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슬 권나영 권현지 김경화....” 2013년 3월 1일. 그룹 인피니트가 데뷔한지 997일 째. 그들이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3 INFINITE 무한대집회>(이하 <무한대집회>)를 열던 날. 그 날 모든 행사가 끝나고 무대 한가운데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팬들의 이름이 올라가고 있었다. 정식 공연이 아닌 행사를 위해 체조경기장으로 온 8천명 이상의 관객들. 또는 <무한대집회> 도중 멤버들의 과거 공연 사진이 나올 때마다 언제 어디에서 열린 것인지 정확하게 맞춘 팬들. 그런 팬들이 997일만에 만 명 가까이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체조경기장에 가득 모였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로 아직은 어색한 모습으로 데뷔했던 그 그룹이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하고, 일본에서 8만명을 동원하는 아레나 투어를 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 인피니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아홉 곡의 노래를 부르되, 기존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반도 안 되는 티켓 가격을 책정한 팬서비스 행사를 선사했다.
팬미팅, 또는 패밀리 미팅
그래서, ‘집회’다. 인피니트의 멤버 동우는 <무한대집회>를 “팬미팅이기도 하고 패밀리 미팅”이라고, 그들과 팬의 관계를 “인연의 실”로 연결된 관계라고 말했다. 팬이 아니면 오글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피니트의 팬들은 그들의 서포트 속에서 성장한 그룹이 997일만에 팬들을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으로 만드는 행사에 초대됐다. 아이돌 그룹과 팬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미담. 인피니트는 데뷔 2년째인 지난해 하반기에야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전까지 누구 혼자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거나, 연기 활동으로 인기를 모으며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같이 노래부르고, m.net <인피니트 깨알 플레이어>처럼 함께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리를 쏘다니며 팀을 홍보했다.
인피니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버린 ‘칼군무’는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멤버들은 혼자 튀는 대신 팀으로 몰려다닌다. 회사는 팀이 인기를 얻자마자 CF에 출연시키는 대신 대기업의 전자제품처럼 그들의 위치를 확실히 보여줄 CF 계약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노래는 ‘다시 돌아와’부터 ‘추격자’까지 1980년대의 뉴웨이브 사운드와 아이돌 그룹 특유의 구성에 ‘칼군무’를 더해 그들만의 일관성을 지켰다. 10대들은 ‘칼군무’와 예능 프로그램의 ‘깨알’같은 모습에 즐거워했고,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도 자신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당황하는 대신 인정할 수 있었다. 솔로로 나선 성규와 호야와 동우의 유닛 인피니트 H가 고정 출연한 프로그램은 예능이 아닌 KBS <불후의 명곡>이었다. 개인활동보다 팀, 예능보다 음악, 지상파보다 케이블. 그룹의 이름과 노래 정도를 알고 좋아하는 ‘라이트 팬’은 좀처럼 없다. 대신 천천히, 그러나 지치지 않고 열광적인 ‘코어 팬’들이 늘어갔고, 어느덧 체조경기장을 채울 정도가 됐다. 3년동안 조용히 뭉친 코어팬들이 드디어 팬덤 바깥의 주목을 끌기 직전의 순간 모였다. 그러니, ‘집회’다.
당신은 왜 아이돌의 팬을 하나요
<무한대집회>는 시종일관 인피니트와 그들의 소속사가 팬들과 어떤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낮은 티켓 가격을 책정하면서도 체조 경기장을 대관해 팬들이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멤버들 각자가 팬서비스를 위해 특별한 무대를 꾸미거나, 팬들의 사랑을 애써 고백하는 이벤트를 기획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VCR을 통해 ‘초심 찾기’를 보여줬다. 인피니트의 멤버들은 성공 전 폭우가 쏟아지면 방의 물을 퍼내야 했던 옛 숙소로 돌아가 과거를 기억한다. 숙소에서 입던 옷들을 다시 입고, 과거의 활동 모습을 보고, 데뷔 초 노래들의 안무를 기억하는지 확인한다. m.net <인피니트! 당신은 나의 오빠>부터 인피니트가 팬들에게 보여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를 잊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팬들은 그룹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그룹은 팬들에게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한다. 남들이 보기에 오글거리든, 코웃음치든 상관 없다. ‘라이트 팬’이나 대중은 끼어들 틈 없는 크고 단단한 공동체.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남자 아이돌 그룹이 나오고 아이돌 팬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집회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인피니트 멤버들의 컴백 예고 티저가 등장한다. 티저 속의 인피니트는 제복을 입고, 스케치하듯 알파벳 H를 그리고, 피아노를 치거나 사진을 찍는다. 팬이 아닌 사람에게는 색감 좋고 편집 잘 된 티저다. 하지만 팬들에게 제복은 인피니트가 콘서트에서 입은 복장이고, H는 인피니트 H를 뜻한다. 피아노와 사진은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티저 뒤에 한자로 뜨는 ‘완전체’는 모두 모인 인피니트를 뜻하는 팬들의 표현이다. 팬은 인피니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인피니트는 팬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결과에 반영한다. 팬의 응원이 그룹이 내놓는 좋은 결과물 안에서 보상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한대집회>가 끝난 뒤 티저는 인터넷 이곳 저곳에 퍼지기 시작한다. 인피니트와 팬들, 또는 그들이 모여 만든 어떤 공동체는 그 성격 그대로 더 많은 대중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룹과 팬 모두 아이돌 그룹의 방식으로 전진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997일이 걸렸지만, 그만큼 틈이 보이지 않는 집단. 팬미팅 대신 집회란 말을 붙이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아이돌 그룹의 팬덤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래도, 두 번째 집회는 좀 더 넓은 곳에서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거 정말감동적이야.. 그냥읽다가눈물나올수도있을듯 ...;;