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엊그제 20살 이었던 것같은데 벌써 32이다.
날도 좋은데 작업실에 박혀서 그림이나 그리자니 우울해져서 그런지
작업실 앞 빵집에서 샌드위치 하나 사물고 떠들고는싶은데
아이디가 없어 막내 동생에게 사정해서 아이디나 빌려 써본다.
9살어린 동생이 볼까 부끄럽기도 하지만, 너도 이제 언니에대해 알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어릴적 부터 이쁘다는 소리 들으면서 큰 나는 사춘기 때부터 나에대한 자존감이
매우 커졌나보다.
부모님 말씀 잘듣고, 남자 여자 할것 없이 친구들도 많고 나름 바른 학생이였다.
사실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고 떠드는 걸 좋아해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애교도 많고 교무실도 자주 들락날락 거리니 선생님들한테 미움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처음으로 미술에 흥미가 생겨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개월을 부모님과 싸우며 다닌 미술학원에서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반대에 싸워 내 의지를 이루어 냈다는 자부심과 그만큼 더 잘해야한다는 부담감.
늦게 시작한만큼 더 잘하기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그렸다.
그리고 고3,
원서를 넣는데 성적이 내 장애물이 될줄이야 한다고는 했지만 공부를 안해오던 나는 당연히
공부 열심히하던 친구들한테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재수할거면 공장이나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눈물을 머금으며 지방의 한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당당하고 리더역활을 하던 나 혼자서만 인서울을 하지 못하고
형편없는 지방대에 왔다.
괜히 나혼자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고, 그럴수록 대학교의 친구들이랑만 어울리게 되었다.
술마시길 좋아하고 20대 초반 어디서 주워들은 개똥철학이나 주절거리면, 대학의 친구들은 서울에서 온
애는 다르다고, 신여성이라고 떠 받들어주는걸 즐기며 그렇게 2년을 낭비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맞장구 쳐주며 기특하게 여기던 복학생 오빠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교 3학년때 신입생 여자애에게 홀랑 남자친구를 뺏기고,
처음으로 그런 자괴감을 맛보았다. 어디서 꿀리지 않는 외모에 나정도의 성격 왜 내가 저 딴 코흘리개
신입생한테 졌을까 그때는 무슨 근자감이였는지 내 잘못은 생각을 아니 생각하기가 싫었다.
보란듯이 성공해 주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그림에 빠져들었던 것같다.
이름대면 알만한 공모전에서의 수상, 교수님의 추천을 통한 전시로 학생 때부터 입지를 다지며
그렇게 알 수 없는 마력에의해 미친듯이 작업에 몰두 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생겼다.
한 유명갤러리의 초청전시였다. 컬렉터들까지 끼어 있으니 이 것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전 남친 둘이서 놓고 교수님들간에 이야기가 오갔다.
원래 전시라는것이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고 이야기 하는것이 맞지만, 두 종류의 작품을 보고
디렉터가 고민을 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기고 싶었고, 이길것이라 생각 했다.
결과는 참패 둘이서 함께한 그룹전에만 참여하고 그 갤러리에는 그 남자애가 들어갔다.
나중에 친구들한테 들은 얘기지만, 12년전이면 여자 흡연자가 요즘과는 달리 많지 않았던 시절,
숨어피던 시절에 흡연자인것을 빌미로 그 남자가 교수님한테 이래저래 살을 붙여 소문좀 흘렸다더라.
그리고 난 도피하듯 서울에 한 대학원에 갔고, 등록금과 재료비를 마련하기위해
작은일이건 큰일이이건 마다하지 않고 일한 돈으로 내 스스로 개인전을 열고, 초대전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술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그 남자랑 계속 마주치게되었다.
알수 없는이유로 주늑들게 되었고, 그 남자가전시하 갤러리를 피하기 까지 되었다.
그 시절에 별로 없던 컬렉터까지 끼고 작업을 하니 당연히 나보다 더 잘나가다.
물론 그 놈 작품이 더 좋았다고는 생각한다면 할말은 없다. 작품이란게 지극히 주관적인 거니까.
또다시 도피처로 선택한 곳은 중국의 한 입주갤러리,
입주작가를 신청하고 중국으로 왔고, 여기서는 그 남자가 없다는 생각에 더 작업에 매진했다.
이때 나이가 28살.
중국을 거점으로 내작품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중국과, 동남아 쪽에서는
작품꽤나 팔리는 작가가 되었다.
그렇게 내 자존감이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남자한테 데인게 많아서 인지 남자를 만나지를 못했다.
믿음이 가지 않았고, 내가 믿기를 싫어했다.
4년이 지나고 나는 영국의 한 유명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하게 되었고,
지금 마포구에 작업실 한켠 얻어 그렇게 작업을하기 하고있다.
그남자 얘기를 듣자하니, 미술은 그만두고 지금 치킨튀긴다더라, 뭔가 이긴것 같지만 찝찝한 느낌.
32에 연애도 못하고 있고, 당연히 결혼은 ....ㅎㅎ
부모님 잔소리도 지치고 명절에 내려가기도 무섭다.
남자가 필요하단 생각은 하지만, 남자를 만나기가 두렵다.
이렇게 또 시간이 흘러가면 난 영원히 혼자 살게 될것만 같은 느낌.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갔는지 연락하는 친구들도 몇안되고, 그친구들도 이미 다 가정이 있어
내가 낄 틈이 없다.
나름 긴 세월이라 생각했는데, 글 쓰니 몇자 안되네,
캔버스에 붓을들고 그림을 그릴때마다,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