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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자살은 기억을 남긴다 上

정상규 |2013.05.19 01:14
조회 4,981 |추천 9
초여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내 볼을 간질인다. 고층 빌딩의 옥상도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닌 것 같다.

즉, 인생을 끝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인 것이다. 옥상이란 곳이 말이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해진 담배갑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라이터의 부싯돌을 마찰을 일으켜 불을 냈고, 그것으로 담배를 태웠다.

아, 좋다. 담배를 깊게 빨았다. 몸 속의 붉디 붉은 폐까지 연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가기전에 이런 쾌락도 나쁜 것 같지만은 아닌 것 같군.

'그럼, 뭐하겠나.'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이제 그럼 뭐하겠나. 아무리 멋드러진 명품옷을 입고, 끝내주는 차를 몰고, 쭉쭉빵빵한 여인을 가졌어도,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의 규칙이며, 세상사의 법칙이다.

나는 지금 그 세 가지가 없어서 남들보다 이른 선택을 하는 것이고, 세상사의 법칙을 조금 빨리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 아무것도 없으며 다른 초월체의 뜻이나 이념체의 뜻은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선택이다. 남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와 본능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꽤, 높군.'

휘이잉, 부는 바람소리가 내 고막을 다시 간질인다. 밑 쪽은 단단하고도 단단한 리놀륨 바닥의 늪이다. 그 위로, 군중들이 밀집해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였고 벌집속의 벌들처럼 쉴새없이 행동한다.

"흐으......"

하얀 연기가 폐 속 깊은 곳부터 콧구멍 끝을 뚫고 번뇌한다. 수 많은 생각이 든다. 수 많은 표정이 지어진다. 마지막 담배를 깊게 빨고는, 타버린 꽁초를 군중 속으로 집어던졌다. 떨어지는 꽁초는 회전하고 회전해, 그 모습을 감추어버린다.


한숨 두 어번을 쉰뒤, 두 발을 난간 위로 올려, 몸을 움직였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빙신. 무섭냐?'

자문자답이다. 외면이 질문하고 내면이 대답한다. 솔직히 무섭다.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오고 싶다. 내 안의 악마는 뛰어내리라고 한다. 내 안의 천사는 살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면의 '천사'에게 묻는다.

'살아서 뭐할건데? 무엇이 보이나? 빛이 보이는거야? 희망이 보이는거냐고? 아, 너는 이러겠지. 세상은 아직 살만해.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있어! 너에게는 도와줄 이가 많이 남아있어! 그러니까, 살아보자. 살아보자고, 친구.'

'X까.'

결국에는 악마가 이긴다. 천사는 진다. 그것이 내 안의 룰이자, 신념이다. 변하지 않겠지. 아마도. 영원히.

세상은 부정적이다. 적어도 내 근처의 세상은 무채색의 기계 속 부품이다. 이가 맞춰, 돌아가는 기어들. 그 미세한 것 중들의 아주, 아주 사소한 하나의 조그맣고 가녀린 부품.

그 부품이란 세상 속에 사는 나는 희망이라는 빛나고 긍정적인 한 줄기의 신의 구원따위, 잊은지 오래다.

'낄낄낄. 그럼, 뒤져.'

내면의 악마가 실실 웃는다. 지독히도, 끔찍히도 부정적인 자식! 너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왜? 너는 '악' 그 자체니까. 부정, 부정. 부정이란 단어는 무서운 것이다. 부정 한 단어로 세상을 멸할수 있다. 부정이라는 한 사념체는 우리의 절규, 비통, 우울, 비명, 한탄, 고뇌, 고통들을 긁어 모아 한꺼번에 먹고 또 먹는다.

'자, 어서 뛰어내리는거야. 친구. 자, 어서! 뛰어내리면, 이제 편해질 수 있어! 친구, 당신이 원하던 것이라고!'

악마,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그래,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맞아,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친구우...... 친구가 원하던 것이었다고? 난 그저 친구를 도와줄뿐이야. 그러니까......'

'닥쳐! 닥치라고! 이 개같은 자식아!'

너 따위가 뭔데 내 앞길을 이래라, 저래라냐고! 그래, 네 소원대로 이 세상에서 없어주지.

'잘했어! 좋은 선택이야! 아주 잘했어! 하하하하하! 낄낄낄낄낄!'

새끼. 쪼개는 것 하고는.

'그래.'

두 발을 난간에서 뗀다. 날아가는 벚꽃의 기분이 이런걸까. 자유롭다. 신나디, 신난 바람들은 나의 살과 머리카락을 미친듯이 뒤 흔들고, 구름은 둥실둥실 춤을 추는 것 같다.

눈 앞에서 지금까지의 인생들이 오버랩된다. 아주, 빠르면서도 천천히. 그 인생들은 나의 뇌를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된다.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찌릿한 느낌이 오감으로 변환된다.




500번 째 생각

"아빠. 저건 뭐야?"

신기한 동물이야. 재밌게 생긴 동물이다. 아빠는 대답해주겠지? 아빠라면 대답해주겠지? 아빠는 모든 것을 다 아니까!

