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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부부싸움은 아이들에게 정말 몹쓸 짓이네요.

몹쓸 |2013.04.21 19:27
조회 5,724 |추천 36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하나 하나 읽어보면서 정말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결혼에 대해선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제가 너무 멀쩡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보니

시부모님은 그냥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저도 시부모님께까지 마구 까발리고 싶지 않으니

친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상 코스프레를 하게되더군요.

상처가 있는데도 없는 척 대체로 잘 속이면서 살다가도

가끔 엄마에게 포악을 떨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흠칫 흠칫 놀랍니다.

제 아이도 제가 왜 외할머니의 전화를 그렇게 이상하게 받는지 의아해 합니다.

 

잘 대하려고 노력하려다고

문득 문득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그래도 여전히 나는 부모님들을 미워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점점 더 제 스스로가 가증스럽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해해 주신다고 댓글을 달아주시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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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오년이 넘었습니다.

남들은 결혼하고 나면 친정을 생각할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라는데

애를 낳으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데

이상하게 저는 결혼하고 엄마가 된 다음에도

친정에 대해서도, 엄마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은 겉으로 보면 문제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는 존경 받는 직업을 갖고 있고 한번도 가장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전엔 좋은 직장이 있었지만 결혼 후 전업 주부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8학군의 중대형 아파트에서 살았지요.

 

하지만 저한테 가족은 지옥같았습니다.

부모님은 늘 싸우셨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욕과 고함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는 공부만을 강요했고,

형제 자매가 같이 노는 꼴을 보면 악다구니를 퍼부었습니다.

아빠는 자식 일에는 대체로 무관심했고 자신의 취미와 학업에만 관심을 가졌었죠.

엄마는 자기 혼자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서 늘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높은 학력과 아버지를 통해 얻은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

밖에 나가면 온갖 고상한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정말 아이들에게 험한 욕을 달고 살았습니다.

 

두 분이 싸우시면 밥은 없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경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굶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합니다.

하지만 우리형제들은 배달 음식이나 라면으로 연명하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싸우지 않을 때도 두 분은 늘 서로를 험담했습니다.

깍아내리고 비방하고 자기를 이해해달라고만 했습니다.

그건 자식들한테도 비슷했는데

저는 학창시절부터 임원이 되어 임명장을 받거나 우등상을 받아와도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늘 귀찮아했으니까요.

 

저는 그 악다구니같은 집에서 처음에는 늘 울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그냥 성인이 될 때까지만 버티자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자

이런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집이 서울이었지만 대학때부터 전 혼자 살다시피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고 싶다거나 부모님이 보고 싶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의무감에 명절이나 누구 생일이 되면 갔지만

그것도 늘 싸움으로 얼룩져서 우울하게 지나갔던 기억만 납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정말 상처를 많이 받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는 쉽게 씻어지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집안의 아이들은 저만 빼고 모두 정신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저도 가끔은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병원에 가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원인을 규명해 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양육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녀를 이해하게 되기보다는

왜 이렇게 어리고 무력한 아이들에게 그런 극악무도한 일을 했을까 원망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아직은 저를 많이 사랑합니다.

제게 엄마는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에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려고 다짐합니다.

 

엄마는 이제와서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듯

엄청 자상하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충고를 해댑니다.

하지만 엄마가 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엄마가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운동회 -엄마는 전업주부였기때문에 집에 있었고, 우리집 아이들이 세명이나 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장대같은 비를 쫄딱맞고 집에 들어섰는데 눈 한번 힐끗하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

내가 고3때 한달이나 유럽 여행을 가버린 부모님

뭐 이런 것들과 그녀가 퍼부어대던 악담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 건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현재의 저한테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내가 필요했을 때 양육의 의무를 져버렸던 그녀가

이제와서 심심해서 나한테 전화를 해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건 분명 제 악의적인 해석이겠지만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늘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누구도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기 때문이지요.

 

육체적 학대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게 정서적 학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부부간의 잦은 싸움과 이로 인해 불안정한 가정은

아이에게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는 것 같네요.

 

저는 제 아이들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입니다.

엄마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와 나를 분리해내려는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린 시절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너무 질린 나머지

남편하고 결혼할 때 제 한가지 조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게 소리지르지 말아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 약속을 충실하게 잘 지키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끔 소리를 지르다가 깜짝 놀랍니다.

 

 

두서없는 이야기지만

갑자기 전화를 해와서 이혼을 운운해대며

평온한 제 마음을 마구 할퀴고 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와 한번 속풀이 해보려고 씁니다.

분리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아직도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나마 표면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자식이라고는 저밖에 안 남은 부모님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내가 몹쓸 딸인 걸까 아니면

아직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게 남들에게도 상처가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엄살을 부리를 걸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가족에게 특히 부모에게 가혹하게 말하는 제 자신을 볼 때마다

늘 제 마음 속은 전쟁이네요.

추천수36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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