일, 기념일. 같은 것도 적혀있었다. 플래너라고 부르기에는 한 눈에 들어올만한 체계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사로운것까지 적어 둔점을 생각하면 플래너라고도 부를 수 있는 수첩이었다. 무질서한게 흠이었지만.적는데 제한이 없었던 만큼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두었다. 모든것을 적어 둘 수 있었다. 질서가 없엇기에 그 어떤 것도 질서를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3년 기념일 이라고 적힌 날이 눈에 들어왔다. 한달 뒤 일이었다. 한달 뒤 3년 기념일을 같이 보낼 전 여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졌다. 아마 이번 여행을 떠나온 계기도 그것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 속 깊이 있는 나와 이야기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러리라 생각한다. 전 여자친구와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귀어왔다. 두사람 다 첫 연애였기에 서로에게 서툴 수 밖에 없었다. 서툴었던 그때는 사랑만 있으면 모든일이 다 해결 될거라 믿었기에. 우리는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여자였다. 그리고 사랑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여자이기도 했다.그리고 왠지 그 파랑옷에 머리를 꽉 묶은 여자는 어딘가 여자친구와 닮았던것 같기도 하다.생각을 떨쳐버릴려고 온 여행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다. 얼른 생각을 털어내었다. 생각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도 멀어질거라 절실히 믿었기 때문이었다.5곧 군산으로 가는 열차가 도착했고 방송이 울렸다. 나는 졸고있는 친구들을 깨우고 함께 타는 곳으로 걸어갔다. 맞이방을 나오자 다시 겨울바람이 우리들을 스쳐기 시작했다. 추웠다. 열차는 예고 없이 지연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마주하며 덜덜 떨고 있었다. 나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열차가 올 방향을 생각하며 양쪽을 선로끝을 향해 바라보았지만 도착시간이 한참 지난 열차는 오지 않았다. 열차가 어디서 올지 몰라 양쪽을 두리번 거리면서 보고 있는데 저기 왼쪽 어딘가에 어느새 낯익어버린 파란 옷이 순간 인파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리고 있어서 고개를 들어 다시 그쪽을 보았지만 쉽게 보이질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파란 옷을 보았다고 생각한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인파들 사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내가 잘 못 본것인지. 그 어느것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잘 못 본거라 믿고 포기 할려는 찰나. 인파사이에서 앞으로 걸어 나와 노란선 앞에 서서 열차선로의 끝을 바라보는 파란 옷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고 있는 그 여자의 꽉 묶은 머리도 보였다. 멀리있었지만 확신 할 수 있었다. 그 여자였다. 어딘가 내 전여자친구를 닮은 그 여자였다. 이내 열차가 들어오고 어두운 밤길을 가르는 밝은 열차의 빛 속으로 그 여자는 다시 사라졌다.6군산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여자가 열차에 탄 것을 확인 하진 못했지만 거기서 기다리는 걸로 봐선 이 열차를 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군산에서 내릴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군산에 내리지 않아도 되었다. 군산에서 다시 볼거란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한번 더 보고싶었던 사람을 한번 더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묻었다.7기다리는 시간에 비해서 열차는 얼마달리지도 않고서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에서도 고우당으로 갈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우리가 타야할 버스는 운 좋게도 기차역 앞에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얼른 뛰어 올라가 버스에 몸을 실었다. 피곤함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에 뛰어 올라가 제일 뒷 자석에 앉았다. 그리고 비록 밤이었지만 또 다른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들떠 우리들은 버스에서 고등학생때 처럼 장난을 치며 놀았다. 아직 버스는 운행시간이 되질 않았는지 출발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여행지에서 본 여자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떠들며 노는 사이 버스는 출발했고 바로 앞 정류장에 멈추어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군산역은 외진 곳에 있어서 타는 사람이라고 해야 기차역에서 나오는 사람이 다 일텐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 여행객 반, 군산 주민 반. 그정도로 타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파란 옷의 그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내리는 문 바로 뒷자리 창가 쪽에 혼자 앉았다. 그리고 방송이 울리지 않는 조용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여자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나는 창가에 비친 그 여자를 바라보곤 했다. 행여나 그렇게라도 내가 보고있는게 들킬까봐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니면 조심스럽게 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역을 출발한 버스에 타는 승객은 없었다. 