"저게 궁금한거니? 응, 저 동물은 말이야. 팬더라는 동물이란다! 허허허!"

팬더라는 동물이구나. 아 그렇구나. 기쁘다! 아하하!




700번 째 생각

"아빠도 없는 주제에!"
"너네 집에는 냉장고도 없다며?"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말 좀, 해봐! 이 벙어리야!"
"으휴, 벙어리랑은 상대도 하지 말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
"너네들, 우리집에서 놀래? 우리집에 게임기 엄청 많아!"
"와아! 그러자! 벙어리만 빼놓고!"
"헤헤헤! 쟤네집에는 게임기도 없겠지?"
"당연하겠지!"
"하하하!"
"깔깔깔!"
"꺼얼......"
"꺼......"

떠 올리고 싶지 않아.




800번 째 생각

"이봐요! 지금 댁네 벙어리 아들이 지금 제 귀한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놨다고요! 어머머, 여기 멍든 것좀 보세요!"
"어머님, 아무리 그래도 벙어리 아들은 조금 심한듯......"

선생님의 말에 우리 엄마가 무릎을 꿇었다. 엄마 왜 무릎을 꿇는 거야? 저 녀석이 먼저 나보고 벙어리라 놀렸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 처벌은 기꺼이 제가 받겠습니다."

왜, 엄마가 사과하는거냐구.

왜. 왜. 왜!




900번 째 생각

"자, 오늘 전학 온 학생입니다.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인사해야지."

예쁜 아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암초등학교에서 전학온 손유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예쁜 아이다.

"우와, 짱 예쁘다! 내 옆에 앉아!"
"그럼, 나는?"
"넌, 벙어리 옆에 앉아!"

바보들.

"현수야 그런 말하면 못 써! 상구가 상처 받잖니!

안 그러셔도 되요. 선생님. 익숙한걸요.

"유진이는 상구 옆에 앉으렴. 마침 비어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에 여자애가 웃는다.

"네. 선생님."
"그래. 그럼 가서 앉거라."

여자애가 내 자리에 앉고는, 나에게 웃으며 악수를 건넨다.

"친하게 지내자!"

나는 악수를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910번 째 생각

"너, 집에 가는 거야?"

또, 따라온다. 나 같은 것이 뭐가 좋아서.

"어느 쪽 방향이야? 나랑 같이 가자."

나한테, 말 걸면 너만 놀림받을거야. 그러니까 떨어져. 제발.

"아, 그 쪽 방향이야? 같은 방향이네?"

나는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린 후 앞으로 질주했다.


그래도......

나한테 말 걸어줘서 고마워. 유진아.




920번 째 생각

"벙어리라서, 노래도 못부른대요! 깔깔깔!"

그래, 난 벙어리라서 음악시간에 노래도 못 불러.

"선생님, 쟤 도망가요!"
"부끄러운가봐?"
"깔깔깔!"

나도 말하고 싶단 말이야.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근데, 말할 수가 없어.




921번 째 생각

"여기서, 뭐해?"

뭐하긴, 뭐해. 혼자 있고 싶어. 제발 어디론가로 가버려.

"선생님이...... 이따가 교무실로 오래."

네가 안 간다면 내가 가버리면 되지.

"가지마."

깜짝 놀란 나머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서 유진이를 쳐다보았다.

"넌 왜 항상 날 보면 피하는 거야?"

뾰루퉁한 표정이다.

"......"

그거야, 너한테 피해 주기가 싫어서......

"읍."

유진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난 네가 좋단 말이야. 벙어리가 됐든 뭐가 됐든. 그러니까, 앞으로 날 피하지마! 알겠지?"

거짓말하지마. 나 같은 벙어리가 뭐가 좋다고.

"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거야? 바보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겨먹은 놈인걸.




1000번 째 생각

"상구야! 어디가?"

어디가긴. 화장실 가지.

"화장실 가는거야?"

넌, 혼자 대화하는 것 같이 안 느껴져? 안 답답해? 벙어리한테 말을 걸어도, 벙어리는 대답할 수 없어.

단지, 이렇게 글로 쓸 수 밖에 없어. 대화를 말이야.

"안 답답하냐고?"

그래.

"응. 전혀 안 답답한데? 넌 최소한 들을 수가 있잖아? 그럼 우리는 대화하는 거야."

그게 어떻게 대화하는 거냐.

"헤헤."




1100번 째 생각

"흠,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심이......"

교장 선생님. 심히 고민하고 있나 보군.

"보내야 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때 제 아들도 같이 차 안에 있었습니다. 성대를 심하게 다쳐서 말을 못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학교가 제 아들에게 해준 것이 뭡니까! 네? 따돌림, 왕따. 그저 벙어리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제 아들은 항상 그늘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교장 선생님이 당황하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전학 과정을 밟을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교장실을 나왔다.




1103번 째 생각

"나, 들었어."

뭘.

"너 전학 간다면서."

들었구나.

"내 후년이면 초등학교도 졸업일텐데......"

