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나의 이득을 위해 타인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것이다.
(매일 새벽 신문배달을 하다보니 길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사람들이 취객들인데, 그 날 만났던 두 여성 취객은 왠지 나를 신경쓰이게 하는 어떤 위태로움이 있었다.)
이른 새벽. 배달 중에 차도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두 여자를 보게 되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단정한 외출복 차림의 두 사람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는 만취된 상태인지 차도 바닥에 주저앉아 곧 드러누울 듯이 인사불성이었고, 친구인 듯한 여자는 상태가 조금 덜한지 만취한 여자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가는 택시들이 간간이 멈춰서기도 했지만 여자들이 탈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냥 지나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마침 그 근방을 배달하던 중이라 그 광경을 줄 곳 지켜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매일 새벽이면 자주 접하는 풍경이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차도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위험해 보였고, 두 사람 모두 취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꽤나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어떤 위태로움이 느껴져 경찰을 불러줄까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만취한 여자를 부축하던 친구도 버거웠던지 한 손으로 친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마도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다. 두 여자 주위엔 그녀들의 가방과 손지갑, 쇼핑백 등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었다. 여자가 전화를 했으니 곧 도움을 받으리라 판단한 나는 걱정을 뒤로하고 그곳을 막 떠나려던 찰나였다.
그때 나는 똑똑히 보고 말았다.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인사불성인 만취녀와 그녀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친구인 여자를 향해 곧장 걸어가고 있는 어떤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그 여자들 바로 옆에 떨어져 있는 붉은색 손지갑을 재빨리 집어 들고는 태연스레 지나치는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순간적으로 일어나, 보고 있던 나 조차도 어이없고 황당해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남자는 처음부터 길 건너에서 여자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봐왔고, 그 옆에 떨어져 있는 손지갑만을 목표로 삼았던 것 같았다. 손지갑을 챙긴 남자는 시장 입구 쪽을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고 두 여자는 이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발끈 화가 났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재빨리 바이크를 몰아 그 남자를 뒤쫓았다. 이윽고 남자 앞을 가로막자 남자는 움찔 놀라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 짧은 머리에 왜소한 체구로 운동복 바지에 허름한 잠바를 걸친 모습이었다. 나는 인상을 쓰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저씨! 그러면 안 되죠!!” 나의 기세에 놀랐는지 남자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잠바 주머니에 감춰둔 여자의 손지갑을 꺼냈고 나에게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곤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주저앉아 있던 두 여자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더니 손지갑을 돌려주었다. 그 후 남자는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안심이 된 나는 곧 그곳을 떠나 배달을 계속했다.
얼마 뒤, 여러 골목을 돌아 다시 그 근방에 왔을 때, 아까 그 여자들이 있던 차도 위에 순찰차가 멈춰 서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여자가 스마트폰으로 도움을 요청한 곳이 경찰서였는지, 혹은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다행스럽고도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 후기
애초에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갑을 주운(주웠다기보다 절도임) 남자는 횡재를 했다고 좋아했을 것이고, 여자는 술이 깬 후 분실한 지갑에 속상해 하며 스스로를 자책했을 것이다. 어쩌면 돈 보다 더 중요한 뭔가의 분실로 인해 난감해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나로 인해 남자는 나를 많이 원망하거나 경찰에 넘겨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국 여자들은 남자의 절도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갑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나의 존재는 뭘까?.
아마도 여자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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