탄 승객들이 내릴 뿐이었다. 그렇게 버스는 움직여 우리의 숙소근처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 승객은 나와 내친구들. 그리고 그 여자. 우리는 그렇게 아직은 함께 아닌 함께 고우당을 향해 가고 있었다.8고우당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어울리게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세대가 보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름하기만한 주택들 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잡은 고우당은 정원을 중심에 두고선 사각형으로 둘러싼 일본식가옥들이 있었다. 한면마다 다른 용도로 자리잡은 고우당 건물들은 한면은 숙박시설, 한면은 편의점, 한면은 식당, 한면은 카페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야인시대에서나 봤을 법한 소담하게 가꾸어진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가볍게, 하지마 행여나 전체적인 조화를 제하나때문에 망처버릴까 조심스럽게 연못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반기는 정원의 야경은 이 곳이 운명의 마지막 장소인냥 도착한 우리들의 마음을 마냥 열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숙소를 배정받고 안내에 따라 숙소로 향하였다. 그 여자도 우리와 함께 숙소로 향하였다. 그 여자가 머무르는 곳은 우리와 한방 사이에 두고 있었다. 우리는 301 그 여자는 303.우리는 좁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에 누웠다. 비오는 날의 여행때문에 피로가 제법 누적되어있었다. 그렇게 지친 몸이 따뜻하고 소박하게 평온한 분위기인 이방으로 들어오자 얼음이 녹듯 곧 몸도 함께 녹았다. 내가 가장 먼저 씻고 이대로 누우면 잘 것 같아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겠다며 먼저 나왔다. 여행지에 왔는데 자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숙소에서 나오자 바로 옆 면에 있는 카페의 가격표가 바깥에 걸려있는걸 보았다.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몸도 녹일겸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근처에 사는 듯한 가족이 이미 와있었다. 가족중에서는 꼬마 두명도 있었는데 두명 다 모자를 써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꼬마 두명 모두 활기차게 이 카페를 뛰어다니는걸 보면서 남자꼬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주문하는 곳으로 가서 그린티 라떼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테리어가 잘 되있었다. 근대일본식이라는 컨셉을 충실하게 만족시키고 있었다. 일본선술집같은 느낌 보단 일본가정집같은 느낌이 풍겼다. 가정집같은 느낌이여서 그랬을까 친숙하면서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아마 가족들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둘려보니 여행객들이 글을 남기는 책이 나무기둥에 걸려있었다. 키가 180인 나보다도 높은 곳에 있는게 약간 의하해했지만, 읽을 거리라면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반갑게 그 책을 펼쳐보았다. 여행객들이 남기는 글도 있었고, 지금 뛰어다니는 꼬마아이들이 남겼을법한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한 가족 그림도 있었다. 그린티라떼를 마시며 주변풍경보다 인상에 남을 그 수많은 여행객들이 흔적을 남긴 책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생각보다 솔직한 내용들이 많았다. 아마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대나무숲이나 고해성사를 토해내는 역할을 해주고 있는것 같았다.자기포장이 일상화 되어버린 세상에서 자기의 솔직함을 말할 수 있는 곳이 몇군데나 있을까. 그런 솔직함에 반해 나도 자켓 앞 주머니에 있던 펜을 꺼내어 글을 적기 시작햇다. 두서없이 시작한 글이라 무엇을 적을려고하는지, 어떤것을 내가 적고있는지 신경쓰지 않은채 그저 흘러가는 마음이 솔직하게 하는 말들을 끄적었다.‘ 괜스레 생각이 많아 진 것 같아. 홀연히 떠나고 싶었다.내가 내린 결정에 확신이 서질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탓이었다. 나도 모르게 움직인 나의 마음과 행동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고싶었다. 그래서 아마 이번 여행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절실했기에 저 먼곳에서 일렁이는 충동에 몸을 맡겼는지도 모르겠다.이번 여행을 떠난게 잘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에서의 도피같았기에.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보았으면 한다.일상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보물을 찾은것 마냥 소중햇던 것들을 다시금 보았으면 한다.만약 나처럼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곳을 찾아 떠나온 사람이라면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지금 들고 있는 이 무거운 짐들을 내려 놓고 어제처럼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기를 빈다.2. 6. 13 ‘9“어디서 오셨어요?”그녀가 묻는다. 여행자들이 글을 남기는 곳에 글을 다쓰고서 다시 기둥에 걸어 놓을려 일어나자 그녀가 이 카페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되자 기둥에 책을 걸어놓으려 가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 걷는 발모습이며, 흔들리는 눈이며, 불안한 리듬이 되어버린 호흡하며 모든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언제들어온지는 모르겠다. 