사실 나도 가고 싶지가 않아. 정말로. 모든 아이들이 나를 벙어리라고 욕했어도, 너만은. 유진이 너만은.

나를 반겨줬었는데.

이제 헤어지는구나.




1120번 째 생각

"에, 오늘은 상구가 다른 학교로 전학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녀석들이 동요를 한다.

"네? 정말요? 왜요?"
"우리가 놀려서 그래요?"

녀석들의 말에 선생님이 동요했다.

"에, 그건 말이죠......"

그냥 말하세요. 선생님.

"흐아아앙!"

유진이의 울음소리였다. 녀석들이나, 나나 선생님이나 교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유진이를 쳐다 보았다.

"유진아 왜 울어?"
"갑자기 왜 우는거지?"

유진아,

미안해.

그리고 좋아해.




2000번 째 생각

"벙어리새끼. 고작 가져온 돈이 꼴랑 500원?"

너네 몸 값보단 비쌀걸. 거지새끼들아.

"이 새끼 눈빛 봐라?"

눈빛이 험하면 어떻고, 벙어리면 어떤데? 내가 너희들한테 맞아야 할 이유가......

"윽!"

젠장할. 이젠 지겹다.

"흐윽!"

맞는 것이.

"흐억!"

그리고,

"흐악!"

벙어리라는 것이.




2002번 째 생각

(황선홍 선수, 머리에 피가 나는데요! 위급해보입니다!)

월드컵인가.

"아들. 엄마 물 좀."

엄마가 등을 긁으며, 월드컵을 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랐다.

"고마워. 아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번 마시고는 컵을 바닥에 내려 놓는다. 그러고, 옆에 있는 약 봉지를 꺼내서 가루약을 입 안에 털어넣고, 다시 물을 마신다.

"아들, 미안한데 근처 가게에서 콜라 하나만 사다주면 안될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알아. 뼈에 안 좋은거. 그치만 오늘 너무 마시고 싶은 걸...... 속도 안 좋고 해서."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2003번 째 생각

"1200원 입니다."

지폐. 그리고 동전이 어딨더라.

"감사합니다."




2004번 째 생각

"목 마르다......"

콜라를 집어 편의점을 나갈려고 옆을 돌아보는 찰나, 그곳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너는......"

어릴 때 그대로 예쁘게 자랐네.

"상구, 상구 맞아?"

그래. 나 상구 맞아. 난 상구야.

"어떻게 이런데서......"

그러게.




2005번 째 생각

"그 동안, 잘 지냈어?"

나는 두 손을 들어올린다.

"말, 아직도 못하는 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나, 그 때 울었던거 기억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진짜 쪽팔렸지. 으휴......"




2006번 째 생각

"어, 전화 왔네."

유진이가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치마 주머니에서 꺼내, 받는다.

"어, 오빠. 어디야?"

남자친구인가.

"아, 알았어. 거기로 갈게."

삑소리가 귓 속으로 섭섭하게 들려온다.

"아, 남자친구. 같은 중학교 1년 선배 오빠."

그렇구나.

"상구, 넌 여자친구 있어?"

아니. 내가 있겠어?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렇구나...... 만나서 반가웠어! 난 이만 가볼게. 잘 지내구."

그렇게 그녀는 멀어진다.
그렇게 내 마음도 멀어진다.

당연한거 잖아. 애초에 너 따위한테 평생 올까 말까한 여자였으니까.

당연한거 잖아.
당연한거 겠지.
당연한걸까......




2010번 째 생각

콜라를 사서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발작을 일으키고 계셨다.




2020번 째 생각

"늦어도 두, 세달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당신이, 그러고도 의사야?

"죄송합니다."

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사과한다. 단지 그 뿐이었다.

미안하면, 우리 엄마 다시 살려낼란 말이야......




2200번 째 생각

"으으윽......

하얀 뼛가루가 흰 호수에 만개한다. 그리고 이 조용하고 넓은 곳에서 내 응어리지고 옹알대는 꺽꺽소리가 흐를 뿐이었다.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3000번 째 생각

"상구. 여기 물건 좀 날라줘!"

꽤 큰 물건인데.

온 몸에 체중을 실어서 물건을 들었다. 힘이 들었지만, 이것도 다 먹고 사는 일이다.




현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내 온 몸을 뚫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내가 죽을려면 몇 초는 더 있어야 하겠지.

'여기까지가 친구의 인생 중 반인 것 같군 그래? 낄낄.'

그래. 그런 것 같다. 악마 같은 놈아. 이렇게 다 보여줘야 네 속이 후련한거냐?

'맞아. 친구. 킬킬.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라구.'

생각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이제 죽을텐데 그런 것을 또 생각하기 싫다고.

'걱정 마. 2초면 충분해. 방금도 5초였다구?'

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너도 내 자아일텐데.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친구! 이제 2초 만 더 생각하면 친구의 머리는 수박통 마냥 콰지직 조각날거야. 킬킬.'

아아, 그렇겠지. 끔찍하네.
추천수9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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