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Quincy Delight Jones, Jr. 예명은 Q.
1933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퀸시 존스는 10대 트럼펫 연주자로서 당시 무명이었던 레이 찰스와 함께 밴드를 결성해 음악적으로 교감한다.
1950년대 초반에는 보스턴의 실링거 하우스(지금의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수학하며 음악적 재능을 널리 알리게 되고, 이후 트럼펫 연주자 겸 편곡자였던 라이오넬 햄든과 공연하며 유럽무대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유럽 공연 이후에는 유명한 프리랜서 편곡자로서 클리퍼드 브라운, 지지 그라이스, 오스카 페티퍼드, 캐논볼 애덜리, 카운트 베이시, 디나 워싱턴 등과 함께 일했으며, 1950년대 말에는 편곡자 겸 제작자로 바클레이 레이블 소속으로 파리에서 일하며 왕성한 작곡을 계속해 간다. 많은 아티스트와의 곡 작업으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게 된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기가 된다
퀸시존스 ⓒ Photo Courtesy of Qwest/Interscope Records
이후 그는 1961년 뉴욕으로 돌아와 머큐리 레코드 사의 A&R 감독을 맡았고 1964년에는 부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흑인차별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흑인 최초로 미국 주요 레코드 사의 고위 경영직에 오른 것은 매우 기록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당시 그가 제작한 앨범들을 거의가 재즈 음악들로, 그래미 수상 곡인 <I Can't Stop Loving You> 등을 비롯해 수많은 그래미 후보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9~1981즈음 A&M 레이블에서 일하는 동안 재즈에서 팝음악으로 전향한 퀸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가 되었고, 1980년에는 자신의 독자적인 레이블인 퀘스트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Thriller〉(1982)와 올스타 자선 음반이었던 〈위 아 더 월드 We Are the World〉(1985)였다.
TV시리즈 〈벨에어의 어린 왕자 The Fresh Prince of Bel-Air(1990~96)〉 제작과, 잡지 〈바이브 Vibe〉 런칭 등 수년 동안 대중음악계의 유력자들과 함께 일했던 그는 TV시리즈 〈뿌리 Roots〉(1977)의 주제음악으로 에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래미 상에 75차례 후보에 올랐고 25회 이상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상에는 7차례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퀸시 존스는 '음악계의 거장'으로 불리며, 흑인 음악의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