글쓰는데 집중을 한 나머지 인기척을 느낄 수도 없엇나보다. 그리고 시끄럽게 뛰어다니던 꼬마들과 가족이 나가고 없었다. 어디서 왔냐는 그녀의 목소리에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본다. 씻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파란 옷 대신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물기가 조금 남은 듯한 머리는 처음 보았을때와 마찬가지로 꽉 묶여 있었다. 곱게 정리되어 묶여있는 머리는 베토벤의 슬픈 선율이 머무를 듯한 악보같았다.그동안 여행을 하는동안 기차안에서 지나가는 거짓말같은 풍경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데 익숙해진 탓일까. 나에게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이 마냥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는 대답하지않고 있는 나에게 조용한 미소를 건내며 다시 한번 물었다.“어디서 오셨는지 안가르쳐주실꺼에요?”그때서야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된 나는 책을 기둥에 걸으면서 나의 가족이 있는 곳을 말하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테이블로 걸어가 앉아도 되냐고 조심스래 물어보았다. “네, 앉으셔도 되요. 안그래도 말동무가 필요했거든요.”나는 아직 식지않은 그린티라떼와 펜을 들고선 그녀의 테이블로 갔다. 내가 조심스래 그린티라떼가 담겨져 있는 컵을 내려놓자 그녀는 다시 조용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 조용한 미소 너머에는 희미한 슬픔따위가 언뜻 보이는것 같았다.10‘...그러나 구름이 비치는 것은 물의 표면이지 호수의 깊은 곳은 아닐것입니다.’어디선가 읽은 문장이었다. 어렷을적에 읽었지만 인상에 깊은 문장이라 다 커버린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었다. 글쓴이와 책, 제목, 책표지의 색, 읽은 장소, 첫느낌 은 흐르는 돌이 세월에 깍여나가는 것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이 한줄의 문장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주머니에 넣고 싶은 몽돌처럼 남아 있었다. 표면에 보이는 것이 그 실체가 아니란말. 표면에 구름이 비춰지면 구름이 보이고, 달이 비춰지면 달이 보이는 물. 내가 어느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표면에 비친 내가 이기적이기때문에 이기적이라고 느낀다는것. 나는 내가 비친 그 사람의 표면을 볼뿐. 내가 보는 것이 그 사람의 깊은 곳은 아니라는 말.그녀에 눈동자를 보고 슬퍼보인다고 느끼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내가 슬퍼보이기 때문에.아무렇지도 않은척,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름을. 그래서 오늘의 난 슬픔을. 이제서야. 이 낯선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낯선여자의 눈동자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11서로 다른지역에서 온 우리는 생각보다 잘 맞았다. 방에서 장난을 치다 카페에 있는 나를 찾으러 온 친구들은 카페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고, 낯선여자와 함께있는 나를 고우당 안에있는 편의점 옆 선술집에서 발견 할 수 있었다.“우리 서로 이름은 물어보지마요.”“왜요?”“이름을 말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는것 같잖아요. 우연히 만남만큼 우리 만남에 무게를 두고 싶지않아요. 이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만 남겨두고 싶어요.”“네, 그럼 서로 가명은 어때요?”“가명이요?”“네, 그래도 먼 훗날 이런 우연을 추억하기 좋게 명칭 하나쯤은 가지고 싶은데 그것도 알 될까요?”“아, 재밌는 사람이네요. 음. 신사분께서는 뭘로 할 생각이신가요?”“음. 저는 존 할께요.”“딱히 이유는?”“이번 여행때 들고온 책 작가가 존 이거든요.”“아, 책에서. 음. 그럼 저는 오하라. 스칼렛 오하라.”“딱히 이유는?”“비밀이에요.”“아, 그...바,”“쉿. 알면서도 모른척 모르면서 아는척 신사의 기본아닌가요? 존씨.”그녀와 나는 이 낯선 곳에서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번여행에서 있었던 웃었던 일. 살면서 있었던 재밌는 일.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로 우리는 이 낯설고 외로운 곳의 밤을 이겨내 나가고 있었다. 우동 한 그릇에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마시면서 유쾌하기만한 이야기로 쉴새 없이 웃었던 우리는 조금은 쉴 필요를 동시에 느낀듯 조용히 가만히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위에 올린 팔에 턱을 괴고 희미하게 취한듯한 몽롱한 표정을 지은채 닿을 수 없는 미소를 띄며 날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낯선 그녀에게 드는 낯선감정들을 이제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 보였다. 생경한 것들을 더 알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 아기가 겨우 손끝에 걸리는 모빌이 무엇인지 궁금해 그것을 잡고자 하루종일 팔을 뻗어 잡을려는 그 순수한 아이의 미소같은 호기심.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나는 할 수 없었던, 일상을 완전히 떠날 결정을 내린 용감한 모험가의 눈이 보였다. 선술집의 고요한 빛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를 우리는 의심없는 침묵 속에서 한없이 솔직한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우리의 만남에 우연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인연. 