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마음속 한 가운데는 텅 비어서 긴 한숨만
계절을 돌고돌아 벌써 두번째 겨울인데
내가 살고 있는 건 아직 그해 여름.
내 Favorite List 에 있는 곡 중에 하나인 매드크라운의 바질에 있는 가사다. 벌써 두번의 겨울이 지나고 이제 완연한 봄인데, 나 역시 노래 가사처럼 여태 2년전 9월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길면 긴 이야기고 짧으면 짧은 이야기지만, 그리고, 예전에도 몇번의 글로 정리하면서 되새기고 생각한 일이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수십번의 탈고를 거친 내 얘기를 여기에 올린다.
쓰다보니 몇편으로 나뉘게 되는거 같다. 끽해봤지 3편안에 정리할 글이지만. 1년이란 시간이 그리 긴 글이 되지 않아 서운하기도 하다. 하긴 너랑 나는 워낙에 미적지근한 관계였으니. 뭉근하게 달아오르다 찬물을 부어서 빨리 식어버린 뚝배기 같은 그런.
서두가 길어졌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예전을 다시 회상해보려고 한다.
내 이야기를 먼저해야 할 것 같다.
내 첫사랑은 그랬다. 고 3 때였다. 그러니까,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여자애였는데, 작심을 하고 고백을 한다며 고작 불러내서 한다는게 친하게 지내자란 말 한마디와 악수를 청한게 다였다. 그 애는 당황에서 황급히 자리를 떴고, 그때부터 나는 독서실을 있는 듯 없는 듯, 죽은 듯이 다녔다.
대학에 들어와서 만난 첫사랑은 1학년 첫학기 종강파티때 술이 완전 되서, 주변인들의 부추김에 의해 한, 고백같지도 않은 고백으로 시작해, 다음날 술이 깨고 난 뒤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청한 애프터를 거절당하며 끝이 났다.
나는 그 뒤론 여자친구는 커녕, 친구같은 여자를 제외한 그 어떤 여자도 내게 여자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그 친구같은 여자들과 자주 어울려다냤다. 그러다보니 그녀들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할때 큰 에너지를 쏟는일이 아니면 다 들어주다보니, 호구소리를 종종 들었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친구같은 여자는 친구 이전에 여자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어서라며 나름 합리화 하며 살았지만, 나는 실제로, 여자는 만나지 않고 친구인 여자에게 원 없이 잘해주는 호구시키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일년반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느끼는게 많아졌다. 그래서 2학년 여름, 처음으로 운동을 하고 내적인 수양을 하며 보냈다. 그때 당시에 나는 기숙사에 있었는데 그 친구같은 여자인, C양의 권유로 학교안에 또 다른 기숙사로 옮기게 된다.
너와의 이야기는 그 '다른 기숙사'에서부터 시작한다.
2011년 9월 1일, 운동을 하기엔 너무 더운날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몸을 굴렸다. 30분 움직이고 나니 온 몸에 물이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기숙사 사무실로 들어가 냉장고 안에 찬물을 입안에 때려붓기 시작했다. 입속이 촉촉해져서 다시 운동을 하러 나가려는 찰나, C양와 너가 들어왔다. 그녀들도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장고에 맥주 두 캔에 입맛을 다시던 그녀들은 '이 맥주가 누구것이냐' 내게 물었다. 이틀 전에 라면 안주삼아서 마시다 남은 내 맥주였다.
나는 운동중이라, 내 것이다 할 것 없이 그냥 너네 마시라고 했다. 이어 기숙사 사무실에 사감선생님과 S군이 들어왔다. 야식이나 먹자는 말에 혹해서 운동은 접고, 맥주 마시는 두 여자와 사감선생님, S군, 나 5명이서 기숙사 사무실에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C양과 S군은 같은과 동기였다. 너는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였다. 나중에 맥주나 같이 마시자는 너의 제안에 "알았다" 고 답했다. 내 장점중에 장점이라면 몇년을 못보고 산 사람이든, 처음 본 사람이든 어제 본 사람처럼 대화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야식을 먹고 하는 사이에 너와 나는 금새 친해져 버렸다.
그때 당시에 나는 맥주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취미생활이라곤 책 읽거나 기타나 둥둥 치는게 전부였었고, 뭔가 특별한 취미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나온 것이 맥주공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신변잡기만 늘렸다 싶지만. 하지만 그 일로 비롯해 나는 너와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첫 잔이 마지막 장면이 이르는 1년간의 시간을 짠하는 순간이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너와 자주 걸었었다. 좀 멀리 걸어 나갈때도 있었다. 가끔은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점차 만나는 시간이 많이지고 길어졌다. 너는 내가 사는 곳을 궁금해 했다. 만난지 한달이 채 안됐을때 너는 내가 사는 곳이 궁금하다며 내 고향에 와보고 싶어했다. 그렇게 말한 그 주에 나는 내 고향에서 너와 데이트를 했다.
내가 눈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당시에 2달 앞으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내심, 내가 좋다한들손, 주변인들이 그걸 안다쳐한들, 고민이 많았다. 너를 혼자 놔두기엔 너무 미안하고 불안한 것. 결국엔 불안을 없에려는 욕심이 컸다.
