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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권]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빛 속에도, 파도 속에도, 빗속에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대가 있었다」

 

저자 : 요시모토 바나나

역자 : 김난주

출판사 : 민음사

출판일 : 2013년 03월

■ 애처로운 마음의 편린. 그 후 한동안, 그 수첩의 뜯겨 나간 자리만 봐도 찡하게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은 마음을 두 갈래로 좍 가르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과 갑작스러 헤어진 아픔이었다. -p.10

 

■ 천천히 시간을 두고 포기하는 것은, 간혹 모든 것이 옛날로 돌아갈 듯하고 앞으로 만사가 다 좋아질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희망의 순간이 있는 만큼, 딱 포기해 버리는 것보다 몇 배는 슬픈 일이었다. 기대하면 하는 만큼, 슬픔도 깊어진다. 만날 때마다 하나, 또 하나 품고 있던 희망을 지워 가는 그 느낌은 얼룩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전기 스위치를 끄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하나 하나 불어 끄는 것처럼, 보다 의식적으로 지워 나가는 느낌이었다. -p.13~14

 

■ 파란 하늘과 서늘한 바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애틋해지는 사이였다. 보들보들한 비, 물뿌리개로 살살 뿌리는 것처럼 비가 내릴 때면, 그 비구름 너머로 반짝거리는 햇살까지 느끼는 일도 있었다. 나는 그를 통해 사물을 그렇게 보았다. -p.37~38

 

■ 사람이란 인생의 출발점에 이미 행복의 대부분을 아는 법이야.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행복의 틀은 그때 만들어지거든. 그리고 그다음은 줄곧 그것을 되찾기 위한 투쟁의 연속일 뿐. 너 같은 경우는 다마히코와 보낸 시간이 그걸, 선망하던 모든 걸 상징하고 있었던 거지. -p.53

 

■ 그리운 마음이 너무 크면 만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죠. 남자에게 첫사랑의 연인과 어머니가 얼마나 무거운 존재인지, 여자는 절대 모를 겁니다. 말할 수가 없어요.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건 말이죠, 아무리 낙천적인 형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분명 그랬을 거예요. -p.75

 

■ 인간이란 대개가 모두 그런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퀼트가 필요한 것이리라. 가끔 달콤하고 그립고 풍요로운 것이 피어오르는 추억이. -p.185

 

■ 맥주를 두 캔 마시고,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고, 그럼 또 봐, 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그럼 또 봐."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인사. 무척이나 호사스러운 그 인사를 나누면서. -p.206

 

■ 그럴 수밖에. 내게는 우쿨렐레가 있고 가족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테트라 너만 쫓아 일본에 간다는 건 나를 죽이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느니 여기 있으면 온갖 빛 속에, 파도 속에, 빗속에, 무지개 속에 언제든 네가 있으니까, 그편이 좋다고 생각했어. -p.211

 

■ 나는 그날, 사우스포인트에서 분명하게 그것을 보았다. 바다와 하늘, 하늘과 이 세상, 바람과 파도, 온갖 것들이 아름답게 뒤섞이고 녹아드는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마련해 놓은 또 다른 틈새를 보았다. 두 세계의 거대한 힘이 섞이는 것을. 이 세상에는 다른 세상을 엿보게 해 주는 무수한 틈새가 있고, 거기에 감응하는 혼이 있는 한, 아직은 이렇게 많은 것을 그냥 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필시 이 장소는 간혹 인간이 그런 신비로운 힘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정말 흔치 않은, 혹독하면서도 친절한 곳이리라. -p.217

 

리뷰

 

내가 읽고 소장하는 책 한 권 한 권에는 모두 그 책에 담긴 추억이 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다보면 불현듯 그 책을 읽었던 장소가 떠오르기도 하고,

왜 그 책을 골랐었는지 그 이유가 생각나기도 하고, 때론 그 책을 읽던 날씨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게 내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가 있어서 더 소중하게 간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보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아, 9주년 기념일을 위해 울산으로 내려가던 기차안에서 본 책이구나.'

 

참 오랜만에 출간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번 책은 '기적의 러브송'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남녀주인공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있다.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가 1999년에 썼던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란 책의 후속편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 책에 나온 두 주인공 '마오'와 '하치'의 아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테트라'와 '다마히코'라고 한다.

전작을 읽어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긴하지만, 그들의 기적적인 사랑이야기가 가슴설레게 다가오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사랑이야기가 봄이라는 이 계절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이 어느날 노래의 가사가 되어 울려퍼진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빚과 밀린 세금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야반도주하는 테트라는

어린시절 마음에 품고있던 다마히코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담아 마지막 편지를 남긴 채 떠나는데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익숙한 내용의 글이, 그러니까 자신이 썼던 그 편지의 내용이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찾아가면서 결국 두 사람의 재회가 시작된다.

 

흔히들 첫사랑은 그냥 마음에 묻어두고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에

실망하게 되거나, 어렴풋이 남아있던 그 순수했던 환상속의 모습이 깨져버릴지도 모르니까. 

테트라와 다마히코, 그 두 사람 역시 다시 만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까 궁금해했는데 '결국 넌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다마히코의 모습에 괜히 내가 더 기뻐했던 것 같다.

안그래도 초반부부터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걱정하며 부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는데 다시 만나서 더 사랑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이번 이야기는 하와이 섬 남단의 '사우스포인트'라는 곳에서 흘러가는데

온 사방이 푸른바다여서 파도가 넘실대는 곳, 왠지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와

다마히코가 연주하는 우쿨렐레의 음색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려진다.

실제로 그 악기의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맑고 청명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낙원같은 장소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숙명적인 사랑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역시 봄날엔 사랑이야기가 최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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