한없이 험하고 언제나 힘든 세상속에서, 얻는 것보단 잃는게 더 많은 세상에 지쳐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을 수 없어 하루하루 생존하듯 근근히 버텨온 우리들의 가슴 한켠에 삶에 들키지 않게 숨겨둔 소중한 그것. 지치게하는 수많은 일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우리를 덮쳐와 지치고 힘들게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그사람을 위하여 그 고난과 역격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한 인연. 그것은 아마 이런 인연이 아니었을까 싶다.‘그것은 천국에 대한 희망보다 더 복되고 감미로운 생각이었다.’그런 달콤한 생각 속에서 허우적 거릴때, 오늘의 인연이 첫만남의 환상이 아니길 몰래 빌었다. 12Richard Clayderman 의 <Someone Like You> 피아노 연주가 선술집에 울려퍼졌다. 어쩐지 이런 선술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이 노래가 이 작은 선술집에 울려퍼지자. 순간 그녀의 눈은 촛점을 잃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지만, 순간에 모든걸 의지하며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며 위로하던 눈빛은 피아노 소리에 거짓말이 들통난 사람쳐럼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눈은 촛점을 잃은 채 어디에선가 추억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 모험가의 눈, 줏대를 지켜온 힘찬 눈 따위는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듯 사라지고 눈에는 슬픈 연기만이 남아 얇게 피어 올랐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 노래에 어떤 추억이 서려있길래 그렇게 빨리 미소를 잃고서 추억에 잠기는 걸까. 그녀의 촛점을 잃어버린 눈은 가서는 안 될 곳에 간듯, 봐서는 안될것을 본듯, 알아선 안될 사실을 알게된 사람처럼.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눈물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을것 같은 눈이었다. 아니 오히려 눈물이 흐르지 않아 더 어색한 눈이었다. 잠시 추억을 헤집고 온 그녀는 조용한 미소를 띠며 말없이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마 그녀에게는 그때의 나처럼 눈물을 삼킬 그 무언가가 필요 했으리라 라고. 그래서 아무말 없이 위로하듯 건배를 받아주었다. 맥주를 다 마신 그녀는 다시금 아무렇지 않은듯 쓰윽 하며 웃었다. ‘...혈액처럼 몸속에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눈두덩에 눈물 같은 걸 올려 놓지 말아야 한다.아가리로 울면서 아가리로 밥을 처넣는게 인생이라면김밤이든 라면이든 밀어넣어 올라오는 울음을 틀어막고농담처럼 또 쓰윽 웃는거다. ...ཉ아마 그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내가 그 그리움의 넓이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그녀가 사는곳으로부터 이 먼곳으로 떠나온 그이유의 넓이 보다 더 넓은 그리움을 그녀의 눈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오늘의 자신이 내일의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나를 보고야 말았다.14<Someone Like You> 피아노 연주가 끝이나고 우리는 말없이 테이블에 남아있던 맥주를 한병 두병 비우고서는 선술집을 나갔다. 술에 취해버린 그녀는 나에게 몸을 기대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부축해주며 발걸음을 조금씩 조금씩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땅을 보고 있었다. 겨우 오늘 하루 아니 몇시간 동안 만난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는듯 했다. 내가 섣부르게 위로한다면 그녀는 흘리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눈물을 두서없이 떨구어 버릴터였다. 그녀에게 낯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것만 같았다.“하늘에 별이 많아요.” 무기력해진 나는 하늘을 보며 말하였다. 그런 나의 말에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를 보자 머쓱한 웃음을 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네, 참 별이 많네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두덩에는 얇은 슬픔이 맺혀있었다. 그 슬픔위에 별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버린, 그녀의 진실된 감정이 이 곳을 더 아름답게 하였다.나는 별빛이 맺혀버리고 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도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맺혀버린 별빛은 결국 흘러버렸고 나는 그 흐르는 별빛따라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별빛이 어렵게 매달려있는 입술에 시선이 멈추고, 그리고 내 입술을 마주했다. 그녀의 감기는 긴 속눈썹이 나의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녀를 잡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부서질듯 잡았다. 마치 눈뜨면 사라질것같았기에 그런 그녀를 놓치기 않기 위해서 절실하게 그녀를 껴안았다. 운명에 항복을 하듯 그녀의 입술에 다시 다가갔다. 그녀의 두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나는 다시는 내일은 없을것 같이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리었다. 