그날 우리 집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서 너가 했던, 내가 괜히 여기까지 왔겠냐는 그 말을 그냥 허공에 집어던진 한마디로 만든건 내 욕심이 컸기 때문이였다.
밀고당기기가 길어지면서 내 판단력은 결국 흐려졌다. 결국 나는 너와 만난지 한달 조금 넘어, 사소한 오해와 싸움으로 근 아무얘기도 안하는 사이가 된다.
사실, 그 한달 사이에 아무도 안 만난것은 아니다. 이 얘기를 그리 길지 않고, 결과만 얘기하자면, 그때 당시 만났던 분이 "너 혹시 나 좋아해?" 보냈던 조심스런 카톡을 "시험기간인데 심란하게 하지마요." 로 응수했다는 정도다. 지금은 그분은 보자는 얘기만 하지 얼굴은 안보는 사이가 되었다.
2학년 2학기 종강과 동시에 입대를 코앞에 둔 시점이 왔다. 그 해를 돌아보면서 미안한 사람이 딱 한사람 있었는데, 그게 너였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는 날 너에게 사과와 함께 같이 좀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과 그때의 오해를 푸는 아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로 나는 다음해 초에 군대를 갈 줄 알았지.
그때서야 안거지만, 요즘 군대는 타이밍이 맞아야 간다. 입영신청을 하는 와중 컴퓨터가 맛이가는 최악의 사태를 경험했고, 나는 입대가 최소 6개월이 더 길어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집에선 욕을 안하는데 처음으러 신발 성기같다며 소리를 질렀다.
학교냐 군대냐 두가지 선택이 있었다. 학교는 애착이 가지 않는 곳이였고, 군대는 늦어질게 뻔했다. 결과적으로 두개의 절충안 중 하나를 선택했야했는데, "학교를 빠져나가자 였다." 그리고 2012년 2월, 나는 입영통지서를 가지고 군대를 간게아니라 학원등록증을 가지고 서울로 간다.
그러다 너와는 4월에 다시 연락이 되었다. 내가 집에 내려가는 날에 앞서서 연락을 했었는데, 너가 무심코 던진 우리 ㅇㅇ에서 볼까? 하는 얘기에 충동적으로 그래 그러지 뭐, 하는 말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와 그 이후에 두번의 만남은 다시 나를 작년으로 돌려놓았다. 그 사이사이에 터진 사건들이 더욱더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알게 된지 딱 1년이 되는해에 이젠 진짜 결정을 할때가 되었다고,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갔을때, 그녀는 그날 당일 아침에 가족문제 때문에 나를 볼 수 없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날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날로 결정을 했었다. 더 질질 끌면 되려 나한테 독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강단있게 끊는게 필요했고, 너가 그 날 이후에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보낸 문자에는 "네 행동에 좀더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답을 보냈다. 이후엔 아예 할 말이 없다는 식의 알림만 보냈고. 결국엔 거기서 딱 끝이 났다.
결국 저 미친 짓은 내 감정 과잉이 낳은 결과였다. 나는 그 문자를 보내기 이전에, 그리고 이후에 생활이나 대인관계나 모조리 꼬꾸라졌다. 조절을 해야했지만, 이후에 자기관리 실패로 결국 시험 실패까지 간다. 내가 너 맞으라고 던진 비수에 내가 맞아 꼬꾸라진거나 다름 없다. 자기 문제는 자기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진짜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중에 하나고.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인공에게.
지금은 누군가를 통해 소식을 들을 기회는 잘 없고, 그렇다고 내가 연락할 자신도 없어. 직접 마주치기는 더더욱 그렇고.
얼마전에 학교에 친구들 보러갔을때, 염치불구하고 너 친구한테 너 소식 물어봤었어. 그냥, 너는 너 답게 사는거 같다는 생각만 들더라.
예전에도 그랬지만, 내가 진짜 미안한 일이 있거나 고마움을 얘기할땐 말보다 글을 먼저줬던것 같다. 나는 즉흥적이고 이래저래 둘러대는 투의 말보단 진중한 글을 더 좋아하니까.
글을 쓰다쓰다 몇번의 탈고 끝에, 이렇게 대놓고 판 같은데 게시하는건 너가 읽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이제 일하는게 이리로 흐르다 보니 자연스러운 것도 있고.
항상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동시에 품고 산다. 어찌되었건 내 지난 일년을 독재하다 시피 내 생활을 지배한 사람이고, 내가 가장 많이 변화를 했던 그 일년의 히로인이기도 하니까. 늦게서 되돌아 봤을때 더 뼈저리게 느낀다.
가끔은 우연치 않게 마주칠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근데 내가 그 동네가 갈 일이 드물다 보니 그냥 망상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때 같이 샀던 맥주잔이나, 너가 작년에 현충원에서 준 손수건을 여태가지고 있다. 맥주잔이야 워낙에 귀한거고, 손수건이야 어쩌다 받은 선물이지만, 이거 마저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면 나는 영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거같아서가 제일 크다. 근데 너는 그때 그 맥주잔이나 내가 마지막으로 줬던 선물 여태 가지고 있는지 궁금은 한데. 뭐... 잘 가지고 있을거라 믿어.
그리고 나는, 절간 스님 처럼, 여기 콕 박혀서 참선하는 마음으로 지내면서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