이 강렬하고도 갑작스럽게 다가 온 감정은 그녀와 나 사이에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었고 그녀의 발은 땅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격정적으로 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서로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말없이 그녀의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부드럽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 암흑같은 충동. 그 속으로 거칠게 빨려들어가고있었다.15간밤에 마신 술때문일까. 생각보다 늦게 일어났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서 사라졌다.‘이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만 남겨두고 싶어요’그녀의 말이 떠올라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자신이 내일의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살아갈것 같았던 내 생각이 맞았나 보다. 그래서 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옆에 곱게 정리되어있는 이불을 보며 어젯밤에 보았던 그녀의 미소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곱게 접힌 이불은 어쩐지 그녀의 미소와 잘 어울렸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벗어놓은 속옷과 잠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아마도 속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어젯밤일이 꿈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르는일이었다. 그녀가 정리해둔 이불 옆에 나의 이불도 곱게 접어 두었다. 베개에 침자국이 선명했다. 자국을 보자 그 와중에도 그녀가 이것만큼은 보지 않았으면하는 부끄러움이 생겼다. 복도에는 부지런한 햇볕이 창가사이로 꼬마같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친구들이 있는 숙소로 가보니 친구들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날 놀렸다. 그런일은 없었다고 친구들의 장난을 무시하면서 씻을 준비를 하고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밖에서 친구들의 장난이 들린다. '그런일은 어떤일일까? 뭐가 그런일일까? 아이 궁금하네.' 뜨거운 물을 맞으면서 그녀를 회상했다. 남들 모르게 슬픈 눈을 간직한 그녀를. 아마 그녀는 지금도 낯선 이곳에서 홀로 당당히 걸어가며 세상과 대면하고 있을일이었다. 그 당당함 사이에 숨겨져 있는 슬픔 때문에 때문에 난 그녀를 잊지 못했었나보다. 너무나 인간다움에 반해버렸나보다. 나와친구들 모두 여행준비가 끝이나고 이 곳, 고우당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추운날씨에 따뜻한 커피를 하나씩 들고 가기로 했다. 어젯밤 갔던 카페에 들어가서 그린티라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배낭을 의자에 내려놓고 어젯밤에 보지 못한 낮의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기둥에 걸려있는 책이 생각나 가져와 펼쳤다. 그리곤 내가 쓴 부분을 찾았다. 그곳에는 어젯밤 내가 쓴글 말고도 낯선 파란볼펜으로 쓴 글이 남아있었다. ‘ 침 흘리며 자는 존씨, 덕분에 무거운 짐을 여기 이곳에 던져두고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나만 두고 가는건 아니겠지요? 존씨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만난 시간에 비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하지 않을거에요. 우리의 우연같은 순간이 무거워지기를 바라지않거든요. 그래서 딱 한마디만 할께요. 슬퍼보이는 존씨.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법이니까요!그리고 언제 떠올려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줘서 고마워요. 스칼렛 오하라.‘그녀다운 글을 읽는동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당당하게 솔직해지는 법을 아는 목소리.나의 이유모를 미소를 보며 친구들은 또 다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또 다시 일상같은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비가 그친 오늘 떠오른 '내일의 해'는 그 어느때보다 밝았고, 하늘은 그 어느때보다 푸르렀다. 그녀가 떠올랐다.나도 가슴 깊숙히부터 외쳐보아야 겠다. 그간 들고오느라 힘겨웠던 추억과 기억의 조각들을 던져버리기 위해서. 행복을 찾아 과거를 돌아봤지만 후회와 슬픔만을 준 그 순간들을. 희망찬 내일의 내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그렇게. 절실하게. 그녀처럼. 가슴 깊숙히부터 외쳐본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판 토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곳에 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어쩐지 우리들의 '첫만남' 이란 주제에 어울리는 '첫 글'이네요.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첫만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우연히 만난 낯선 누군가가 추억에 남아 있다면, 지금은 만나지 못하더라도첫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써내려 가보았습니다.이번 내일로 여행때 있었던 일을 참고하여 쓴 짧은 소설입니다.처음 써본 소설이라 많이 부족하겠지만재밌게 읽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2013년도의 첫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올해 봄에 많은 분들이 가슴설레이는 '첫 ~ ' 을 하시길 바라며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좋은 봄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